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존스가 현재의 펜디를 바라보는 법
킴 존스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현재의 펜디를 바라보는 법.
나 혼자 덩그러니 지키던 줌(Zoom) 대화방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아시아 펜디 홍보 담당자는 바쁘게 나를 소개했고, 로마 본사의 홍보 담당자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인터뷰 시작 시간은 예정된 시간보다 10분 넘게 지연되고 있었다. 주어진 시간은 15분. 난 인사를 건네면서도 볼펜으로 꼭 해야 하는 질문에 밑줄을 긋고 있었다. 그즈음 화면 중앙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하얀색 티셔츠를 입은 그는 나를 알아본 듯 살며시 손을 들어 인사했다. 아시아 홍보 담당자가 만난 적 있지 않냐고 묻자 그는 당연히 기억한다고 답했다. 제로 콜라로 목을 축인 그가 말했다. “이제 시작할까요?”
킴 존스(Kim Jones)와 처음 마주한 건 2009년 여름이다. 당시 그는 던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처음 서울을 찾았다. 강남의 어느 호텔에서 만난 그의 첫인상은 영국 기숙학교를 갓 졸업한 점잖은 영국 청년이었다. 밝은색 치노 팬츠와 네이비 블레이저를 입은 그에게선 취업에 성공한 젊은이의 패기와 열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실제로 던힐은 그가 처음 맡은 ‘헤리티지’ 브랜드였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 졸업 후 스타일리스트로 일했고, 스포츠 브랜드 엄브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직과 자신의 라벨을 짧게 선보인 게 경력의 전부였다. 고국의 유명 브랜드를 대표한다는 흥분이 그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그대로 전해졌다. 직접 고안한 재킷과 가방, 펜의 숨겨진 디테일을 설명하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2년 후 그는 한국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을 위해 다시 서울에 들렀다. 도산 공원 앞 카페에서 함께 빙수를 먹던 그는 마침 근처 갤러리에서 사오던 길이라며 백자를 자랑했다. 그리고 서울의 곳곳을 궁금해했다. 젊은이들은 어디에서 노는지, 멋쟁이들은 어디에서 쇼핑하는지, 한국의 전통을 만나고 싶으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요즘은 뉴욕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며 뉴욕에 가면 꼭 들러야 할 명소를 몇 곳 추천하기도 했다. 대화가 끝날 때쯤 그는 다음엔 또 어느 도시로 떠날지 모르겠다는 여운을 남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루이 비통 남성복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낙점됐다는 뉴스가 들렸다.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축하 이메일을 보냈고, 그는 곧바로 고맙다고 회신했다.
지난 10년간 남성복 세계에서 킴 존스는 ‘킹 존스’라 불릴 만했다. 루이 비통에서는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여행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마음껏 해석해냈고, 그의 지휘 아래 루이 비통은 로고 장식 가방 브랜드에서 매장 앞에 줄을 서야 겨우 살 수 있는 브랜드로 변신했다. 슈프림과 함께 선보인 협업 컬렉션의 충격은 21세기 패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결정적 순간이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퀘스트를 위해 디올 옴므로 옮겨갔다. ‘디올 맨’으로 이름을 재정비한 그는 디올 남성복의 세계를 새롭게 구축했다. 오뜨 꾸뛰르 드레스를 입은 화려한 여자 친구 뒤에 숨어 있던 디올의 남자는 존스의 도움으로 스포트라이트 중앙으로 옮겨왔다.
몸값을 한껏 끌어올린 디자이너에게는 당연하게도 소문이 뒤따랐다. 그가 도나텔라 베르사체 뒤를 이어 베르사체 하우스를 물려받을 것이다, 디올 여성복도 그의 차지가 될 것이다, 버버리를 맡게 될 것이다 등등. 그리고 그 소문의 중심에는 그가 여성복 디자인을 갈망한다는 짐작이 자리하고 있었다. 남성복으로 자신의 역할을 국한시키지 않을 거라는 추측. 그리고 이런 루머의 끝에 그는 지난해 가을 펜디 여성복의 아티스틱 디렉터가 되었음을 밝혔다. 50년 넘도록 패션의 전설 칼 라거펠트가 지켜온 바로 그 자리였다.
