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스트라다무스’ 슈가의 화법
‘민스트라다무스’ 슈가는 엉뚱하지만 참신하게 허를 찌른다.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요. 빅 팀보다 언더독이 좋아요.” 다른 누구도 아닌 딱 슈가다운 선택이다. 최근의 관심사를 묻자 기다렸다는 듯 그의 최애 선수인 데미안 릴라드와 최애 팀 포틀랜드를 처음으로 공개하며 한참을 농구 이야기로 채웠다. “NBA 시즌이잖아요. 이게 요즘 낙이에요(웃음).” 슈가의 얼굴이 이렇게 밝아 보인 적은 처음이다. 짓누르는 듯한 긴장감 대신 안정감과 여유가 깃든 덕분인지 지난 믹스테이프 <D-2>을 지배한 체념과 달관의 정서가 떠올랐다. “체념. 맞아요, 놓아버린 느낌이죠. 코로나라는 게 내가 노력하고 애쓴다고 좋아지는 게 아니잖아요. 애쓰는 게 얼마나 에너지 소모가 많은지 더 잘 알게 됐어요. 그렇게 애쓰면서 살았는데.” 정확한 표현이었다. 슈가는 애쓰지 않고 자연스럽지만 그렇다고 권태롭지 않아 보였다. 요즘 한 인간으로서 그를 지배하는 생각이 궁금해졌다. “사실 요즘 별생각이 없어서…(웃음) 정말로요. 너무 바쁘기도 하고, 정체성에 대한 생각은 되도록 안 하려고 해요. 거기에 신경 쓰다 보면 너무 고민되니까. 흘러가듯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뭔가를 엄청 갈구하고 노력하기보다는 흘러가는 대로.
슈가는 지난 몇 년간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노력을 안 하거나 덜 열심히 했다는 건 아니에요. 받아들임이 자연스러워졌달까? 어릴 때에 비해서요.” 확실히 그랬다. 그 염세성과 우울함에 나도 모르게 전염될 것 같았던 래퍼 ‘어거스트 디(Agust D)’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첫 번째 ‘믹테’는 분노에 가까웠죠. 그런데 그 사이 정리를 다 했잖아요(웃음). 이제 누구한테 분노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면서 비로소 나를 마주하게 된 거죠. 분노와 열등감을 무기로 삼아온 사람이었는데, 자기 파괴적인 분노가 서서히 효력이 떨어진 때가 2018년이었어요. 더 이상 이것만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삼을 수는 없겠다 생각했죠.”
그즈음에 서서히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 그의 두 번째 믹스테이프다. 첫 번째 믹스테이프와 사뭇 달랐던, 음악적으로 성숙한 앨범이었다. “실제로 녹음은 2020년, 막판 두세 달 만에 타이트하게 끝냈지만 비트나 기본 작업은 2016년 첫 믹스테이프가 나오자마자 시작했거든요. ‘사람’이라는 트랙을 완성한 게 2016년 10월 즈음이었는데 ‘아, 내가 이런 곡을 쓸 수 있는 단계까지 왔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가장 아끼는 노래 ‘사람’을 언급하자 나도 모르게 반가움의 탄식이 나왔다. 방탄소년단으로 데뷔한 이래 가장 성숙한 인간 민윤기의 통찰을 보여주는 걸작. 너무 아무렇지 않게, 담담하게 ‘사람이 다 그런 거지’라고 말하기에 더 가슴 저미는 곡, 그게 ‘사람’이다. “저도 ‘사람’이 최애곡이에요. 4년간 저의 기록이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대부분 작업을 끝내면 다시 듣지 않는데 ‘사람’은 계속 들었어요. 들을 때마다 감정이 계속 바뀌어요. 뭔가 외롭고 센티해질 때 틀어놓으면 좋더라고요.
