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Bad Show And It’s Done
요즘 같은 패션 환경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광기에 가까운 헌신이 필요하다. 조나단 앤더슨이 로에베와 자신의 레이블에 건 마법과 광기 그리고 현실감각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나단 앤더슨의 일기장에서 틈을 발견하는 건 상당히 힘들다. 시간별, 일별, 주별로 자신의 레이블과 럭셔리 브랜드 로에베를 오가는 스케줄이 너무 빽빽해서 내가 비집고 들어갈 시간이 없을 정도다(그는 맹렬한 에너지로 이 두 브랜드를 이끌고 있다).
앤더슨의 홍보 담당자는 호리호리하고 잘생긴 이 서른두 살의 북아일랜드 출신 디자이너의 일기장 중 이동이 많은 2주 분량을 스냅샷으로 찍어 보내줬다. 거기에는 로에베 매장과 마드리드에서 성대한 론칭 파티로 시작된 전시 오프닝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스페인 출신 편집자 루이스 베네가스가 편집한, 로에베 아카이브의 시각 자료가 담긴 정교하고도 극도로 방대한 책의 사인회 일정도 있다. 사인회는 유럽 전역을 돌며 수 없이 진행될 예정이다. 두 번의 뉴욕 일정도 있는데, 그중 하나는 스티븐 마이젤과 함께한 로에베 2017년 S/S 광고 캠페인 촬영을 위한 것이다.
조나단의 스케줄은 디자이너들이 오늘날 패션 환경에서 무엇을 해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고된 노동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광기에 가깝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그는 로에베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하기 위해 파리로 가서 화요일 밤까지 머무른다. 그 후 런던으로 돌아와 달스턴에 있는 자신의 J.W. 앤더슨 스튜디오에서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한다. 매일 회의(담배를 피울 수 있는 휴식 시간이기도 하다)가 이어지고 한 번에 45분이 할애된다. 조나단의 아이폰 세 대 중 한 대에 접근할 수 있는 믿음직한 개인 비서 세 명은 각 부서를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다. 그의 사생활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날 레디투웨어 스케줄은 봄/여름, 가을/겨울 그리고 두 번의 프리 컬렉션까지 1년에 네 번의 컬렉션을 요구한다. 계산을 해보자. 여기에 2를 곱하면 8이 되고 다시 두 레이블의 남성복 컬렉션을 더하면 총 16이 된다. 그의 날카로운 안목과 절대적인 관심을 필요로 하는 액세서리-백, 슈즈, 급성장하고 있는 주얼리-는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그가 진두지휘하고 있는 수많은 문화 프로젝트와 협업이 있다. 예를 들어 로에베 재단 아트 컬렉션, 2016년에 시작된 이 회사의 새로운 공예상, 마이젤의 놀라운 꽃 정물 사진, J.W. 앤더슨 워크숍(도예가들을 비롯해 에이셉 라키 같은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 그리고 헵워스 웨이크필드 갤러리에서 열릴 인간의 몸을 주제로 그가 선택한 예술 작품 전시회 <Disobedient Bodies>가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리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환상적인 신세계를 꿈꾸는 조나단이 있다.
마드리드에 있는 새로운 카사 로에베 매장에서 그를 만났을 때 스트레스가 느껴져서 약간 놀랐다. 나이키 트레이너, 파란색 스웨터, 빛바랜 데님의 편안한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그는 초조해 보였고 얼굴은 심한 기침으로 빨갰다. “요 며칠 동안 힘들었어요”라고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는 순간들이었습니다.”