펜디에서 제안할 때 어떤 기분이었나? 더할 수 없는 영광이었다. 디자이너의 디자이너인 칼 라거펠트가 54년이나 이끌어온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또한 두 개 브랜드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 역시 매력적이었다. 물론 오랫동안 여성복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모두 펜디를 알고 있지만, 펜디 안에 무엇이 자리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내가 이 브랜드에 어떤 힘이 될 수 있을 거라 느꼈다.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리고 실비아(벤투리니 펜디)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사실도 좋았다. 10년 전쯤 처음 만났고 단숨에 친해졌다.
펜디에서 처음 일하게 됐을 때 브랜드를 이해하기 위한 계획이 있었나? 사실 처음 펜디에 합류할 때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적합한 시기는 아니었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펜디는 외부에서 알아가기에 좋은 브랜드는 아니다. 이곳에 직접 와서 아카이브를 둘러본 뒤 펜디의 여러 기술을 배우고 훌륭한 디자이너, 장인과 함께 일하는 법을 배웠다.
첫 데뷔를 기성복이 아닌 오뜨 꾸뛰르로 시작했다. 펜디 CEO 세르주 브륀슈위그(Serge Brunschwig)의 영향이 컸다. 그가 파리에서 꾸뛰르 프레젠테이션을 하길 원했고, 나 역시 그 생각에 동의했다. 브랜드에 뭔가 변화를 주고 싶었다. 꾸뛰르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다.
첫 컬렉션은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렇다. 집에 <올랜도>의 다양한 인쇄본을 갖고 있다. 현대사회에 대한 훌륭한 풍자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가장 좋아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인가? <올랜도>, <댈러웨이 부인>을 비롯해 여러 에세이를 가장 좋아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쓴 모든 작품의 초판본을 갖고 있으며, 서재 한 칸은 온통 울프의 책으로 꽉 찼다.
루이 비통에서 7년, 디올에서 3년간 남성복만 맡아온 킴 존스가 여성복 디자인을 처음 시작하면서 <올랜도>를 바탕으로 한 건 흥미로운 선택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남자에서 여자로 성별이 바뀐 채 수백 년 동안 시간 여행을 한다. 성에 대한 관념 따위는 벗어던진 채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특기를 마음껏 발휘하겠다는 자신감의 표현. 존스는 펜디의 아카이브를 발굴한 뒤 쇼에 섰던 여성 각각에 어울리는 옷을 한 벌씩 디자인했다. 꾸뛰르라는 컨셉 그 자체에 가장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그리하여 공개한 컬렉션은 펜디라는 브랜드에 새로운 여성성을 부여한 로맨틱 컬렉션 그 자체였다. 꾸뛰르라는 단어에 현혹당해 10m 길이의 드레스를 만들진 않았다. 아주 현실적인 수트와 드레스로 가득했다.
이번 가을 컬렉션은 어땠나? 다소 ‘중립적’ 컬렉션을 원했다. 기본이 될 수 있는 그런 옷 말이다. 그러기 위해 펜디 가족의 여러 이미지를 찾아봤고, 실비아의 어머니, 그녀의 자매들, 실비아, 델피나 등을 보며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친한 친구인 케이트 모스와 함께 일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옷을 디자인하는 많은 디자이너가 있지만 나는 현실의 여성을 다루고 싶다. 예쁘게 보이고 싶은 여성, 일하는 여성, 가족이 있는 여성, 시크함을 추구하는 여성 등 여성의 여러 면을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여성의 삶은 다채롭다. 주위 환경이 끊임없이 바뀌고,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근사한 곳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여성이 입을 수 있는 그런 옷을 떠올렸다.
