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의 대담한 도전
테크 억만장자인 숀 파커와 그의 아내 알렉산드라는 인간의 삶에 개입하는 방식을 바꾼 것 같다. 암을 치명적이지도, 두렵지도 않은 존재로 만들겠다는 파커 부부의 야심에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연기한 숀 파커(Sean Parker)는 마크 주커버그에게 100만 달러는 쿨하지 않고 10억 달러가 쿨하다는 걸 가르쳐준다. ‘겨우’ 37세인 이 남자의 순자산가치는 25억 달러에 조금 못 미친다. 그래도 속상한 건 있었다. 몇년 전 그는 DLD(Digital Life Design) 컨퍼런스 중 파울로 코엘료와의 공개 대담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정말로 잘 만든 멋있는 영화였고, 재미있게 봤다. 그러나 나를 정말로 기가 막히게 만들었다.” 그가 에두아르도에게 수표를 써주고 그 수표를 그의 얼굴에 내던지고는 경비원들 손에 강제로 끌려나가게 했던 장면. 반면 마크 주커버그는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5억 명이 보는 제품을 만들었다. 영화를 보는 사람이 500만 명이라면 큰 문제가 아니다.”
그의 말마따나 정말 에두아르도와 여전히 잘 지내는지, 그 진위를 알 도리는 없으나 분명한 건 있다. 이를테면 마크 주커버그가 “페이스북이라는 공동체를 잘 섬기기 위해 다른 골치 아픈 결정의 수를 줄이겠다”는 심산으로 회색 티셔츠로 옷장을 가득 채워 넣는 반면, 숀 파커는 골치 아픈 일을 자처한다는 것. 숀 파커와 알렉산드라 파커의 결혼식은 이들 부부의 신념이 드러난 거대한 행사였다. 무엇이든 재미있고 의미 있는거라면 실행한다는 신념 말이다. 빅서 숲에서 온몸의 감각을 이용하는 이머시브 연극 같은 경험을 제공한 이 행사에는 3m 높이의 웨딩 케이크와 모피로 덮인 의자 그리고 <반지의 제왕>의 의상 디자이너인 엔길라 딕슨이 제작한 의상을 입은 하객 364명이 있었다. 이 결혼식에는 450만 달러가 들었고, 이날 일대 땅이 엉망이 됐다는 캘리포니아 해안 위원회의 항의에 다시 250만 달러를 지불했다. “우리가 살고 싶은 세계, 미학적 언어를 담은 행사”로 결혼식을 정의하기 위해 들인 비용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와 야단법석 결혼식 이전에도 숀 파커는 소셜 미디어의 창시자, 15세 때 FBI의 조사를 받은 전직 해커, 19세에 냅스터 창업, 20대 초반에 페이스북을 공동 설립한 사람으로 불렸다. 그렇게 ‘테크 억만장자’라 불린 이 남자는 세상을 구하겠다는 도전 정신을 키워가는 중이다. 1년여 전 숀과 알렉산드라의 자선 플랫폼인 파커 재단의 주관하에 암 면역요법 연구소(Parker Institute for Cancer Immunotherapy, 이하 PICI)가 설립됐다. 미국에 있는 주요 암센터(UCLA, UC 샌프란시스코, 스탠퍼드, 펜실베이니아대학, 뉴욕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휴스턴에 있는 M C 앤더슨)의 콘소시엄인 이 프로젝트는 꽤 야심 차 보인다. 파커 부부는 2억5,000만 달러의 자비로 시작해 최고의 연구진을 연합하여 암 치료법으로 서의 면역요법을 발전시키는 데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디지털과 인터넷의 바다에서 새 세상을 창조하는 동안에도 숀 파커는 과민성 알레르기(아나필락시스)와 싸워야 했고, 덕분에 그는 자신을 ‘면역학 취미 생활자’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얻게 되었다. PICI 연구소와 다른 센터에서 온 수십 명의 과학자, 의사들과 함께 하는 마라톤 회의에서도 그는 기죽지 않으며 저명한 면역학자인 칼 준 박사와 함께 TCR 조작 T 세포와 CRISPR 게놈 편집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이다. 개발도상국에 만연한 말라리아와 보건에 자선 기부를 해온 빌 게이츠의 과학 지식도 정평이 나 있지만, 숀 파커만큼 깊이 조사하거나 연구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것이 중론이다.
10여 년 전, 사람들이 음악을 사서 듣는 방식과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오디오 파일 공유 시스템을 만든 숀 파커가 지금 만들고 있는 건 특정 암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암을 바꾸어놓을 가능성이 있는 기술 플랫폼이다. 면역요법의 전제는 암세포를 인지해서 죽이기 위해 몸의 면역 시스템을 이용한다는 것. 문제가 있다면 일시적인 게 아니라 영원히 죽인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의료 기술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부작용을 낳는다. 그러나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라는 책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종양학자 싯다르타 무케르지 같은 전문가들은 암을 잡기 위해서라면 당뇨는 감당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전문가들에게도 면역요법은 일종의 도전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면역요법은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나 여겼다. 파커의 집에서 열린 (유명 인사로 가득했던) 엄청난 자금 모금 파티가 인산인해를 이룬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숀 파커는 구글을 창립했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검색엔진을 만들었더군요. 두 분은 저보다 훨씬 더 유명해질 겁니다.” 숀 파커는 인간에게 필요한 기술을 기막힌 통찰력으로 발견해왔다. 가끔 너무 이른 면도 없지 않았고,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향한 상상력은 종종 오해받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곁에는 알렉산드라가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그의 엄청난 실행력과 심오한 철학을 세상에 잘 전달해주는 것이 역할이라 믿는 여자 말이다. 스물일곱 살이 된 그녀의 꿈은 계속 암 연구에 긴밀하게 참여할 뿐 아니라 마약성 진통제의 확산과 약물중독 퇴치를 위한 모델을 찾는 것이다.
며칠 전 외신은 엘론 머스크가 “두 명의 민간인을 스페이스X가 내년 말까지 달에 보낸다고 발표했다”는 소식을 실었다. 사상 초유의 우주 비즈니스를 벌이고 있는 엘론 머스크는 파커의 지지자 중 한 명이다. 암이 더 이상 죽음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 암이란 더 이상 치명적으로 위협적인 존재가 아닐 수 있다는 기대는 우주를 향한 그 자신의 꿈과 일맥상통한다. 그 사이 미국의 상황도 바뀌었지만, 숀 파커의 프로젝트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미국 의회는 21세기 치료 법안을 통과시켰다. 제약사만 배 불릴 수도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의료 혁신을 향한 욕망을 따른 셈이다.
한국에서도 소개된 자기계발서 <졸업장 없는 부자들>을 보면 고졸인 숀 파커의 말이 등장한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문제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편하지가 않은 거죠.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불행하게 여깁니다. 성공한 기업가가 되고 싶다는 낭만적인 생각이 아니라 세상에 변화를 주고 싶다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PICI는 올해부터 펜실베이니아대학과 손잡고 본격적인 임상 시험을 실시할 예정이다. 기발한 발명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걸 좋아하는 남자의 인생 프로젝트는 이미 시작되었다.
- 에디터
- 윤혜정
- 포토그래퍼
- ANTON CORBIJN
- 헤어 스타일리스트
- 니키 프로비던스(Nikki Providence)
- 메이크업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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