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빠진 생선
고기가 들어 있지 않은 고기에 이어, 생선이 들어 있지 않은 생선이 식탁에 오른다. 미각을 충족시켜주진 않지만 존재 의미는 대왕고래보다 거대하다.
잡지기자 중에는 채식주의자가 많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덕분이다. 누군가는 모란시장에 취재 갔다가 철창에 갇힌 개를 보고, 누군가는 산 채로 목이 잘리는 소 영상을 보고, 또 누군가는 광우병 사태가 터졌을 때 수백만 마리 동물이 살처분되는 모습을 보고 시작했다. 그리고 책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가 출간되었을 때 추가적으로 두 명이 고기를 끊었다. 좀더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육고기만 먹지 않는 ‘페스코’의 길로 들어섰다. 이와 같은 결심을 했을 때 처음에는 ‘뭘 먹고살아야 하나’ 근심이 깊었지만 곧 우리는 알게 됐다. 세상에는 고기 말고도 먹을 게 흘러넘쳤다. 바다는 넓고 잡아먹을 수 있는 해산물은 무궁무진했다. 봄에는 머리에 쌀알이 가득 찬 주꾸미를 먹으러 갔고 여름이면 민어회를 격파하러 갔으며 가을에는 팔딱거리는 대하를 잡고 손으로 머리를 똑똑 따서 먹었다. 그리고 “고기를 안 먹는데 왜 살은 안빠질까” 자조 섞인 한탄을 뱉었다.
해산물의 선택지가 다양한 덕분에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산다는 건 미국이나 유럽보다 덜 괴롭다. 덕분에 미국에서 육즙이 뚝뚝 흐르는 듯한 채식 버거를 구현해낼 때까지도 우리는 ‘한식’을 충실히 먹으며 동물 복지에 일조하고 있다고 자위했다. 그러나 환경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바다가 마르지 않는 식량 창고가 될 수 없음을 경고해왔다. 70~80년대부터 어획량은 현저히 줄기 시작했고, 멸종위기종으로 선정되는 해양 생물의 숫자는 해마다 엄청난 속도로 늘고 있으며, 환경오염으로 중금속과 미세 플라스틱이 생선의 몸속에 쌓인 지 오래다. 해양 생물은 우리와 살을 부대끼며 귀여운 표정을 짓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냉혈동물이기에, 그리고 수백 킬로 떨어진 바다에서 살기 때문에 우리는 무신경했거나 애써 외면해왔을 뿐이다. 하지만 “1kg의 고기를 얻기 위해 9kg의 곡물 사료를 먹여야 하는 축산 농장과 0.5kg의 고기를 얻기 위해 1.5kg의 생선을 사료로 먹여야 하는 연어 양식은 너무나 유사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명확히 정리한 작가 폴 그린버그의 말처럼 땅과 바다라는 장소의 차이만 있을 뿐 농업과 어업은 동일한 악순환 구조를 지니는 게 현실이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생선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역시 동료 잡지기자의 제보 덕분이었다. 수년 전부터 채식을 실천하고 있던 그녀는 인도네시아 발리에 머물며 다이빙을 시작한 후 해양 생물에게 전에 없던 감정이 생겼다. “어류까지 안 먹으면 뭘먹을까 싶어서 ‘좀 봐줘’ 싶은 마음이었는데 다이빙을 하면서 보니 바다 동물도 각자 성격이 다르고 감정이 있고 호기심도 있더라고. 물속에서 만났을 때 바로 도망가면 되는데 괜히 옆에서 몇 바퀴 헤엄을 치고 가기도 하고 가오리 같은 애들은 ‘또 왔어?’ 하는 느낌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해산물도 못 먹겠더라고.” 다이빙하며 피부로 직접 느끼는 환경오염은 말할 것도 없었다. 결국 우유와 달걀까지만 먹는 ‘락토 오보’ 채식주의자로 다시 한번 노선을 변경했다. 그녀가 알려준 채식주의자를 위한 생선은 붕어가 들어 있지 않은 붕어빵처럼 ‘Vegan Fish’, ‘Fish-free Tuna’ , ‘Fishless Tuna’ 같은 이름을 달고 있었다. 