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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성공한 패션 디자이너의 책

2021.12.02

가장 성공한 패션 디자이너의 책

미스터 포드가 발간하는 완벽한 책 <Tom Ford 002>.

모두가 모든 것을 기록하는 세상이다. 기록의 가치를 논하는 건 무의미하다. 역사적 사건은 물론, 평범한 일상의 에피소드와 사건도 기록과 공유의 대상이 된다. 누군가에겐 국제적인 분쟁 현장보다 저녁 식사 메뉴를 기록하는 것이 더 소중할 수 있다.

기록과 인증이 일상화된 시대에 지난 30여 년간 가장 성공한 패션 디자이너는 스스로의 작업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패션은 물론 메이크업과 향수, 선글라스와 속옷, 시계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모든 것을 망라하는 제국을 건설했으며, 뉴욕과 런던, 파리는 물론 아제르바이잔과 칠레, 사우디아라비아와 뉴질랜드에서도 그 흔적을 만날 수 있는 디자이너의 업적은 어떤 식으로 이야기해야 할까. 비욘세가 자신의 패션쇼에 모델로 서고, 제이 지가 자신을 주제로 노래를 만들었으며, 영화감독과 사진가로도 활동하는 디자이너에게 시각적 아카이브의 가치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톰 포드(Tom Ford) 제국을 시작한 2005년부터 2020년까지 자신의 모든 활동을 담은 책 <Tom Ford 002>를 준비하는 동안 미스터 포드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게다가 1994년부너 2004년까지의 활동을 모은 첫 번째 책 <Tom Ford 001>은 디자이너의 아카이브 북 이상의 인기를 누렸다. ‘TOM FORD’라는 이름을 아로새긴 검은색 박스는 그 자체로도 디자인 오브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 와중에 그가 영화감독으로서 <싱글 맨>과 <녹터널 애니멀스>를 발표하고, 브랜드의 광고 캠페인을 사진가로서 직접 촬영하기 시작한 것도 새로운 책에서 중요한 챕터가 될 법했다.

이 모든 고민을 편집한 책 <Tom Ford 002>를 발간하기 직전 톰 포드는 <보그>에 인터뷰를 약속했다. 출판 일정과 바쁜 일과로 인해 인터뷰 날짜는 한 번 변경되었다.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그는 9월 중순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뉴욕 패션 위크에서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하고, 멧 갈라의 주최자로도 나섰다. 또 한 달 전에는 35년간 함께했던 파트너이자 남편 리처드 버클리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제국에 큰 변화가 찾아왔을 때 자신의 작업을 정리한 책을 소개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10월 말의 이른 아침, 오후를 맞은 LA에서 인사를 건넨 미스터 포드는 정중하고 사려 깊은 대답을 전해주었다.

오랜만의 인사다. 반갑다.

나 역시 반갑다. 서울은 몇 시인가?

이제 오전 7시 15분이다.

나 때문에 너무 일찍 일어나게 해서 미안하다.

이미 커피를 한 잔 마셨기에 모든 준비는 끝났다.

그럼 시작하자.

<Tom Ford 002>를 준비하게 된 계기부터 듣고 싶다.

몇 가지가 있다. 우선 톰 포드라는 브랜드에서 선보인 내 활동을 담은 책은 이제까지 없었다. 그래서 지난 15년간의 내 작업을 담고 싶었다. 또 올해 예순 살이다. 뒤를 돌아보고 내가 해온 모든 것을 살펴보기 좋은 시간이라 여겼다. 모든 패션 디자이너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우리 모두 다음은 뭔지, 내년에는 뭘 해야 할지 고민한다. 매번 런웨이에서 인사를 건네고 뒤로 돌아서는 순간 머릿속에 맨 먼저 떠오르는 건 대체 다음엔 뭘 해야 하나라는 고민이다. 그렇기에 지난 1년 동안 내가 해온 모든 것을 살펴보는 건 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결코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행적을 돌아보았을 때는 모든 것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을 법하다.

특정한 옷이나 사진, 디자인을 보면 당시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입고 있었는지, 뭘 하고 있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바로 떠오른다. 그 경험은 아주 커다란 카타르시스를 줬다. 그렇기에 이 모든 과거를 아주 예쁜 박스에 담아두고 다음 챕터로 나갈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지난 작업을 돌아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했나?

난 항상 스스로에게 엄격하다. 언제나 충분히 하지 않은 것처럼 느끼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 뒤돌아보니 내가 나만의 회사를 시작했고, 다양한 제품을 완성했으며, 내 아이를 가졌고, 영화 두 편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그러자 지난 15년을 보낸 방식이 꽤 마음에 들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뒤를 돌아보고, 자기 긍정과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말이다.

