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pt Away
엘르 패닝은 아역 배우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아가씨로 성장했다. 또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로 가장 매혹적인 스타임을 증명했다.
엘르 패닝(Elle Fanning)이 어떤 인물인지 알려면, 그녀가 뭘 하는지, 혹은 뭘 하지 않는지 보면 된다. 이를테면, 패닝은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다. 트위터를 하지 않는다. 촬영 전날 밤까지 대본을 보지 않고(그러다 욕조에 들어가서 대본을 외운다), 자기가 출연한 토크쇼를 보지 않는다. “자동 응답기에 녹음된 제 목소리를 듣는 기분이거든요.” 파파라치가 헬스장까지 쫓아오는 것이 좋진 않지만, 소란을 일으킬만큼 자신이 유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보면 “아, 네! 다코타 패닝 동생이에요!”라고 답하지 않으려 한다.
물론 그녀는 그 자체로 스타다. 그녀의 아름다움(아치형 눈썹, 살짝 들린 짧은 코, 공기 요정이 만지고 간 것 같은 머리카락까지)과 인상적인 작품 리스트 때문만은 아니다. 패닝을 뉴올리언스의 층고가 높은 레스토랑 ‘Tableau’에서 만났을 때, 좀 놀랐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그 확신이 상대에게도 전달될 정도로 자신감 있다. 그녀는 “Hi!”라고 인사하며 양손을 뻗어 나를 꽉 안았다. 셀린의 빨간 터틀넥, 발렌시아가의 검은색 로커빌리 데님, 반짝이는 버클이 달려 있는 메종 마르지엘라 스니커즈 차림이었다. 들고 있던 자그마한 구찌 가방을 내려놓고, 프렌치 도어 옆에 있는 의자에 미끄러지듯 앉았다. 패닝은 니콜 키드먼, 커스틴 던스트, 콜린 파렐과 함께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작품 <매혹당한 사람들> 촬영을 위해 뉴올리언스에 몇 주간 머물렀다. 영화 <썸웨어> 이후 7년 만에 소피아 코폴라 감독과 함께했고, 다른 가족 없이 혼자 타지에서 촬영한 첫 작품이다.
잠깐 뭐라도 마시고 나서(나는 레모네이드를, 그녀는 “얼음 많이” 다이어트 콜라를 주문했다) 그녀가 늘 하고 싶었다던 귀신의 집 투어를 하기로 했다. 약간 으스스한 부탁이었다. 코폴라 감독 버전의 <매혹당한 사람들>은 (1966년 출간된 토머스 컬리넌의 소설. 그리고 1971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출연한 영화로도 제작됐다) 남북전쟁 시대, 다친 연방군 병사(콜린 파렐)가 버지니아의 여자 기숙학교에 머무르면서 환대, 유혹, 호러의 상황에 놓이는 이야기다. 패닝은 병사를 유혹하는 야심 찬 캐릭터인 알리시아를 연기했다. 영화 초반에 그녀는 병사의 방에 숨어 들어가 캐리 그랜트와 그레이스 켈리 주연의 영화 <나는 결백하다> 스타일의 대담한 키스를 한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이렇게 평한다. “엘르는 너무 다정해요. 아직 아이죠. 그런 그녀가 자기의 인성과는 반대인 방탕하고 허영심 많은 배드 걸 역할을 해야 했죠. 저는 그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엘르도 응수했다. “소피아는 저를 배드 걸로 만들 생각에 엄청 들떴어요!” 스스로도 그런 역할이어서 끌렸다. 마이크 밀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격동의 70년대를 살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여성들이 등장하는 영화 <20세기 여인들>의 촬영이 끝난 후, 엘르는 처음으로 별자리 운세를 보러 갔다(촬영이 끝난 것을 기념해 마이크 밀스 감독이 그녀에게 선물을 했다). “저는 엄청 모순이 많은 사람이래요.”
물고기자리적인 성향도 있다. “매우 소녀적이고 초자연적이며 묘한 재능도 갖고 있대요.” 콜린 파렐은 “엘르는 제가 본 어느 여배우보다 본능을 끄집어 내서 연기해요”라고 말했다. 니콜 키드먼 역시(그녀 특유의 여유와 우아함을 뿜어내며) “엘르의 연기는 전혀 힘들이지 않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요”라고 평했다.
