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이 믿는 것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이 마음의 해결사라는 대명사로 떠오른 건 스스로조차 의심한 우리 내면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광부처럼 그 절대적인 힘을 캐내는 덕분에 상처투성이 마음에 딱지가 생기고 아문다. 오은영 매직의 정체는 오은영의 믿음이다.
안식년인데 더 바쁘게 지내시는 듯 보입니다.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 같은 방송, 꾸준한 집필 활동, 유튜브 등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하는데 나름대로 부여하는 가치가 있어요. 특히 일대일의 만남에서 어떤 증상을 파악하는 일은 의사로서 가장 중요해요. 그런데 가장 큰 에너지가 들기도 해요. 의사 생활을 한 지 만 31년인데, 더 잘하기 위해 재충전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코로나 팬데믹이 온 거예요. 전 미숙아로 태어나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얘길 듣고 자랐어요. 32주 만에 2kg도 안 되게 태어났지만, 똘망똘망하고 씩씩하게 잘 컸어요. 의과대학도 갔고 의사도 돼서 먹고살고 있죠. 사랑으로 키워주신 부모님, 저를 가르쳐주신 많은 선생님과 어른들, 또 의사로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신 스승님들, 저와 소통한 수많은 환자분과 그 가족이 있어요. 사회나 국가가 보호해준 면도 있죠. 그래서 나도 죽기 전에 뭘 하고 죽어야지 하는 마음이 있어요.
사명감에 가까운 마음이네요.
사명감이란 표현은 조금 거창하지만 그런 마음이 있어요. 2020년 5월 4일부터 2021년 5월 3일까지 딱 1년 동안 네이버 오디오클립에 ‘오늘, 육아회화’를 매일 올렸어요. 팬데믹 위기에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하는데 한 방울의 힘이라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네이버 팀에 직접 제안했어요. 집에서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어깨가 더 무거워졌잖아요. 아이를 사랑하지만 여전히 집에서 아이를 대하는 방법에는 각자 생각이 달라요. ‘자식을 사람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정답은 없지만 방향은 있어요. 누구나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는 초급자의 마음으로 네이티브 스피커를 따라 한다는 데 착안해서 ‘육아회화’를 떠올린 거예요. 365개 클립을 매일 올리며 ‘내가 매일 이 약속을 지키듯 여러분도 사랑하는 대상에게 작은 변화를 주도록 약속합시다’ 이런 마음이었어요. 쉰다고 해놓고 무슨 일을 그렇게 많이 하냐고들 해요(웃음). 안식년을 통해 얻고자 하는 건 결국 휴식인데, 전 마음의 휴식 중이에요. 저를 찾아오는 분들, 심지어 죽을 만큼 힘들다고 하는 분도 마음을 따라 들어가면 다 내면의 힘이 있어요. 전 제가 광부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가치 있는 삶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스스로는 모르지만 제게는 보일 때가 많거든요. 광부가 석탄을 캐듯 저는 그 힘을 찾아내요. 그 과정을 쭉 해나가며 저 역시 힘을 얻고요. 조금 다른 형태로 저 역시 내면의 힘을 회복하는 중이에요.
<한국일보>에 ‘오은영의 화해’도 꾸준히 연재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일요일마다 쓰는 이 글이 스트레스 해소가 된다고 말씀하신 적 있어요.
인터뷰를 하다가 박선영 기자가 영국 <가디언>지에서는 큰 지면을 할애해서 사람들 내면을 다루는데 우리는 그런 기사가 없어서 안타깝다고 제안해서 시작했는데 벌써 7년이 넘어가고 있어요. 처음이 기억나요. 독자들이 사연을 보내서 신청하는데 그 사연을 읽으면서 막 눈물이 나더라고요. 내가 뭐라고 이렇게 아픈 이야기를 솔직하게 보내주실까. 절대 쉽지 않을 텐테. 그렇다면 사연 하나하나를 정말 귀하게 다뤄야겠다 했어요. 정성스럽게 그분들을 마주하는 심정으로 써나가기 시작했어요. 쉼 없이 2주에 한 번씩 해오다 보니 어느덧 제 삶의 일부가 됐어요. 책임으로 무겁지만 기쁜 마음으로 시작했고 진심을 다해서 소통하고 있어요. 사연을 보낼 때는 더 좋은 쪽으로 극복해보려는 마음이 있는 거잖아요. 저는 좋은 영향이 갔을 때 사람이 바뀐다고 믿어요.