특별히 마음에 든 작업은 뭔가? 책 속의 하이라이트를 꼽자면?

하나만 꼽는 건 불가능하다. 1만 장에 가까운 이미지로 시작해서 400페이지로 줄였다. 그렇기에 지면 한 장 한 장과 이미지는 각각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미지로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다. 좋은 이미지란 뭘까?

단순하다. 좋은 이미지는 우리를 멈추게 한다. 인스타그램 화면에서 생각 없이 스크롤을 내리다가 혹은 잡지를 넘겨보다가 우리를 멈추게 하는 이미지가 있다. “대체 뭐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이미지. 그런 공식을 바탕으로 이 책을 준비했다. 내가 가진 이미지 중에서 나를 멈추게 했던 것들로 1,000장 정도를 초안으로 선별했고, 계속 편집해나갔다. 시선을 사로잡은 다음에는 어떠한 이야기를 전해야만 한다. 그러한 이미지를 선별했다.

당신은 광고와 룩북 등을 직접 촬영한다. 사진가 톰 포드가 말하는 훌륭한 패션 사진은 뭔가?

지난 15년간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해왔다. 좋은 패션 사진은 당시 그 시점의 분위기와 정신을 담아야 한다. 단순히 옷만 잘 보여줘서는 안 된다. 물론 옷의 디테일이나 구조적 형태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바이브(Vibe)를 전해야 한다. 그건 옷이라는 물리적 형태를 초월한다.

첫 번째 책 <Tom Ford 001>과 다른 것은 뭔가?

이번 책은 첫 번째 책과 연결성을 지닌다. 사이즈와 종이 재질도 같다. 첫 번째 책이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한 것이다. 두 번째 책은 톰 포드 인생의 두 번째 챕터다. 그리고 15년, 20년 후에는 세 번째 챕터를 선보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상하겠지만, 난 아주 까다롭다. 인쇄 과정에서도 내 손을 거치지 않은 디테일은 없다. 레이아웃 역시 내 의견을 따랐다. 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것이 좋다. 여백을 많이 주거나 한 장에 여러 사진을 넣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우리의 시선을 가득 채우는 직설적 방식이 좋다. 이렇게 모든 결정을 내리며 느낀 건 첫 번째 책을 선보인 2004년으로부터 내 취향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첫 번째 책이 나왔을 때는 인스타그램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인스타그램의 거의 모든 인테리어 관련 이미지에 검정 박스의 톰 포드 책이 자리하고 있었다. 혹시 그 이미지를 본 적 있나?

물론이다. 그 책을 처음 만들 때부터 내가 의도했던 바다. 난 내 책이 하나의 그래픽 오브제가 되길 바랐다. 사람들은 점점 책을 읽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대부분 집을 꾸미는 용도로만 책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세상에서 커피 테이블 위의 책을 고르는 건 일종의 패션 라벨을 고르는 것과 비슷하다. 두 번째 책을 만들면서도 그 생각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첫 번째 책을 <Tom Ford 001>이라는 이름으로 재발간한다. 그 책은 검은색이고, 이번 책은 하얀색이다. 그리고 언제나 인스타그램이나 잡지 이미지에 내 책이 놓인 걸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그럼 톰 포드의 커피 테이블 위에 놓인 책은 뭔가?

대답하기 어렵다. 커피 테이블 위에 책을 많이 놓지는 않지만, 책장에 수많은 책이 있다. 패션과 사진에 관련한 책을 고르자면, 아베돈과 내 친구 스노우돈 경 그리고 헬무트 뉴튼이 떠오른다. 여기에 예술 관련 책도 많다. 특히 소더비와 크리스티를 비롯한 경매 카탈로그가 많다. 그리고 래리 가고시안이 자신의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아티스트의 책도 떠오른다. 존 커린, 데미안 허스트, 칼더, 이브 클랭 등등. 책, 책, 책에 둘러싸여 있다. 아, 물론 책은 옮겨둔다. 단순히 멋있어 보이려고 테이블 위에 놓고 다시는 보지 않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책을 열어 이미지를 살피고, 다시 꽂아두고,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다시 책을 찾아보고, 레퍼런스를 찾기도 한다. 그러다가 전화가 오면 다시 테이블 위에 놓아둔다. 그러니 내게 책은 실용품이다.