많은 사람들이 패닝을 영화 <말레피센트>의 잠자는 숲속의 공주(그녀가 정말 좋아하는 역할)로 기억한다. 그리고 조지아의 디케이터에서 태어났고, 태어난 뒤 몇 년은 코니어스라는 도시에서 살았지만, 팬들에게 그녀는 ‘LA 키즈’의 전형이다.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스타일리시하고, 볼이 에나멜처럼 반짝이는 할리우드의 공주님 말이다. 그녀는 두 살부터 연기를 했고, 스크린을 위해, 그리고 스크린 위에서 평생 살아왔다. 패닝은 첫 키스도 카메라 앞에서 했다(영화 <진저 앤 로사>의 촬영이었다).
그녀가 앞으로 사람들이 더 알아줬으면 하는 부분은 성격이 좀 있다는 거다. “엄마랑 언니는 늘 ‘그거 별로 자랑할 만한 거 아니야’라고 해요.” 그녀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저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거리낌 없이 ‘나 화낼 땐 완전 화내!’라고 하죠. 제가 사람을 잘 믿어서 종종 상처를 받았거든요.”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남들의 허무맹랑한 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원하는 바를 잘 아는 사람. 몸매 유지와 건강을 위해 부모님 집 근처(부모님과 함께 산다)의 피트니스 클럽에서 복싱을 시작했고, 무시무시한 레프트 훅을 연마한 사람. 또 자기의 테이블 매너를 스스로 비판하고(“남자처럼 먹어요”) 자신만의 박자를 타며 흐느적거리지만 다이앤 키튼 같은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걷는 사람이다.
<매혹당한 사람들> 촬영을 하며 우정을 쌓은 커스틴 던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엘르는 말투가 독특해요. 좀 웃기달까. 할머니들이 자주 쓰는 표현을 하죠.” 패닝 자매가 미성년자였을 때, 세트장에서 그들과 함께 있어주며 친구 역할을 해준 건 할머니였다. 덕분에 손녀는 가끔 익살스러운 목소리로 할머니 흉내를 낸다.
엘르는 커리어적으로 매우 대담하다. 작년, 그녀가 열여덟 살이 막 되었을 때, 섹스와 죽음, 마음속에 품고 있던 몽환적인 꿈을 망치는 스타덤에 관한 호러 필름인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네온 데몬>에 출연하며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다코타 패닝은 “배우로서의 엘르 패닝에 너무 감동했어요”라며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고통받는 동생을 보며 극장이 눈물바다가 되도록 울었다. <매혹당한 사람들>에서 패닝은 또 한 번 파격적인 캐릭터를 맡았다(남북전쟁 시대의 관습을 기준으로). “아주 유혹적이에요. 제 쇄골을 노출하거든요. 당시는 ‘어머, 쟤 발목 노출했어’라며 난리 칠 때잖아요.”
그런 역할을 하자 언론은 그녀의 연기가 성장하고 있는지, 여배우로서 성숙해지고 있는지, 그녀가 어떤 아티스트가 될지 궁금증을 품기 시작했다. 엘르는 그런 질문이 매우 이상하다. “사람들이 제가 성장하는 걸 스크린에서 이미 봐왔잖아요.” 그녀는 다이어트 콜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그녀에게 영화 촬영은 쉽고 익숙한 부분이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자신에게 새롭고 신기한 것을 왜 물어보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를테면 파티, 졸업, 앞으로 어떤 여성이 되고 싶은지 같은. “열여덟 살이 되면 예전에는 없던 책임이 갑자기 생기잖아요. 스스로 여전히 어린애처럼 느끼기도 하고요. 이중적이죠.” 언니인 다코타가 NYU로 떠나기 전에, 패닝은 자매와 부모님, 할머니까지 LA에 있는 집에서 함께 살았다(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여자, 여자, 여자!”로 가득한 대가족이다). 엘르는 주변 여성들과 그녀들이 세운 기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니 아무 생각 없는 연기만 할 순 없고, 대학 진학과 같은 옵션에도 무게를 뒀다. 하지만 그녀 말로는, 선택은 쉬웠다. “영화를 그만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무섭더라고요.”