식물성 단백질로 만든 콩고기와 유사한 형태로 쉽게 말해 식물성 재료로 만든 ‘무늬만 생선’이다. 식물성 재료로 세상에 만들지 못할 음식이 뭐가 있냐고 되묻는 듯 생선은 물론 새우, 관자, 캐비아까지 나온 상태다.(물론 맛을 얘기하기엔 이르다. 당신과 내가 모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몇 가지 소개하자면, 소피스 키친(Sophie’s Kitchen)은 비건 해산물의 선구자 같은 브랜드로 참치는 물론 랍스터 맥 앤 치즈, 시푸드 잠발라야, 크랩 케이크, 훈제 연어 같은 간편 냉동식품을 선보이고 있다. 놀랍게도 콩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며 곤약을 사용해 해산물의 쫄깃한 질감을 만들어낸다. 출시 예정 제품은 글레이즈 연어 베이컨, 파스트라미 육포다. 식물성 단백질을 혼합하기보다 채소 자체에 기술력을 더해 대체 해산물을 만들어낸 곳은 오션허거 푸드(Ocean Hugger Foods)다. 이들은 아히미(Ahimi)라는 토마토 스시를 필두로 초밥, 포케, 사시미 등을 내놓고 있다. 외관만 놓고 보면 기름기가 덜한 참치 속살 정도로 붉고 탐스러운 모습인데 오로지 토마토, 간장, 여과된 물, 설탕과 참기름으로만 만들었다. 설립자 제임스 코웰(James Corwell) 셰프는 도쿄 쓰키지 시장에서 참치로 가득 찬 축구장 두 개 크기의 창고를 보고 더 이상 바다가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는 확신을 했고 토마토 스시를 개발했다. 조만간 당근으로 연어를, 가지로 장어를 구현해낼 예정이다. 그리고 올해 초 보스턴 해산물 박람회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굿캐치(Good Catch)가 있다. 이들은 ‘이게 참치가 아니라니 믿을 수 없어!’라고 외칠 만한 ‘맛’을 내세우며 87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2019년 출시 예정이라 아직까지는 박람회 시식평만 존재할 뿐이지만 홈페이지에서 제품 성분을 살펴보면 병아리콩 가루, 해바라기 기름, 마늘 가루, 해초 추출물, 레몬 주스 등 모르는 성분이 없다. 마치 막걸리병의 라벨을 뒤집어 ‘쌀 100%’를 봤을 때 안도하게 되는 마음 같다고 할까. 이들 비건 해산물의 성분표는 시판 어묵 포장지 뒷면보다 훨씬 이해 가능하고 솔직 담백하다.
비건 해산물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건, 필요에 의한 대안 찾기이기도 하지만 생태계의 현재를 직시하는 행위다. 비건 해산물 업체는 환경 캠페인처럼 해양 생태계의 현재를 말한다. 뉴 웨이브(New Wave)는 연어, 참치 다음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해산물인 새우에 주목한다. 새우를 잡기 위해 다른 종의 씨까지 말려버리는 트롤링 그물의 사용 실태, 개발도상국의 새우 양식장에서 배출되는 항생제와 화학물질이 일으키는 주변 숲과 강의 오염, 이들 양식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탱글탱글한 흰다리새우보다 퍼석퍼석한 비건 새우를 선택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 굿캐치 인스타그램(@goodcatchfoods) 역시 자사 제품보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떠오르는 아름다운 바다 생물 사진으로 가득하다. 매너티가 생김새와 달리 완전 비건이라는 사실, 게가 협동력이 강한 생물이라는 사실 등이 친구의 이야기처럼 도란도란 적혀 있지만 동시에 그물에 칭칭 감긴 문어, 플라스틱에 고통받는 해마 사진이 함께 등장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탁월한 영업 전술이겠지만 어떤 환경 구호보다 가슴 깊이 잔상이 남는다.
