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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사무직 노동자의 몸

2023.02.12

여자 사무직 노동자의 몸

여자에게 부여된 노동은 직립보행 이후 또 다른 단계를 추가했다. 진화가 아닌 퇴화다.

복원된 비너스(Vénus Restaurée), 1936(1971), 혼합 재료 Plaster, Rope, Wood, Paint, 74×42×39cm

시간이 신체에 일으키는 변화를 인지하는 순간은 각기 다르게 찾아온다. 웃으며 찍은 사진에서 불현듯 눈가 주름이 깊게 다가오기도 하고,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며 꺼내 입은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어쩐지 울상처럼 처진 무릎으로부터 느끼기도 한다. 몰아치듯 찾아왔지만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어깨가 솟아오르고 목이 짧아지고 고개가 앞으로 나온 신체 변화를 인지했을 때 찾아온 감정은 좌절과 당황이었다. 여자 사무직 노동자로 살아온 그간의 삶이 화석처럼 내 몸에 새겨져 있었다.

미래학자 윌리엄 하이암은 사무직 노동자의 20년 후 신체 변화를 예측해 실물 크기의 사무직 노동자 인형 엠마를 선보인 적 있다. PC 모니터와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몸을 펴지 않아 등은 거북이 등딱지를 얹은 듯 굽었고 목은 계단처럼 앞으로 나와 있었으며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한 탓에 배는 불룩했다. 하지 정맥류에 시달려 퉁퉁 부은 다리로 서서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악수를 건네는 엠마의 모습은 시대가 낳은 괴물처럼 보였다. 전신을 쓰던 농경 사회에서 산업 시대를 거쳐 휴대폰만 쥐고도 돈을 버는 시대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완전한 직립보행으로 진화하기 이전 단계로 돌려놓았다. 우리의 몸이라는 그릇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간 내 신체는 의지에 따라 다스릴 수 있는 것이었다. 과식과 과음을 일삼아 둥글게 붙은 뱃살은 소식하고 운동을 하면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근육을 키우고 싶으면 근력 운동을 하면 됐고 마르고 싶으면 굶으면 됐다. 무엇보다 몸이란 들인 노력의 시간만큼 정직하게 변화로 돌려주는 것이었다. 오늘 달리고 내일도 달리면 언젠가는 더 멀리 달릴 수 있었다. 정답처럼 얻을 수 있는 보상이었고 주도해서 얻을 수 있는 성취였다. 그러므로 앞서 느낀 감정의 정체는 그 공식이 무너졌음을 인정해야 하는 데서 오는 씁쓸함이었다.

게다가 PC 모니터를 바라보며 일하던 업무 환경에서 ‘스마트폰’이라는 만능 도구가 더해진 지 수년이 흐른 참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SNS에 게시물을 올리며 경제 활동을 했고 가족의 원활한 일상을 위해 수시로 소비 활동을 했으며 육아를 위한 정보 찾기에 골몰했다. 한쪽으로 쏠린 채 구부정한 몸으로 하루 종일 작은 화면을 마주했다. 코로나라는 희대의 바이러스는 휴대폰 노동을 강화시켰다. 실제로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한 여성 가족 연구원이 20~30대 여성 500여 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돌봄 스트레스는 증가했고 신체 운동은 감소한 반면에 스마트폰 사용량은 70%가량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맥킨지&컴퍼니는 “2021년 여성의 번아웃 현상이 남성보다 심각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학교와 정부가 분담하던 육아가 가정의 책임이 되자 여성에게 부담이 가중된 탓이었다. 사람의 몸은 삶의 축소판이고 소진된 몸은 숨 쉴 틈 없는 삶을 수시로 상기시켰다.

