올라퍼 엘리아슨의 전시를 즐기는 다섯 가지 방법
“문화란 세계라 부르는 기계의 심장”이라 믿는 이상주의자가 손을 내민다. ‘선한 예술가’의 이름으로 세상을 바꾸고 있는 올라퍼 엘리아슨. 그의 전시 〈세상의 모든 가능성〉의 장은 내 몸과 마음에 예술의 명분과 당위에 대한 새로운 ‘감성적 내러티브’를 형성했다.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은 ‘예술가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한다. 전방위적, 방대함, 다양성 같은 단어보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모든 것에 걸쳐 있다는 문장이 더 적절하다. 태양, 무지개, 폭포, 별, 바람 등 자연을 만들어내기도, 도심 한가운데 빙하를 갖다놓기도, 바다에 녹색 물감을 풀어놓기도, 그리고 아이슬란드에서 양을 직접 키우기도 한다. 럭셔리 패션 하우스의 조명을 만드는 동시에 개발도상국을 위해 태양열 램프를 개발하고 판매하기도 한다. 전 세계 미술계, 건축계의 행사뿐 아니라 경제 포럼에 참석하기도, 나이지리아 자원부 장관을 만나기도 하며, 이미 G7 회의에서 유럽과 아프리카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발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올해 그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예술가’에게 주는 상을 받았다.
“저는 자연을 인간 삶의 일부로 인정하는 곳에서 자랐습니다. 어느 날 부모님은 내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 말씀하셨죠. 네가 지구를 조금씩 밀어내고 있구나…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림 그리는 이 작은 행위 자체가 우리 주변에,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요.” 올라퍼 엘리아슨이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말 “외부란 없다”를 인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우리는 불가피하게 세상에 휩쓸리고, 우리 행동은 반드시 어떠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기후 문제, 난민 문제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예술이 예술이라 불릴 수 있었던 건 예술가가 ‘예술해주는 기술자’가 아니라 ‘자기 목적성과 의지를 가진 주체’가 되면서부터였다.
“의심과 회의는 매우 유효한 시도입니다. 불확실한 상태도 괜찮습니다. 잘 몰라도 완벽합니다. 미술을 아는 사람도,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도 한 사람의 관객에 불과합니다.” 그의 작품 특징으로 꼽는 ‘현재성’ ‘일시성’은 작가조차 자기 작품이 한국의 현대적 일상에서 어떻게 진화할지 호기심을 가진다는 단서. 그렇기에 리움의 <세상의 모든 가능성> 전시장(2017년 2월 26일까지)에서는 누구나 ‘몸’이라는 캔버스를 가진 예술가가 될 수 있다. 다음 다섯 가지는 흥미로운 순간을 즐기는 예시일 뿐이다.
“자신의 감정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젊은 부모들을 내 전시에 초대하고 싶어요. 전시장에 오는 대부분의 한국 아이들은 부모 곁에서 집중하며 느리게 걷습니다. 다 자란 어른들처럼 말이죠.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 때,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반응을 보입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이 경험을 자신의 몸 안에서 정리하고 표현할 지 모험가처럼 알아내려는 과정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걸 내버려두는 것 자체를 실패로 간주하는 사회에서 삽니다. 하지만 저는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지금보다 더 존중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작품이 무너지면 나중에 고치면 됩니다. 내 전시는 모험적인 사람을 환영합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블랙박스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고 망아지처럼 흥분했다. 그리고 작품 ‘무지개 집합’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했다. 커튼과 같은 안개비를 통과하여 안에서 보면 무지개가 어른거린다. 아이들은 우산도 집어 던지고는 안개 안팎을 수십 번 왔다 갔다 했다. 축축이 젖은 채로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무지개가 우리 눈에는 일곱 색깔이지만, 어떤 부족의 눈에는 세 가지 색으로 보인대요. 어쩌면 수천 개의 색깔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올라퍼 엘리아슨의 말이 떠올랐다. “보는 것이 감정에 힘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보는 것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빛과 굴절이 만들어낸 현상으로서의 무지개는 아이들의 몸짓으로 완성되었다.
올라퍼 엘리아슨은 전작에서도 종종 미술관을 ‘걷는’ 경험을 극대화했다. 덴마크 루이지애나 미술관 전체를 강바닥으로 만들어버렸고, 브레겐츠 전시에서는 녹조를 띤 물 위에 나무 다리를 만들고는 그 위를 걷게 했다. 관객들은 다리를 걸으면서 벽을 마주하기도 하고, 이 공간이 얼마나 넓은지 실감했으며, 녹조가 어떤 느낌으로 변하는지 바라보며 그 공간을 온전히 경험했다.
