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지난주 런던은 백남준으로 뜨거웠다. 그의 타계 13주기를 맞아 테이트모던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기 때문이다. 테이트모던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현대미술 공간이다. 연간 590만 명이 다녀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관 규모에 맞춰 전시 공간에는 전에 공개한 적 없는 작품도 한자리에 모았다. 초기 작곡부터 퍼포먼스 결과물, 설치 작품까지 200여 점을 망라한다. 미디어아트의 선구자로 누구보다 실험적이었던 그의 행보를 만날 수 있다.
백남준 회고전 오픈 이틀 뒤, 인천에서는 백남준 후예들의 작품을 만날 기회가 열렸다. 파라다이스문화재단(이사장 최윤정)에서 아트랩을 론칭한 것이다.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 내 스튜디오 파라다이스 전체가 전시장으로 변모했다. 권병준, 권하윤, 김윤철, 룹앤테일, 뭎, 양아치, 열혈예술청년단, 이장원, 클로잎, 팀보이드 등이 참여했다. 예술에 기계를 접목해 작품 세계를 넓히고 있는 작가들이다.
작가들은 ‘Future Minds’라는 주제 아래 작품을 선보인다. 권하윤의 ‘Peach Garden’은 네 명이 동시에 감상 가능한 VR 기술을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작품이다. 관객은 헤드셋을 착용하면 새로운 다섯 개의 세상으로 들어간다. 처음엔 낯설지만, 주변을 둘러보다 보면 걸음은 자연스럽게 옮겨진다. 지도는 없다. 내가 걷는 방향이 바로 길이다.
양아치의 ‘Paik/Abe Video Synthesizer, Willy-Nilly Version’은 개발자, 창작자, 기술자 등이 참여할 수 있는 오픈 소스 플랫폼이다. 작가가 백남준의 테크니션으로 활동한 이정성과 함께 만든 렌즈 앞에 서면 화면에 내 모습이 나타난다.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감상, 제작, 생산, 공급, 소비의 방식을 아우른다.
‘오묘한 진리의 숲 4’는 권병준의 작품이다. 위치 인식 시스템(LPS)을 적용해 만들었다. 헤드폰을 쓴 관객은 특정 장소에서 특정 노래를 듣는다. 작품 속 사운드는 충청남도 홍성에서 채록한 다문화가정 자장가다. 한국의 농촌으로 시집온 여인이 부르는 고향의 노래다. 그 노래가 속해 있는 장소는 어디일지 생각하게 만든다.
백남준은 자신이 속한 시대를 부단히 읽어내 미래를 예측했다. 그리고 그 예측을 당시 가장 진보한 기계인 모니터 속에 담았다. 그는 유선전화만 있던 시절, 그것으로부터 발전한 정보 공유의 장을 상상했다. 그 상상은 1990년대에 들어 인터넷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실현됐다. 또한 언젠가 미래에는 모두 각자의 손안에 TV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침대에 누워 아이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내 모습을 들킨 것만 같다.
파라다이스 아트랩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을 떠올린다. VR, 프로젝션 매핑, 모션 캡처, 위치 인식 시스템 등을 사용해 제작한 것들이다. 언젠가는 이들의 작품도 백남준처럼 현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VR로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걷고, 모션 캡처로 하루의 일기를 쓰는 나날의 모습. 백남준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데 채 20년이 걸리지 않았듯 머지않아 벌어질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예술은 눈앞에 보이는 것의 묘사를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매체가 된 것이 분명하다.
- 에디터
- 김미진
- 글
- 김한들 큐레이터(국민대학교 겸임교수)
- 포토그래퍼
-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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