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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환, 은반 밖에서

2022.03.21

차준환, 은반 밖에서

피겨스케이팅 선수 차준환이 은반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방을 만들었다.

블랙 컬러 싱글 버튼 롱 재킷과 포켓 디테일 스트라이프 셔츠, 페이즐리 프린트 쇼츠는 에트로(Etro).

벌써 밤이네요.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끝났지만 매일 훈련하고 있죠. 그 외 스케줄은 되도록 저녁으로 미루고요.

운동이 본업이니까요. 대회마다 아쉬웠던 점을 채우려고 훈련을 놓지 않으려 해요. 연이어 프랑스 세계선수권대회도 있고요. <보그>는 평창 올림픽 때도 함께 했고 좋아하는 매체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큰 대회를 치러도 온전히 휴식하기 힘들죠. 미디어의 출연 요청도 많고요.

다른 활동을 하면 운동에 집중 못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도 있지만, 저는 훈련을 우선으로 하고 나머지 시간에 ‘리프레시’해요. 피겨에만 계속 집중하면 지칠 수도 있으니 오늘 촬영처럼 재밌는 일과로 긍정적인 힘을 받죠. 바람을 쐰다고 해야 할까요?

어떤 조언도 필요 없을 만큼 척척 촬영에 임해서 놀랐어요. 피겨가 표현 예술이라 이리도 자연스러운가 싶더군요.

칭찬을 들으니 자신감이 더 생기네요. 아무래도 익숙한 점이 있고, 무엇보다 제가 패션 촬영을 즐기는 편이에요.

그린 컬러 니트 베스트와 뒷부분 포켓이 포인트인 데님 팬츠, 로고 디테일 미니 사이즈 크로스백은 에트로(Etro).

쇼핑은 즐겨 하나요?

직접 사러 갈 시간은 없지만 종종 찾아봐요. 어릴 땐 어머니가 권하는 대로 걸쳤지만, 요즘엔 방송이나 라디오에 출연할 때 입을 옷을 직접 선택해요. 댄디, 오버핏, 어두운 계열의 옷을 좋아하는 편인데, 날씨 때문인지 요즘은 밝은색에 끌려요.

오늘은 검은색 오버핏 후디에 조거 팬츠를 입었군요. 베이징 동계 올림픽의 쇼트와 프리 의상도 소재와 비즈로 변화를 줬지만 상하의가 검은색이었어요. 피겨 의상을 디자이너와 세밀하게 상의한다죠.

의상도 창작의 일환이거든요. 프로그램 컨셉, 음악을 듣고 느낀 점, 표현하고 싶은 부분 등을 디자이너와 이야기 나누면서 의상을 고민해요. 이 음악에는 어떤 색이 어울릴지부터 하나하나 만들어가죠.

집업 재킷과 블루 컬러 칼라가 포인트인 버튼 셔츠는 코스(COS).

피겨 프로그램의 스토리텔링도 직접 구성을 하더군요. 동작 하나하나 의미를 담아서요. 안무가와 코치가 대부분 만들어준다고 아는 사람도 꽤 있어요.

예를 들어 이번 시즌 쇼트프로그램은 ‘시간 여행을 하는 지휘자’를 표현해봤어요. 악기를 형상화하는 동작이 많고, 특히 엔딩을 많이 고민했는데 원곡 ‘Fate of the Clockmaker’에는 없던 한 음을 믹스해서 팔을 뻗는 피니시 동작을 만들었어요. 악기를 하나씩 모아 오케스트라를 완성한 지휘자처럼요.

스토리텔링 과정을 얘기하면서 무척 신나 하네요.

굉장히 즐겨요. 평소에도 음악을 들으면서 자주 상상해요. 한 음악에 여러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죠. 직접 동작을 해보며 스토리를 쌓아가기도 하고요.

페이즐리 프린트 시폰 셔츠와 퍼플 컬러의 광택 소재 데님 팬츠, 핑크 컬러의 스퀘어 ‘크라운미’ 플랩백은 에트로(Etro).

민트 컬러가 돋보이는 플라워 프린트 셔츠와 팬츠, 화이트 컬러의 스퀘어 미니 ‘크라운미’ 플랩백, 네온 컬러 스트랩이 포인트인 스니커즈는 에트로(Etro).

평소에도 공상을 많이 하는 편인가요?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꽤 자주 해요. 비행기가 흔들리면 누구는 ‘무섭다’ 정도로 끝나지만, 저는 비행기에 구멍이 생겨 빨려 나가면 안전벨트를 어떻게 활용할지처럼 자세히 시뮬레이션하죠. 상상이 무인도로 떨어진 후의 삶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상상력이 풍부하기에 스토리텔링도 잘할 수 있는 거겠죠. 책도 가까이하나요.

