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의 비밀
난 요즘 돈 내고 웃는 법을 배우러 다닌다. 서비스직으로 이직하려는 것도 아니고, 심리 테라피를 받는 것도 아니다. 늙지 않기 위해 하트 라인을 만드는 표정 근육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시작은 대중교통을 타고 터널을 지나던 날이었다. 그늘진 눈가, 깊은 팔자 주름, 넓적한 얼굴… 컴컴한 유리창에 비친 여자의 얼굴 실루엣이 험상궂기에 누군가 하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바로 나였다. 수십만 원짜리 안티에이징 크림을 바르고 탄력 시술에 매달려왔건만, 시간은 노력을 배신하는 걸까? 나름 성실히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어째서 이리도 고뇌하는 인상이 되었단 말인가!
항노화 센터 겸 인상 클리닉으로 알려진 JF피부과 정찬우 원장은 노화와 인상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뼈를 포함한 모든 조직의 볼륨이 줄어듭니다. 그리고 뼈 위에 걸쳐 있는 근육, 지방, 피부 등 모든 연부 조직이 아래쪽으로 늘어져요. 얼굴 중앙이 탱글하게 솟아 있고 턱선은 날렵한, 하트 라인이어야 어려 보이는 법인데 볼륨이 줄어드니 늙어 보일 수밖에요.” 얼굴이 넓고 길어지는 것이 노화 현상의 하나라는 건 이미 안다. 볼륨이 빠져 비루하고 초라해 보이니 ‘빵빵이’ 필러 주사와 사각 턱 보톡스가 유행하는 거 아니겠나. 문제는 인상이다. “명심해야 할 건 얼굴 중앙 부위에서 가장 많이 줄어드는 조직은 지방이 아니라 감정과 긴밀하게 매치되는 표정 근육이라는 점입니다.” 이걸 간과하면 인위적인 하트 라인 시술로 ‘강남 미인’이라 조롱받거나, 무리한 다이어트로 빈상, 울상이 되고 만다.
인상 클리닉을 방문하면 표정 근육 트레이너 문혜영 이사에게 스마일 코칭, 아니 정신 교육부터 먼저 받는다. 얼굴의 근육과 표정 그리고 감정에서 관해서 말이다. 첫째, 얼굴 근육도 근육이니 얼마든지 단련할 수 있다. “근육은 용불용설, 쓰면 쓸수록 커지고 강해지며 짧아지죠(보디빌더들의 팔을 떠올려보세요). 안 쓰면 퇴화되며 작아지게 돼 있어요.” 볼륨을 키우고 싶은 근육은 열심히 쓰고 사라졌으면 하는 곳은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는, 지당하고 심플한 솔루션이다.
둘째, 얼굴 근육은 의식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수의근인 동시에 감정에 의해 좌우되는 특성이 있다. 기쁘면 볼 근육이 움직이고, 짜증이 나면 미간을 찌푸리며, 불만이 생기면 입꼬리가 내려간다. 중요한 건 긍정적 감정일 때 쓰이는 근육은 모두 눈과 입 사이, 중안면에 몰려 있고 이마와 입 아래 하안면은 부정적인 감정일 때만 일을 한다는 점이다. 감정과 표정이 일대일로 매치되는 셈이니, 이제 동안의 핵심인 얼굴 가운데 부분이 단련되도록 많이 웃기만 하면 된다. 어린 얼굴, 좋은 인상 만들기가 이렇게 쉽다니!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세상만사,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그리 만만하던가? 난 직업적으로 포커페이스를 지향한다. 예의 있고 여유 있어보이기 위해 입을 다물고 옅게 미소를 짓는 것 이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모니터와 스마트폰을 보며 무표정으로 보낸다. “무표정은 어떤 감정 상태일까요? 긍정 아니면 부정?” 문혜영 이사의 의미심장한 질문에 “그 무엇도 아닌 제로가 아닐까”라고 답했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죠. 하지만 감정은 과학적으로 긍정과 부정, 둘밖에 존재하지 않아요.”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거듭한 끝에 얻은 무의 상태, 무표정. 그런데 이렇듯 이분법적 감정의 지배하에서의 무표정은 부정적 상태에 속하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웃을 일 없는 나의 중안면은 하루 종일 일하지 못해 퇴화되는 중이고 이는 곧 늙은 얼굴로 나타나고 있다. ‘항노화 클리닉=인상 클리닉’이라는 것이 진심으로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제대로’ 웃음 훈련을 할 시간. 기본은 ‘은 자세’. 서로 맞닿지 않게 어금니를 떼고 입천장에 혀를 붙인다. 그리고 가볍게 입술을 벌린 채 하루 종일 유지한다. 절대 입을 다물어선 안 된다. 하트 라인을 위해 퇴화되어 볼륨이 줄어들어야 하는 하안면 근육은 입을 다물 때 총동원되고, 얼굴이 넓적하게 보이는 턱근육은 말하거나 씹을 때보다 입술을 붙일 때 더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힘을 빼고 입을 다물고 있는 동작에는 절대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부인할지 모른다. 하지만 원래 우리의 아래턱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힘을 주지 않으면 아래로 떨어진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하안면 근육은 언제나 일을 하고 있는 거다. 다음은 중안면, 즉 볼에 있는 근육에 살짝 힘을 넣어 위로 들어 올릴 차례다. 어색한가?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할지 모른다. 얼마나 안 웃었으면 이렇게 됐나 반성하고 더욱 박차를 가하길.
