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도슨트] 하종현은 무엇을 ‘접합’하는가
하종현의 개인전 <Ha Chong-Hyun> 관람 전 당신이 알아야 할 것.
국제갤러리 하종현의 전시장에 가면, 정말이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을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젊은 관객이 노화백이 화면 위에 부려놓은 에너지에 놀란 듯한 기색입니다. 대표적인 단색화 작가인 하종현의 작업은 그중에서도 단연 가장 역동적이고 실험적일 겁니다. 회화의 표면에 내려앉은 두꺼운 물감과 그 위를 묵직하게 가로지르는 또 다른 물감은 입체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평면 작업임에도 조각에 버금가는 생생한 물성이 느껴져서 손을 뻗어 만지고 싶을 정도입니다. 회화는 작품 표면을 통해 이를 보는 현재의 나 자신에 집중하게 하는 힘을 갖지만, 하종현의 작품은 더 나아가 이에 전제된 노동과 시간, 즉 행위와 역사성을 응시하도록 만들죠. 아마 젊은 관객이 구순을 앞둔 거장의 작업에 매료되는 것도, 과거와 현재를 다이내믹하게 아우르는 예술의 본질적 힘을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하종현 작가는 지난 60여 년 동안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유화를 다뤄왔습니다. 한국의 근현대 시대상과 당대를 사는 예술가로서 지닌 철학 등을 비전통적 재료와 비전형적 방식으로 실험했죠. 특히 작가는 1960~1970년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마대 자루나 철조망 같은 일상적인 재료를 작업에 적극 도입합니다. 곡물을 담던 성긴 마포를 캔버스 대신 자신만의 주된 재료로, 이 마대 자루의 뒷면에 물감을 바르고 중력을 거슬러 앞면으로 밀어 넣는 방식인 ‘배압법’을 주된 방법론으로 택합니다. 물감은 단순히 색을 나타내는 재료가 아니라 물질 그 자체로 화면에 고착됩니다. 여기에 직접 홰에 불을 붙여 그림 표면을 그을리는 독특한 기법으로 인위적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깊이 있는 색상을 구현하고요. 지난 1974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지속되는 하종현의 대표작이 바로 <접합(Conjunction)> 연작입니다.
단색화가 전 세계 미술계에서 보편타당한 미술 흐름으로 인정받으면서, 해외의 많은 미술사학자와 평론가들은 하종현의 작품과 서구 미술 사이의 유사점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이 생경하고도 근사한 추상화의 근원이 궁금했던 거겠죠. 그때마다 하종현 작가는 “그저 나만의 기법을 발견하려고 했을 뿐이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일생에 걸친 그의 예술 인생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는 동시에 서양 작가와의 무조건적 비교를 거부하고, 중요하게는 본인 작품을 모든 억측과 예측으로부터 ‘보호’하여 온전히 살아 있게 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접합’이란 서로 다른 둘이 합쳐진다는 뜻입니다. 작가의 행위와 물성의 만남, 캔버스 앞뒷면의 만남, 회화와 조각의 만남, 형태와 본질의 만남 그리고 이 모두를 포함하고 뛰어넘는 하종현이라는 예술가의 작업과 삶의 만남으로 읽힙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만든 <이후 접합(Post-Conjunction)> 연작도 선보인다 하니, 노화백의 기운찬 실험과 시도는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군요.
<Ha Chong-Hyun>
2022년 2월 15일부터 3월 13일까지, 국제갤러리 서울점 전관
- 글
- 정윤원(미술 애호가)
- 사진
- 안천호, 국제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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