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less
20년 동안 쉬지 않고 세 개 대형 브랜드의 수장을 맡아온 에디 슬리먼. 독특한 일관성으로 자신의 시대를 확립했다. 그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많다. 록, 흑백, 스키니, 젠더 유동성, 파리, 로스앤젤레스, 소년에 대한 예찬, 훌륭한 취향 등등. 디자이너이자 사진가이며 예언자인 에디 슬리먼은 끊임없이 대중에게 놀라움을 선사한다. 셀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발표한 두 번째 컬렉션은 자유를 누리는 부르주아와 화염처럼 타오르는 욕망을 표현했다. 현명함과 완고함을 고루 갖춘 그는 시끄러운 세상에서 희귀한 존재가 되기로 했다. 그런 인물의 말은 당연히 귀담아들을 수밖에 없다.
당신의 두 번째 셀린 컬렉션은 네오 부르주아 느낌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당신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는 ‘록 스타일’과 거리가 멀다. 이번 컬렉션에서 선보인 볼륨과 소재는 첫 컬렉션과 확연히 대조를 이룬다. 여성 이미지에 대한 변화가 느껴진다. 이번 패션쇼는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안겼으며, 쇼가 끝난 뒤 여러 의견도 오갔다. 당신에게 이번 컬렉션은 일종의 단절을 의미하나?
놈코어 패션과 로고 장식 스트리트 패션의 맥락에서 보면 네오 부르주아 파리지엔 스타일은 오히려 이정표를 완전히 벗어난 펑크족처럼 보일 것이다. 패션계는 맥락과 평형추 사이에서 돌아간다. 급진적인 것은 한 시대의 현재에서 공유되는 취향, 용인된 아이디어, 사회운동, 문화적 상징을 거역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번 컬렉션은 자유로우면서도 빈틈없는 부르주아 스타일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키스 리처즈와 아니타 팔렌버그가 그랬듯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록 스타일은 부르주아 스타일 옷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상류층 느낌과 사회적 ‘체면’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부르주아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는 나의 개인적인 스타일에 가벼운 변화를 주는 게임 같다. ‘단절’이라는 말은 패션계 맥락과의 단절로 보는 것이 더 알맞을 것 같다.
깔끔한 케이프, 새롭게 해석된 치마바지, 줄무늬가 들어간 테니스 유니폼, 체크 재킷, 색다른 트렌치 코트, 부드러운 빛깔의 컬러 등 이번 컬렉션에는 강렬한 고전주의 시리즈를 선보였다. 셀린의 결정적인 DNA는 고전주의라 생각하나?
20년간 내 작품을 극한으로 코드화하고자 강박적으로 구상하고 또 구상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오늘날 셀린에서 새로운 고전주의를 재창조한 것이다. 유행이 지난 스타일을 활용해 여성성과 남성성의 분리를 이뤄냈다. 치마바지도 이 분리 과정을 이루는 한 요소다. 특정 문화적 공간에 셀린을 다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여러 영상에서 셀린은 여성적인 파리지엔을 대표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셀린이 대표하는 젊은 프랑스 여성은 모두 잘 아는 여성일 뿐 아니라, 어쩌면 우리 모두가 애착을 지닌 여성이기도 하다. 나는 이것이 셀린의 근본적 특성이라 생각한다. 결국 셀린의 고전미는 장인의 작업, 매우 높은 품질, 프렌치 분위기에 있다. 셀린에는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영원한 무언가가 있다. 셀린의 무언가에는 내재된 가치가 있다.
당신은 매우 파리지엔적 태도와 정신을 구현해낸다. 파리지엔의 특징은 뭔가?
당신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파리지엔을 구현해내는 인물은 누구인가? 파리지엔의 가장 큰 특징은 정신에 있다. 목소리와 행동, 언어에서 나오는 자유가 지닌 모습, 세련미와 더불어 자연미 있는 모습은 부모를 거쳐 자식에게도 전달된다. 프랑스 영화는 언제나 내게 지표가 된다. 프랑스 영화는 과거에도 크나큰 영감을 주었고 지금도 그렇다. 파리지엔을 구현하는 뮤즈가 누군지 말하는 대신, 파리의 길거리가 늘 영감을 준다고 답하겠다. 파리의 거리는 세대를 거쳐 계승된다. 전 세계가 파리 거리의 스타일을 모방한다.
역사적 패션 하우스의 아트 디렉터가 수행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고, 활동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그에 대해 일반적 정의를 내릴 수는 없다. 각 패션 하우스는 고유의 미래와 역사,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로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시대다. 시대를 느끼고 예측하며 자신이 이끄는 패션 하우스가 그 시대와 어울리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셀린 로고에서 악상 테귀를 삭제하고 남성복과 여성복 컬렉션을 확실히 구분하는 등 셀린의 시각적 정체성을 재정립했다. 이제 이전에 셀린이 도전한 적 없는 향수 라인이나 꾸뛰르 론칭에 대해 논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당신이 ‘근본적인 것’이라 부르는 이것들을 조금씩 강조하기 위해서 말이다.
