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의 노래
나는 오늘도 부르지. ‘Just Because I’m a Woman’.
2019 그래미 시상식에서 카디 비(Cardi B)는 여성 최초로 베스트 랩 앨범,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Kacey Musgraves)라는 여성 컨트리 가수는 올해의 앨범 부문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두아 리파(Dua Lipa), H.E.R. 등 제법 많은 여성 음악가가 여러 분야에서 상을 받았다. 후보 중 절대다수가 남자임을 고려하면 나름 의미 있는 수상이다. 시상식 역시 여성 음악가가 많이 채웠다. 앨리샤 키스(Alicia Keys)가 진행했으며,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부터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까지 등장해 자매애(Sisterhood)를 보여줬다.
여성 음악가의 기세가 거세진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여전히 음악 시장은 남성 중심이다. 당장 여성 음악가가 상을 받았다고 해도, 그 앨범을 함께 만든 스태프 중 절대다수는 남자다. 그래미 시상식이 음악 시장 전체를 대변하지 못하듯, 잠깐의 시상식에서 의미 있는 지점을 찾았다고 안심할 수 없다. 훌륭한 여성 음악가의 작품이 후보에 더 올라야 했다. 성별을 맞추자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여성 음악가의 작품이 현실적으로 조명 받기 힘들다는 의미다.
지금 희망은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의 행보다. 어느 매체에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걸 파워와 같은 메시지를 담지 못하며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뿐”이라는 겸손함의 표현이다. 그는 올해 시상식에서 퀴어 앤섬(Anthem, 성가)으로 여겨지는 곡 ‘Rainbow’를 불렀다. 여기에 비하인드가 있다. ‘오픈리 게이’인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셰인 맥애널리(Shane McAnally)는 지금까지 크리스마스 앨범을 제외한 케이시의 모든 앨범에 작곡가로 참여했다(‘Rainbow’도 그중 하나다). 또한 케이시는 커리어 초기부터 퀴어를 지지하며 새로운 아이콘(퀴어 공동체에서 지지와 사랑을 받는 예술가)으로 등극했다. 두 번째 앨범인 의 릴리스 파티는 아예 내슈빌의 게이 클럽에서 열었다. 케이시는 보수적인 컨트리 음악계에서 퀴어 친화적인 음악가로 성공을 거뒀다. 컨트리 음악의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이다.
케이시처럼 세상에 얽매이지 않는 자기만의 길, 주체로서의 여성을 노래하는 여성 뮤지션들이 있다. 카디 비는 스트립 클럽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말한다. 물론 그의 모든 언행이 페미니즘적인 것은 아니다. 연인 오프셋(Offset)과 섹스하는 모습을 SNS에 라이브로 공개하는가 하면, 동료 니키 미나즈(Nicki Minaj)를 공격해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카디 비는 늘 당당하다. 개인의 서사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가 하면, 욕망을 온전히 보여준다. 과거 여성이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추한 것처럼 여겨진 걸 생각하면 카디 비의 행보는 금기를 깨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행보에는 카디 비 이전에 니키 미나즈가 있었다. 2000년대 후반, 니키 미나즈의 커리어 초기에는 능동적 여성임을 자처하면서도, 기존 남성의 프레임에 갇혀 섹슈얼한 이미지로 움직였다. 하지만 지금은 여성 괴물을 자처하며 세상이 바라는 ‘여성스러움’을 깨고 음악 산업에서 느끼는 부당함을 거리낌 없이 말한다.
자신의 앨범이나 SNS에서 그치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이들도 있다. 아델(Adele)은 자신에 관한 외모 품평에 대해 “나는 잡지 모델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가 하면 수상 소감을 말하는 도중 자신의 멘트를 끊는 주최 측에 가운뎃손가락을 날렸다. 로드(Lorde)는 지난해 그래미의 가장 큰 화두였던 ‘Time’s Up’(#MeToo 운동의 성과로 결성된 성차별, 성폭력 등에 맞서도록 돕는 펀드이자 무브먼트 이름) 캠페인에 동참했다. 로드의 어머니는 “6년간 그래미 후보에 올랐던 899명의 후보 중 9%만 여성이었으며, 로드는 올해의 앨범 부문(2018년 당시)에 오른 유일한 여성 음악가임에도 무대가 없었다”는 <뉴욕 타임스> 기사를 인용했다. ‘뮤지케어 재단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돌리 파튼(Dolly Parton)은 1968년 ‘Just Because I’m a Woman’이라는 자작곡을 발표해 성녀/창녀 이분법을 비판하며, 사회에서 여성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말했다. 또 그가 발표한 ‘9 to 5’라는 곡은 일하는 여성의 ‘앤섬’이기도 했다. 최근 인터뷰에서도 “여성은 일한 만큼 동등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1960년대 흑인 여성으로서 시민권 운동과 여성 인권을 얘기했던 니나 시몬(Nina Simone), ‘나는 장난감이 아니니 전시하지 마’라는 메시지의 ‘You Don’t Own Me’를 발표한 레슬리 고어(Lesley Gore)가 있었다. 그들이 노래한 평등은 점점 더 다양하고 풍성해지고 있다. 2014년에는 본격적으로 음악 시장에 평등의 목소리가 화두가 됐다. 비욘세(Beyoncé)의 <Beyoncé>,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의 , 릴리 알렌(Lily Allen)의 등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앨범이 한 해에 한꺼번에 등장했다. 목소리는 다르지만 모두 여성의 해방과 평등을 노래했다. 자넬 모네(Janelle Monáe)도 빼놓을 수 없다. 흑인 여성 작가인 옥타비아 버틀러(Octavia Butler)가 선보인 아프로퓨처리즘을 차용하고, 단편영화 <오후의 그물>을 뮤직비디오에 인용해 여성의 억압을 얘기했다. 그는 영화 <히든 피겨스>와 <문라이트>를 통해서도 흑인 여성의 권리를 주장했고, 앨범 에서 자신의 불편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한국에서도 공연한 미츠키(Mitski)부터 인디 명가 레이블인 도미노 레코드(Domino Records)에서 선보인 안나 칼비(Anna Calvi)까지, 여성 평등을 얘기하는 음악은 인디펜던트 시장에서도 증가하고 있다. 미츠키의 는 미국에 사는 유색인종 여성으로서, 백인 남성의 이미지인 카우보이를 거론하며 원하는 것을 주체적으로 쟁취하자고 노래한다. 안나 칼비의 도 여성은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변하라고 말한다. 영국 공영방송이 그해의 신인을 선정하는 ‘Sound of 2019’에서 2위를 차지한 킹 프린세스(King Princess) 역시 ‘Pussy is God’이라는 곡으로 페미니즘을 주창한다.
시장 영역, 장르를 불문하고 평등을 이야기하는 여성 음악가가 늘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이들은 메시지뿐 아니라 높은 수준의 음악성으로 인정받고 있다. 치열하게 고민해 작품의 가치를 획득한 것이다. 세상엔 여전히 불편한 음악이 많다. 그러나 평등의 노래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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