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inct of Painting
배우 박신양이 화가로서 첫 전시를 앞두고 있다. 3년 전부터 그린 작품이 100여 점을 넘겼다. 그림을 배운 적 없고, 매 순간 고통이지만 평생 그릴 생각이다. 선입견 따윈 이미 익숙하니 괜찮다고 했다.
오늘 피나 바우쉬를 그린 작품 앞에 섰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림이라고 들었다. 화가 박신양의 포트폴리오에도 인물 작품이 많았다.
(한 5분 정도 고민한 뒤) 생각 할 시간이 필요했으니 양해 부탁한다. 처음엔 당나귀를 그렸다. 짐을 지려고 태어난 인생 같아 안쓰러웠고, 내가 투영됐다. 내 짐이 특별히 무겁거나 대단하기보다는, 세상의 모든 짐을 생각하게 됐다. 그 뒤로 사람의 얼굴, 그가 느끼는 감정에 관심이 가기 시작하더라. 음… 연기를 통해서도 표현하지만, 어느 정도 폭이 정해져 있다. 게다가 영화와 드라마는 대중을 고려해야 한다. 내 식대로, 원하는 때에 내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자연스레 누군가의 얼굴이 그리고 싶어졌고, 그중에 피나 바우쉬가 있었다. 모두 알다시피 그는 움직임에 있어서 아무도 못 이룬 바를 이뤄낸 혁명적인 예술가다. 그가 창조한 무용 작품도 대단하지만, 인생도 대단하다. 어떻게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것을 설득하고 원하는 바를 이뤘을까? 그 근력, 인내, 끈기, 지구력…
주로 예술가의 포트레이트를 그리는가?
평생 한 가지를 추구하고, 그것에 헌신한 사람들에 관심과 연민이 간다. 얼마나 모질고 힘든 인생일까 하고.
그림의 색감이 굉장히 강렬하고 터치가 거침없다. 이 화풍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림을 한 번도 배워본 적 없어서 뭐라 설명할지 모르겠다. 그냥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그렸다.
왜 그림을 배우지 않았는가?
초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었다. 이게 그림이냐고. 그 후에 그림 가까이에도 가지 않았다. 반공 포스터를 그려본 적도 없다. 미술 시간이 정말 싫었다.
그럼 언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나?
3년 전쯤이다. 러시아 유학 시절 혼자서 박물관에 갔다가 니콜라스 레리히(Nicholas Roerich)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 순간 얼어붙었다. 세상에 그림과 나만 존재하는 듯한 경이로운 경험을 했고 그 사적인 충격으로 그림이, 미술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생각했다. ‘예술이 무엇인가, 예술은 사람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나를 짓누르던 10년이 넘는 의심의 시간은 희망으로 바뀌었다. 그 후로 그림과 그림 그리는 일에 대한 설렘을 느꼈지만 행동하기까지는 다시 많은 시간이 흘렀다.
3년 전 처음 그린 대상은 무엇인가?
러시아 친구의 얼굴, 에베레스트산, 피나 바우쉬 무용의 한 장면. 러시아 친구는 너무 그리워서 그렸다. 예술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던 친구들, 예술이라는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던 시간, 예술을 추구하면서 눈치 볼 필요가 없던 그때가. 나는 그런 곳에서 살았고, 그런 사고를 해왔는데, 한국에 와서 거부당했다. 정상적인 대화 주제가 아니랄까. 지금은 그런 대화에 대한 갈증을 그림으로 조금씩 풀어가는 중이다.
이번 전시 <평화의 섬 제주, 아트의 섬이 되다>를 통해 공식적으로 작품을 선보인다. 어떻게 공개를 결심했나?
별로 결심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전시를 권했다.
그래도 최종적으로 결정한 이유가 있지 않겠나.
진솔하고 솔직한 대화를 갈구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삶에서 굉장히 소중한 거다. 작품 공개를 통해 조금은 소통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거 같다.
어떤 예술가는 진정한 예술이란 나를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타인과 소통하려 하는 것이라 했다.
연기를 할 때도 내 표현보다는 보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 보는 이의 시선을 자극하기보단 내면을 존중한단 얘기다. 대학교 1학년이 연기를 배울 때는 ‘우리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해’ 치부할 수 있다. 우리가 좋으면 좋은 거라고. 그보단 보는 이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 연기를 하면서 충분히 알았던 부분이고, 그림도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린 지 얼마 안 된 사람으로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자신의 그림이 공개되면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덜덜 떨린다. 내가 다른 작가의 그림을 볼 때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거짓말을 하는지, 뭔가를 감추려하는지 보이지 않나. 내 작품도 그럴 거라니 긴장된다. 발가벗겨진다는 표현이 맞다. 그저 솔직해지는 수밖에 없다. 내게 좋은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이 있지만 그대로 드러낼 각오가 돼 있다. 사실 연기도 이와 비슷하다. 약간 감춰지기도 하지만.
많은 연예인이 그림을 그린다. 선입견이 두렵지 않나?
어쩔 수 없다. ‘배우가 아닙니다’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어려서부터 그림을 전공했으면 좋았겠지만, 아까 말한 초등학교 때 일로 힘들었다. 유학을 가고, 돌아와 영화를 찍고, 대학을 나오고, 긴 시간 동안 무언가 대답을 얻기 위해 괴로워했다. 아마 나는 그림을 시작하기엔 심각한 나이일 거다. 그게 무슨 상관이겠나. 많은 배우와 가수가 그림을 그린다 해도 무슨 상관인가. 지금 내겐 이걸 대신할 게 없다. 연기할 때도 겪은 문제다. 특정 무언가로 규정되는 게 얼마나 옥죄는 느낌인지 이미 안다. 그런 점에서 편하다. 수십년 동안 겪어온 문제니까.
평생 그림을 그릴 작정인가?
그럴 거 같다. 힘든 시간, 고통을 감수할 생각이다.
작품 그릴 때 식음을 전폐하는 스타일이라고 들었다.
작업실에선 잘 먹지 못한다. 친구들을 불러서 먹는 날로 정하지 않는 한.
요즘엔 거의 작업실에만 있다고 봐도 되나?
운동이나 산책, 드라마 미팅 외에는 계속 이곳에 있다. 1~2년 만에 그림이 100점 정도 되다 보니 최근 창고를 구했다. 큰 그림을 멀리 떨어져서 보고 싶어서 조만간 서울을 벗어날 것도 같다.
벌써 100여 점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 해야 할 이야기, 거기에 적합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배우의 노력은 지난하고, 그래서 배우는 외롭다. 그림 그리는 일은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거라 실은 두렵고 막막하다. 물론 아주 흥미로운 것도 사실이다. 내가 흔히 보는 미술책에 나오는 사람들, 미술사에 등장하는 익숙한 이름들, 미치거나 미치기 일보 직전인 ‘창조’에 대한 그들의 평생에 걸친 노력에 대해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
본인 그림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보는 사람은 어떤 느낌이 들까를 생각한다. 그래서 주변에 많이 물어본다. 내가 그릴 때의 느낌과 비슷할 땐 굉장히 기쁘고, 아닐 때는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누군가가 다른 느낌을 받는다면 그것이 맞는 것이다.
- 에디터
- 김나랑
- 포토그래퍼
- CHUN HIM CHAN
- 스타일리스트
- 임혜린
- 헤어 스타일리스트
- 유 미(까라디)
- 메이크업 아티스트
- 임지현(아하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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