어릴 때는 꽤 읽었고, 피겨를 하면서는 좀 줄었지만 여전히 찾아봐요. 프리에서 <투란도트> 음악을 선곡하면서는 오페라 관련 만화책을 봤고, <로미오와 줄리엣> 사운드트랙을 했을 때(2018 ISU 피겨 그랑프리 파이널)는 해당 작품의 대사 모음집을 읽었죠.

핑크 컬러 니트 스웨터와 그린 컬러 울 팬츠, 페이즐리 프린트 민트 컬러 ‘크라운미’ 플랩백은 에트로(Etro).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때 만 16세 4개월로 남자 싱글 선수 중 최연소로 참가했죠. 그때와 체격이 달라요. 물론 키도 컸지만, 4년 전엔 풀잎처럼 하늘하늘한 느낌의 선수라면, 오늘 만난 차준환은 근육도 많이 붙고 다부진 기운을 줍니다. 일부러 체형을 변화시켰나요?

4년 전 영상을 보면 지금과 확실히 체형이 다르더라고요. 전에는 마른 몸으로 좀 더 가벼운 느낌의 스케이트를 탔다면, 지금은 힘 있는 점프를 위한 맞춤 지상 훈련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근육량이 늘고 몸이 변한 듯해요.

한때 차준환의 다이어트 식단이 화제였어요. 소금을 치지 않은 소고기와 채소 한 줌, 현미밥 약간이 다였죠. 몸이 가벼우면 스핀과 턴 등 기술을 수월하게 구사하고, 넘어질 때 부상 확률도 적다고 들었어요. 반대로 근육을 키울 때의 장점이 있죠.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어려울 듯해요.

맞아요. 힘은 있되 가벼워야 하죠. 그 균형을 잡아가기가 정말 쉽지 않아요. 단거리와 장거리 육상 선수의 근육 형태를 봐도 차이가 보일 거예요. 운동마다 맞는 몸의 형태가 있죠. 요즘 제 방식은 잘 먹고 더 많이 운동하는 것이죠. 지난 4년간 느꼈는데, 지방이 너무 빠지면 힘이 없더라고요. 채울 건 채우고 근육이 너무 커지지 않게 근력과 유산소를 병행하려 해요.

당연한 얘기지만 역시 운동선수는 자기 몸을 끊임없이 관찰하는 직업이군요. 곧 철저한 자기 관리를 의미합니다. 여덟 살 때부터 13년간 피겨를 해오면서 절제가 습관이 됐을 듯해요. 먹고 싶고 놀고 싶고 하루 거르고 싶은 욕망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죠? 시간이 지날수록 좀 편해졌나요, 아니면 여전히 난관일까요?

항상 같은 스케줄로 임했기에 익숙해요. 어떤 친구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또래와 노는 것이 일상이라면, 저는 훈련하고 집에서 쉬고 다시 훈련하는 시간을 보내왔죠. 가보지 않은, 경험하지 않은 일에선 큰 욕망이 없어요. 내가 보낸 피겨의 시간 속에서만 욕망이, 목표가 생겨요.

가벼운 코튼 소재의 그린 컬러 반팔 셔츠와 테리 소재 브라운 컬러 쇼츠, 이너로 매치한 블루 컬러 티셔츠, 삭스, 슈즈는 코스(COS).

보통 피겨 선수의 활동 기간은 20대 초·중반, 길게는 20대 후반입니다. 어릴 때부터 달려온 목표의 결과가 이른 나이에 결정되니 장단점이 있겠죠.

훈련이 반복되다 보니 10대가 정말 빨리 지나갔어요. 그렇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순간순간 세세하게 기억하고 진심으로 느끼고 싶어요. 2018년 올림픽에 첫 출전하고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 나가는 영광을 누렸는데, 그 큰 이벤트가 저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어요. 경기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내면이 긍정적으로 성장했죠. 그렇기에 어린 시절부터 피겨를 한 것에 후회도 단점도 없어요.

평창 올림픽과 비교하면 선수뿐 아니라 사람 차준환도 크게 성장했네요.

그렇죠. 2년 동안은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코치와 떨어져 한국에서 혼자 훈련했어요.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어떤 순서로 훈련할지 스스로를 면밀히 살피고 결정해야 했죠. 덕분에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됐어요. 사실 전에는 나를 실제보다 좋게 평가하기도 했거든요. 자신에게 솔직해지니 나머지는 더 빨리 이뤄지더라고요.