방탄소년단이라는 아티스트의 가장 중요한 매력이 ‘날것의 솔직함’이라면 분명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건 슈가다. 자신의 슬픔과 우울조차도 창작의 재료로 써야 하는 것이 아티스트의 숙명이지만 그게 늘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슈가의 답변은 엉뚱하지만 참신하게 허를 찌른다. “사람들이 제 음악을 좋아하시더라고요.” ‘훗’ 하는 웃음에 담긴 확신. 하지만 그렇다고 자만과는 다른 밉지 않은 솔직 담백함
작곡가로서 슈가의 성향이나 습관에 대해 묻자 “그때그때 다르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바로 나오는 곡이 있는가 하면 수락은 했는데 지금이라도 그만둔다고 할까 싶어 고심하는 곡도 있고요. ‘Over the Horizon’ 같은 경우는 한 번에 쑥 나온 경우였어요. 사실 기타랑 스트링 파트를 20분 만에 끝냈거든요. 테마를 주고 ‘이런 이런 메시지로 곡을 써주세요’ 하면 3분짜리 그림이 다 그려지는 편이에요. 어떤 그림으로 가야 할지는 한 번에 다 나오고 그다음 하나씩 맞춰보는 스타일이죠. 그러니까 스케치라고 하죠? 그 스케치가 빨리 나오는 편이에요.” 그 말을 들으며 새삼스레 떠오른 단어는 ‘천재’다. 하지만 아이돌로서, 슈퍼스타로서 누가 가두지 않아도 제약이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을 가진 그가 끊임없이 음악적 영감을 얻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았다. “뜬금없는 타이밍에 하나둘씩 뭔가 영감이 나와요. 너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요.”
대중이 아티스트에게 갖는 잘못된 환상 중 하나는 예술가의 영감은 특별한 데서 비롯된다는 믿음이다. “그냥 작업실에 있는데 ‘이건 내가 할 수 있겠다’ 싶을 때가 있어요. 때로는 너무 하기 싫다 싶을 때 나오기도 하고. ‘이 순간에 이 감정을 쓸 거야’ 이래본 적이 한 번도 없다니까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슈가의 눈빛은 여지없이 빛난다. 목소리에 점점 긴장이 더해간다. “좋은 생각이 들 때면 꼭 적어둬요. 그러다가 다시 뒤져보는 순간이 오는데 그때 엄청난 영감이 나올 때가 있어요. 언제 쓴지도 모르겠고 내가 쓴지도 모르는 것들을 보다 ‘어? 이거 되게 재밌네’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오는 거죠.”
아티스트에게 영감은 종종 ‘교류’에서 나온다. 최근 그들에게 가장 큰 경험이었을 콜드플레이와 협연 같은 거 말이다. 두 팀의 작업은 세간의 상상보다 훨씬 유기적이고 인간적이었다. “한국에 오겠다고 먼저 제안해서 신기했어요. 콜드플레이의 경우 콜라보레이션을 할 때는 항상 크리스 마틴이 와서 녹음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본인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서서 놀랐어요.” 메이킹 필름에서 엿보인 모습 그대로였다. 최고와 최고의 만남이라기에는 소박했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 그 자체. “다들 겸손하고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너무 친절하게 대해줬어요. 저희 상황과 콜드플레이가 25년 가까이 겪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자기들의 고충과 우리의 고충을 서로 나누면서 대화가 잘 풀렸어요.” 한 팀은 록 밴드이고 또 한 팀은 보이 밴드지만 장르가 다르다고 겪는 고통이 다른 게 아니구나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고 말하는 슈가의 얼굴에는 옅은 감동마저 스쳤다. “스타를 만나다 보면 지금 이 행동이 진심인지 아닌지 구분이 가요. 그런데 콜드플레이는 너무 진심이어서 저희가 오히려 감동이었어요.”
