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ttin’ on the Ritz
20년대 ‘카페 소사이어티’ 시절을 추억한 역사적 장소에 GD 가 초대됐다. 〈보그〉가 동행한 파리 리츠 호텔에서의 황홀한 그날 밤.
“천국에서의 내 삶을 상상해보면, 모든 일은 늘 리츠에서 일어나더군.”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동료 작가 A.E. 호치너에게 쓴 편지를 통해 리츠 호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파리의 방돔 광장을 120년간 수호한 이 호텔을 아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헤밍웨이는 나치 부대로부터 호텔을 ‘해방’시키기 위해 직접 전차를 타고 달려갔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매일 밤 잊지 않고 찾아와 산책을 즐겼고,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젤다와 함께 샴페인을 음미하며 파리 생활을 만끽했다. 또 다이애나 비는 이곳에서 생전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적어도 ‘Ritz’라는 글자가 새겨진 하얀 차양을 지나는 건 보다 특별한 삶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 것과 같았다.
방돔 광장으로 향한 정문이 아닌, 호텔 후문으로 드나들던 손님을 혹시 기억하는가. 리츠를 그토록 사랑한 나머지, 아예 1937년 호텔 스위트룸으로 이사한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다. 마드무아젤은 정원이 내다보이는 304호와 305호에서 34년을 지냈고, 호텔 후문과 마주한 캉봉 거리의 아틀리에에서 일했다(지금은 2층 ‘코코 샤넬 스위트’에서 그 자취를 찾을 수 있다). 마드무아젤 샤넬과 이 호텔을 둘러싼 여러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중 제일 흥미로운 건 출근길이다. 그녀가 호텔 후문을 통해 길 건너 아틀리에로 출근할 때면 벨보이는 샤넬 직원에게 신속히 전화를 걸어 알리곤 했다. 그러면 샤넬 직원이 캉봉 거리로 뛰어나와 호텔에서 매장까지 오는 길에 샤넬 넘버 파이브 향수를 미리 뿌리곤 했다는 사실.
지난 4년간 호텔의 시계를 멈추고 재단장에 돌입한 리츠가 비로소 모든 공사를 마쳤다. 그러자마자 칼 라거펠트는 이곳에서 공방(Métiers d’Art) 컬렉션을 열기로 결정했다. 지난여름 다시 문을 연 후, 처음으로 열리는 패션쇼다(이미 샤넬은 96년과 97년 세 번의 오뜨 꾸뛰르 컬렉션을 이곳에서 선보인 적 있다). 샤넬이 소유한 꾸뛰르 아틀리에(자수의 메종 르사주, 깃털의 르마리에, 단추의 데뤼, 모자의 메종 미셸, 구두의 마사로 등)의 장인 정신을 담은 공방 컬렉션이 에든버러, 잘츠부르크, 로마 등을 거쳐 드디어 이웃인 리츠 호텔로 돌아온 스토리다.
쇼가 열리던 12월 6일.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 서른 개가 장식된 방돔 광장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호텔 안으로 들어서자 로비는 샤넬 가문의 초대에 기꺼이 응한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샤넬의 충성스러운 고객들, 세계 곳곳에서 모인 기자들, 샤넬이 초대한 유명인들까지. 초대장에 적힌 시간은 8시 30분(총 900명의 관객은 점심, 티타임, 저녁으로 나뉘어 초대됐다). 쇼가 열리는 ‘살롱 드 프루스트’, 레스토랑인 ‘레스파동’, 중정을 꾸민 ‘겨울 정원’, 또 이들 공간을 연결하는 복도에는 모두 아름다운 세팅의 테이블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네사 파라디는 미리 바깥에 나와 있던 라거펠트와 비주를 나눴고, 전날 밤 파티에서 열창한 윌로우 스미스는 엄마인 제이다 핀켓과 카메라 앞에 섰다.
같은 시간 리츠 호텔 스위트룸. 이곳에선 또 다른 귀빈이 쇼장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브랜드 앰배서더인 GD가 일본 콘서트를 마치자마자 샤넬의 초대를 받아 파리에 도착한 것이다. 지난밤 열린 칵테일 파티에서 퍼렐을 비롯한 친구들과 신나는 밤을 보낸 그는 이제 진짜 파티를 위해 준비 중이었다. 쇼 시작 전 잠시 백스테이지에서 빠져나온 모델 수주와 함께 포토 타임을 끝낸 후, 이제 1층으로 향할 차례. 쇼장에 도착하자 맨 먼저 그를 반긴 건 하이더 아커만이었다.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우정을 쌓은 두 남자의 재회였기에 분위기는 자연스러웠고 훈훈했다.
