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리빙 ④ – 573 CHEST
지인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내게 묻는 질문이 하나 있다. “어떤 가구 브랜드가 가장 좋은 브랜드인가요?” 또는 “OO브랜드는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포지셔닝)인가요?”
이런 질문은 가구 브랜드에 대한 관심에서 오는 궁금증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아는 범위에서 성실히 조언한다. 반면 질문의 본질 속에는 대게 서열을 매기는 우리나라 특유의 ‘1등 지상주의’가 담겨 있음도 느낀다. 그때 마다 나의 대답은 대동소이하다.“자기가 사랑에 빠지는 디자인이 있는 가구가 가장 좋은 브랜드에요.”
웃기지만 사실이다. 사랑할 때처럼 첫 눈에 나의 맘을 사로잡은 가구들은 상사병이 생길 만큼 나를 설레게 했고 그 브랜드들은 내게 가장 좋은 브랜드가 되었으니까. 마침내 내겐 사랑에 빠진(?) 최고의 브랜드를 만날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왔다. 어김없이 올해에도 밀라노에서 열리는 2017 국제 가구박람회 ‘살로네 델 모빌레’ (Salone del Mobile)를 찾아갔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수많은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이 서로의 협업을 통해 선보이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기대를 갖게 하는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있는가 하면 의외의 신선함과 창의력에 감탄하는 디자인도 발견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내가 사랑한 그를 만나러 유독 부리나케 뛰어가는 전시부스가 있다. 1885년 4월21일 시작하여 132년 동안 프랑스를 대표하는 가구브랜드 ‘무아쏘니에(Moissonnier)’ 이다. 오랜 연인을 재회 할 때의 감격과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 동안 변한 곳은 없는지, 어떻게 지냈는지, 구석구석 살펴보며 안부를 묻듯 전시부스의 제품들을 이리저리 살펴보게 된다.
그 중에서도 나를 설레게 했던 그 녀석(?)은 여전히 우아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무아쏘니에의 시그니쳐 모델 573 코모드(commodes). 흔히 체스트(Chest : 서랍장) 라고 불리는 573 서랍장은 무아쏘니에가 탄생된 이 후 지금까지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역사적인 스타일의 서랍장이다. 클래식가구 마니아들 사이에선 그냥 573이라고 부르면 모두(?) 알 정도이다. 내 아내에게 에르메스의 켈리백과 디올의 원피스가 있다면 내겐 573 서랍장이 있다고나 할까…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한 것을 기억한다. “모던 가구는 형태(Design)이고 클래식 가구는 마감(Finish)이다.”
간단하지만 핵심이 모두 들어있다. 모던 가구들은 기술과 접목되어 다양한 형태들이 창조되고 클래식 가구는 다양한 색상과 기법으로 현대에도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모던 가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클래식 가구의 진부함과 고루함에 거부감이 있고 클래식 가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심미성과 예술성을 모던 가구에서 발견하기 쉽지 않음으로 흥미를 잃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특히 경기불황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클래식 가구 시장의 정체와 축소가 진행되고 국내의 경우 좋은 클래식 브랜드들이 거의 사라지다 싶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다.
더군다나 젊은이들 조차 요즘엔 모던 가구로 편중되는 성향들을 볼 때 안타까움이 크다. EDM과 HIPHOP이 관현악, 오페라와 공존하듯 모든 것들은 함께 이 시간과 공간에 존재한다. 경중을 따질 수 없는 각기 소중한 존재이다. 혹 누군가가 클래식 가구에 주저한다면 나는 과감하게 권유하고 싶다.
“클래식에 빠져 보세요. 선 하나 조각 하나에 의미를 발견하고 감동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 클래식 가구는 아는 만큼 보인다. 573 서랍장의 형태는 학구적이다. 루이 15세 시대의 로코코 양식의 정형적인 공식을 교과서처럼 그대로 담아낸 황금비율과 같다. 동양화와 매우 비슷하다. 한 폭의 그림을 읽는 눈이 필요하듯 클래식 가구는 가구를 읽는 눈이 필요한데 선과 장식, 조각들은 원리와 법칙에 의해 계산되어 표현된 결과물이다. 그것을 읽어내는 기쁨과 감동이 바로 클래식의 매력이다.
여성의 몸매처럼 유려한 곡선의 실루엣에 앞으로 볼록 솟은 두 개의 문짝은 아이를 품은 여자의 복부 같다. 다리부분과 발끝에 화려한 오물루(Ormulu)장식과 치펜데일 로코코 스타일(Chippendale rococo)스타일의 손잡이는 로코코양식을 대표하는 독창적인 장식물이다. 로코코 양식의 곡선미는 훗날 아르누보(Art Nouveau)양식의 효시가 된다.
다양한 색상과 패턴은 무아쏘니에가 현대에서 살아남는 아니 현대에서도 스타일을 선도하는 강력한 감각적 무기이다. 유행하는 컬러 트렌드나 패턴무늬를 과감하게 고전적 형태와 접목시킨다. 수백 수천 가지의 다양한 573 서랍장이 고객의 취향에 따라 커스터마이징 되는 것이다.
과거의 디자인으로 현대의 스타일을 선도하기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1885년 에밀 무아쏘니에(Emile Moissonier)를 시작으로 2대 사장 가브리엘 무아쏘니에(Gabriel Moissonnier)를 거쳐 3대 사장 장 루 무아쏘니에(Jean-Loup Moissonnier)가 사업을 이어받은 1976년의 무아쏘니에 가구는 이미 유행에 많이 뒤쳐져 있었다. 장 루 무아쏘니에는 새로운 컬렉션을 출시하고 현대적인 컬러와 마감기법을 통해 무아쏘니에의 방향성을 만들어 냈다.
지금은 디자인 총괄을 담당하는 그의 여동생 앙 피에르 모아쏘니에(Annie-Pierre Moissonier)가 무이쏘니에의 모든 디자인을 이끌고 있으며 4대 사장은 장 루의 처남이자 앙 피에르의 남편인 장 프랑수와(Jean Francois)가 글로벌 경영을 통해 비즈니스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나만의 가구를 위해 무아쏘니에와 긴 얘기를 나누어 보자.
나의 취향과 그들의 예술적 조언을 잘 조합하여 세상에서 하나뿐인 가구를 만들어 보자. 클래식 가구라는 올드한 발상과 접근은 버리자. 무아쏘니에는 이미 나를 위해 아름다움, 기능, 품질을 준비해 놓고 쌍방형의 소통을 기다리고 있다.
시대를 거스를 뿐만 아니라 시대를 앞서가는 디자인을 만난다는 것은 내가 시대를 앞서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꼬리에 꼬리는 무는 좋은 디자인에 대한 갈구와 호기심은 분석하고 파헤치는 덕질과 함께 계속 된다.
우리 모두의 삶이 풍요로워 질 그 날 까지 Tornerò subito!
- 글
- 이현승 (CHERISH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사진
- www.moissonnier.com,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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