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 보아
20주년을 맞은 ‘BoA’. 여성 사진가 2인이 기록한 축하의 두 얼굴.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을 준비 중이죠. ‘20주년’이란 수식 때문에 여타 앨범과 차별화한 점이 있나요? 20주년이라니! 저뿐 아니라 회사 관계 부서의 직원들도 부담을 꽤 느껴요. 솔직히 20주년이라 특별한 무언가를 담고 싶기보다, 매 앨범이 그렇듯 좋은 노래가 우선이에요. 현재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담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그래야 가장 20주년다운 앨범이 될 테니까요.
아카이브를 정리하기보다 현재의 보아를 보여주고 싶군요. 20년을 활동한 아티스트가 지금 하고 싶은 음악을 앨범에 담는다! 그게 가장 20주년다워요.
지금 보아가 하고 싶은 음악은 뭔가요? 코로나19 때문인지 일단 굉장히 춤추고 싶어요(웃음). 애써 어려 보이려 하거나 억지로 하면 멋지지 않아요. 제가 잘할 수 있는 것, 그게 뭔지 찾는 중이에요.
“하고 싶은 음악을 해야 한다”는 믿음의 출처가 궁금합니다. 일본 진출 초기, 고전하다 이럴 바에 원하는 음악을 하자며 냈던 ‘Listen to My Heart’가 성공했죠. 그 경험이 이어진 걸까요? 여러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일을 했을 때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고집을 부려 원하는 길로 가면 잘됐고. 남의 선택으로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하면 속상하더라고요. 이럴 바엔 내 선택을 따르고 최선을 다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감내하고 싶어요. 우선 아티스트가 만족하는 음악이어야 대중에게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어요.
‘Our Beloved BoA’ 프로젝트도 시작합니다. 엑소 백현, 레드벨벳, 볼빨간사춘기, 갈란트 등이 보아의 ‘Only One’, ‘아틀란티스 소녀’ 등을 재해석해 부르죠. 헌정하던 입장에서 받는 입장이 되니 감동이에요. 그들과 나이 차이가 어마어마하지 않은데도 흔쾌히 참여해줬어요. 고마워요. 사실 제 노래는 리메이크를 거의 허용하지 않았어요. 타 가수가 제 노래를 불러 음원으로 나오기는 처음이나 다름없죠. 그렇기에 다른 이의 목소리로 불리는 제 노래가 더 기대돼요. 백현이 부른 ‘공중정원’을 먼저 들었는데 정말 매력적이에요. 다들 열심히 부르겠지만, 그 친구는 정말 최선을 다해줬구나, 진심이 느껴졌어요.
보아 2000년 데뷔곡 ‘ID;Peace B’ 뮤직비디오를 다시 봤어요. 당시 만 13세였죠. 요즘 제 옛날 영상이 꽤 올라와요. 지인이 제가 처음 일본 진출할 때 인터뷰한 영상도 보내줬어요. 말투와 웃는 모습이 지금이랑 똑같다고.
어릴 적 무대는 민망해서 보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20주년이 되면서 반강제로 관람했겠군요. 방송에서 과거 영상을 틀어줘서 봤는데 못 보겠더라고요. 제 옛날 무대와 노래 모두 돌아보지 않는 편이에요.
“옛 인터뷰나 무대 위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했죠. 그때의 보아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안쓰럽다는 의미가 제 모습이라기보다, 상황을 두고 한 말이에요. 어린 나이에 데뷔해 힘든 일을 겪으며 행동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그 상황이 안쓰럽죠. 만약에 그 시절의 보아를 만난다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하고 싶어요.
여유를 가지라는 의미인가요? 죽기 살기로까지 애쓰지 않기를 바라죠. 물론 노력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지만, 몸이 아프면서까지 자신을 몰아치지 않았으면 해요. 솔직한 마음이에요.
이런 조언을 어린 보아에게 해도 따르지 않을 것 같아요. 안 듣겠죠(웃음). 고집이 세서 자신이 믿는 바대로 노력하겠죠.
그랬기에 지금의 보아가 있어요. 악착같이 했기에 지금 제 모습이 된 것은 알아요. 과거를 부정하지 않죠. 어떤 일이든 이유, 노력, 결과가 연결된다고 여기니까요.
어릴 때 데뷔한 아티스트를 다루는 미디어의 방식 중 싫은 게 있어요. 20주년 기념으로 출연한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에서 교복을 입고 떡볶이를 먹으러 갔죠. 학창 시절의 추억을 쌓지 못해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이 지겹지 않나요? 인생에 여러 길이 있는데 누구나 학창 시절을 거쳐야 하는 것처럼 단정 짓죠.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키가 크지 않은 사람에게 덜 커서 힘들지 않느냐고 평생 묻는 것과 비슷해요. 저는 학창 시절을 가질 수 없는데 그것에 관해 반복해서 묻곤 해요. 모두가 학창 시절을 그렇게 열심히 보내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죠. 이해는 해요.
