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 Star
슈퍼스타 권지용과 슈퍼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쇼장에서 절정을 이룬 슈퍼 패션 위크!
파리 패션 위크의 마지막 날 아침 8시, 생토노레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로비에 도착한 <보그> 팀. “우리 호텔 최고의 보안 팀과 매니저가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호텔 커뮤니케이션 디렉터의 메시지다. 우리는 2시간 후, 이곳에 묵은 초특급 슈퍼스타와 초특급 슈퍼 디자이너의 쇼장으로 동행한다. “촬영 팀 들어갑니다!” 삼엄한 보안 요원 사이를 지나 들어선 4층 객실. 희뿌연 담배 연기 사이로 인사를 전하는 새빨간 머리칼의 미소년. 슈퍼스타, 권지용이다. 지난 6월부터 전 세계 29개 도시에서 솔로 투어 <Act III, M.O.T.T.E>를 순회 중인 바로 그 스타. 지드래곤이 서른 즈음에 공개한 솔로 앨범명은 <권지용>이다. 투어명처럼 자신의 모태로 돌아간 그는 대중 앞에 처음으로 ‘권지용’이라는 본명을 드러냈다. 긴 투어 일정 사이 머문 정거장 파리에서, 그것도 (지극히 사적인) 그의 방에서 시작된 첫 랑데부다.
<보그>와 지드래곤이 아닌, ‘권지용’과의 랑데부는 이번이 처음. 우리가 동행할 목적지는 그랑 팔레, 슈퍼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샤넬 2018 S/S 컬렉션 현장이다. 객실 문 앞부터 줄지어 놓인 큼직한 캐리어와 짐 가방, 소품 박스로 가득 찬 방 안은 매일 다른 도시에서 눈뜨는 그의 혹독한 스케줄을 실감케 한다. 이른 아침인 만큼 그의 컨디션을 우려했기에 준비 장면은 애초에 계획에서 빼뒀다(다시 말해 우린 어떤 장면도 ‘연출’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슈퍼스타는 거리낌 없이 우리를 일찌감치 자기 방으로 초대했다. “네일 손질이 이제 막 끝났어요.” 스마트폰을 쥔 권지용의 손끝은 블랙과 레드 컬러 매니큐어가 아무렇게나 뒤섞여 있다. 새빨간 머리칼과 오늘 입은 블랙 스웨터의 색 조합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메이크업 중 화장 솜에 네일 리무버를 묻혀 손톱 군데군데를 일부러 지우는 모습마저 지극히 권지용답다. 침대 발치에 놓인 상자 속 샤넬 매니큐어가 주인공이다. 상자엔 약 200여 개의 패브릭 마커와 글라스 페인트, 매니큐어가 담겨 있다. 옷핀과 마스킹 테이프, 리본과 단추, 패치도 한가득. 이걸 전부, 항상 들고 다닌다니!
오늘 신은 닥터 마틴 슈즈도 마찬가지다. 컬러풀한 그래피티와 권지용의 또 다른 이름 ‘PEACEMINUSONE’도 그렸고, 데이지꽃 패치와 빨간 단추, 리본도 달았다. 그야말로 패션 아이템을 캔버스 삼은 권지용의 하나뿐인 작품, (첫 번째 솔로 앨범명처럼) ‘One of a Kind’다. 화장대 의자에서 일어난 그는 목걸이를 체인 삼아 매단 허리춤에 빨간 타이를 묶곤 액세서리 상자에서 반지를 몇 번씩 골라 빼고 다시 끼었다. (권지용의 그래피티가 그려진 샤넬 가브리엘 백을 멘) 스타일리스트 지은이 옷장 문을 열자 샤넬 로고가 박힌 드레스 커버가 나타났다. 어제 칼 라거펠트가 권지용에게 보내온 2017 F/W 컬렉션이다. “제겐 여성복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샤넬은 유니섹스 의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니, ‘옷’이라기보단 ‘샤넬’을 입는다는 기분이죠.”
블랙 프린트 실크 셔츠와 샤넬 브로치를 단 부클레 스웨터를 고르고(역시 자신의 그래피티로 완성한 단 하나뿐인) 샤넬 ‘걸(Girl)’ 백을 멘 후 거울 앞에 선 권지용. 과연 샤넬의 뮤즈인 만큼, 칼 라거펠트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아티스트다. 칼은 “창의적인 것과 실용적인 것을 절반씩 섞어야 합니다. 100% 창의적인 것만 만들어내는 건 샤넬의 정신에 위배되거든요”라고 말하지 않았나. “블랙 벨트가 나을 것 같아.” 좀 전에 묶은 빨간색 타이를 풀고 벨트를 찬 후 몇 번을 거울 앞을 오가던 그가 나갈 채비를 서두른다. 춤을 추듯 호텔 로비를 걸어 나온 그는 늘 그렇듯 리무진 조수석에 올라탄다.