그다음으로 인사 나눈 인물은 수지 멘키스. 서울에서 함께 샤넬 파티를 즐긴 그녀는 GD와 함께 깜찍하게 포즈도 취하며 셀피를 찍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윽고 패션 황제를 알현할 순간. 살롱 한쪽 테이블에 모나코의 카롤린 공녀와 앉아 있던 칼 라거펠트는 GD를 향해 환영 인사를 건넸다. GD 역시 가슴에 손을 올린 채 존경을 표하며 화답했다.
겨울 정원 중앙에 자리한 테이블에 착석한 시간은 9시. 저녁 식사 서빙이 시작됐지만, 손님들은 테이블 곳곳을 옮겨 다니며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나누며 쇼를 기다렸다. 그 순간 갑자기 모델 나탈리 웨슬링이 금빛 턱시도 수트를 입고 테이블 사이를 걸어 나왔다. 카라와 미카, 린지가 그 뒤를 이었다. 파티장으로 향하는 듯 아가씨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워킹을 즐겼다(세 번째 쇼가 시작되기 전 백스테이지였던 2층 방에서는 이미 샴페인 파티가 한창). 때로 관객과 비주를 나누고 하이파이브를 하는가 하면, 곳곳에 숨어 있던 댄서들과 왈츠를 추기도 했다.
런웨이에 등장한 건 슈퍼모델뿐이 아니었다. 릴리 로즈 뎁, 뮤지션 퍼렐, 프랑스 여배우 릴리 타이에브, 조지아 메이 재거 등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물들이다. 여기에 라거펠트는 일종의 패션 ‘데뷰탕트’를 마련했다. 패션과 문화계 스타들의 2세와 3세들을 연달아 등장시킨 것이다. 리바이 딜런(밥 딜런의 손자), 로티 모스(케이트 모스의 여동생), 소피아 리치(라이오넬 리치의 딸), 시스틴 스탤론(실베스타 스탤론의 딸), 에바 호크 맥딘(크레이그 맥딘의 딸), 엘라 리처드(키스 리처드의 손녀) 등등. 베일로 감춘 머리 위에 장미를 꽂은 소녀들은 자기 집 거실을 누비듯 느긋하고 여유 있게 걸어 다녔다.
“세계 곳곳에서 제일 멋지고 우아한 여자들이 이곳에 왔어요. 20년대와 30년대에는 놀라운 옷차림의 숙녀들이 이곳에 모여 식사하곤 했습니다.” 라거펠트는 코코와 호텔의 역사를 컬렉션에 풀어내지 않았다. 그가 눈여겨본 건 지난 120년간 이 호텔을 드나들었던 멋쟁이 여자들이다. 당시 리츠에 두 달 넘게 머무르면서 캉봉에서 샤넬 옷을 잔뜩 주문한 후 돌아가던 미국과 남미, 유럽 곳곳의 부유층 여인들 말이다. 라거펠트는 이런 여성이 21세기에 리츠로 돌아오는 모습을 상상한 것이다. ‘Paris Cosmopolite’라는 컬렉션 주제나 2세 모델들의 등장 역시 이 때문이다.
물론 리츠 호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색채도 이번 컬렉션에 녹였다. 반짝이는 니트 금빛 드레스와 아이보리 레이스 장식 블라우스, 금빛 가죽을 더한 네이비 밍크, 찰랑이는 금빛 깃털 장식 스커트 등. 공방의 특기를 뽐내는 온갖 꾸뛰르 장식도 차고 넘쳤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늘 그렇듯 다양한 트위드 재킷이었다. 그중 호텔의 ‘보이’ 유니폼을 닮은 재킷은 GD를 비롯한 남성 고객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일 것이다. “코코와 리츠의 만남을 50년 뒤 새롭게 해석한 셈입니다.” 저녁을 즐긴 후, 관객들과 함께 쇼를 지켜보던 디자이너가 말했다.
이제 대망의 피날레. 어빙 벌린의 노래 ‘Puttin’ on the Ritz’가 호텔 안에 흘러나오자 모델들이 우르르 로비로 쏟아져 내려왔다. “어쩐지 우울하고, 어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패션이 머무르는 곳으로 가는 게 어때? 리츠처럼 멋지게 입는 거야!” 그야말로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주인공이 꿈꾸던 20년대 파리 속 ‘카페 소사이어티’가 21세기에 다시 태어난 광경. 그 순간을 함께한 300명의 손님은 자신도 모르게 다들 이 노래를 흥얼댔다. “리츠처럼 멋지게 입는 거야! Puttin’ on the Ritz!”
- 에디터
- 손기호
- 포토그래퍼
- CHRISTOPHE ROUÉ, GETTYIMAGES / IMAZINS, COURTESY OF CHANEL
- 현지 진행
- 정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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