“건강한 정신이 훌륭한 육체를 만든다거나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담긴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통용되지는 않는다.” 사무직 노동과 가사 노동에 허덕이는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오랫동안 봐온 뷰티 컨설턴트 백지수가 더 이상 몸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전해온 말이다. 몸을 스스로 핸들링할 수 없을 정도로 자극이 많은 시대에는 정신력이나 운동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얘기였다. 헬스 업계에서는 자율신경계부터 들여다봐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는 추세이고, 내장 기관부터 다스려야 한다는 내장 도수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물리적인 치료 차원에서 방어적으로 주로 행해지던 도수치료를 모든 근골격계 문제의 대부분이 내장의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점에 주목해 발전시킨 사람은 장 피에르 바렐이다. 더클리닉 김명신 원장은 여성에게 가해진 노동이 일으킨 신체 변화에 공감을 드러냈다. “예전에는 움직여서 의식주를 해결했다면 지금은 그때에 비해 걷는 움직임이 확연하게 줄어들었어요. 1980년대 영화로 나왔던 E.T.의 눈이 커다랗고 머리는 크며 손가락은 길게 그려졌던 이유는 당시에 상상한 미래의 우리 모습이기 때문이에요.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며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다 보면 E.T.처럼 변하리라고 본 거죠. 실제로 우린 온종일 휴대폰을 손에 들고 사는 호모 텔레포네스(Homo Telephones)의 삶을 살고 있어요. 사무직 여성은 업무 시간의 대부분을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바라보며 일해요. 척추에 가해지는 디스크의 압력이나 복압은 앉아 있을 때가 제일 높아요. 변한 몸을 다시 효율적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장기를 포함한 도수치료도 필요하고 운동도 해야 해요.”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장기는 자율신경계의 지배를 받으므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로 장기도 영향을 받는다. 과중한 업무 중엔 소화가 되지 않는다든지 신경이 예민해지면 바로 설사 같은 증상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장기부터 달래주는 치료가 필요하다. 물론 내장 도수치료가 장기만 만지는 건 아니다. 흔히 알고 있는 도수치료처럼 근골격계도 함께 케어한다. 가령 어깨가 틀어지면 심장의 물리적 텐션도 달라지고 몸의 긴장도가 다 같이 높아지므로 골격과 장기가 모두 제자리에 있게끔 안과 밖을 동시에 풀어줄 필요가 있다. 다만 내장을 직접 움직일 순 없기 때문에 이를 감싼 근육과 근막을 대신 운동시키는 것이 내장 도수치료의 핵심이다.

더불어 이곳에서는 발바닥 감각을 인지하는 훈련 등으로 이어가며 삶의 방식을 들여다본다. 어떻게 숨을 쉬어야 하는지, 어떻게 발을 디뎌야 하는지부터 우리 몸을 살피고 처음처럼 하나씩 다시 시작한다. 그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숨을 쉬고 이동하기 위해 걷는 게 아니라, 긴장된 몸을 이완시키고 틀어진 자세를 바로잡기 위해 숨 쉬고 걷는 법을 다시 말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새롭게 보이는 건 또다시 내 몸이다.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그저 노동에만 급급하며 사용된 구부정한 몸. 타인이 나보다 문제점을 더 잘 아는 몸. 돌보지 못한 사이 중력으로 흘러내린 몸. 내 몸을 본 물리치료사는 이대로 두면 곧 디스크가 찾아오고 피로 해소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거울에 비친 몸에는 반복되는 하루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다행히 치료는 즉각적인 개선 효과를 제공했다. 딱딱하던 내장이 다소 부드럽게 풀리자 신기하게도 허리와 고개가 전보다 더 큰 각도로 돌아갔다. (물론 치료와 훈련을 반복해야 유지될 것이다.) 내장까지 열이 전달되는 파란 장갑을 낀 치료사가 배를 조물조물 주무르며 장기를 둘러싼 장막까지 닿는 과정은 공상과학영화에서 봤을 법한 미래의 치료법처럼 느껴졌다. 편리한 시대는 우리 몸을 퇴화시켰지만 의학 기술은 대비를 하고 있었다.

여성 사무직 노동자의 직업병은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VDT 증후군(Visual Display Terminal Syndrome)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컴퓨터나 휴대폰 사용으로 인해 신체에 가해지는 무리에는 개인적인 오락 행위도 섞여 있어 앞으로도 노동으로 인한 신체 변화로 인정받을 길은 요원하다. 그래도 적어도 자기 관리의 영역으로 치부하며 스스로든 타인에게든 몰아붙이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거기서 새로운 비극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얼마 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초현실주의 거장들: 로테르담 보이만스 판 뵈닝언 박물관 걸작展>에서 만 레이의 복원된 비너스(Vénus Restaurée)를 한참 바라봤다. 만 레이는 비너스 여신상을 줄로 둘둘 감아 속박을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그를 진정한 자아로 복원시켰다. 신체에 가해진 노동과 짐이 우리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하는 오늘의 아이러니. 비록 변해버린 신체를 예전처럼 의지만으로 돌이킬 순 없어도 유예시킬 순 있다. 사무직 노동자 인형 엠마와 같은 나의 몸도 구부정한 허리를 펴고 목을 집어넣으며 다시 똑바로 걸어 나갈 수 있다. 아직 내 몸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VK)

에디터
조소현
포토
©Man Ray 2015 Trust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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