3층짜리 플래그십 매장을 즐겁게 둘러보고 있던 매장 안 VIP 고객들의 존경 어린 눈빛은 잊어버린 채 조나단은 카사 로에베 밖 인도를 서성이며 말보로 라이트를 깊이 빨아들이는 사이사이에 문화적 레퍼런스로 로에베를 다시 포장해야 하는 미션에 대해 빠르게 설명했다(그가 2년 전 파리의 유네스코 건물에 있는 이사무 노구치 정원에서 로에베의 첫 컬렉션을 선보인 이후로 LVMH가 소유한 이 스페인 가죽 제품 회사에 대한 관심은 뜨거워졌다). “어떤 브랜드에서 일을 시작하면 강박적으로 집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이 그저 단순한 쇼 이상이라는 걸 잊어버리죠. 몇몇 디자이너들이 ‘쾅’ 하고 폭발한 다음 ‘휙’ 하고 사라지는 이유는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그냥 캣워크 쇼일 뿐이죠. 거기엔 문화도 없고, 피드백도 없고, 다른 관점도 없습니다. 그것이 제가 두 브랜드에 다른 많은 요소를 결합하는 이유예요. 그래서 그중 어느 한 가지 요소가 빠져나가도 모든 걸 실패하진 않죠. 저는 담요 하나에도 가방이나 미술 전시회를 준비할 때와 동일한 노력을 쏟아붓습니다.” 그건 효과가 있었다. 한때 소멸 직전에 있었지만 이제는 다층적이고 새로운 흥분이 감도는 하우스 곳곳에서 지중해의 바람 같은 가벼운 기운이 느껴진다. 전 세계적으로 매장은 40개 늘었고 마드리드 공장의 크기는 두 배로 커졌다.
눈부신 겨울 햇살이 넓고 쾌적한 공간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아래층엔 캔틸레버식 조지 왕조풍의 계단이 중앙 기둥을 우아하게 휘감고 있다. 한편 뒷벽은 영국 화가인 하워드 호지킨의 풍부한 색상의 거대한 추상화가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베스트셀러인 퍼즐, 깔끔한 상자 모양의 바르셀로나, 로고가 박힌 조이스 같은 새로운 로에베 백이 감미로운 컬러를 더한다. 조나단은 밀라노, 마이애미, 도쿄의 새 매장을 디자인한 것처럼 이곳도 직접 디자인했다. 그는 디테일을 열거했다. 연한 색의 카프리 스톤,위층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마노 스크린 등등.
그가 책임 디자이너가 됐을 때 설립한 로에베 아트 컬렉션을 위해 직접 고른 예술 작품에 대해 얘기할 때 그의 산만함은 사라졌다. 내가 예술품을 마구 사들이는 지옥에 빠진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수줍게 웃었다. 그러나 그의 취향은 흠잡을 데가 없다. 북아일랜드 화가인 윌리엄 맥컨의 매혹적인 작은 유화 근처에 에드먼드 드 왈의 도자기 화병이 투명한 유리 상자 안에 진열돼 있다. 피팅 룸 안에는 노구치의 전등이 달려 있다. 그리고 조나단은 깃털 같은 비율에 비해 당황할 정도로 무거운 나무 의자의 무게를 시험해보라고 부추겼다. “제겐 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남자 친구가 있어요.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제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4만 파운드를 주고 의뢰한 디스플레이 테이블을 발견했죠. 왜 좀더 오래 가는 물건에 그런 돈을 투자하지 않는 걸까요?”
조나단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화제는 계속 바뀌었고 그가 다음 주제로 넘어가려 할 때마다 문장은 술술 풀려 나왔다. 그는 약간 조증 상태였고 안달이 나 있었다. 매력적이다. 하지만 당신은 철저한 체계성과 야망이 그 모든 것의 밑바탕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아주 생산적인 사람이에요. 극도로 체계적이죠. 그는 아주 민첩해요,” LVMH의 회장이자 CEO 피에르 이브 루셀은 조나단에 대해 말한다. “이 모든 컬렉션을 위해 그가 쏟아부은 창의적인 에너지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당신은 그가 지쳐 있는 동시에 활기 넘친다고 느낄 것이다. 그는 당신에게 끝없이 레퍼런스를 언급하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아티스트의 이름을 나열하고, 계획 중인 프로젝트를 열거할 것이다. 그걸 받아쓰려면 두 브랜드를 중심으로 그가 펼치고 있는 프로젝트를 추려내야 하는 고통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매장 바로 옆에 위치한 새 로에베 꽃집을 위해 그가 의뢰한 아름다운 분재 도구에 대해 내가 언급해야 할까? 혹은 그가 그곳을 장식하기 위해 경매에서 구입한 콘스탄스 스프라이(Constance Spry) 꽃병 컬렉션(“그녀가 자코메티의 남동생과 함께 만든 거예요”)은 어떤가? 언급하지 않는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는 스프라이에게 “완전히 빠져 있다”고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저는 무언가에 빠지면 걸신들린 듯 그것을 사들입니다. 그리고 하나에 빠졌다가 다른 것으로 옮겨가는 걸 좋아하죠.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의 언어를 갖고 있어요.” 매장은 상업적인 이유로 고안되기도 했다. “저는 5유로에 무언가를 살 수 있다는 발상이 좋습니다.” 그것이 튤립 몇 송이라도 말이다.