당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여성상이 있나? 그녀는 어떤 외모의 누군지 궁금하다. 여성들이 지닌 그 정신에 매료되기 때문에 딱히 완벽한 여성상이 있진 않다. 주위에 훌륭한 여성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실비아부터 케이트까지 매우 다양한 분야의 멋진 여성과 늘 연락을 주고받는다. 새로운 세대인 그들의 딸들 역시 마찬가지다.
1925년 탄생한 펜디는 펜디 가문의 여성에 의해 계속 보호받고 자라났다. 펜디 가문의 다섯 딸이 로마의 모피 가게를 전 세계적 브랜드로 알리기 위해 1965년쯤 채용한 칼 라거펠트가 펜디 역사상 유일한 남성의 존재다. 그리고 1994년 창립자의 손녀인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가 본격적으로 가업에 합류했다. 존스를 추천한 인물 역시 그녀였으며, 지금은 그와 함께 공동 작업을 즐기고 있다. “늘 킴에게 끌렸어요. 그와 함께 일하다 보면 칼과 일하면서 추구하던 방식이 떠오르더군요. 운명과 같아요.” 그리고 이제는 실비아의 딸이자 주얼리 디자이너인 델피나 델레트레즈도 존스 곁에서 펜디 가문을 지휘하고 있다.
킴을 응원하는 건 펜디 가문의 여인들만이 아니다. 그가 비통과 디올에 있을 때도 프런트 로의 중앙에는 여자 친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케이트 모스와 나오미 캠벨(이 둘은 존스의 마지막 루이 비통 쇼에 직접 캣워킹했다)은 그를 지탱하는 뿌리와 같다. 여기에 빅토리아 베컴과 데미 무어, 릴리 알렌과 크리스티나 리치 등 자극과 영감을 주는 여성이 늘 함께한다. 첫 컬렉션을 두고 베컴은 이렇게 평가했다. “킴은 대중문화와 접촉하고 있어요. 그의 놀라운 비전과 정교한 솜씨가 그것과 결합하면, 그는 무시할 수 없는 실력자가 될 겁니다.”
당신은 다양한 분야를 패션 세계와 연결하는 데 매우 능숙하다. 그것이 아티스트건, 음악이건, 스트리트 웨어건. 예상치 못한 어느 분야와 펜디를 접목할 계획이 있나? 당연하다. 그것이 내가 일하는 방식이며 사람들이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고객은 문화적 레퍼런스에 열광한다. 특히 ‘록다운’을 겪으며 요즘은 많은 이들이 휴대전화를 보며 하루를 보낸다. 그럼에도 누구는 실제로 무언가를 보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책을 읽고 싶어 하며, 누군가는 무엇을 듣고 싶어 한다. 사실 모두가 휴대전화만 보고 싶어 하진 않는다. 사람들이 ‘그것은 진짜 사는 게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밖에 나가 뭔가를 보거나 갤러리에 가는 행동 모두가 중요하다. 그들에게 전혀 상상하지 못한 뭔가를 보여주는 것, 그게 내 직업의 묘미다.
요즘 같은 때에 디자이너는 단순히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에 아이덴티티를 주입하고 일종의 타당성을 부여해야 한다. 이 시대에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어떤 의미일까?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재창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관성을 지닌 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만들고, 매장에 그들이 구매할 제품을 끊임없이 채워 넣는 것도 중요하다. 나 역시 습관의 동물이기에, 내 옷을 일종의 유니폼처럼 입곤 한다. 같은 종류의 바지를 각각 다른 색깔로 여섯 벌이나 갖고 있다. 누군가가 예쁜 셔츠, 맘에 드는 점퍼, 니트 같은 것을 봤을 때 ‘저건 정말 갖고 싶은걸’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그런 종류의 옷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는 재미를 더하기 위해 다양한 색깔을 활용했다. 이번 컬렉션의 가방과 구두는 꽤 성공적이었다. 펜디라는 브랜드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고 브랜드의 기둥이 될 제품이다. 가방 사이즈도 다양하게 준비했다. 젊고 어린 여성을 위한 작은 사이즈, 데일리로 멜 수 있는 사이즈, 이브닝을 위한 사이즈까지. 기존 여성복과 달리 남성복을 디자인할 때 특히 중요한 요소인 실용성을 고려해 만들었다. 남성복에서 여러 아이디어를 차용해 실용적인 제품과 가방을 만들어내려 노력했다.