엘르는 영화 같은 내면을 갖고 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때우기는 침대에 앉아서 상상력이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는지 놔두는 것이다. 종종 생생한 꿈을 꾼다. 꿈은 가끔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그녀 생각에는) 미래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녀는 4학년 때 친구 세 명과 LA의 쇼핑센터로 영화 <트와일라잇>을 보러 가기로 했다. 너무 설레서 기다리기 힘들 정도였다. 당시 학교에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는데(그는 5학년이었다. 다들 이런 경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기로 한 전날 밤, 어느 쇼핑몰에서 남자아이와 마주치는 꿈을 꿨다. “다음 날 일어나서 친구들한테 ‘우린 분명 그 오빠 만날 거야! 난 알 수 있어!’라며 난리 쳤죠. 친구들은 ‘그 오빠는 근처에 살지도 않는다’면서 웃었고요.” 그런데 정말로 그가 나타났다. 꿈에서 봤던 바로 그 장소에서 말이다. “저한테 무슨 마법이 있나 봐요!” 그녀는 매우 즐겁게 외쳤다. 이 이야기 모두가 귀신의 집 투어의 프롤로그처럼 느껴졌다. 나는 약간 겁먹은 상태였고, 분명히 겉으로도 티가 났을 것이다. “오늘 제 꿈에 에디터님이 나오면, 내일 알려드릴게요.” 그녀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웃었다.
잭슨 광장의 북쪽 구석에서 우리에게 ‘고스트 시티 투어’를 해줄 ‘초자연적 현상 수사관’이라고 불리는 가이드 빌을 만났다. 가는 길에, 나는 고스트 투어 가이드가 어떻게 생겼을지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빌을 보자마자 무조건 그가 ‘초자연적 현상 수사관’임을 알 수 있었다. 약간 그을린
피부에 회색 수염을 기른 그는 화이트 진과 니하이 레이스업 부츠, 스타워즈 로고가 그려진 버튼다운 셔츠를 입고, 목에 큰 십자가 두 개를 찼다. 한쪽 허벅지에는 귀신(영혼) 감지기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차고, 등에는 다른 장비로 가득 찬 잔스포츠 백팩을 메고 있었다.
“영혼 상자를 몇 개 쓸 건데요. 어떻게 되는지 한번 지켜봅시다.” 그가 설명했다. 그의 목소리는 민속 현악기인 밴조의 줄을 뜯는 것 같았다. 밤색 머리는 한쪽으로 가지런히 가르마를 타고 있었다. 우리는 모퉁이를 돌아서 위엄 있고 장중한 오래된 식당으로 갔다. “여기는 뮤리엘스(Muriel’s)입니다”. 빌이 설명했다. “좋은 레스토랑이에요. 이곳도 귀신 들렸죠.” 그곳에 있는 귀신은 피에르 주르당이라는 이름이었는데, 18세기 말에 포커 게임에서 집문서를 잃고 스스로 목을 맸다고 했다.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서 2층으로 가니, 부드러운 붉은빛이 켜진 안락한 방이 나왔다. 우리는 앉았고, 빌은 자기의 ‘영혼의 기운을 영어로 바꾸어주는 기구’를 꺼냈다. 그것은 베이비 모니터(아기 방의 소리를 들으려고 설치하는 무전기 형태의 것)처럼 생겼다. “이곳에 귀신이 있는 게 정말입니까?” 그가 물었다. 그 장치에 답변이 떴고, 패닝은 장치의 스크린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네, 확실히요.” 베이비 모니터가 답했다.
로열 스트리트에서 만난 술 취한 한 여성(아마 그녀도 어떤 귀신에 씐 상태였을지 모른다)이 차 안에서 패닝을 향해 소리쳤다. “어머, 너 입은 톱이 예쁘다!” 아까 말한 그 셀린 톱 말이다. 그래, 그 톱 참 예쁘다. 하이넥에 배꼽 근처가 노출되는 디자인이었는데, 패닝이 어릴 때 입었던 배꼽티의 어른 버
전이랄까. 하지만 패닝은 그녀의 말을 잘못 들었다. “어머, 너 입은 톱이 예쁘다(Dear, I like your top)” 대신에 “오 마이 갓, 얘 완전 커(Dear God, you are tall)”라고 말이다. 그녀는 <썸웨어>를 촬영하는 동안 1년에 18cm쯤 자랐고, 옷 사이즈도 두 사이즈나 커졌다. 그 이후로 180cm 정도 되는 자신의 키가 쭉 신경 쓰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녀의 우아하고 길쭉길쭉한 체형 덕에 캘리포니아 스타일의 로다테, 독특하고 유쾌한 미우미우 같은 스타일의 옷이 더욱 어울리게 됐다. “로다테랑 미우미우는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 같아요”라고 그녀가 설명했다. 지난봄, 칸에서 그녀는 호화로운 발렌티노 드레스를 입었는데, 카메라를 향해 치마를 펼치는 게 너무 좋아서 천국 같았다고 했다. “치마 퍼지는 게 너무 신나서 계속 걸어 다녔어요.”