‘어흥’은 본격적으로 웃는 근육을 강화시키는 자세다. ‘어’ 하고 턱을 아래로 툭 떨어뜨렸다가 ‘흥’ 하고 발음하듯 콧방울을 미간 쪽으로 힘껏 밀어 올려 유지한다. 콧등에 자글자글 주름이 지는데 괜찮냐고? 중앙 근육이 퇴화된 상태라 처음 몇 달간 이 콧방울 올림근의 도움을 받아 힘을 키우는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20대가 트레이닝을 받으러 오면 ‘어흥’은 시키지도 않는다).
‘은’는 하루 종일, ‘어흥’은 하루 세 번, 1분 정도씩 반복한다. 거울을 보고 얼굴이 대칭을 이루도록 힘의 균형을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다. 힘이 덜 들어가는 쪽은 거듭 반복하면 좋다. 나는 안면 비대칭이 있어 군데군데 인상 보톡스를 맞고 근육 밸런스를 유지하며 단련 중이다. 표정 근육 트레이닝의 효과는 보통 3개월 이내에 나타난다. 근육이 만들어져 모양을 만드는 데 걸리는 기본 시간으로, 이 기간을 견뎌내면 누구나 노화의 방향과 속도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과학 칼럼니스트 샤론 베글리와 위스콘신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리처드 데이비드슨이 공저한 심리학 책, <너무 다른 사람들>에는 재미있는 화두가 등장한다. 보톡스가 감정을 방해한다는 것. 미간에 보톡스를 놔서 찡그림을 방해했더니 슬픈 글귀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거나 웃는 입 모양을 하고 한 경험은 훨씬 즐겁게 기억하는 등 여러 뇌과학 연구가 ‘표정 근육이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제대로 웃는 것이 중요하다. 가짜 웃음은 뇌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입술을 붙이고 입꼬리만 끌어당기는 립 스마일은 입 주변 힘으로만 짓는 표정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쓰이는 표정 근육이 움직인다고 인식한 뇌는 이를 웃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표정 근육 연습의 궁극적인 목표는 콧방울의 양옆, 팔자 주름의 시작점에 있는 미소 스위치를 올리는 거다. 이 지점을 들어 올리면 윗니를 한껏 드러내고 광대가 승천하듯 웃게 되고 이렇게 ‘제대로’ 웃으면 어린 볼륨이 살아난다. 그리고 뇌는 행복감을 느끼고 도파민이 활성화되며 혈압과 맥박은 안정을 되찾는다.
인생이 웃을 일만으로 가득한 사람은 없다. 억지로라도 미소 스위치를 올려 몸을 속여라.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즐거워지며 행복이 찾아올 거다. 평온에 젊음, 좋은 인상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스마일 트레이닝,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 에디터
- 백지수
- 포토그래퍼
- KIM BO SUNG, JAMES COCHRANE
- 모델
- 석일명
- 헤어 스타일리스트
- 권영은
- 메이크업 아티스트
- 이영
- 참고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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