“그는 물건에 대해 강박적입니다. 그다음엔 끝이죠”라고 앤드류 웹스터는 자신의 친구이자 상사에 대해 잘 안다는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현재 J.W. 앤더슨에서 이미지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 웹스터는 18세에 처음 조나단을 만났다. 당시 그는 디올 진과 꼼데가르쏭 스웨터 차림이었다. “조나단은 말랐고 아주 잘생겼고 카리스마 넘쳤습니다”라고 그는 회상한다. “그는 어떤 것을 원하다가 곧 그것을 뱉어버립니다. 꼭 캣워크 쇼 같죠. 그의 삶의 모든 것이었던 쇼를 어느 순간 결별하고 그다음에는 그 컬렉션을 보는 것조차 못 견뎌 합니다. 그는 완벽주의자죠. 그래서 모든 것이 완벽하길 기대합니다. 미팅도 빠르게 진행돼요.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점이죠. 그는 그냥 자신이 원하는 걸 말하고 그걸로 끝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패닉 상태가 됩니다!”라고 그는 웃으며 말한다.
마드리드에서 만나고 나서 며칠 후 조나단은 자신의 J.W. 앤더슨 스튜디오로 돌아와 있었다. 그곳은 하얗게 칠해진 방이 빽빽이 들어선 곳으로 각 방에는 스태프(지금까지 50명까지 셌다), 샘플 혹은 가장 잘 팔리는 피어스 백과 로고 백(슈즈와 백을 포함한 액세서리는 매출의 60%를 차지한다)으로 가득했다. “제 삶의 가장 큰 두려움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입니다”라고 그는 내게 말한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그것보다 훨씬 나쁜 건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데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큰 압박은 LVMH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옵니다. 저 자신이 그 기준을 정하니까요.”
투어가 끝나고 우리는 창가에 검은색 카운터가 놓인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는 마드리드 파티의 후유증에서 회복됐다고 말한다. “지금처럼 까다로운 시기는 없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소셜 미디어 때문에 사람들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여줘야 하니까요.” 그는 오늘날 디자이너들이 직면한 엄청난 도전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다. “형편없는 쇼를 한 번 선보이면 그걸로 끝입니다. 왜냐하면 형편없는 쇼는 더 많은 형편없는 쇼로 이어지고 그 결과 당신은 사람들을 잃게 되죠.”
그가 형편없는 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거라는 말은 아니다. LVMH가 그의 이름을 딴 레이블에 소수 지분을 사들인 지 4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가 깃털처럼 가벼운 와이드 레그 스웨트 팬츠와 트렌치 코트, 그리고 밝은 양귀비색 가죽 의상으로 이루어진 첫 로에베 컬렉션을 선보이고 언론으로부터 뜨거운 호평을 받은 지 겨우 2년이 지났다. 그러나 그는 언론의 관심과 전 세계 바이어들의 관심이 곧바로 다음 화제의 인물로 옮겨갈 거라는 걸 알고 있다(이틀 후 그의 생각을 증명하듯 조나단은 런던에서 열린 패션 어워드에서 다섯 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인터내셔널 레디투웨어 디자이너 상을 포함해 두 개의 상을 가져간 이는 베트멍과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였다).