어떤 인생이든 각자 선택을 존중해야죠. 그 선택의 시간에 얼마나 최선이었느냐가 중요해요. 가끔 아직 35년밖에 살지 않았다는 생각에 놀라곤 해요. 데뷔 후 20년을 바쁘게 지내다 보니 마흔 중반은 된 것 같거든요.
시간의 밀도를 보면 그럴지도 모르죠. 데뷔 20년이 됐다는 사실도 안 믿겨요. 너무 빨리 지나갔거든요. 20주년을 여유 있게 맞이한다기보다 살다 보니 벌써 20주년이네, 이런 느낌에 가까워요.
인터뷰 전에 상대의 커리어를 살피고 오는데, 보아의 자료는 또래 아티스트보다 4~5배는 길어서 정리하기도, 읽는 시간도 꽤 걸렸어요. 데뷔하고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으니까요(웃음).
촬영 중 “30대가 되니까 훨씬 좋다”고 했어요. 어떤 면에서 그런가요? 20대는 어른이라는 착각 속에 살았다면 30대는 현실로 성인이 된 듯해요. 내 힘으로 당당히 누릴 것이 많아지죠. 여유도 있고 친구도 있고 경제력도 이전보다 나아지는데 신체는 아직 젊어요. 어른들께서 흔히 “가슴 떨릴 때 놀아야지, 다리 떨릴 때는 놀기 힘들다”란 말씀을 하시거든요. 아, 나도 가슴 떨릴 때 열심히 즐겨야지 싶어요. 하지만 30대는 너무 빨리 지나가요.
20년 동안 찾아온 변화를 묻자 “10대에는 시키는 거 열심히 하기 바빴고, 20대는 하고 싶은 걸 찾기 바빴고, 30대는 잘하는 걸 어떻게 더 잘하게 보일까 고민한다”고도 했어요. 10대에는 무작정 열심히 했어요. 20대가 되고선 성인이니까 이런저런 것을 즐기고 싶었는데, 막상 뭘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또 일을 열심히 했죠. 그때는 어른이 뭔지 배워가는 시기였어요. 30대는 다른 30대 여자들도 공감할 것 같아요. 일과 삶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죠. 주변에도 대학 졸업 후 사회인이 되고 직함도 생기고 월급도 늘고 삶을 즐기는 멋진 언니들이 많아요.
개인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진 것 같군요. 열심히 일한 만큼 잘 놀려고 해요.
주로 뭘 하며 쉬거나 놀죠? 골프를 즐기게 되면서 서울 외곽 맛집을 찾기도 하고, 가끔 친구끼리 술도 마셔요. 말하고 보면 대단히 크게 놀지도 않았군요. 꽤 건전한 편이에요(웃음).
무대 공포증이 있었어요. 2001년 일본 쇼케이스가 잘되지 않은 후 무대에 오르면 수명이 1년씩 줄어든 느낌이 들었다고도 했죠. 그 후 슬럼프, 위기 등이 있었으니 극복하는 노하우가 생겼을 것 같아요. 우리가 활용할 만한 게 있을까요? 감히 제가 어떤 조언을 드릴 수 있을까요. 힘든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은 무책임한 것 같아요. 낼 힘이 없는데 어떻게 더 애를 쓰라는 걸까요. 제가 그렇게 느꼈거든요. 번아웃처럼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에게 조언해달라는 요청을 가끔 받는데, 솔직히 어떤 말도 할 수 없어요. 개인마다 슬픔과 어려움이 다른데 내가 헤아릴 수 있을까요? 과연 그 사연을 한번 듣는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을까요? 무슨 말을 해줄지 몰라 오히려 힘내라는 말로 무마하는 건 아닌지 싶어요.
후배가 조언을 구하면 어떻게 대하는 편이죠? 일 면에서 해줄 얘기는 있어요. 같은 범주인 데다 시스템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또한 정답은 아니에요. 저는 솔로이기에 그룹 활동하는 친구들의 어려움은 헤아릴 수 없어요. 무조건 선배라고 다 알진 않잖아요.
보아 스스로는 일에서 겪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왔나요? 불만을 이성적으로 똑똑하게 얘기하려고 했어요.
10대인 데뷔 때부터 그랬나요? 내가 지금 왜 이런 상태인지 논리적으로 얘기하지 않으면 징징거림처럼 받아들일 거 같았어요. 사실, 저도 일하는 사람인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아이로 대하면서 무대에서는 완벽하기를 바라는 모순이 싫었어요. 내가 가수로서 활동하려면 어른과 이성적으로 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죠. 그래서 애늙은이라는 소리도 들었어요. 물론 어른들과 부딪치는 것이 벅찼죠.
음악 기획사가 현재 시스템을 구축하기 전부터 활동했어요. 그때를 돌아보면 어떤가요? 회사에 비가 새서 물을 푸던 기억이 나는군요(웃음). 그 시절이 나름 재미있었어요. 연습생들끼리 같이 열심히 연습하고, 버스 타고 다니며 맛있는 것도 사 먹던 시절이에요.