원래 톱 레벨 세계에서 배움은 기술적인 것보다는 인간적인 매력이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일 때가 많다. 그래도 슈가라면 선배로부터 뭔가 노하우 하나를 얻어가지 않았을까? “리액션이요(웃음). 랩 녹음하며 멜로디 더빙하는 작업을 많이 했는데, 리액션이 너무 좋은 거예요. 녹음 부스에 들어간 사람은 느껴져요. 저는 디렉팅할 때 리액션 없이 하는 편이에요. 반쯤 영혼이 나간 상태로(웃음). 근데 콜드플레이 같은 태도가 오히려 훨씬 사람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죠.”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슈가에게 지난 8년간 얻은 것, 또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행복을 얻은 것 같아요. 그게 거창한 게 아니란 것도 알았고요. 물질적인 것이 행복을 주는 줄 알고 열심히 살았는데 막상 얻고 보니 잘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물욕이 없기도 하지만(웃음). 물질적인 것이 더 이상 큰 만족감을 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지금은 사소한 것에서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공복에 마시는 디카페인 커피 같은 것. 지금이라도 이런 즐거움을 알아서 좋아요. 잃어버린 것은 평범함이겠죠. 남의 평범함이 나한테는 특별하잖아요. 근데 그건 시간이 해결해주리라고 봐요.” 왠지 모르게 반갑고 다행스러운 말이었다. 평범함의 소중함을 즐기게 된 그의 다음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혹시 프로듀서 민윤기의 본격적인 비상이 아닐까 기대한 나에게 돌아온 마지막 대답은 의외로, 하지만 너무도 당연하게 방탄소년단이었다. “죽을 때까지 방탄소년단 할 거 같아요. 제작을 해보는 건 어떠냐는 말도 듣죠. 근데 못할 거 같아요. 누군가를 책임질 만큼 책임감이 있진 않아요. 전 방탄소년단이 좋아요.” 활동한 이래 가장 오래 한국에 머물렀다며 신나는 매일보다는 루틴이 주는 건강함을 느낀다는 인간 민윤기를 떠나보내며 끝까지 망설인 질문을 던졌다. “그래미요? 겸손 버전과 자신만만 버전이 있는데 어떤 걸로 할까요? 솔직히 기대는 안 하고 있어요. 그런데 받을 거 같아요!(웃음)” 그래, ‘민스트라다무스’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Minstradamus’ SUGA, whimsical and refreshing.
“The Portland Trail Blazers. I prefer the underdogs to the big teams,” says SUGA when asked about his current interests. This is so like him. During our lively conversation, he reveals, for the first time, both his favorite team and his favorite player (Damian Lillard). “It’s the NBA season. This is what I live for these days,” he says with a laugh. SUGA’s face has never looked brighter. He looks relaxed and composed, exuding a sense of calm confidence, which has replaced a dark cloud of tension. I am reminded of the prevailing sense of resignation and transcendence in D-2, a mixtape he released in May 2020.
“Resignation,” he echoes. “That’s right, I feel I’ve let it all go. Covid-19 is not something I can change through willpower. Now, I have a better idea of how much energy it takes to swim against the tide. And all this time, I’d lived my life trying so hard.” I couldn’t have put it better myself. SUGA looks relaxed and natural, not bored. I ask him what thoughts are occupying him these days. “Actually, I have no thoughts these days,” he says with a laugh. “It’s true. I’m too busy, and I try not to think about identity. If you obsess about it, you end up worrying too much. I think it’s perfectly fine to go with the flow, rather than constantly striving and struggling all the time.”
The last few years have been intense for him. “It’s not that I don’t try hard or that I work less hard. I think I’ve learned to come to terms with it more than when I was younger,” he reflects. Indeed, he has clearly gone through a change. The rapper Agust D, with his highly contagious pessimism and melancholy, is nowhere to be found. “My first mixtape was all about anger, but then everything was sorted out, right?” SUGA explains with a laugh. “I realized that I didn’t know who to be angry with anymore. Finally, I was able to look at myself. I’d been making a weapon out of anger and a sense of inferiority, but around 2018, my self-destructive rage slowly started to subside. I realized that I couldn’t channel creative energy through only those sorts of emotions any longer.”
It was around 2018 when SUGA’s second mixtape began to take shape. It was a musically mature album that was quite different from the first mixtape. “The recording was done on a tight schedule, in the last two or three months of 2020, but I’d started working on the beats and the basic groundwork right after the first mixtape came out, in 2016,” he explains. “After completing the track “People” around October 2016, I thought, ‘Oh! I’ve reached the stage where I can write a song like this.’”
When SUGA mentions “People,” my favorite song, I let out an involuntary sigh of joy. “People” is an insightful masterpiece that reveals how Yoongi Min (SUGA’s birth name) has developed as an individual. It reflects the most mature version of SUGA since his BTS debut. “People” feels all the more heart-wrenching as he narrates nonchalantly in a calm voice, “that’s how people are.” “‘People’ is my favorite song as well,” SUGA says. “Because it’s a record of four years of my life. I set aside most songs after they’re done, but I find myself relistening to ‘People’ all the time, and I experience different emotions each time I hear it. It’s a song I put on mostly when I’m feeling lonely and sentimental.”