“이곳엔 두 부류의 관객이 있어요. 먼저 극소수의 틈새 그룹인 0.0000001%에 해당되는 패션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주 비판적이고, 까다롭고, 잠깐 관심을 기울였다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겁니다. 왜냐하면 지루하니까요. 하지만 그건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게는 평범한 사람들도 중요해요. 패션계에서는 처음으로 사업을 할 수 있고 그 사업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게 중요하죠.”
조나단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면 분석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아주 솔직히 말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경쟁적이고 교활한 분야에서 일할 경우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늘 좋은 사람일 수는 없어요. 궁극적으로 당신은 두 개의 회사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벌어야 하고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도록 도와야 하니까요.”
두 브랜드를 곡예하듯 이끌어 나가야 하는 책임감, 그리고 최근 몇년간 압박감 때문에 쓰러져간 많은 디자이너들처럼 그것이 개인적으로 그에게 가하는 위험을 염려하는지 묻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실패할 수 있는 옵션이 없었을 뿐입니다”라고 그는 간단하게 답했다. “저는 저의 장단점을 알고 있어요. 스스로에 대해 상당히 공격적일 정도로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델핀(아르노, 루이 비통의 디렉터이자 책임 부사장)은 제게 계속 사업가로 지내라고 충고했어요. 그건 최고의 조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저니까요.”
두 브랜드 사이에서 골머리를 썩는 것을 묘사하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J.W. 앤더슨은 문화 도발자예요. 그 브랜드는 해결책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시도하죠. 반면에 로에베는 문화를 통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두 브랜드 사이에 크로스오버는 없을 거라는 데 동의했어요. 또 각 브랜드는 다른 소비자 그룹이 있어야 했어요. 하나는 저렴하고 다른 하나는 더 비싸야 합니다.” 그의 회색 아이폰 세 대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어떻게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잃어버린답니다”라고 그는 씩 웃으며 말했다. “모든 것을 하나의 폰에 저장할 수 있는 새로운 앱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걸 기다리는 중이에요.”
삐걱거리는 스케줄에 잘 대처하기 위해 다른 것도 조정했다. 전부 환영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잉글리시 포인터 두 마리가 있어요. 제가 로에베 일을 수락했을 때 잘 키울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 기분은 정말 끔찍했어요. 지금은 두 마리 모두 어머니가 키우고 계세요.” 그는 그들의 걸음걸이가 그립다. 얼마 전 시골에 주말 별장을 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극도의 피로 때문에 탈진하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그는 시골에 탈출구를 마련했다(그러나 내가 자유 시간에 무얼 하는지 묻자 그는 말을 더듬었다. 과거에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가를 생각하는 건 고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건축적으로 디자인된 그 작은 집은 런던에서 차로 2시간 반 거리에 있어서 그다지 편리하지는 않다. 이날 아침 그는 10시까지 사무실에 도착하기 위해 6시에 일어나야 했다.
“저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데 아주 능숙하죠. 예전엔 그렇지 못했어요.” 조나단은 업무를 처리하면서 말을 이었다. “제가 아무리 통제광이라 해도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걸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의 강박적인 행동에는 무언가가 있다. 수집 중독은 계속 영감을 제공하고 남아도는 에너지를 쏟아붓는 데 도움이 된다. “그는 종종 저를 데리고 도자기를 보러 가곤 하죠.” 그의 어시스턴트 릴리 매튜스는 말한다. “우리는 늘 존 워드(John Ward, 영국의 도예가)의 작품을 찾아다닙니다. 그는 앤티크 딜러들을 찾거나 경매에 가는 걸 좋아해요”라고 그녀는 강조한다. “최근에 피팅을 하러 로에베에 갔을 때 그는 크리스티 경매 하우스와 통화 중이었어요. 닭 모양의 도자기를 입찰 중이었습니다. 낙찰받으면 엄청 좋아해요.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죠. 그는 곧 런던의 새집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머지않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물건이 쌓일 거예요.” 그의 남자 친구는 이런 혼란에 어떻게 대처할까? “그도 저만큼 상태가 좋지 않아요”라고 그는 웃으며 받아쳤다. “제게 중독이 있다면 아마 물건을 수집하는 것일 겁니다. 문제가 될 정도지요. 저는 물건들의 관계를 발견하는 걸 좋아합니다.”