어둠이 내려왔고, 시내는 밤의 방랑자로 가득 찼다. 빌은 예전에 사창가로 이용되던 건물로 우리를 데려갔다. 원래 ‘해 뜨는 집’이라고 불리던 곳이라고 했다. 남자 손님이 그곳의 여자에게 나쁜 짓을 하면, 주인인 마담이 그 남자에게 제대로 복수를 했다. 마담은 두 명의 여자를 보내서 약 탄 술을 대접했다. 조금 있다가 두 명을 더 보내고, 또 두 명을 보냈다. “그 얼뜨기는 나중이 돼서야 엄청 열 받은 창녀 여섯 명에게 둘러싸여 있음을 알게 되죠!” 빌이 소리쳤다. “여자들이 그를 때리고, 목을 찌르고, 그의 지갑을 꺼내고, 미리 파둔 무덤으로 그를 데굴데굴 굴려서 쓰레기처럼 버립니다. 최후의 일격으로 그의 위로 빈 병을 잔뜩 쌓아서 그를 덮어버렸죠!” 빌은 오늘날 그 건물이 호텔로 쓰인다고 했다.
패닝은 순진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쁜 남자 친구를 데려오면 되겠네요.” 굳이 따지자면 패닝 집안은 배우 집안이라기보다 운동선수 집안이다. 다코타와 엘르의 아버지는 마이너리그에 있었고, 엄마는 프로 테니스 선수였다. 이모는 풋볼 경기의 사이드라인 리포터였다. 엘르도 오랫동안 발레를 했고, 잠깐 핫요가에 심취하는 등 언제나 운동에 관심이 있었지만, 패닝 자매 둘 다 빨리 다른 길로 진로를 틀었다. 다코타는 다섯 살 때 동네 연극 캠프에 참여하며 스카우터에게 발견됐다. 엘르는 “<Blue Fish>라는 연극이었는데, 언니가 바로 파란 물고기였대요!”라고 설명했다. “스카우터들이 부모님에게 ‘얘 데리고 LA나 뉴욕으로 가세요’라고 했대요. 파란 물고기 역할을 정말 잘했다고요.” 엄마는 결단력 있게 조지아에서의 삶을 멈추고 다코타의 광고와 파일럿 시즌 촬영을 위해 캘리포니아로 이사했다. 다코타가 숀 펜이 출연하는 영화 <아이 엠 샘>의 주연 역할을 따냈을 때 엘르와 아빠도 따라왔다. 엘르는 다코타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기 위해 세트장에 불려왔다.
엘르는 다코타에 대해 끊임없이 존경 그 이상을 표했다. “연기를 먼저 시작한 언니가 없었다면,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까요?” 하지만 엘르의 어린 시절을 찍은 홈 비디오만 봐도 그녀가 타고난 퍼포머라는 걸 알 수 있다 (카메라를 똑바로 보고 “여러분, 엘르 패닝입니다!”라는 소개 멘트에 맞춰 양팔을 딱딱 움직였을 정도다). 이제 그녀의 길에서 다코타의 그림자를 찾기는 어렵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다코타 패닝은 이렇게 말한다. “가끔 사람들이 우리가 서로를 질투하거나 경쟁하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제 동생이 이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더 성공하고, 날아올랐으면 좋겠거든요.”
엘르는 오디션을 증오한다. 한번은 극심한 공포에 기절한 적도 있다. 하지만 감독들을 만나서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좋아한다. 코폴라 감독이 <썸웨어>의 캐스팅을 진행할 때, 둘은 만나자마자 궁합이 맞음을 느꼈다. “그녀는 정말 재미있고, 반짝반짝 빛나는 개성을 갖고 있어요.” 코
폴라 감독은 엘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련되고 교양 있으면서 동시에 어린아이 같은 면을 갖기가 힘들거든요. 엘르는 여타 아역 배우들처럼 ‘미니 어른’이 아니에요.” <썸웨어>의 캐릭터가 아이스 스케이트를 탔기 때문에, 코폴라는 엘르에게 대역을 쓰자고 제안했지만, 엘르는 몇 주 동안 새벽과 방과후에 레슨을 받았다. <썸웨어>는 엘르가 다코타 패닝의 동생 그 이상임을 세상에 보여줬다. 하지만 그것도 벌써 오래전 얘기다. 코폴라 감독은 말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저보다 키가 커졌어요.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빛나는 사람이죠.”
