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새로운 과거
지난 2006년 이래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는 지역적 풍경, 예술적 지형, 패션을 대하는 시선까지 바꾸었다. 장인 정신과 한국 문화가 어우러지는 공공의 예술적 장소,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의 10년. 본질에 가까워지고자 한 이 시간은 패션계와 예술계가 만들어갈 오래된 미래이자 새로운 과거다.
강남구 도산대로 45길 7. 발길을 멈춰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의 유리 건물을 올려다보니 기수가 들고 있는 에르메스 스카프가 휘날리고 있다. 메종 에르메스만의 상징이라는 이 조각은 프랑스 아티스트 에 주비르 아흐마드(Ez Zoubir Ahmed)의 작품이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이 길을 지나다 보면, 말을 탄 채 서울 시내를 내다보는 청년도, 1년 365일 하늘을 유려한 파노라마처럼 담아내는 황금색 벽도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이 우아하고 모던한 건물이 태초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2006년,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가 출현하기 전 이 한적한 주택가에 미용실이 있었고, 한식집도 있었지만, 카페가 있었는지는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영원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듯 안온하던 일대가 이 유리 건물의 실체감 덕분에 긴장감을 발산한 순간은 또렷이 기억한다. 10년 전의 ‘오렌지빛 사건’이 패션 하우스가 지역적 풍경, 문화 예술적 지형은 물론이고 패션을 대하는 시선까지 바꿀 수 있음을 예고했음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브뤼셀의 라 베리에르, 도쿄의 포럼, 싱가포르의 알로프트에 이어 네 번째 메종으로 기록된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는 지금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앞두고 있다. 시장 상황을 충실히 예측하고 반영한 진화의 움직임이자 큰 숨을 고르는 또 한 번의 타이밍이다. 그러나 리노베이션의 형태나 성격 등에 대한 모든 궁금증은 이들이 그간 어떤 철학과 실천을 통해 존재했는가 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제껏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의 움직임은 마치 ‘엄격한 운율로 지어진 자유로운 시’처럼 본질에 더 가까워지고자 하는 바람으로 진행되어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가장 처음의 이야기, 왜 도산공원이어야 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다른 패션 하우스처럼 압구정이나 청담동이 아닌 반 발짝 떨어진 곳에 터를 잡음으로써 이들은 처음부터 다르고자 했다. 낯선 것을 익숙하게,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만들어온 이들의 선택과 도전이라고 해두자. 역사상 첫 번째 에르메스 매장이 지난 1880년, 파리 몽테뉴도 샹젤리제도 아닌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에서 출발했음을 떠올리면, ‘우리가 만든 길을 걷겠다’는 에르메스 전반을 지배하는 신념이 이들을 도산공원으로 이끌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가 생긴 이후 이 일대가 얼마나 감각적인 목적지가 되었ㅂ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는 상쾌하게 칠링된 샴페인처럼, 오는 5월 25일에 열릴 스트리트 콘서트를 통해 도산공원 일대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스타 밴드 혁오부터 유망주 아이엠낫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 예정인 고상지 같은 반도네온 연주가까지, 유명세에 상관없이 재능 있는 뮤지션들이 플레이리스트를 예약했다. 어쩌면 5년 전 그때처럼, 근처 상가에 떡을 돌려야 할지도, 공무원들과 숱한 미팅을 해야 할지도, “이런 행사는 대체 왜 하는 건가” 식의 질문에 도돌이표로 답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5년 만에 부활한 거리 콘서트는 스스로 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가 되고, 패션과 예술, 브랜드와 대중이 격의 없이 교류하는 장을 자처한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의 포부를 공표하기에 충분히 흥겨울 것이다. 지난 180년 동안 꾸준히 진화한 미의식의 정수가 담긴 유리 큐브 건물을 조명 삼아, 무대가 끝나도 끝나지 않는 BGM처럼 울려 퍼질 에르메스의 메시지에 다시 귀 기울일 때가 왔음을 알리는 축포다.
