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지각변동을 이끄는 24인 Part 4
변화의 색깔은 늘 파랗다. 시대의 지각변동을 이끄는 24인을 소개한다. 언덕을 넘어 바람이 불어온다.
몸에 그린 환상, 윤다인
기묘한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작업을 한다. 페이스 페인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소개될 때도 있지만 나를 가장 잘 형용할 수 있는 단어는 ‘일루전 아티스트’. 회화부터 조형물, 설치미술에서 퍼포먼스까지 플랫폼은 다양하다. 나의 작품에 붙일 수 있는 키워드는 환상, 독특함과 자극.
신체 캔버스 2015년 처음으로 모델 몸을 캔버스 삼아 그림 그리기 시작한 것이 내 얼굴과 손 위에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아트 작업으로 이어졌다. 미술을 공부하던 어린 시절부터 ‘뭘 해도 나는 잘할 거야’라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무엇’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정말 많았다. 뻔한 길은 가기 싫었으니까. 학교 다니는 틈틈이 여러 아르바이트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 잘하는 것들,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갖게 됐다. 그를 바탕으로 시작한 개인 작업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이후 한가람미술관, LP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은 물론 여러 브랜드와 영광스러운 협업까지도.
뉴욕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주는 도시. 가족이나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닌데, 나와 잘 맞는 도시에 살며 작업하고 싶다는 막연한 의지 하나로 머물게 됐다. 겁 없이 무작정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연고지를 옮기기 위한 과정을 겪은 기억이 생생하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각각 다른 기운을 느꼈지만 뉴욕만큼 편안한 곳은 없었다.
엘런 드제너러스 쇼 모든 아티스트가 그렇듯 정성을 쏟은 작품을 전부 아끼지만, 그중 가장 뿌듯한 순간을 안겨준 작품의 이름은 ‘헤어 네일’. 손톱에 내 얼굴을 그리고, 머리카락을 붙여 2017년 미국의 대표 토크쇼 NBC <엘런 드제너러스 쇼>에 출연하는 영광을 안았다. 제의가 왔을 때 처음에는 얼떨떨했다가 너무 기뻤고, 나중엔 정말 욕심이 났다. 실제로 방송 이후 지인들의 반응이 달라지기도 했다.
열여섯 내게 영감과 끊임없는 자극을 가장 많이 주는 사람은 열여섯 살의 나 자신이다. 누군가는 너무 어렸다고 말할 수 있지만, 가장 순수한 마음의 성공 의지로 가득했다. 그때 하고 싶은 것, 의지를 다지는 글을 적은 나만의 ‘꿈 노트’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지금도 슬럼프가 올 때면 그 시절의 내가 지금 나를 바라봤을 때 떳떳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는다.
멀티 유니버스 최근 꽂힌 책의 제목(멀티 유니버스, 브라이언 그린 저).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을 표지에 그리기도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무대미술을 전공할 때부터 물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관심사도 반영해 언젠가 ‘대지미술’처럼 스케일이 큰 작업을 하고 싶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 형태와 플랫폼이 무엇이 됐든, 꾸준히 창작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비주류 지향 크리에이터, 홍찬희
올라운더 본업은 회화를 전공하는 대학생. 그런데 뮤직비디오 감독이기도 하고, 앨범 재킷에 드로잉을 그리기도 한다. 스타일리스트로도 일하고 가끔은 패션 브랜드 룩북 모델로 활동할 때도 있다. 사진을 찍을 때도 있다. 먼 훗날의 이야기일 것 같지만 언젠간 음악을 프로듀싱하고, 영화를 제작하고도 싶다. 어쨌든 지금보다 더 넓은 분야로 나아가고 싶다. 활동 범위가 지금보다 좁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2001년생 코로나 시대에 대학에 입학한 2학년 2학기생이다. 학교생활과 맞물려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조금 색깔은 다르지만 서로 영감과 영향을 주고받을 때도 있다. 이번 학기에 들은 ‘디지털 아트’라는 수업의 자유 과제물로 라이브하게 촬영한 이수호의 뮤직비디오를 제출했다. 반응은? 대면 수업을 거의 경험한 적이 없어서 학교에서의 캐릭터는 딱히 없지만, 아는 사람들에겐 확실히 ‘특이한 작업을 하는 애’로 알려져 있다.