“직관적, 직감적 아이디어를 좋아합니다.” 올라퍼 엘리아슨과 함께 아티스트 토크에 참여한 티모시 모튼 교수가 그의 말을 받아친다. “바로 몸에서 느껴지는 느낌이죠. 그건 기하학과도 닿아 있습니다. 기하학은 숫자가 아니라 지구와 가까워지는 학문이죠. ‘지오메트리’라는 단어는 걷는 속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걸어 다니는 명상 상태라 할 수 있어요.”
“언어화되지 않은 아이디어가 존재합니다. 언어로 구조를 부여하지 않아도, 그 느낌을 처리하거나 갖고 놀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작품을 보고 이런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면, 그 순간의 느낌이 언어로 표현되는 겁니다. 당신의 감정이 거기에 반영되는 거죠. 느낌, 직감, 직관이 상대에 의해 미래에 의해 읽혔구나, 이해되었구나, 미래에 환영받는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난 괜찮은 사람이다, 같은 느낌을 갖게 되지요.”
올라퍼 엘리아슨은 빛, 움직임, 물, 바람, 안개 등 비물질적 요소를 미술관에 들여온 걸로 유명하다. 그를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린 건 2003년 테이트 모던의 ‘날씨 프로젝트’였다. 터빈 홀은 거대한 인공 일광욕실로 변모했고, 6개월 동안 200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들였다. 햇볕에 목마른 런더너들은 바닥에 누운 채 정치적인 문장을 만들어 내거나 천장에 달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지금 리움도 새로운 인식과 경험의 세계 그리고 가능성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작용 중이다. 수학자 겸 건축가 아이너 톨스타인(Einer Thorsteinn)과의 협업으로 얻어낸 도형을 아이슬란드의 화산암으로 깎아 만든 작품 ‘(무제)돌바닥’이 깔린 이곳에서는 누워도 상관없다. 차가운 돌바닥에 누워 자연의 풍경만큼 화이트 큐브도 광활할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될 테니 말이다.
착시 현상은 올라퍼 엘리아슨 작품의 매우 의미심장한 특징이다. 하지만 모나리자의 눈썹을 홀로그램으로 만든 ‘매직아이 뮤지엄’도 아니고, 착시가 왜 중요한 걸까 자문하며, ‘(무제)돌바닥’ 한가운데 섰다. 아이들은 ‘안전지대’ 같은 빈방에서 뛰어다녔고, 울퉁불퉁한(그렇게 보이는) 땅은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보는 것에 대한 감각을 극대화하는 순간은 마름모의 거울과 유리로 된 빈 공간을 만화경처럼 구성한 작품 ‘자아가 없어지는 벽’에서도 만끽할 수 있다. 분열된 내 모습은 전두엽을 자극한다. 내 몸이 내가 생각한 형태나 유형 이외의 것으로 인식된다. 보고 있는 것이 맞나, 잘못 봤나 질문한다. 그리고 이윽고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으며, 동시에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사유에 이른다. 의심은 확신과 한 끗 차이이며, 변화의 첫 명제가 된다.
“<세상의 모든 가능성>전은 세상과 세상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생산과 관계의 연속적 과정으로 사물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의 잠재력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현실을 뛰어넘어 어떤 세상을 만들지 함께 결정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나는 사람들이 나의 작품을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고, 세상 안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길 바랍니다. 예술 작품은 우리 내면에 있는, 그러나 아직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을 반영하는 거울이라 믿습니다.”
올라퍼 엘리아슨은 꿈꾸는 예술가다. 신작 ‘당신의 예측 불가능한 여정’은 그가 특히 소중히 여기는 개념, ‘당신’ ‘예측 불가능’ ‘여정’이 모두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야심작이다. 유리구슬 1,100개로 오리온 성운을 재현한 작품에는 내 모습이 비친다. 하나하나의 별은 ‘지금’ ‘여기’에 있는 이들을 담는다. 우주는 하나가 아니라는 다원 우주론은 나와 당신의 우주가 공히 중요하다는 사유로 이어진다.
- 에디터
- 윤혜정
- 포토그래퍼
- CHUN HIM CHAN, LE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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