“에르메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통과 혁신입니다. 모든 것은 이 명제로부터 출발해요.” 오랜 시간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를 지켜온 김주연 전무가 말한다. 이는 10년 전, 처음 이곳에 들렀을 때도 직감한 에르메스의 정신적 원천이다. 고(故) 르나 뒤마가 설계하고 지은 이 건물은 한국의 기품 있는 문화를 향한 예찬을 담고 있었다. 안동을 여행한 그녀는 한옥 구조에 영감을 받았고, 열심히 공부했으며, 마루와 뜰을 연상시키는 중정을 재현했다. 동양과 서양, 자연과 인공의 문화적 단서를 건축적 언어로 삼은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는 의미 있는 레퍼런스가 되었다. 자신의 집처럼 정성스럽게 꾸며놓고자 한 르나 뒤마의 마음이 엿보이는 공간이 층별로 진열된 고가 아이템에서 오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아직도 청록색의 입구를 지나 새벽의 숲처럼 펼쳐지던 지하 1층의 프롬나드(Promenade, 산책)가 기억난다. 에르메스가 6대째 간직한 보물, 에밀 에르메스 컬렉션으로 가득 채워진 일종의 뮤지엄에는 나폴레옹이 갖고 놀았다는 아이템부터 희한한 나라에서 가져온 목각 인형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비록 에밀 에르메스 컬렉션은 몇 년 전 제자리로 돌아갔지만 프롬나드는 이들이 태생적으로 다양한 문화로부터 영감을 주고 받길 즐긴다는 걸 암시했다. 그리고 그 정신은 지금 같은 자리에 있는 아뜰리에 에르메스를 통해 총총히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어로 예술가의 작업실과 장인의 작업실, 두 가지 모두를 지칭하는 ‘아뜰리에’라는 단어를 전시 공간의 이름으로 지었습니다. 바로 이 공간이 에르메스가 한국 현대미술 현장을 위해 활발히 역할 하면서도 장인 정신의 전통에 깊게 뿌리를 두는 의지를 표현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에르메스 재단 디렉터인 카트린 츠키니스의 말처럼,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의 백미다. 일반 갤러리와 다를 바 없는 화이트 큐브는 이 특정한 건물 안에 위치함으로써 남다른 사명을 부여 받았다. “‘예술 그 자체보다 더 흥미로운 삶으로서의 예술’을 제안하는 오늘날의 예술가를 지원하는 공간이자 실험적, 역동적인 컨템퍼러리 아트의 가치를 전파하는 전시 공간.” 에르메스의 역사와 한국의 역동성이 어우러진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에서는 동시에 에르메스의 장인 정신과 한국의 컨템퍼러리 아트가 조우한다.
개관 특별전의 주인공 다니엘 뷔랑부터 정서영, 비디아 가스탈돈, 마틴 보이스, 구동희, 게리 웹, 박찬경, 로랑스 데르보, 박미나 & 잭슨 홍, 짐 람비, 김수자, 베르트랑 라비에, 김소라, 아이작 줄리언, 노재운, 박진영, 홍승혜, 나타샤 니직, 크리스 마커, 강홍구, 정윤석, nnncl, 믹스라이스, 김윤호, p.2(안정주 & 전소정), 이수경, 지난해 사단 아피프까지.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주목해야 하는 동시대 아티스트들을 어김없이 불러들였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다음 전시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10년을 되짚다 보면 한국 미술계의 행보와 상당히 겹친다는 점에서, 이들이 동시대 아트 신을 충실히 반영하고자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성원, 백지숙, 김윤경 등 미술계 베테랑 큐레이터들은 서로 바통을 이어받으며 아뜰리에 에르메스만의 영향력을 키우는 데 큰 몫을 했다. 흔해빠진 콜라보레이션처럼 패션 하우스의 마케팅 목적으로 활용되는 도구로서가 아니라 예술 그 자체로서의 예술을 보여주는 공간.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소비되고 소유되어야 향유할 수 있다는 패션의 원칙을 스스로 전복함으로써 미술계에 완벽하게 진입했고, 관객과 대중들에게 한발 더 가까이 섰다.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의 10주년 재개관을 기념하여 젊은 작가 6인의 전시를 비롯해 작가 <양아치>전 그리고 프리다를 회고하는 작가 로사 마리아 운다 소우키(Rosa Maria Unda Souki)의 전시까지 이미 라인업을 마쳤다.