지난 2월 공개한 올가을 여성복 컬렉션에서 킴 존스는 현실의 여성을 위해 한 걸음 전진했다. 컬렉션의 중심에는 펜디의 고향 로마의 색상인 ‘뉴트럴’한 색조가 자리한다. 오래된 도시의 온화하고 낡은 빛을 닮은 베이지와 아이보리, 오트밀 컬러는 울 코트와 수트, 드레스와 모피 재킷으로 탈바꿈했다. <보그> 9월호 표지와 화보에서 송혜교가 입은 컬렉션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과거만 바라보진 않았다. ‘업사이클링’한 모피를 사용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떠올렸으며, FF 로고를 활용한 가방은 킴 존스만의 실용적인 감각으로 무장했다.
오래전 한국을 방문해 도자기를 몇 점 사갔다. 여전히 소장하고 있나? 물론이다. 시골집에 갖다두었다. 정말 한국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 많은 것이 바뀌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게 3~4년 전쯤이다. 비가 엄청나게 많이 오던 시기로 기억한다. 하늘을 보면 갑자기 어두워져 매우 답답하곤 했다. 그래도 조만간 다시 방문했으면 좋겠다. 아시아의 모든 것이 그립다. 가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사실 아시아는 나에게 큰 영감을 주는 지역이라 더 그렇다. 여러 시장과 다양한 매장을 방문하는 일이 더없이 즐거웠다.
당신은 언제나 여행을 매우 좋아했다. 컬렉션을 통해 그 경험을 엿볼 수 있었다. 코로나 이후 여행을 대신할 만족할 만한 대안을 찾았나? 여행의 전리품을 다시 보곤 한다. 책, 옷 등 전부 가리지 않고 당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보며 영감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이 인터뷰와 함께 <보그> 9월호에 실을 예정인데, 당신 집이 매우 멋졌다. 고맙다. 하지만 집에서 떨어져 있으니 좋기도 하다. 가끔 다른 환경에 놓이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지금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뭔가? 여러 곳을 돌아다니기만 기다린다. 세계 각지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 그들을 안아주고 싶다.
두 개 브랜드에서 동시에 일한다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어제만 해도 디올에서 남성 수트를 디자인하다, 오늘은 펜디에서 모피 드레스를 만들어야 하는 과정 말이다. 끊임없는 영감과 자극이 필요한 직업이 아닐 수 없다. 아프리카에서 자란 존스에게 여행은 가장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여행 사진은 늘 놀라운 풍경과 최고의 시각적 만족감을 선사했다. 팬데믹 이후 그는 자신의 영역을 가꾸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사간 백자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초판본까지 그가 수집하는 컬렉션은 방대하고 다양하다. 어린 시절 읽던 책을 모으고 피카소가 즐겨 입던 셔츠를 경매에서 구입하는 즐거움도 놓치지 않는다. 수집이야말로 과거에서 힌트를 얻어 미래를 그려야 하는 패션 하우스 디자이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취미다.
지난 2월 공개한 펜디의 F/W 여성복 컬렉션 영상의 음악에서 이런 가사가 들렸다. “방향을 바꿔 저쪽으로 향하자. 미래를 받아들이고 키스하자.” 어쩌면 킴 존스가 스스로에게 전하는 희망의 주문인지도 모르겠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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