셀린은 대형 패션 하우스로서 활동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셀린 활동 구역을 변경하고 셀린이 지닌 가치를 더욱 폭넓게 표현하는 것은 필수 작업이었다. 남성복과 향수 론칭도 그러한 작업에 속한다. 자신의 안마당인 파리에 셀린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꾸뛰르 개념을 새롭게 도입해야 했다. 내가 말하는 ‘근본적인 것’은 원대하게 고전적이면서도 반복적으로 셀린의 특징을 설명하기에 알맞은 요소가 담긴 크리에이션이다.
당신의 첫 셀린 쇼 이후 나온 반응 중 가차 없는 비판도 있었다. 이러한 비판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그리고 2년째 셀린 아트 디렉터를 맡고 있는 지금 당신의 기분은 어떠한가? 비판으로부터 상처를 받았나?
쇼에서 선보인 180도 변화, 재정적 이슈, 이해관계가 얽힌 엄청난 갈등, 나를 둘러싼 너무나도 정치적인 맥락. 이 모든 것에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 자신을 감추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어떤 타협 없이 진실한 대화를 나누고, 셀린의 파리지엔다운 톤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나는 2012년 생로랑에서도 같은 시기를 겪었다. 결국 셀린의 전환기를 의미한 그 컬렉션을 둘러싸고 벌어진 예상 밖의 소동과 카오스는 셀린의 명성을 위한 축복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부르주아 스피릿의 귀환을 선보이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2012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비평가들은 그들이 의도하던 것과 정반대 효과를 일으켰다. 6개월 후, 모두 과거를 잊은 상태에서 모든 것이 재착륙했다. 내 기분에 대해 말하자면, 늘 내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여러 패션 하우스를 거치며 오랜 기간 쌓아온 커리어를 배경으로 말이다. 나는 내 의도를 일관성 있게 유지하면서 커리어를 쌓아왔다.
당신은 디올 옴므와 생로랑의 수장을 맡았고, 지금은 셀린 아트 디렉터다. 세 브랜드 모두 매우 특징적 정체성을 지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당신은 일관적 스타일을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당신만의 정체성이 매우 잘 드러나는 방향으로. 당신의 정체성은 해방 또는 자유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한데, 이는 당신이 맡은 브랜드의 족보에서 벗어난 특성이라 보는 사람들도 있다.
패션 하우스는 관례를 따르는 럭셔리 호텔이 아니다. 패션 하우스는 통합성을 지니고 구현된다. 디자이너를 스타일리스트 직원과 혼동하면 안 된다. 디자이너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개성, 약속, 스타일을 주어진 조건에 맞춰 자연스럽고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구현하는 사람이다. 관객이 잘 아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유한 영화감독에게는 스크립트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 패션 하우스의 족보는 이 스크립트 같다. 개인적 스타일이 없을 때, 존재감을 갖기 위해 전임자의 스타일적 정체성과 비전을 그대로 가로채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 사람들은 이를 초라하지만 재미있는 시도로 본다. 하지만 내가 아는 디자이너의 임무란 그런 것이 아니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그룹 회장은 5년 내로 셀린에서 매출액 20억~30억 유로를 달성할 것이라 밝혔다. 아르노 회장의 이러한 계획과 신념이 당신에게 압박으로 다가오나?
내가 아르노 회장과 공유하는 계획은 셀린의 입지를 다시 다져 오랫동안 그 입지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숫자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문화유산이라는 관점에서도 접근해야 한다. 셀린 고유의 가치를 창조하고 위상을 높여 장기적으로 문화 분야에서 셀린이 존재감을 갖도록 만들어야 한다. 내가 디올과 생로랑에서 한 것처럼. 압박은 20년 전부터 늘 일상에서 느껴왔다. 나는 중요한 것에 집중한다. 내게 중요한 것은 크리에이션이다.
컬렉션 크리에이션 과정은 어떤 식으로 구성하나?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늘 전혀 알지 못하는 것에서 영감을 받는다. 벼락 맞은 것처럼 영감을 받을 때가 있다. 폴라로이드 사진 속 소년이나 소녀처럼. 동시에 완벽한 의복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계속한다. 내가 만든 클래식한 작품을 갖고 수백, 수천 번 다시 작업한다. 매 시즌 말이다. 장인의 작업 형태다.
당신이 패션계에 들어선 지 20년이 넘었다. 패션계에서 어떠한 변화나 발전을 느끼나? 당신에게 가장 충격을 준 퇴보라면?
크리에이션에서 근본적 자유가 지니는 가치가 퇴보한다는 점은 두려워할 만하다. 패션계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이런 양상이 보인다. 급격한 변화는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패션이 과다 노출되면서 패션 크리에이션을 둘러싼 소통 방식이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다. 패션의 메시지가 최대치의 볼륨으로 증폭된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 Correctness)’ 것을 비극적일 정도로 선동하는 태도도 보인다. 절대 권력의 형태도 있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더 이상 가벼운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신보수주의 형태로 위장한 세태에 맞서 창조적으로 저항해야 한다.
동종 업계 다른 디자이너들의 작업에 호기심을 갖나? 경쟁자의 입장에서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이는 누구인가?
패션계에 대해 아는 바가 매우 적다. 패션보다 음악에 대해 더 편하게 말할 수 있다. 본의 아니게 패션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캘리포니아에 있다 보니 그런 것 같다.
- 글
- Olivier Lalanne
- 포토그래퍼
- Hedi Slim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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