120평 넘는 규모로 3층에 위치한 아뜰리에 에르메스가 지난 2014년 지하로 이동했을 때, 이들은 약간의 혐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대로 관람객들이 매장을 거치지 않고 갤러리로 당도할 수 있게 되자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더욱 사교적인 공간으로 변모했다. 패션 피플들이 사랑하는 지적인 카페 ‘마당’과 사이좋게 공간을 나누면서 대중성까지 확보했다. 관계자는 카페와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방문자 수가 2014년 이후 매해 30% 정도씩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이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는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들이 피력한바, ‘인지한다는 것과 본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감상(Contemplation)이 된다’는 진실에 ‘즐긴다는 것’을 추가한 셈이다. 국제적인 감각과 고유의 문화적 역동성을 표현하는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전시는 매번 화제가 되진 않았을지언정 흥미롭지 않은 적이 없었고, 각종 권위 있는 트래블 북에 서울의 패션과 예술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랜드마크로 소개되었다. 어렵사리 지켜온 유기적인 공간으로서의 아뜰리에 에르메스가 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미술상 덕분이라고 믿고 있다.
지난 2009년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에서 열린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10주년 디너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은 피에르 알렉시 뒤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평소 “예술 없는 세계는 공기 없는 세상과 같다”고 피력해온 그가 어머니 르나 뒤마가 설계한 공간에서 아버지 장 루이 뒤마가 탄생시킨 미술상의 10년 소회를 밝히던 중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0년 외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이 탄생했을 때, 모두들 낯설어했다. 의아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렇다 할 미술상도 없었고, ‘컨템퍼러리 아트’라는 단어가 지금처럼 인식되지도 않은 시절이었던 데다, 당시 재단도 없는 패션 브랜드가, 심지어 비영리로 왜 ‘한국의 역량 있는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후원하나’ 하는 날 선 궁금증이 뒤따랐다. 첫 번째 수상자인 장영혜를 비롯해 김범, 박이소, 서도호, 박찬경, 구정아, 임민욱 등 인터뷰도 쉽지 않은 쟁쟁한 작가들을 호명하고서야 미술상은 비로소 신임을 얻게 되었다. 본래 에르메스가 발굴과 후원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컨템퍼러리 아트 컬렉팅을 일절 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존재를 연결 짓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번 미술상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전(前) 삼성미술관 플라토 부관장 안소연은 말한다. “지금은 다양한 미술상이 있지만, 당시엔 흔치 않았어요. 미술계에서 이 미술상이 제도화, 관료화될까 봐 우려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잘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전통 미술계 밖에 있는 기관이라 여타의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전문성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요.” 2004년 미술상을 수상한 박찬경 작가 역시 미술상의 작가 선정 기준에 동의한다. “당대의 중요한 작가들, 진취적인 작가들을 선정했을 뿐만 아니라 심사위원들도 국제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보여준 이들로 구성되었어요. 작가들을 지원하는 방식도 남달랐고요. 지금도 보고 싶은 참신한 전시가 많습니다.” 2008년 에르메스 재단이 공식 출범하면서 횃불을 넘겨받은 미술상은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으로 개명한 후 한 명을 집중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문성을 지키고자 한다.
‘우리 시대의 작가의 생각을 알지 못하면 미래도 없다’는 신념, 예술을 향한 고집스러운 애정은 그 기원이 깊다. 다양한 이론이 존재할 수 있지만, 아르티장(장인)과 아티스트가 애초에 한 몸이었다는 의견이 가장 일리 있다. 에르메스가 사업을 시작한 무렵인 180년 전, 장인은 곧 예술가였고, 예술가는 (지금과는 달리) 모든 걸 다 할 수 있었다. 화가가 그린 벽은 벽지가 되었고, 조각가가 집의 장식을 도맡는 식이었다. 이들과 함께 성장한 에르메스가 장인을 존중하는 건 당연지사. 파리 본사에는 실제 ‘Silk Exhibition’ ‘Leather Exhibition’ 등의 부서가 있었는데, 이는 장인과 예술가의 일을 나누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2014년 리노베이션 때 열린 <컨덴세이션>전은 작가의 상상과 장인의 솜씨가 만났을 때 어떤 환상적인 작품이 탄생하는지 보여준 좋은 예였다.