바밍타이거 얼터너티브 K-팝을 추구하는 크루 ‘바밍타이거’ 소속으로, 프로듀서인 산얀 형이나 오메가 사피엔은 동네에서 친해진 지인들이다. 놀면서 다양한 작업을 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일원이 되었다. 평소 나에게 가장 큰 자극과 영감을 주는 사람들이다.
저예산 복고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이 주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왕가위, 기타노 다케시가 감독한 영화를 자주 보는데, 등장인물이 너무 멋있어 보이면 비슷하게 따라 입을 때도 있다. 주로 구매하는 곳은 중고 마켓으로, 키워드를 통해 검색하고 거래를 완료한다. 최근에는 ‘한일 월드컵’ ‘2002년’을 검색해 ‘비 더 레즈’ 티셔츠를 구매했다. 할아버지가 캠코더나 카메라 구매에 관심이 많았는데 사용하진 않아서 장비는 오롯이 내 차지가 되었다. 그것들로 소위 ‘날것’ 느낌이 많이 나는 콘텐츠를 촬영하고 편집한다. 저예산 뮤직비디오가 주는 매력은 즉흥적이라는 점이다.
반(反)유행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남들이 관심 없어 하는 것, 나만이 갖고 있는 것, 내가 제일 먼저 발견한 것들이다. 재개발되지 않은 동네의 건물, 오래된 이발소, 요즘 눈여겨보는 ‘버섯 덕후’ 사진가의 계정, 페이크 다큐멘터리. 그런 것으로 영감을 얻을 때가 많다. 그렇게 만든 결과물은 구태의연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 것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든, 어떤 결과물이든 사족을 달지 않을수록 더 빛을 발한다.
수집벽 구글링을 통해 강박적일 만큼 이미지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것을 즐긴다. 하나의 카테고리로 여러 이미지가 모이면 시리즈처럼 SNS에 포스팅한다. 멋있으니까.
헤어로 꿈꾸는 판타지, 이현우
비현실적인 이제는 내가 쌓아온 포트폴리오의 윤곽이 어느 정도는 보이는 것 같다. ‘Unreal’ ‘판타지’ ‘꿈’. 이 세 가지 키워드로 컨셉을 전개한다. 세상에 ‘헤어 스타일링’을 하는 사람은 너무도 많고, SNS에서 보여주는 작업의 수는 더 많지 않나.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컨셉이나 디자인은 이제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기존 것에 사람들이 쉽게 도전하지 않는 요소 하나를 더하는 방식으로 재창조를 지향한다. 최근 유튜브로 신소재 관련 콘텐츠를 보고 있다. 흡수되지 않는 물, 끓여서 마음대로 반죽하는 플라스틱 등 헤어 소재는 그야말로 무한하다.
뷰티 올림픽 중학교 때부터 네일 아트를 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입시 미술은 메리트가 없다고 생각해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해보자는 결심으로부터 시작했다. 강사 자격증까지 따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국가 자격증을 다루는 종목으로 경기를 하는 기능 올림픽에 출전했다. 네일 아트, 메이크업, 왁싱 등 아홉 개가 넘는 종목에 참가했는데 단 세 명을 선발하는 국가 대표까지 됐다. 런던 기능 올림픽 출전 자격부터 주택, 연금까지 보장됐지만 과감히 포기했다.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물하나에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동경하던 나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의 길을 따랐다. 그의 이름은 귀도 팔라우(Guido Palau).
나쓰야 가모 나의 세계를 넓게 확장시킨 헤어계의 거장. 과거 백스테이지에서 그를 어시스트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두 눈으로 경험한 그의 기상천외한 헤드피스는 내 삶의 터닝 포인트였다. 헤어 스타일리스트는 커트와 펌, 염색만 잘하면 그만인 줄 알았던 내게 세상은 넓고,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도 많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꽃 나의 첫 작업이라고 부르는 ‘플라워 스터디’라는 화보의 모티브. 꽃을 보면서 연상되는 대로 다양한 색감과 소재로 헤드피스를 만들었다.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주제다. 최근에는 깃털을 활용해 꽃봉오리에서 영감을 얻은 헤어스타일을 시도했다. 요즘은 테라리엄에 꽂혀 있는데, 언젠가는 작은 나무로 정글과 바다가 담긴 헤어를 만들어볼까 한다.