패션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조나단의 행보는 뻔하지 않았다. 그는 북아일랜드에 있는 작은 마을 마러펠트(Magherafelt)에서 여동생과 남동생 제임스-그와 마찬가지로 조각 같은 미남으로, 설립 단계에서부터 J.W. 앤더슨의 디렉터로 활약해왔다-와 함께 성장했다. 그의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아일랜드 럭비계-최초의 세계적인 럭비 연합-의 거인이었으며 나중에 코치가 됐다. 조나단은 난독증에 굴하지 않고 학교생활에 열심이었다(지금도 그는 글을 읽거나 이메일을 보내지 않으며 문자메시지도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미술에 뛰어났고 최고의 아일랜드 중등학교 중 한 곳에 들어갔다. 휴가는 오마 인근의 거친 시골에서 조부모님과 보냈다. 그는 실제로 IRA 폭탄이 터진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시내에 있다가 가까스로 폭발을 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 여동생은 개에게 심하게 얼굴을 물린 적이 있죠.”
수집에 대한 열망은 어릴 적부터 시작됐다. 제임스는 조나단이 다양한 애완동물을 키우겠다고 고집한 일을 떠올렸다. “친칠라, 기니피그, 토끼, 오리, 작은 앵무새들이 있었어요. 한번은 정원 헛간에 조류 사육장을 만들고 애완용 양까지 키웠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아주 의욕이 넘쳤어요.” 그는 덧붙였다. “가족 전체가 다 그랬어요. 그리고 부모님은 무엇이든 우리가 행복한 일을 하도록 늘 지지해주셨죠.” (이런 기질은 J.W.앤더슨 투자로까지 이어졌다.) 조나단은 TK 막스(TK Maxx)에서 쇼핑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방과 후에 달걀을 모아서 돈을 벌었다. 구찌 슈즈나 돌체앤가바나 재킷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그가 처음에 실험한 건 패션이 아니라 연기였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첫사랑으로 돌아가 왕립예술대학의 남성복 과정에 입학했다. 그러나 대학 시절 프라다의 비주얼 머천다이징 부서의 영향력 있는 마누엘라 파베시 밑에서 일한 것이 진짜 교육이었다고 말한다. “저는 쇼윈도 작업을 했어요.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일을 하면서 패션 전 과정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전체가 응집된 셈이지요.” 프라다의 비주얼 머천다이징 파트에서 그와 함께 일했던 웹스터도 동의한다. “저는 그가 럭셔리 패션 사업이 마지막 접점에서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제대로 배웠다고 생각해요. 그는 패션을 어떤 식으로 보여줘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프라다와 파베시로부터 장난기를 배웠어요.” 그가 저렴한 작은 액세서리의 상업적 가치를 배운 곳 또한 프라다였다. 당시 프라다는 열쇠고리와 참 같은 것을 꽤 많이 팔았다. “지금보다 어릴 때는 럭셔리 제품을 만들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건 상당히 복잡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다른 가격대의 카테고리를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오늘날의 세계에선 그걸 고려해야 해요.”
웹스터는 조나단이 파베시와의 첫 면접 전에 그녀의 옷차림에 대해 소상히 물어봤던 걸 기억한다. “저는 악어가죽 웨지 힐과 다이아몬드 귀고리, 파자마 룩을 입고 있다고 설명했어요.” 그리고 다음 날 그는 마구 난도질해서 무릎 부분이 너덜너덜해진 페이즐리 실내복을 입고 인터뷰를 하러 왔다. 내가 조나단에게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려는 노력이었죠.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말이에요.” 지금도 디테일에 대한 그의 관심은 지대하다.
