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굿바이, 케네스 제이 레인!

2023.02.20

굿바이, 케네스 제이 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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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텀 주얼리에 관심이 많다면 케네스 제이 레인이라는 이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다. 얼마 전85세의 나이로 사망한 그는 미국 최초의 커스텀 주얼리 디자이너이자 주얼리계의 앤디 워홀이었다. 

모델 카렌 그레이엄이 케네스 제이 레인의 커스텀 주얼리를 착용한 1973년 2월호 미국 보그 커버.

모델 카렌 그레이엄이 케네스 제이 레인의 커스텀 주얼리를 착용한 1973년 2월호 미국 보그 커버.

여자들의 기호에 빠삭하고 비즈니스에 정통한 어느 미국 사업가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케네스 제이 레인은 동명의 멋쟁이 주얼리 디자이너가 1962년에 론칭한 주얼리 브랜드다. 미국 디트로이트 출신의 케네스 제이 레인은 자신의 고향을 프랑스어식으로 ‘디트호-와’라고 발음하고, 자신의 주얼리를 설명할 때도 가짜(페이크), 싸구려(정키)라는 단어를 엉터리 프랑스어인 ‘파크(faque)’ ‘정크(junque)’라고 우아하게 표현한 독특한 인물이었다. 그는 서슴없이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 자신이 바로 화려한 가짜거든요!”

에디 세즈윅이 케네스 제이 레인의 귀고리를 착용한 라이프지 커버.

에디 세즈윅이 케네스 제이 레인의 귀고리를 착용한 라이프지 커버.

제이 레인은 카멜 코트를 사기 위해 방과 후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어렸을 적부터 패션에 열광했다. 십대 시절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뉴욕으로 향했고,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을 졸업한 후 10년 동안 신발을 디자인했다. 델만, 디올 하우스에서 로저 비비에와 함께 신발을 디자인하기도 한 그는 컬렉션에 매치할 주얼 장식 슈즈를 디자인하러 디자이너 아놀드 스카시(Arnold Scaasi)에게 고용되면서 정식으로 주얼리 디자인에 발을 들였다. 룩에 어울릴 팔찌와 귀고리도 디자인하겠다는 제안을 스카시가 수락한 것. 그는 곧장 싸구려 잡화점으로 달려가 플라스틱 뱅글을 사다가 신발에 장식한 스톤을 그 위에 붙였다.

사진 속 윈저 공작 부인이 착용한 주얼리는 전부 케네스 제이 레인.

사진 속 윈저 공작 부인이 착용한 주얼리는 전부 케네스 제이 레인.

얼마 후 주얼리 디자이너로 독립한 그는 1962년 첫 주얼리 컬렉션을 발표하고 자신의 맨하탄 아파트에서 프라이빗하게 주얼리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상류층 고객과 패션 에디터들이 그의 아파트를 찾으면서 점차 이름을 알렸고 여자들은 자신의 파인 주얼리와 케네스 제이 레인의 커스텀 주얼리를 함께 매치하곤 해서 전문가들조차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당시 가브리엘 샤넬도 커스텀 주얼리를 제작했지만 샤넬의 경우 상류층을 대상으로 소량 생산한 데 반해 제이 레인은 보다 대중적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디자인에 대해 자기비하적으로 말하길 즐겼다. “내 디자인은 전부 오리지널이죠. 다른 누군가의 오리지널이요.”

케네스 제이 레인이 카피 제작한 ‘마하라니’ 목걸이.

케네스 제이 레인이 카피 제작한 ‘마하라니’ 목걸이.

그는 좋은 디자인은 편집이라고 믿었다. 멋진 아이디어를 가져다가 실용적으로 만드는 것 말이다. 그런 식으로 장 슐럼버거, 데이비드 웹의 디자인과 전세계 박물관 등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얻었다”. 마치 사기꾼의 행보처럼 들리지만 그의 주 고객층과 친구들은 전 세계 유명인사들이었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오드리 헵번,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레타 가르보, 마가렛 공주, 다이애나 브릴랜드 등. 그의 가장 유명한 카피 디자인은 재클린이 애리스토틀 오나시스와 재혼할 때 그녀가 선물로 받은 반 클리프 아펠의 ‘마하라니’ 목걸이다. 재클린이 제이 레인에게 카피 제작을 의뢰했을 때(착용하기엔 너무 고가의 주얼리였다) 그는 진짜와 동일한 가격을 지불하던지 아니면 카피한 디자인을 대량 판매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요구했고 재클린은 후자를 택했다.

케네스 제이 레인이 디자인한 주얼리들.

케네스 제이 레인이 디자인한 주얼리들.

케네스 제이 레인이 디자인한 주얼리들.

케네스 제이 레인이 디자인한 주얼리들.

제이 레인은 상류층, 소셜라이트 고객과 친분을 쌓으면서 전용기를 타고 섬의 별장, 귀족의 성을 방문하고 A리스트만 참석할 수 있는 전 세계의 파티를 즐겼다. 그 덕에 그들의 정교하고 화려한 파인 주얼리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는데, 이 경험이 그가 가짜 스톤을 보다 진짜에 가까운 색으로 재현하는 데 집중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는 기존 공장에서 만든 가짜 루비와 사파이어의 색이 원석에 비해 너무 짙거나 옅다고 계속해서 조정을 요구하다가 결국 독일에 주문 제작을 의뢰했다.

그는 미국 최대 홈쇼핑 QVC에서 자신의 주얼리를 팔기 위해 직접 등장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고 회사 역시 크게 성장했다. 그는 값싼 가짜를 팔아서 값비싼 젯셋족 비즈니스맨의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겼고, 패션계에 커스텀 주얼리를 착용하는 것이 세련된 스타일이라는 인식을 세웠다. 그의 말대로 그는 화려한 가짜였다. 좋은 의미로.

    에디터
    송보라
    포토그래퍼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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