사진가 조기석 자주 작업을 하는 동료이자 친구지만 내게 가장 자극이 되는 인물. 그는 언제나 나보다 두 수 앞을 내다보고, 자기가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절대 놓지 않는다.
헤어의 기록 독특한 시도는 많이 해봤지만, 아직까지 ‘내 것’이라고 확신할 만한 헤어는 없다. 나만의 색깔과 방향성을 찾는 것이 목표다. 지금은 인스타그램 피드의 한 줄이 채워지도록 같은 컨셉의 작업물을 세 장씩 업로드한다. 헤어가 내 인생 자체인 것처럼, 언젠가는 나만의 헤어 북 한 권을 만들어 기록하고 싶다.
약간 이상한 3D 크리에이터, 김민예
누데이크 새롭고 색다르지만, 맛있는 디저트를 3D로 구현하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한다. 주로 외주로 작업하는 애니메이션 회사에 몸담았다가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변화가 빠른 패션계로 이직했다. 하지만 역시 기획자로, 또 크리에이터로 본질에 집중한 것들을 창조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짧지만 서사를 담은, 뉴스 포맷의 신선한 누데이크의 콘텐츠를 본 뒤 이곳에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듯했다. 그래서 직접 찾아갔고, 입사하게 됐다.
열등감 스스로를 표현할 때 맨 먼저 튀어나오는 단어. 본래 사진을 전공했다. 학과에서는 사진이 쇠퇴하고 디지털 영상이 떠오르던 시기였다. 새로운 걸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지만, 결국 포트폴리오에는 사진도 영상도 특화된 게 없었다. 열등감은 치솟았고 방황이 이어졌다. 그리고 새로운 뭔가를 익혀야겠다고 고심한 끝에 첫 회사에서 배운 것이 렌더 라이팅과 컴포지터 두 가지 포지션을 지닌 3D 기술이었다. 그곳에서는 단순히 3D를 기술로 보지 않고, 그림 그리듯 예술의 영역으로 넓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트레이닝했다. ‘내게 없는 것’ ‘해보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감과 열망이 순간순간의 행보를 결정했다.
이상하지만 본질적인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은 특성상 10초 내에 하이라이트만 짧고 굵게 보여줘야 시선을 붙잡을 수 있다. 독특하고, 재미있고, 기발한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너무 예술적이거나 이상한 세계로 빠져선 안 된다. 제품의 본질만큼은 유지해야 홍보의 목적도 달성할 수 있으니까. 테슬라와 관련된 우주 뉴스가 이슈였을 때, 로켓 발사 장면에서 우리 제품 ‘콜리 케이크’의 영감을 얻었다. 케이크에 장식된 아스파라거스는 로켓처럼 솟아오르고, 발사 후 생기는 연기는 콜리플라워 모양으로 변한다. 기이한 매치지만 제품의 외형적 본질만큼은 강조한, ‘약간’만 이상한 발상이었다.
심해 세계 인상 깊은 댓글을 본 적 있다. 사람들은 새로운 걸 찾고자 지구 바깥의 우주로 시선을 돌린다고 말이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 우리가 땅을 밟고 있는 지구도 깊숙이 파고들면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심해의 생명체는 과장된 3D 기술로 제작한 듯 새롭고 이상하다. 다음 콘텐츠의 영감이 되지 않을까.
여자 친구 3년 만난 여자 친구는 나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설렘이라는 감정을 돌이켜봤을 때, 같은 성별이라는 이유로 밀어내고 차단했던 마음의 벽을 허물게 해줬다고 할까. 졸업 전시 작품으로 인연을 맺은 그녀는 당시 르 라보의 ‘상탈’ 향수를 입었는데, 더없이 강렬했다. 컬러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그래픽 디자이너이기에 일에서 조언을 구할 때가 많다. (VK)
- 에디터
- 조소현, 김나랑, 김다혜, 송가혜, 신은지
- 포토그래퍼
- 대니 림(Danny Lim), 레스, 윤송이, 이규원
- 스타일리스트
- 애슐리 차오(Ashly Tsao)
- 헤어
- 기요노리 수도(Kiyonori Sudo@L’Atelier NYC), 김아영, 임안나, 이은혜
- 메이크업
- 마리코 아라이(Mariko Arai@The Wall Group), 김아영, 안세영, 이은혜
- 프로덕션
- 박인영(@Visual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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