지금쯤 당신은 과연 비건 해산물의 맛이 어떤지 궁금할 것이다. 정신 승리로 먹어야 할 맛일지, 실제로 혀도 만족스러워할 맛일지 말이다. 한국에서는 비건 해산물을 구하기 쉽지 않아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칼럼니스트 홍수경에게 시식을 부탁했다. 그녀는 일단 비건 해산물은 미국 내에서도 일상적이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육고기만큼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는 미국인 식성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실제로 미국 내 해산물 소비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참치 캔 옆에 비건 참치 캔이 진열되어 있을 정도로 분명한 선택지로 존재한다고 했다. 그녀는 비건 해산물 총 네 가지를 먹어보고 감상평을 보내주었는데 요약하자면 “튀긴 생선은 기대 이상이고, 나머지는 아직 맛을 논하기 어렵다”였다. 구체적인 품평기는 다음과 같다. “‘Gardein Golden Fishless Filets’가 가장 맛이 좋았어요. 1cm 두께의 생선 필레에 튀김옷을 입힌 모양이었는데 전자레인지에 해동한 다음 프라이팬에 익혀 먹었어요. 신기하게도 생선 향이 났고 신기할 정도로 부드러운 생선 살 맛이 났어요. 동태 같은 단단한 느낌이라기보다는 잘게 부서지는 연어 느낌. 튀김옷은 바삭했고 카레 향이 났어요. 진심으로 재구매 의사 있습니다. 반면 참치 통조림 ‘Loma Linda Fishless Tuna’는 물컹한 식감에 생선 맛과 향이 하나도 나지 않았어요. 옛날 옛적 인스턴트 라면에 들어 있던 고기인 척하는 정체불명의 단백질 덩어리 같달까요. 조개관자 통조림 ‘Loma Linda Vegetable Scallops’은 일단 하얀 덩어리가 눌린 채 들어 있어서 식욕이 떨어졌지요. 프라이팬에 익혀 먹어본 맛은 소시지와 어묵 사이에서 길을 잃은 듯한 밍밍함이었어요. 당당하게 MSG도 함유되어 있어서 의아했고요. ‘PBF Cavi-art’는 비건 캐비아라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는데, 생선알처럼 보였으나 냄새를 맡아보면 명백한 해조류였어요. 맛 역시 미역, 다시마 등 온갖 해조류가 다 떠오르는 맛이었습니다.”
굿캐치 창업자 크리스 커와 에릭 슈넬은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해산물은 이제 아예 수산자원을 바닷속에서 꺼내지 않는 것을 의미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지속 가능한 변화를 위해 과도기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싱가포르의 대체 해산물 섭취 캠페인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멸종 위험이 큰 타이거새우 대신 흰다리 새우를, 전갱이 대신 줄무늬고등어를 요리하자는 캠페인이다. 홍콩에서는 상어, 나폴레옹 피시, 해마를 먹지 않겠다는 서명 운동이 있었다. 비영리 국제기구인 해양관리협의회(MSC)가 친환경 방식으로 포획했음을 인증한 해산물만 소비하는 식당도 생겨나는 추세다. 해양 생물에 대한 관심은 이들에게 최소한의 고통을 주자는 ‘윤리적 포획’까지도 발전한다. 스위스, 독일 같은 몇몇 국가는 랍스터와 같은 갑각류도 고등 신경계를 가지고 있어 고통을 느낄 수 있으니 조리 전 반드시 기절시켜야 하며 전기 충격 등 제한적인 방법만 허용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접시 위에서도 생명력을 드러내야 대접을 받는 대한민국에서 비건 해산물이 얼마나 다른 세상의 이야기로 들릴지 잘 알고 있다.(우리나라 동물법을 찾아본 결과도 밝히고 싶다. 어류는 대통령령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정해져 있지만 식용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는 제외된다고 고지하고 있다) 바다가 텅텅 비어가는 사이 한국은 연간 1인당 78.5kg의 해산물을 소비해 전 세계에서 해산물 소비가 가장 많은 국가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비건 해산물의 맛에 만족할 가능성이 가장 낮은 국가 타이틀도 따라온 셈이다) 희생 없는 해산물이란 ‘튀긴 사시미’ 같은 얘기지만, 지금까지 세상의 혁명은 ‘나만이라도’가 모여 이뤄졌다. 머지않은 미래에 떡볶이를 시키며 생선 살 오뎅과 오뎅 맛 오뎅 같은 선택지가 있길 바라는 마음 정도라도 충분할 듯하다. 세상의 변화를 읽는 촉수가 발달한 동료 잡지기자는 추가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수 바다에 대거 방출 계획 있는 거 알지? 꼭 해산물을 먹어야 할까?”
-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Suzanne Sar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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