“평생 살면서 시도도 안 하고 포기한 적 없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시도할 때마다 실패의 두려움이 있을 텐데, 특히 연예인은 그것이 공개되기 마련이죠. 제가 말하는 시도는 결과물이 나오기 전의 것이에요. 최종 노래와 춤은 당연히 아티스트를 포함해 유관 부서, 대중이 만족할 수준이어야죠. 준비 과정에서 내가 안 해본 스타일이라면 일단 시도하죠. 이를테면 ‘Woman’의 안무는 제가 거꾸로 뒤집혀 등장해요. 처음에 안무를 받고 과연 할 수 있을지 싶었어요. 하지만 도전했고 완성됐죠. 이제는 사람들이 놀라지도 않아요. “쟤는 왠지 했을 것 같아”라면서요(웃음).
자기 관리가 철저해요. 지키는 생활 습관이나 하고 있는 운동은 뭔가요? 규칙적으로 지내요. 아침 10시 이후에 일어나본 적이 거의 없어요. 밤새워 드라마를 찍고 아침 7시에 잘 때도 그때쯤이면 눈이 떠져요. 몸에 밴 습관이라는 게 무서워요.
무대에 오르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 재활 치료를 받고 있어요. 재활이라는 단어를 슬프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해요. 계속 일하려면 관리해야죠. 저뿐 아니라 많은 현대인이 손목도 아프고 허리도 뻐근하잖아요. 저 역시 오래 무대에 서면서 아픈 곳이 생기고, 제 일을 잘하기 위해 재활을 하죠. 웨이트는 어릴 때 꾸준히 했는데 이젠 힘들어요. 컴백 준비 기간에 웨이트를 하는 것처럼 체력을 쓰기도 하고요.
“시대의 요구에 맞았기 때문에 사랑받은 것 같다. 지금의 시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어요. 지금 시대에는 어떤 아티스트를 요구하는 것 같나요? 제가 한 말이지만, 지금 시대가 어떤 아티스트를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그 답을 알았다면 모두가 잘됐겠죠? (웃음) 이제는 각자가 듣고 싶은 음악을 골라 듣는 시대잖아요. 그렇기에 ‘모두에게 잘 보여야지’ 하는 생각보다 ‘나의 음악을 좋아하는 분이 더 열광할 수 있게 만들어야지’란 마음은 있어요. 타깃이 명확하죠. ‘그분께 이런 모습, 이런 음악 들려드리면 진짜 좋아하시겠다!’라고 생각하며 작업에 몰두해요.
요즘 음악 산업계에서 반가운 변화는 뭔가요? 반갑다는 표현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사례가 온라인 콘서트 같아요. ‘Beyond LIVE’의 비대면 콘서트도 그중 하나죠. 사실 공연은 한 공간에서 호흡하고 뛰어야 아티스트나 관객이나 살아 있음을 느끼잖아요. 하지만 비대면 시대가 오래갈 것이기에 온라인 공연을 통해서라도 무대에 서지 못하는 아티스트의 답답함, 공연을 보지 못하는 팬의 무료함을 해소하니 다행이죠. 특정 지역에서 열리는 공연에 갈 수 없는 팬은 공연에 수월하게 접근한다는 장점도 있고. 위기 상황에서 온라인 공연이 하나의 기회가 된 것 같아요.
그래도 직접적인 공연을 너무 원하죠? 물론이죠! 사실 공연 없이는 제 존재 의미를 많이 잃어요. 공연에서 에너지를 받거든요. 가끔 ‘와, 내가 무슨 정신으로 무대에 섰지’ 싶을 정도예요. 열광하는 관객을 보며 저도 서서히 미쳐가거든요.
데뷔 때는 가수를 5년쯤 할 줄 알았다고 말했어요. 이젠 얼마나 더 하고 싶나요? 당시 아이돌의 활동 기간이 보통 5년이라 그런 말을 했나 봐요. 활동 시기는 한계를 정해놓지 않았어요. 할 수 있으면 하고, 못하겠으면 물러나겠죠. ‘언제까지’라고 나를 압박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앞일은 모르기에 항상 말조심해야죠(웃음).
창간 128년 만에 최초로 26개국 <보그>가 9월호를 ‘희망’이라는 주제로 담아냅니다. 이 취지에 공감해 자작곡 ‘Little Bird’를 <보그 코리아>에 공개했어요.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날기를 바라지만 한 걸음 떼기도 힘든 내가, 넘어진 만큼 날아오르면 눈물의 의미를 알까’라는 내용은 우리의 얘기인 동시에 어린 보아가 생각났어요. 저를 두고 쓴 내용은 아니지만 다른 가수가 불러도 자신의 유년기를 떠올릴 수 있겠군요. 노래를 듣는 분들이 과거, 현재, 미래의 자신이 떠올랐으면 해요. 우리는 작게 태어나 몸집이 점점 커지잖아요. 마냥 크게 보이던 초등학교가 작아 보일 정도로.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세상은 너무 커요. 하늘은 계속 높아만 가고. 언제 내가 올라갈 수 있을까, 나는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살죠. 우리 모두 역경을 거쳐 꿈을 이뤘으면 해요. 우리에겐 지금 ‘희망’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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