첫 번째 책이 나왔을 때와 많은 것이 변했다. 완벽한 이미지 혹은 완벽한 아름다움이 변했다고 생각하나?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변한다. 15년 전의 기준과는 달라진 것이 분명하다. 오늘날 아름다움이란 더 과장되어 있다. 눈썹을 생각해봐라. 지금의 눈썹은 너무 강렬하지 않나. 정확히 꼭 집어 어떻게 변화했는지 정의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지금의 아름다움이다. 예를 들어 안야 테일러 조이를 이야기해보자. 처음 그녀를 봤을 때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점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적응하지 않았나. 우리가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다.

뉴욕에서 패션쇼를 열고,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 회장이고, LA에 산다. 미국 디자이너로서 정체성은 변했나?

지난 30년간 유럽에 살았다. 3년 전에 LA로 이사 오면서 비로소 미국 디자이너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미국 사람들은 모를 이야기지만, 미국은 가장 동떨어져 있고, 단절된 문화를 갖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미국 내부만 바라본다. CFDA에서 내가 희망하는 영향력 중 일부가 그러한 아이디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CFDA는 미국 디자이너들이 세계적으로 나아갈 때 도움을 주고 싶다. 또 전 세계가 미국 디자이너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변화를 주고 싶다. 슬프게도 내가 CFDA에 합류한 후 코로나 사태가 벌어졌다. 그래서 아직은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보탬이 되는 모금 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다. 여기에 흑인 인권 운동, ‘미투’ 운동에도 도움을 주고 싶다. 다양성 역시 중요하다. LA에 살지만 ‘줌’도 있고, 통화도 할 수 있으니 일을 할 수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CFDA 회장 활동이 쉽지만은 않았다.

지난 9월 멧 갈라 파티를 보니 젊은 디자이너들이 톰 포드 옷을 입고 레드 카펫에 섰다.

파티에 내 테이블이 있으니, 초대장이 없으면 파티에 참석하지 못할 젊은 디자이너들을 데리고 가고 싶었다. 대부분이 단 한 번도 멧 갈라에 참석한 적이 없는 이들이었다. 이번 멧 전시 자체의 컨셉이 미국 디자이너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내 선택은 그 결정 중 일부였다. 그리고 그중 많은 이들이 자기들이 입을 수 있는 턱시도를 만들어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그런 부탁을 받으니 기분이 아주 좋았다.

당신은 일중독으로 유명하다. 팬데믹은 어떻게 견뎠나?

쉽지는 않았다. 내 브랜드의 옷은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만드는데 이탈리아에 있는 공장과 샘플 제작소가 모두 문을 닫았다. LA 역시 아주 강력한 ‘록다운’을 경험해야 했다. 첫 시즌은 제대로 옷을 만들기조차 어려웠다. 일부 매장은 문을 닫아야만 했다. 모두가 어려웠겠지만, 패션업계는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해야만 하기에 더 혹독한 계절이었다. 우리가 만든 옷을 누군가가 입고, 걷고 움직이는 걸 보면서 우리는 또 다른 작업을 할 수 있고, 때로는 그 순간에 소매를 잘라내기도 하고, 다른 장식을 더할 수도 있어야 한다. 줌으로 그런 작업은 불가능하지 않나. 운 좋게도 LA에서 일하기에 건물 외부에 텐트를 세우고 일하기도 했고, 모두 매번 검사를 받고 출근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만 어렵진 않았기에 불평할 수는 없다.

지난 15년간 톰 포드 제국을 건설했다. 첫 번째 책이 나올 때 당신의 작업을 알지 못하던 세대 혹은 당신을 꾸준히 따라온 세대에게 당신의 이름이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이길 바라는가?

‘퀄리티’. 오늘날 패션은 많은 경우에서 순간을 이야기한다. 이런 시대에 내가 만든 모든 것이 시간을 견디고, 아름다운 만듦새를 가졌고, 무엇이든 내 제품을 입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감이 생겼으면 한다. 오랫동안 소유하고 가까이하고 싶은 무언가가 되길 바란다. ‘타임리스 퀄리티’를 지니길 바란다. 그 시대와 그 순간을 포착하고 싶은 동시에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매력을 지니길 바란다.

이제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간다. 우리는 뉴욕 소호 하우스에서 열린 <녹터널 애니멀스> 영화 시사회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다. 새로운 영화를 기대해도 될까?

그건 꽤 오래전이다. 말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작업을 준비 중이다. 내가 유일하게 후회하는 일이 있다면 더 많은 영화를 만들지 못한 것이다. 동시에 나를 내버려두지 않는 회사를 시작한 것 역시 나 자신이다. 또 그 사이에 아들이 생겼다. 팬데믹의 복판에서 육아를 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곧 작업하게 될 영화에 대해서는 정확히 말해줄 수 없다. 곧 우리가 그 영화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VK)

60 PORTRAIT(Alexei Hay)

에디터
손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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