지난 15년간(그러니까 그녀의 인생 대부분의 시간 동안) 패닝의 히어로는 마릴린 먼로다. 엘르는 사람들이 세잔의 그림을 공부하듯 먼로의 인터뷰와 사진을 공부했다. “특히 사진을 보면 그녀가 당시에 어떤 기분으로 말했는지 눈빛에서 엿보이죠. 그녀는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몰랐어요.”
엘르는 가끔 마릴린 먼로는 소셜 미디어를 어떻게 다뤘을지 상상한다. 몇 년 동안 엘르는 (매우 할머니 같은 말투로) “페이스북이라는 거랑 트위터를 거부해왔어요”라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스스로 너무 갇히지 않았나,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 “시대와 함께 진화해야죠!” 그녀는 시각적인 인물이기에 인스타그램이 더 구미가 당겼다. 그녀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약 150만 명이다. “올리기 전에 늘 긴장해요. 사실 제가 세상의 주목을 피하기란 어렵죠. 언니의 팔로어 수도 100만대가 넘어요. 물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셀레나 고메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요.” 사실 테크놀로지에 있어 엘르는 아직 구식이다. 그녀는 작년 겨울에야 처음으로 넷플릭스를 시작했다. 아이폰에 새로운 이모지도 없다(왜냐하면 업데이트를 안 한 지 너무 오래됐다). 덕분에 친구들이 문자를 보내면 그녀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물음표와 깨진 글자가 잔뜩 뜬다. 친구들에게 그 얘기를 하자니 좀 민망해서 문자를 다 이해한 것처럼 행동하곤 한다.
우리는 카페의 차양 밑에 앉아서 유명하다는 로컬 음식을 먹었다. 카페오레(나), 초코 우유(그녀), 그리고 베눼라고 불리는 튀긴 반죽에 슈가 파우더를 잔뜩 묻힌 도넛을 주문했다. 내가 슈가 파우더를 여기저기 흩뿌리지 않으려고, 하나를 조심히 들어 입으로 가져가려는데, 그녀가 나에게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고는 단호하게 “숨 안 쉬고 먹어야 돼요”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재미있다. <매혹당한 사람들>의 세트장에서 그녀와 커스틴 던스트는 나중에 코미디 장르에 함께 출연하기로 했다(커스틴은 “엘르는 정말 웃겨요. 나중에 ‘SNL’ 호스트로 나오는 거 꼭 보고 싶어요”라고 했다). 여학교의 외부는 비욘세의 ‘레모네이드’ 뮤직비디오에 나온 루이지애나 농장에서 찍었고, 내부 장면은 뉴올리언스에 있는 코미디 배우 제니퍼 쿨리지의 집에서 찍었다(패닝은 그녀를 <금발이 너무해>에서 전설적인 ‘굽히고 튕겨!’ 장면의 폴렛 역할로 기억하고 있었다. “차마 그 장면을 직접 보여달라고는 못했어요. 다들 겁먹었거든요”). 쿨리지는 매년 할로윈 파티를 재미있게 하는 것으로 유 명한데, 엘르와 커스틴은 무난하게, 요정과 간호사로 분장했다. 현장은 그야말로 대단해서 ‘우리만 초대장의 메모를 못 읽었나’ 싶었다. 엘르는 “다들 마리 앙투아네트의 고딕풍 의상을 입고 왔어요. 우리만 엄청 튀었죠”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10대 초반 시절, 튀지 않으려고 스키니 진에 무채색 톱만 입고 다녔다. 그 후 자기만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엘르다움’을 자랑스러워하기로 했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예를 들어 졸업 파티 때 그랬다. 엘르와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인 카시오는 몇 주 동안 서로의 파트너가 되어 졸업 파티에 가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나중에 엘르는 칸에 가야 해서 댄스 파티 참석이 불가능했다. 그때 그녀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둘이 같이 프랑스에 가고, 그걸 우리 버전의 졸업 파티로 만들면 어떨까?” 실제 그렇게 했다. 엘르는 드레스를, 카시오는 턱시도를 입고 레드 카펫에 섰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또 한 번 말하지만 정말 최고의 시간이었다고! 어찌나 즐거웠는지, 다시는 그런 날을 맞이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 서로 그날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을 정도다.
