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역사를 구현하고 자아를 찾는 인테리어란

2022.04.07

역사를 구현하고 자아를 찾는 인테리어란

리버티 로스와 지미 아이오빈은 그들의 역사를 집 안에 구현함으로써 진정한 자아를 찾아간다. 롤러장과 빈티지 숍 같은 드레스 룸, 캔디 매장 인테리어는 그렇게 탄생했다.

리버티 로스가 자신의 LA 집 수영장 앞에 서 있다. 뒤편에 보이는 조각은 마크 퀸의 2014년 작 ‘바로크의 어원’이다.

결혼식에서 검은 옷을 입고 스스로를 살짝 ‘고스(Goth) 스타일’이라 묘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신부에게, 모델이자 배우에서 작가로 변신한 검은 머리의 리버티 로스(Liberty Ross)는 언뜻 믿기 힘든 태양 숭배자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로스는 메이플턴 하우스(Mapleton House)의 햇살 가득한 정원 풍경을 품은 방에 강하게 끌리는 사람이다. 그녀는 LA에 자리한 프로방스 스타일 사유지에서 은퇴한 음악 사업가 지미 아이오빈(Jimmy Iovine)과 함께 살고 있다.

월리스 네프(Wallace Neff)가 디자인을 맡은 이 집 뒤편 한적한 곳에 로스의 행복한 공간이 있다. 거의 8,000㎡에 달하는 쭉 뻗은 잔디밭에 캘리포니아 스타일을 살짝 가미한 전형적인 영국식 정원이 그것이다. 두 아이를 둔 엄마 로스는 이런 정원에 대한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스타그램에서 영국식 정원 계정을 정말 많이 팔로우하고 있어요”라고 고백했다. 옅은 노란색 레이디 뱅크스 장미꽃이 백합 연못 두 곳 사이 공간 위쪽을 덮고 있으며, 토종 풀과 깔끔하게 정리된 회양목을 불규칙적으로 심어놓아 구불구불 물결 모양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영국 조각가 마크 퀸(Marc Quinn)의 ‘바로크의 어원(The Etymology of the Baroque)’이다. 카틀레야 난초(Cattleya Orchid)를 기념비적으로 표현한 조각은 수영장을 내려다보는 듯한 위치에 자리했는데 집 안팎으로부터 시선을 잡아끈다.

원래 메이플턴 하우스는 배우 조안 베넷(Joan Bennett)을 위해 1937년에 지은 집으로, 당시에는 실내외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지는 않았다. 아이오빈은 로스를 만나기 전인 1990년부터 이 집의 리모델링을 故 샌디 갈린(Sandy Gallin)에게 맡겼다. 샌디 갈린은 아이오빈의 친구이자 배우의 매니저이며 저명한 실내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다. 로스는 갈린의 리디자인 색상에 대해 “온통 버섯 색깔이었죠”라고 말했다.

‘Born To Run’과 ‘Don’t Do Me Like That’ 같은 인기곡을 프로듀싱했던 카리스마 있는 프로듀서인 아이오빈은 리디자인을 하고 얼마 있다가, 작곡자이자 뮤지션인 로스의 오빠 애티커스(Atticus)를 통해 버버리를 대표하는 모델이자 푸른 눈의 부끄럼 많은 로스를 소개받았다. 아이오빈은 로스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싶었지만 당시 로스는 어떤 관계도 맺고 싶어 하지 않았다. “데이트할 기분이 아니었죠”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렇지만 인터스코프 레코드(Interscope Records)의 공동 설립자 아이오빈이 로스의 딸 스카일라(Skyla)가 자신의 회사에 소속된 아티스트 칼리 레이 젭슨(Carly Rae Jepsen)의 곡 ‘Call Me Maybe’에 푹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기회를 포착했다. 그는 로스와 그녀의 아이들을 콘서트에 초대해 젭슨을 만나도록 주선했다. 그들이 콘서트에 참석했을 때 아이오빈은 자신의 신조를 이야기했다. “매일이 ‘와우 데이(Wow Day)’가 되어야 합니다.” 그가 말했다. 로스는 하루 종일 ‘와우’가 없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물었고, 아이오빈은 준비한 대답을 했다. “스스로 그런 날이 되도록 만들어야죠.” 아이오빈의 말은 로스에게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인상을 남겼고, 결국 둘은 커플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로스의 아이들 스카일라와 소니까지 행복한 집을 만들어가고 있다.

메이플턴 하우스는 1937년에 지어졌다.

로스가 디자인한 드 고네(de Gournay) 벽지가 거실에 평화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와우’의 한 가지 예는 로스와 아이오빈의 아트 컬렉션이다. 로스는 아이오빈의 멘토이자 이제는 이 커플의 친구인 데이비드 게펜(David Geffen)이 고상한 세상을 소개했다며 고마워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로스와 아이오빈은 그들 나름대로 예술에 대한 안목을 키웠다. 그리고 인종과 부정의 관련 문제를 탐구하는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 타이터스 카파(Titus Kaphar), 나다니엘 메리 퀸(Nathaniel Mary Quinn) 같은 현대 흑인 아티스트의 작품을 구매했다.