철저히 비영리로 운영되는 아뜰리에 에르메스가 작가의 비전을 소개하고 지원하는 사명을 띤다면 그 반대편, 철저히 비즈니스의 경계와 면한 쇼윈도는 작가들에게 다른 차원의 캔버스다. 쇼윈도는 그 태생상 패션의 상업성을 극대화한 동시에 고객들에게 가장 가까이 선 비즈니스 격전지의 최전방.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는 번번이 이 뜨거운 공간을 예술가들에게 내주었다. 개관 때 쇼윈도를 장식한 플라잉시티가 패션계와 미술계에서 공히 회자되었고, 이후 잭슨 홍, 지니 서, 배영환 등의 작가들이 에르메스의 쇼윈도를 도맡아왔다. 해당 시즌의 핵심 트렌드와 브랜드의 전략 등 첨예한 상업성을 작품의 한 요소로 차용하여 자기 방식대로 풀어내는 작가들에게 쇼윈도 작업은 일종의 아티스틱 이벤트다. 이번 리노베이션을 맞이해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는 한국뿐 아니라 각국의 에르메스 쇼윈도를 담당하고 교류 중인 이 네 명의 작가들과 함께 또 한 번의 빅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 그간의 쇼윈도 작업을 2017년 버전으로 재현할 요량인데, 동시에 다른 작가들의 작업물과 한 공간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해야 하는 고도의 작업이 될 것 같다.
최근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앞의 풍경은 한결 명랑해졌다. 젊은 아티스트 위고 가토니(Ugo Gattoni)의 귀여운 그림이 쇼윈도를 장식했기 때문이다. 봄꽃이 한창일 무렵, 행인들은 작품 앞에서 셀카를 찍었고 가토니의 작품을 통해 이곳이 단순히 ‘공사’가 아니라 새 단장 중임을 유추했다. 윈도를 통해 브랜드를 인식하는 것, 이는 크리스토프 르메르, 나데주 바니 시뷸스키 등 레디투웨어 디자이너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에르메스를 언제 인식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한결같이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의 쇼윈도 이야기를 꺼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에르메스의 윈도 철학은 ‘웰컴 앤 위티(Welcome & Witty)’다. 행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 (향수만 사든 그마저도 안 사든 상관없이) 어쨌든 이들을 웃게 만드는 것. 수십 년 전, 매일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의 매장 쇼윈도를 구경 온 여자가 어느 날 매장으로 초대 받아 스카프의 역사와 에피소드를 듣고는 장 루이 뒤마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는 ‘에르메스 코리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활동의 컨트롤 타워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에르메스는 부산영화제 ‘회고전의 밤’에서 한국 원로 영화인들에게 ‘Director’s Chair’를 헌정함으로써 부산영화제가 국제적 명성을 얻는 데 일조했고, ‘덕수궁 함녕전 정비 프로젝트’도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에르메스의 장인 정신과 한국 문화의 상호 교류 장면은 새 단장한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3층에서 양혜규의 최신작 ‘솔 르윗 뒤집기-184배로 확장한 하나와 66배로 확장, 복제하여 맞세운 둘, 다섯 개의 모듈에 입각한 입방체 구조물 #81-E’를 통해서도, 이후 쁘띠 아쉬(에르메스 작업실에서 쓰고 남은 자투리 재료를 재활용하는 럭셔리 업사이클링의 대표 브랜드)의 시노그래퍼로 참여하게 될 정연두의 활약을 통해서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비영리 사업과 영리사업의 경계, 영화와 예술의 경계를 나눌 필요도 없는 모든 예술적 소통의 시도. 이는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의 유동 인구가 전 세계 메종 중 단연 최고이고, 이것이 (당연히) 판매량과 직결된다는 사실과는 또 다른, 에르메스의 미래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단서다.
다시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앞에 선다. 며칠 후면 이곳은 한국 미술의 생생한 현재를 증명하는 전도유망한 예술가 6인(김민애, 김윤하, 김희천, 박길종, 백경호, 윤향로)이 던지는 화두로 달아오를 것이다. <오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구나>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한 흥미로운 제목의 전시에서는 기존의 전시가 작가들의 시각으로 재해석된다. 과거에 경의를 표하는 방식이 단순히 회고(Retrospective)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도록(Prospective) 만드는 건 20~30대 작가들의 존재 자체다. 이들은 ‘친구를 부르듯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어’ ‘과거의 궤적을 각자의 현재와 대면시키고’ ‘이를 다시 서로의 미래라는 또 다른 친구에 투영하는 다중 협업의 구조’를 선보인다. 작가 개인의 가능성, 작품의 예측 불가한 가능성 그리고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가능성 등에 대한 본격 탐구인 셈. 그러고 보면 지난 10년 동안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가 제시해온 건 럭셔리, 패션, 예술 이전에 이 모든 ‘가능성의 미학’이었다. 새 시대를 맞이해 다시금 소통을 꿈꾸는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를 표현하는 더할 나위 없는 메시지다.
- 에디터
- 윤혜정
- 포토그래퍼
- AHN HA JIN, COURTESY OF HERMÈ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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