If the main appeal of BTS is raw honesty, there is no doubt that SUGA contributes the lion’s share. It is the fate of the artist to have to use grief and gloom as grist for creativity, and that can’t always be easy, I tell him. SUGA’s response is whimsical and refreshing: “People seem to like my music.” The confidence in his small smile and his forthrightness, which is free of arrogance, is endearing. I ask if he has any songwriting routines or habits. “It depends on the song,” he replies. “Some songs flow right out, and some songs are such a struggle that I’ve wanted to throw in the towel. “Over the Horizon” is one song that flowed straight out. I finished the guitar and string parts in 20 minutes. When I get a request for a new song and they specify the theme and message, I can quickly draw the outline of a three-minute song. I can figure out the gist of it in a short time, and I build it from there. So, it’s like a sketch. I usually finish my sketches very quickly.”
The word “genius” comes to mind while listening to him, and I am certainly not the first person to think this. However, it can’t be easy for him to keep finding musical inspiration while being forced to live within the confines imposed on him as a superstar music idol. “Inspiration strikes at random times — even in apparently absurd circumstances,” he says. One of the common misconceptions about artists is that their inspiration comes from outstanding or special circumstances. “There are times when I’m just sitting in a studio and suddenly feel, ‘I can do this,’” SUGA asserts. “Sometimes, I get my inspiration even when I’m least expecting it. It’s never like I’m consciously going to use this or that emotion at a certain time.” SUGA’s eyes sparkle, and his voice grows animated as he continues, “When good ideas come to me, I always write them down. Then I review them later, and occasionally find great inspiration. Looking at notes written who knows when and sometimes even wondering if they were written by me, I sometimes find something that makes me think, ‘Oh? This could be very interesting.’”
For artists, inspiration often comes from interaction. Take, for example, the Coldplay collaboration, which was surely BTS’ most important experience of late. The collab ended up being much more organic and congenial than most people had expected. “I was amazed when they offered to come to Korea,” SUGA recounts. “They said that when Coldplay does a collaboration, Chris Martin always comes in person to record. I was surprised that he was so keen.”
All this has been revealed in a behind-the-scenes documentary. Despite it being a meeting of two legendary groups, the hype was at a minimum, and the pure passion for music was evident. “All of them were humble, good-hearted, passionate and so very kind to us,” says SUGA. “I realized that our experience and what Coldplay has been through for nearly 25 years were not so very different. The conversation took off as we compared our struggles.” A flicker of emotion crosses SUGA’s face as he describes the moment he realized that the struggles of a rock band and a boy band are the same.
“When I meet a star, I can tell whether they’re being sincere or not, and Coldplay were so sincere that we were deeply moved by them,” SUGA gushes. In the world of top-level achievers, learning often occurs through interacting with other people, noticing their personalities or attitudes, rather than hands-on learning of new technical skills. I ask SUGA if he got any insights or tips from the veterans. With a laugh, he says, “We did a lot of melody dubbing while recording the rap sections, and their reactions were fantastic. You could feel it in the recording booth. When having a vocal directing session, I tend to be fairly straight-faced, without showing my reactions, as if I were missing half my soul. But it made me think that taking Coldplay’s approach might be a better way to bring out an artist’s potential.”
What has SUGA, who seems to have done it all, gained and lost in the past eight years? “I think I’m happier now,” he confides. “I’ve realized that happiness doesn’t require much, and it can be quite simple. I used to think material things would give me happiness, and I worked hard to achieve them. But when I succeeded, I wasn’t so sure anymore. I don’t have many earthly desires anyway,” he says with a laugh. “Perhaps it’s because I now know that material things no longer give me great satisfaction. So now, I try to find happiness in simple things, such as getting up early in the morning and having decaf coffee. I’m glad I’ve finally got to experience this kind of joy. What I lost would be being ordinary. Your ordinary is my extraordinary, right? But I think time will solve this issue.” I am not sure why exactly, but I am pleased to hear this.
I ask what his next move will be now that he has learned the value of being ordinary. I am half expecting him to say that he will go on to become a full-fledged producer, but he gives an answer that is both unexpected and obvious: “I’ll always be a member of BTS. People have suggested I should become a full-time producer, but I don’t think I will. I’m not responsible enough to take responsibility for anyone. I like being part of BTS.”
SUGA adds that this is the longest he has been in Korea since his debut, and that he is enjoying the perks of a daily routine rather than the excitement of globe-trotting. When the time comes to say goodbye to Yoongi Min, I ask something I have been holding back. “A Grammy?” he replies. “I have both a humble and a confident reply. Which one would you like? I honestly don’t expect we’ll win, but I think we will!” Yes, “Minstradamus” has never been w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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