로스는 메이플턴 하우스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직접 맡았다. LA와 런던을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재료를 사용해 인형의 집을 지으며 인테리어에 푹 빠져 있었다. 그렇지만 인형의 집과는 거리가 먼 메이플턴 하우스는 미로 같은 방을 자랑한다. 방은 17~33칸 정도로 추정된다. 정확한 숫자를 묻자 로스는 “저도 이런 집에 살아본 적이 없어요. 압도당했다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압도당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 1분도 안 걸렸죠”라고 말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샌디 갈린이 탄생시킨 뉴트럴한 리디자인은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갈린이 저희에게 빈 캔버스를 선사해준 것이나 다름없었죠.” 로스가 말했다. 사진가 닉 나이트(Nick Knight)와 故 맷 어윈(Matt Irwin)의 협업을 통해 탄생한 이 영국 패션 아이콘은 그 캔버스의 분위기를 밝게 바꿔놓기 시작했다. 집 정면에 있는 어두운 방을 윤기 나는 화이트 페인트로 칠했고, 정원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끌어들이기 위해 거울로 된 표면을 사용했으며, 루샤(Ruschas)와 허스트(Hirst) 컬렉션이 돋보이도록 박물관 조명을 설치했다.

다른 사람들이 메이플턴 하우스의 한계점이라고 지적한 곳에서 로스는 가능성을 보았다. 낡은 접이식 사다리로 들어갈 수 있는 텅 빈 다락이 갈리아노, 구찌,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 로스가 지금까지 수집해온 다양한 옷을 수납하는 꿈의 옷장이 되었다. LA에 사는 대부분의 엄마들처럼, 그녀의 일상복 역시 주로 티셔츠와 데님이다. 그렇지만 로스는 빈티지 드레스를 걸치고 정원을 거니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존 갈리아노의 드레스를 수집하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저는 아주 오랫동안 그와 함께 일했죠. 그는 다른 사람과 달리 드레스를 재단하죠.”

로스는 파리 스타일 아틀리에에 놓인 선반 사이에 아늑한 로프트 침대를 설치했다.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옷장에 수납된 옷은 멜로즈 애비뉴의 최고급 빈티지 매장과 견줄 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로스는 풍성한 수집품을 기꺼이 공유하고 싶어 한다. “제 의붓딸들과 딸들, 제 여동생과 엄마까지 사이즈가 모두 비슷하죠. 그래서 여기 다 같이 모여 한껏 꾸미는 게 진짜 재미있어요.”

로스는 방 한 칸씩 차례대로 메이플턴 하우스를 리노베이션했고, 드디어 올해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각 공간을 정의하는 것이 핵심이에요. 그리고 가족으로서 그 공간을 사용하는 방법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요.” 로스는 마지막 공간 중 하나를 아이오빈에게 선물했다. 그 공간에 대한 영감은 그녀의 개인사에서 비롯되었는데, 차고를 자그마치 롤러장으로 바꿔놓았다.

로스의 부모 이안 로스(Ian Ross)와 록사나 번티 램슨(Roxana ‘Bunty’ Lampson)이 다섯째 자녀인 리버티가 태어난 후 미국으로 이주한 이유는 바로 롤러스케이트 때문이었다. 바퀴 위에서 움직이며 리듬을 타는 것이 실제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은 이안은 1979년 웨스트 할리우드의 번잡한 사거리에 ‘플리퍼의 롤러 부기 팰리스(Flipper’s Roller Boogie Palace)’를 오픈했다(이안은 열일곱 살에 자동차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게 되면서 ‘플리퍼’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뒤 몇 년 동안 플리퍼 롤러장은 ‘할리우드 즐거움의 중심지’로 유명해졌다. 로스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클럽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 어린아이였다. 그렇지만 그 도시에서 20년을 살면서 플리퍼를 좋아하던 사람들을 매일 만났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플리퍼’라고 말하면 화들짝 놀라곤 했죠.” 그곳을 좋아하던 팬들이 보여주는 격한 반응을 보면서 로스는 ‘그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나를 완전히 새로운 길로 이끌었네’라는 생각을 했다.

그 길은 가족이 얇은 스크랩북에 보관하던 클럽 회원 사진 20장에서 시작되었고, 로스가 어렵사리 모은 전 세계 플리퍼의 열렬한 지지자의 사진 3,000장, 그리고 인터뷰와 에세이를 한데 모으는 것으로 일이 커졌다. 로스가 감행한 이 사랑스러운 수고는 올가을 아이디어 북스(Idea Books)를 통해 멋진 탁자용 책자로 출간될 예정이다.

이제 로스와 아이오빈은 인테리어가 마무리된 그들의 집과 그들만의 롤러 부기 천국을 즐긴다. 그리고 몇 달간 롱비치에서 롤러스케이트 수업도 듣고 있다. 수없이 많은 밤, 그들은 그 차고로 내려와 빙글빙글 돈다. “저희는 다섯 살 꼬마처럼 웃어대죠.” 로스가 말했다.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것이 자유와 관련 있다는 사실 알아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가는 거예요.” (VK)

차고를 개조해 드류 메리트(Drew Merritt)의 벽화가 인상적인 롤러장으로 탈바꿈시켰다. 한쪽은 아이오빈이 어린 시절 좋아하던 브루클린 캔디 매장과 똑같이 꾸며놓았다.

디자인과 컬러가 다채로운 로스의 핸드백 컬렉션.

로스는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의 ‘소멸의 방(Obliteration Room)’에서 영감을 받아, 아이들에게 지하실 놀이방에 스티커를 붙여서 꾸미도록 했다.

거실 한복판에 걸어둔 작품은 브라이스 마든(Brice Marden)의 ‘어바웃 베어(About Bear)’(1996~1997)이다.

에디터
조소현
Jen Wang
사진
목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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