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을 주름잡았던 팝의 여왕,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데뷔 18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내한 공연을 갖는다는 소식입니다. 공연은 6월 10일에 합니다.
작년 1월, 아시아 투어를 예고한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1999년 데뷔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서 콘서트를 엽니다. 3만 명이 넘는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고척 돔이 그녀의 무대. 전성기, 한국 팬들이 그토록 원하던 공연을 이제야 볼 수 있어 아쉽긴 합니다. 6월 3, 4일 일본 공연을 마치고 한국에서 그 바통을 이어갑니다.
90년대생 오디언스 여러분은 ‘언제 적 브리트니 스피어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그녀는 아직도 건재합니다. 오는 7월 3일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는데, 이날은 이스라엘 노동당의 예비 선거 투표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공연 때문에 투표 일정까지 연기 됐죠. CNN의 보도에 의하면 이스라엘 노동당 대변인은 “7월 3일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공연으로 도로 통제 등에 따른 교통 체증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죠.
2000년대 초반을 주름잡은 그녀의 전성기는 지나갔지만, 팝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그녀의 영향력은 여전합니다. 지난 2월 18일, ‘Lifttime’ 채널에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인생을 담은 영화 <Britney Ever After>도 방영했습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팬들을 놀라게 한 삭발 사건, 약물 중독, 저스틴 팀버레이크와의 열애, 케빈 페더라인과의 이혼이 모두 담긴 영화. 배우 나타샤 바셋이 브리트니를 연기했습니다.
티저 영상에선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직접 삭발하는 장면이 담겨 화제였죠. 10년 전, 2007년에 일어난 삭발 사건을 직접 재연한 것.
Britney Ever After
Britney Ever After
Britney Ever After
Britney Ever After
Britney Ever After
Britney Ever After
Britney Ever After
Britney Ever After
브리트니의 전성기를 돌아볼까요? 1999년 1월 발매된 그녀의 첫 번째 앨범 타이틀곡, ‘…Baby One More Time’입니다. 발매 즉시 빌보드 1위로 데뷔했고, 15개국 차트에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합니다. 10대 가수로서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린 앨범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되는 기록을 세우죠.
그리고 두 번째 앨범, ‘Oops!…I Did It Again’도 신기록을 갱신합니다. 발매 첫 주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둡니다.
2000년,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엄마 린 스피어스와 함께 책 <Britney Spears’ Heart-to-Heart>를 출간합니다. 브리트니의 성장 배경과 가족 사, 어릴 적 사진이 실려 있는 책으로 <뉴욕 타임스>에서 몇 주간 베스트셀러였죠. 이땐 스마트폰으로 SNS를 즐기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스타의 발자취가 담긴 책은 팬들에게 소장 가치 1순위였죠. 책이 잘 팔리자 2001년엔 엄마와 소설도 씁니다. <A Mother’s Gift>. 심지어 2004년 4월, 같은 제목의 영화도 개봉했습니다.
가장 전성기이던 이 무렵에 열애설이 터집니다. 상대는 엔싱크의 멤버였던 저스틴 팀버레이크!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당시 소속된 그룹 엔싱크와 브리트니의 인연은 각별했습니다. 그녀의 첫 번째 투어에서 게스트로 등장했죠. 같은 시기에 최고의 위치에 오른 두 사람의 열애는 연일 가십지를 도배했습니다. 비욘세와 제이 지의 열애만큼 떠들썩했답니다.
2011년까지 무려 1억5천만 장가량의 음반을 판매한 그녀. 2000년대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여자 가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번의 그래미상,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선 6번,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선 9번이나 트로피를 거머쥔 디바였습니다. 2002년엔 ‘포브스 셀러브리티 100’ 리스트에도 올랐습니다. VH1(Video Hits One)이 선정한 ‘비디오 시대의 가장 위대한 여성 50인’ 4위에도 오릅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만큼 비난도 거셌습니다. 2001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선 살아 있는 호랑이, 뱀과 함께 등장해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요, 동물보호단체 ‘PETA’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구설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많은 패션 매거진과 커머셜 광고를 도배하며 ‘스타 중의 스타’로 부상한 브리트니 스피어스.
귀여운 이목구비에 금발 머리, 부츠 컷 데님은 그녀의 시그니처 스타일이었습니다. 매달 패션 잡지엔 <브리트니 스타일>이 쏟아져 나왔죠.
2003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오프닝 무대에선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마돈나의 ‘Like a Virgin’을 불렀는데요, 공연을 마치자 마돈나가 등장해 브리트니와 파격적인 키스 퍼포먼스를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MTV는 이날을 역사상 최고의 오프닝 무대 1위로 선정했습니다.
2003년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새겼습니다. 그녀는 가장 어린 나이에 명예의 거리에 오른 가수로 기록되어 있답니다.
화려한 커리어로 승승장구하던 그녀가 추락한 건 파파라치의 집요한 괴롭힘과 결혼. 2004년 1월,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제이슨 알렉산더와 결혼을 하고 55시간 만에 파혼했습니다(2010년 그녀의 보디가드가 법정에서 증언한 바로는 ‘술김’에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그리곤 그해 7월, 3개월간 연애한 백댄서 케빈 페더라인과 약혼했습니다. 2005년 9월 첫째 아이를 낳고, 2006년 9월 둘째 아이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11월에 케빈 페더라인에게 ‘문자’로 이혼을 통보해 화제가 됐습니다.
퍼포먼스의 여왕으로 추앙받던 그녀는 순식간에 가십지를 도배하는 ‘문제아’로 낙인찍혔습니다. 이혼 후의 아픔을 추스르기도 전에 언론의 질타와 파파라치에 시달리던 그녀는 조울증과 행동장애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미용실을 찾아가 파파라치들 앞에서 직접 삭발을 하는 돌발 행동까지 한 것.
당시는 도박과 여자 문제에 휩싸인 케빈 페더라인과 이혼하고 법정 공방에 시달려 정신적인 치료를 위해 재활원을 들락거릴 때였습니다. 자신의 머리카락에 미량의 약물이 있을 거라고 믿은 과대망상증이 자초한 일. 스트레스를 못 이겨 저지른 이상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달 후, 브리트니는 자신이 알코올 중독도, 우울증도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정서 불안으로 최고의 자리에서 무너지고 있었지만, 그녀는 쉬지 않고 음반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2012년에는 ‘더 엑스 팩터’ 미국 판에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돈을 많이 번 여가수 1위에 오르기도 했죠. 2016년에는 3050만 달러(약 357억원)를 벌어들여 ‘2016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낸 유명 인사 100인’(99위)에도 꼽힙니다.
하지만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괴롭히는 루머는 또 등장합니다. 2016년 12월 26일,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의 공식 트위트 계정에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죽었다”는 트윗이 올라온 것. 하지만 트윗은 금방 삭제됐고, 소니 뮤직은 계정이 해킹 당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새로운 남자 친구 샘 아스가리와 함께 새해를 맞이할 정도로 잘 지냈죠. 남자 친구는 자신의 곡 ‘Slumber Party’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서 만난 백댄서. 올해가 다 가기 전 (또?) 결혼할 예정이라는군요!
80년대생에겐 최고의 전성기를 보여준 팝 아이콘, 브리트니 스피어스. 머리를 잘라내며 파파라치들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가슴 아픈 몰락을 지켜본 팬들은 혹시 그녀가 다시 재기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많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노래와 무대를 정말 사랑하는 그녀이기에, 제2의 전성기를 기대해도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