화이트 컬러 재킷과 그린 컬러 톱, 브라운 컬러 울 팬츠, 골드 컬러 체인 네크리스는 코스(COS).

악재를 좋은 쪽으로 발현시켰네요. 차준환 선수를 두고 “힘든 훈련도 재미있어하고 스케이팅을 즐긴다”는 평을 많이 합니다.

훈련을 크게 보지 않고, 세부 과정 하나하나에 집중한 덕분이죠. 예를 들어 훈련할 때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단 ‘지금은 에지를 이렇게 쓰는구나’ 순간과 ‘디테일’에 집중하죠. 그래야 몰입도 잘되고 재미있어요. 한 바퀴씩 해나가는 작은 성취감이 매일을 이어가게 하죠.

그래도 매일 반복하기란 쉽지 않잖아요.

자세히 살펴보면 하루하루가 달라요. 같은 연습은 없고 매번 결과는 다릅니다. 제가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방법이에요.

언제부터 이런 태도를 갖게 됐나요?

평창 올림픽 즈음 같아요. 그때부터 스케이팅을 더 즐기게 됐죠.

“세상이 너무 아름답다” “너무 행복하다”는 확신에 찬 감상도 종종 하죠. 긍정이 몸에 밴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런 편이에요.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한 달 동안 미국에서 훈련했는데, 오랜만의 해외 생활이라 좀 힘들더라고요. 다행히 안무가 선생님과 안무를 창작하는 과정이 있어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어요. 태어나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 또 한 번 감사했어요.

다크 그린 컬러 집업 블루종과 테리 소재 브라운 컬러 톱, 이너로 매치한 레드 컬러 톱, 블루 컬러 울 팬츠, 삭스, 선글라스, 화이트 스니커즈는 코스(COS).

피겨스케이팅뿐 아니라 다른 창작 활동에도 관심이 많아 보여요.

피겨스케이팅 하나만 몰두해왔기 때문에 비시즌이나 후에 시간이 나면 여러 분야에 도전하고 싶어요. 워낙 배우길 좋아해요. 지금은 힙합 댄스가 어떨까 싶은데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숨은 고수처럼 혼자 만족하며 춤추고 싶어요.

여덟 살 때부터 한 가지 일을 해왔으니 여러 세계를 접하고도 싶겠죠. 배우나 모델 쪽은 관심 없나요?

어릴 때 배우 일을 하다 피겨스케이팅으로 넘어왔기에, 후에 다시 해보면 어떨까도 싶어요. 어릴 때 못다 한 꿈에 다시 도전한달까요(웃음).

포켓이 포인트인 그린 컬러 코튼 셔츠와 브이넥 슬리브리스 톱, 옐로 컬러 스윔 팬츠, 삭스는 코스(COS).

동계 올림픽의 미래에 걱정이 많아요. 현재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2080년 동계 올림픽은 기존 21개 개최국 가운데 한 도시에서만 가능하다죠. 낮은 품질의 인공 눈으로 충돌과 부상 위험도 늘고요. 선수로서 환경에 관심이 많을 것 같아요.

누구나 해당되지만 특히 동계 올림픽 선수에게 환경은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죠. 당장 큰일은 할 수 없을지라도 되도록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텀블러를 들고 다니려 해요. 작은 실천이지만 사소한 것이 모여 큰 힘이 되리라 믿으면서요. 선수로서뿐 아니라 앞으로도 늘 더 신경 쓰려고요.

최종적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나요?

피겨스케이팅 선수로서 바라던 과정을 잘 마친 뒤 여러 분야를 배워보려고요. 한마디로 나를 즐기며 살고 싶어요. (VK)

네이비 컬러 포켓 디테일 코튼 셔츠와 이너로 매치한 스트라이프 티셔츠, 레이어드한 밝은 바이올렛 컬러 버튼 셔츠, 코튼 배기 팬츠, 옐로 컬러 비니, 삭스, 슈즈는 코스(COS).

네이비 컬러 포켓 디테일 코튼 셔츠와 이너로 매치한 스트라이프 티셔츠, 레이어드한 밝은 바이올렛 컬러 버튼 셔츠, 코튼 배기 팬츠, 삭스, 슈즈는 코스(COS).

블랙 컬러 집업 블루종과 머스터드 컬러 버튼 셔츠, 핑크 컬러 톱은 코스(C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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