10시 20분, 쇼 시작 10분 전 그랑 팔레에 도착.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새빨간 머리칼을 보고 권지용을 직감한 팬들의 환호가 쇼장 앞을 뒤흔들고 있다. 입구로 향하던 권지용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깜짝 놀란 사건(SNS를 뒤집은 바로 그 장면이다)! 수백여 명의 팬들이 들어찬 가드 라인 뒤에서 “초대도 안 받았는데 어떻게 가요”라던 ‘프로 불참러’ 조세호가 권지용의 이름을 애타게 부른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짧은 랑데부를 뒤로하고 칼의 세계로 입장! 매 시즌 우주선, 데이터 센터, 공항, 브라세리, 슈퍼마켓으로 변신했던 이곳은 이번 시즌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프런트 로에 다가설수록 천장까지 치솟은 웅장한 바위 절벽에서 폭포수가 쏟아지는 진풍경이 위용을 드러냈다. 물살이 튀는 런웨이 아래론 실제로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남프랑스의 협곡, 조르주 뒤 베르동을 통째로 옮겨올 줄이야! 이 대자연이 내일이면 모두 철거될 세트란 사실이 믿기질 않는다.
놀라움도 잠시, 권지용이 프런트 로에 앉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쇼가 시작됐다. 폭포 사이로 투명한 PVC 우비와 버킷 햇, 판초, 글러브와 장화를 걸친 채 쏟아진 마드모아젤 퍼레이드. “노래 ‘What the Water Gave Me’가 말하듯, 제게 물은 신선한 영감의 원천입니다. 물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죠.” 칼 라거펠트처럼 권지용도 물 ‘소리’에 대한 첫인상을 새겼다. “쇼장에 들어서자마자 들린 물소리가 너무 신선했어요. 거기에 쇼 음악과 풀과 물 내음까지 모든 게 완벽한 하나였죠.” 신디 크로포드, 캐롤린 드 메그레, 이네스드 프레상주 등 해외 슈퍼스타들과 함께한 권지용은 쇼가 끝난 직후 가장 오래, 가장 많은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샤넬의 오피셜 인스타그램에 소개된 게스트 영상에서도 주인공에 올랐음은 물론이다. “정말 완벽해요. 이건 작품이에요.” 마주친 스타와 기자들도 그가 손수 그린 그래피티를 향해 저마다 놀라움을 쏟아냈다.
“드디어 큰 가방이 등장했어!” 백스테이지로 향하던 중 쇼를 되새기며 그가 말한다. 쇼에 등장한 샌드백 모양 백을 인상 깊게 본 듯하다. “손등과 팔뚝에 끼운 작은 파우치도 인상 깊었어요.” 최근 리얼웨이를 강타한 벨트 백의 응용 버전인 핸디 파우치다. 아마 ‘액세서리’만이 아닌 오직 자신만의 아트워크를 구현할 ‘캔버스’로 바라봤을 듯하다. 머잖아 그는 이 가방들을 또 전례 없던 방식으로 리폼하고 새롭게 연출해낼 게 분명하고, 거리에선 유행을 불러올 것이다.
“샤넬 계곡은 완전한 여름이군요.” 권지용이 두툼한 부클레 스웨터를 벗고, 프린트 셔츠만 걸친 채 선글라스도 바꿔 끼우고 쇼장 밖으로 나섰다. 여태껏 문 앞을 지키며 그를 기다린 팬들을 향해 장난기 어린 모델 포즈로 화답하고 돌아서서 스태프들에게 외친다. “김치찌개 먹으러 가자!” 파리 정거장에서 사흘을 보낸 후, 대만 타이베이행에 오른 권지용은 그 목적지를 끝으로 대단원의 솔로 월드 투어도 마쳤다. 하지만 권지용의 무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36번의 콘서트와 무대 뒤 일상이 고스란히 담긴 <Act III, M.O.T.T.E> 비하인드 신 필름도 우리를 찾아올 예정이다. 칼의 기성복 쇼가 끝나면 또 전례 없는 곳에서 펼쳐질 공방, 프리폴, 꾸뛰르 쇼가 우리를 기다리듯!
- 에디터
- 홍국화
- 포토그래퍼
- HWANG HYEJEONG
- 스타일리스트
- 지은
- 헤어 스타일리스트
- 김태현(@Mizangwon by Taehyun)
- 메이크업 아티스트
- 김윤경(@YG)
- PLACE
- 만다린 오리엔탈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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