패닝의 친구들은 세대가 다양하다. 일하면서 만났기 때문이다. 커스틴 던스트와도 끈끈하고 가끔 마이크 밀스 감독과 저녁을 먹는다. 또 놀라울 정도로 많은 시간을 80세의 브루스 던과 통화를 하며 보낸다. 학교 친구들에게도 많이 기대는데(그들의 부모님이 영화 산업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엘르가 학교를 빠져도 친구들은 잘 이해한다), 친구들이 대학에 가느라 다 떠나서 요즘 걱정이 되긴 한다. 그녀는 지금 싱글이지만, 정신없이 사랑에 빠지는 상상을 하며 멍 때리는 경우가 많다. “저는 정말 로맨틱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러고는 내가 못 들었을까 봐 걱정하는 것처럼 팔을 앞으로 쭉 펴고 소리쳤다. “슈퍼로맨틱!”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학교 밖에서 사람을 어떻게 만나는지(특히 나와 맞는 사람을 어떻게 만나는지) 잘 모른다.
“운명이 찾아올 때 저는 카페에 앉아 있을까요? 위에서 스포트라이트가 비출까요? 그런 사람들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자연스럽게 누구를 만나는 마법 같은 일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가족을 이루고 싶지만, 1998년생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다. “아직 세상의 고통을 배우지 않은 나이죠. 지금으로선 시간의 흐름을 천천히 따라가고 싶어요.” 그녀는 잠깐 생각하더니 덧붙였다. “우리는 아직 ‘인간’이 아니에요.”
패닝과 앉아서 디저트를 두 접시나 해치웠더니, 나는 매우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우리는 소화를 시킬 켬 시내를 걷기로 했다. 맑고 따뜻한 날이었고, 패닝은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옷을 입었다. 사랑스럽고 풍성한 화이트 오프 숄더 드레스에 샤넬 샌들을 신고, 로샤스의 화이트 빅 백을 들었다. 햇빛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파랑과 분홍이 섞인 샤넬 스웨터를 어깨에 걸쳤다. 햇빛을 막으려는 거였다(엘르가 하지 않는 것 추가: 태닝). 우리는 코스튬 가발 가게에 갔고 그녀는 딱 맞는 스타일을 골랐다. 빈티지 숍에도 갔다. <매혹당한 사람들>에서 볼 법한 의상이 몇 벌 있었다. 파스텔 컬러의 긴 플로럴 드레스가.
패닝은 최근 작품 세 개를 연달아서 여성 감독들과 촬영했다. <매혹당한 사람들>에서 함께한 코폴라에 이어서, 조지아의 사바나라는 도시에 가서 범죄 스릴러 영화 <갤버스턴>을 멜라니 로랑 감독과 찍었고, 곧 뉴욕주 북부로 가서 리드 모라노 감독의 새 영화 <I Think We’re Alone Now>를 찍을 예정이다. (“저랑 피터 딘클리지만 나온다고 보시면 돼요. 그가 지구에 남은 유일한 인간이었는데, 제가 나타나죠.”) 현재는 <틴 스피릿>이라는 영화를 위해 보컬 레슨을 받고 있다. 아메리칸 아이돌 같은 서바이벌 대회를 다루는 영화로 <라라랜드> 제작 팀이 주도한다. 엘르는 “분명한 건, 매우 힘든 도전이 될 거라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패닝이 꿈꾸고 있는 진짜 큰 도전은 감독이 되는 거다. “정말로, 정말로 하고 싶어요. 배우는 다른 사람의 비전을 탐험하는 거거든요. 제가 그 비전을 직접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네온 데몬>의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이 자신의 꿈을 지지해줬다고 말했다. 엘르와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그녀가 디렉팅한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집중을 잘하고, 똑 부러지며, 자신감 있고, 당장 실천하고 싶은 비전으로 가득했다. “어렵다는 거 알아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할 거고요. 엄청난 도전이겠지만, 꼭 하고 싶어요.”
- 글
- NATHAN HELLER
- 포토그래퍼
- ANNIE LEIBOVITZ
- 헤어 스타일리스트
- 줄 리앙 디스(Julien d’ys for Julien d’ys)
- 메이크업 아티스트
- 로렌 파 슨스( Lauren Pars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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