2008년 졸업 직후 겨우 스물두 살의 나이에 그는 자신의 첫 남성복 컬렉션을 론칭했다. 2년 후 그의 첫 여성복 컬렉션을 런던에서 선보였을 때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파리 <보그>의 패션 스타일리스트 벤자민 브루노와의 파트너십은 탐나는 전위적인 제품을 생산해냈다. 곧바로 히트 친 작품 중에는 가죽 셔츠, 50년대풍 네오프렌 스커트, 그리고 라텍스로 가장자리를 장식한 페이즐리 파자마 수트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 디자인은 몸매를 살려주는 동시에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아 판매에 도움이 됐다. 베스트셀러가 된 탑샵과의 콜라보레이션과 베르수스 캡슐 컬렉션이 곧바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는 영국 패션 어워드에서 레디투웨어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아찔할 정도로 정신없는 와중에 루이 비통의 델핀 아르노가 전화를 걸어왔다. “저는 아주 특이한 집에 살고 있었어요. 그곳엔 이 테이블 크기의 부엌이 있었습니다.” 그는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기분 나쁜 전화벨이 울리곤 했어요. 그리고 어느 날 모르는 번호가 떴고 저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델핀 아르노예요. 투자를 생각 중인데 저와 만나볼 의사가 있나요?’저는 좋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저를 놀라게 한 것은 그가 자신의 브랜드를 다각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였어요.” LVMH의 투자 결정에 대해 피에르 이브 루셀은 말한다. 2년 전 조나단의 두 번째 여성복 컬렉션 직후 그를 만났을 때 루셀은 겐조의 새로운 책임 디자이너를 찾는 중이었다. “사물을 바라보는 그의 방식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는 프라다에서 비주얼 머천다이징 작업을 하면서 그 모든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앤드류의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 “그때부터 그의 작업을 쭉 지켜봤어요.”
운명의 장난처럼 루셀은 또 다른 영국 디자이너 스튜어트 베버스가 자리를 비운 로에베의 새로운 디자이너도 찾고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조나단을 고려하지 않았을 자리였다. “그의 브랜드는 아주 젊고 레디투웨어 부문에서 방향성이 아주 확실했어요. 그리고 그는 백에 대해 경험이 전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적임자가 아니었어요.” 패션 어워드 다음 날 메이페어에 있는 LVMH 하우스에서 미팅을 하는 동안 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루셀의 나른한 매력은 그가 받고 있는 엄청난 존경과는 상반된다(셀린에 피비 파일로를 고용한 건 그였다). “그리고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죠.” 그는 로에베에 대해 계속 말을 이어갔다. “훌륭한 책임 디자이너인 동시에 뛰어난 백 디자이너인 사람을 찾는 건 힘든 일입니다. 그리고 로에베는 스페인에 있었어요.” LVMH의 투자에 대해 협상을 하다가 루셀은 우연히 자신의 고민을 언급했다. 그러자 조나단은 곧바로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보여준 건 놀라움 그 자체였어요.” 루셀은 일주일 후 조나단이 선보인 프레젠테이션에 대해 존경을 담아 말을 이었다. “그는 통합하기 힘든 브랜드 안에서 여러 가지 면을 건드렸을 뿐 아니라 그것이 여행의 시작이며 그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내가 루셀에게 무엇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는지에 대해 묻자 “저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어요”라고 조나단은 불안하게 스웨터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피에르 이브 같은 사람을 만나다니 운이 좋았죠. 그는 약간 현실적인 몽상가인 것 같아요. 그들은 잃을 게 없었어요. 많은 돈을 제외하고 말이에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피에르 이브는 저를 믿었어요. 그리고 저는 문제가 생기면 그를 찾아갈 수 있다고 느꼈어요. 그는 로고를 바꾸고 매장 디자인 작업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다소 추상적인 광고 캠페인을 제작했습니다(예를 들어 마이젤에게 그의 사진 자료를 로에베 광고에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설득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신뢰는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생각해요.”
