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마주친 패셔니스타 여인들
그저 엄마, 아주머니, 할머니라고 지칭하는 건 무례한 태도처럼 여겨진다. 사진가 김동현이 서울의 유서 깊은 거리에서 마주친 이 여인들은 패션 서사를 지닌 채 큰 영감을 주는 패셔니스타들이니까.
사람들이 스트리트 패션 사진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한 장의 사진엔 여러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 순간 포착이라는 생생한 현장감 속에 꾸미지 않은 ‘리얼’부터 약간 어색해서 도리어 쿨한 분위기 등등. 세상을 떠난 <뉴욕 타임스> 파란 점퍼의 사나이 빌 커닝햄부터 시작해 10년 넘게 패션 진원지를 찾아 종군기자처럼 활약 중인 사토리얼리스트 스콧 슈만 등 패션 팬들에게 익숙한 이름이 지닌 영향력은 스트리트 패션 사진계에서만큼은 리처드 아베돈이나 스티븐 마이젤 못지않다. 팬데믹 이전을 돌이켜보자. 스타급 대우를 받는 몇몇 한국 사진가들을 4대 패션 위크 쇼장 앞에서 마주치는 일은 빈번하다. 이렇듯 지구의 수많은 스트리트를 점령한 사진가 중 김동현은 단연 ‘튀는’ 존재다. 인스타그램 아이디 ‘@mut_jpg’를 사용하는 그는 매주 서울의 유서 깊은 거리로 카메라를 들고 출동한다. ‘오래된 멋’을 포획하기 위해서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50년 넘게 아동복 장사를 하던 할머니 덕에 어린 시절부터 패션에 관심이 생겼어요.” 자신이 찍은 ‘오래된 멋’ 이 담긴 사진을 펼쳐놓고 김동현이 자기소개를 이어갔다. “군대에서는 스콧 슈만의 사토리얼리스트 홈페이지를 보고 너무 감명을 받아 그가 찍은 사진 중 제일 좋아하는 사진을 군 생활 내내 관물대 밑에 붙여놓고 동경했죠. 제대 후 동성로 닥터마틴 매장에서 일하면서도 윈도우 밖 멋진 사람들을 꾸준히 관찰했습니다.”
거리의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에 흥미를 느낀 후 김동현은 더 큰 세계에서 더 멋진 사람을 보고 싶어 무작정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저 여행을 기록하기 위해 자동 필름 카메라를 한 대 챙겼어요. 그리고 폴란드의 어느 도시에 머물 때였어요. 밤에 혼자 광장을 산책하는데, 빨간 코트에 와이드 팬츠를 입은 여성이 눈에 띄더군요.” 사진가는 ‘난생처음 느꼈다는’ 설레는 감정을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단순히 아름다운 이성을 봤을 때 느껴지는 감흥이기보다 동경 혹은 존경에 가까운 감정이었다고 그 순간를 회상한다. “용기를 내어 서툰 영어로 ‘Can I take a picture for you’라고 말을 건넸어요. 그 후 그 설렘을 이어가며 스트리트 사진을 꾸준히 찍어오고 있습니다.”
그의 뷰파인더에는 ‘노인’이나 ‘할머니’가 아닌 ‘멋진 어른’이 많이 저장된다. “멋진 어른이란 자신이 어떤 인물인지 이해하고, 좋아하는 것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해요. 그 수단 중 하나가 패션이죠. 제 기준에서 멋진 여성이란 분주한 일상에서 자기 스타일을 고민하고 결국 자기 것으로 만든 분이죠. 그런 어른들을 촬영합니다.”
5월호 ‘엄마’ 특집을 기획한 우리가 그에게 촬영을 제안한 뒤 김동현은 몇 달간 비 오는 날만 빼고 매일 밖에 나가 ‘멋진 어른’들을 마주치러 다녔다. 하루에 한두 명만 촬영했고, 때론 일주일 동안 한 명도 찍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러던 중 남대문에서 멋진 모자에 스모키 화장을 한 어머님이 제 앞을 지나가시더군요. 꼭 촬영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인사를 드렸죠. 감사하게도 흔쾌히 승낙해주셨어요. 일주일간 한 장도 찍지 못한 저만의 고통이 말끔히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사진이 이 기획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군요.”
이토록 예의 바르게 ‘멋진 어른’만의 미학을 발견해가는 김동현이 제일 존경하는 여성은 역시 자신의 할머니였다. “양장점에서 보조로 일하며 재봉을 배우고 직접 아동복을 만들어 파셨어요. 아버지를 등에 업고 시장 세 군데를 돌며 장사하셨다고 해요. 80세가 넘으셨는데도 외출하시기 전 늘 화장대에 앉아 메이크업을 하시고 여전히 옷차림에 신경 쓰세요.” 삶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던 것들이 지금은 몸에 밴 습관이 되어 아직까지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존경한다고 그는 덧붙여 말한다. “제 사진이 실린 <보그>가 나오면 할머니께 먼저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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