조나단은 재능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 다른 사람들의 창의성을 연결해 자신의 재능을 더욱 강화하고 새로운 전체를 창조하고, 자신의 목표를 발전시킬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데 능숙하다. 그는 이런 능력을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고 말한다. “팀워크에서 중요한 것은 올바른 사고방식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긍정적인 사고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아버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읽으시죠. 바로 그런 점을 아버지에게 물려받았습니다.” 컨설턴트이자 스타일리스트인 벤자민 브루노-두 브랜드를 오가며 공생적으로 작업을 하는 유일한 직원-는 주변을 신선하고 재능있는 사람들로 채우는 조나단의 본능적인 능력에 대해 말하면서 그를 앤디 워홀에 비유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극 받는 걸 좋아합니다. 그는 그들이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판을 벌여줍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모든 걸 알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건 아주 자애로운 관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의 취향도 바뀝니다.” 로에베의 새로운 CEO이자 셀린의 전 임원인 파스칼 르푸아브르는 자신에게 가장 큰 감명을 준 것은 “짧은 기간 동안 유능한 장인들뿐 아니라 오랜 로에베 협업자들, 다양한 분야의 창의적인 유명인들에게 확신과 영감을 주는 그의 능력”이었다고 말했다.
조나단의 현재 팀에는 업계의 거인들과 젊은 도발자들-마이젤을 비롯해 캐스팅 디렉터 애슐리 브라코우, 미셸 고베르, 유명 아트 디렉터인 M/M의 마티아스 아우구스티니악과 마이클 암잘락, 모든 J.W. 앤더슨 광고 사진을 찍고 있는 사진작가 제이미 혹스워스 등-이 포함돼 있다. “<Man About Town> 잡지를 위해 남자 모델을 찍고 있었는데 조나단이 스타일링을 했어요.” 혹스워스는 조나단의 재능을 묘사해달라고 하자 이렇게 회상했다. “그 남자의 발가락 밑으로 카펫이 말려 올라갔죠.”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와우, 멋져요!’라고 말했고 조나단도 동의했어요. 저는 우리가 같은 감각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런 수준의 디테일을 알아채는 감각 말이에요.” 혹스워스와 함께한 J.W. 앤더슨 워크숍이 열린 에이스 호텔에서 저녁을 먹은 후에야 조나단은 그것이 남자 포르노 스타의 누드 포트레이트였다고 말했다. 그 사진을 찾기 위해 두 사람은 구글을 뒤지며 수없이 킬킬거렸고 조나단은 계속 친구를 놀렸다. 솔직히 인정하자면 그 사진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첫 번째 디테일은 카펫 장식 술이 아니었다. 다른 뭔가가 그 사진을 지배하고 있었다.
브루노도 우리와 저녁 식사를 함께 했는데, 어두운 레스토랑에서 그의 하얀 치아가 반짝였다. 나는 그날 오후에 열린 2017년 프리폴 컬렉션을 위한 디자인 미팅에 참석했다. 회의는 격렬한 말다툼으로 번졌지만 지금은 그때의 긴장감을 전혀 찾을 수 없다. “그는 제가 소리를 지르고 싸우면서 창의적인 날을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조나단은 자기 옆에 앉아 있는 검은 머리의 아주 날씬한 프랑스 남자에 대해 말했다.
“처음엔 육탄전을 벌이곤 했어요”라고 브루노는 말한다. “그리고 복도에서 서로를 뒤쫓아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을 좋은 척 그냥 넘어가면 망치고 말 거예요! 우리는 서로에게 에너지를 주죠.” 그는 조나단보다 훨씬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는 패션에 대해 그렇게 많이 알진 못해요.” 그는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게 말했다. “우리는 파리의 런던 쇼룸에서 처음 만났죠.”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겨우 두 벌 정도의 남성복과 티셔츠를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가 본 가장 아름다운 티셔츠였어요.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다는 믿음을 갖게 만든 건 그의 환한 아일랜드식 미소입니다.” 그는 또다시 이를 반짝이며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런던에서 만난 새로운 치위생사에게 “완전히 사로잡혔다”고 덧붙이며 자신의 기벽에 대해 미친 듯이 웃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조나단을 만날 수 없었다. 정신없는 스케줄의 소용돌이가 그를 삼켜서 두 번 다 약속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 글
- 에밀리 셰필드(Emily Sheffield)
- 포토그래퍼
- VENETIA SCOTT, JASON LLOYD-EVANS, MITCHELL SAMS, DIGITAL ARTWORK: STUDIO RM, MARIUS W HAN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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