내면의 힘을 만나는 또 다른 루트군요.
맞아요. 접근 방식이 다양할 뿐 목적은 하나예요. 자기를 이해하는 과정, 주변의 가까운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 인간의 공통성을 이해해보는 과정이에요. 이해뿐 아니라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고민해보는 것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써클 하우스> 등으로 어른 마음까지 확장해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송이 정신건강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데 도움이 되는 듯합니다. 특히 웹툰이나 드라마 캐릭터에 문제가 있을 때 달리는 ‘오은영 선생님 모셔와’ 같은 댓글을 보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 의학적 도움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겼음을 느낍니다.
제 개인의 노력만이라고는 전혀 생각 안 하고요. 솔직히 말하면 한 방울의 힘은 보탠 것 같아요(웃음). 정신과에 대해 편견이 많았던 건 사실이에요. 저희 과는 선배들부터 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해왔고 그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았죠. 아주대학교 교수로 있을 때는 경기도 오산에 있었는데 만날 빨간 바지 입고 유관진 시장님 찾아가서 “어린이들에게 신경 써야 20년 후가 바뀐다”고 닦달했던 기억도 나네요(웃음). 시장님이 흔쾌히 받아들여 예산 따주셔서 우리나라 최초로 오산시에 어린이정신건강사업, 어린이정신보건사업도 시작했어요. 그렇게 경기도 다른 지역, 전국으로 퍼져나갔고요. 지금은 오산이 엄청난 신도시지만 당시엔 초등학교가 8개교뿐이었는데, 어떤 집 애들이 만날 밥도 못 먹고 엄마한테 맞는 것 같다 보건소에 연락 오면 박미경 간호사랑 같이 허허벌판을 가로질러 막 찾아갔어요. 애들 불러서 확인하고 부모 불러다가 교육하고 그렇게 열정적으로 했어요. 개인도 자신의 정신건강을 관리해야 하지만 국가가 체계를 만들어서 누구나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만날 부르짖고 다녔어요.
다큐멘터리 <내가 알던 내가 아냐>에서 유관진 시장님을 오랜만에 만나시기도 했죠.
제작진이 만나고 싶은 사람 물어봐서 유관진 시장님이라고 했죠. 옛날에 갔던 두루치기집에서 만났는데 ‘오은영 박사님 오산 방문!’ 플래카드 붙여놓고(웃음). 시장님 만났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저뿐 아니라 편견을 깨고자 했던 동료, 선후배가 정말 많았어요. 2003년에 개원한 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만났어요. 11년간 전국을 다니면서 아이한테 부모는 아주 중요한 대상이라는 것, 그래서 아이가 힘들어할 때는 부모가 잘 배워서 아이를 지도해야 한다는 얘길 많이 했어요. 그리고 절대 때리지 말라고 했죠. 그때 수거해온 매가 어마어마했어요. 효자손, 전깃줄도 있었고요. 파리채, 구둣주걱, 의자 다리까지 다 가져다 버리면서 애들 절대 때리지 말자고 했어요. 사실 저는 정신과 전문의예요. 거기에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과정을 더 한 건데요. 만날 ‘수정란부터 100세까지!’라고 말하는데 맞거든요. 아이를 이해하면 인간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많은 도움이 돼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문제의 원인을 찾고 바꾸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는 아이와 부모를 성장시키는 데 중점을 더 두고 있어요. 방송으로 아이들 뒤에는 언제나 부모와 어른이 있다는 인식은 많이 생겼어요. 팬데믹 위기에 청년들, 어른 금쪽이까지 확장해가고 있는데요. 처음부터 목적은 언제나 ‘사람을 이해해보자’예요. 그러다 보니 정신과를 조금 편하게 생각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방송에서 연예인이 공황장애, 우울증 얘길 하니까 쉬쉬하기보다 편하게 받아들이는 면도 있고요.
‘오은영 선생님을 어릴 때 만났으면 내 인생도 달라졌을까?’ 자조 섞인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진짜 달라졌을까요? 인생은 길어도 중요한 시기는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럴 수도 있다고 봐요. 저는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장한다고 보는 사람이에요. 누군가가 이 사람한테 좋은 영향을 줬더라면 조금 더 편안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죠. 일대일 상담은 자기를 이해해 남을 이해하는 거라면, 책이나 방송은 타인,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모습을 통해서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에요. ‘오은영 선생님한테 가야겠다’에는 ‘의논할 수 있는 어른’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봐요.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그런 역할을 하시는 분들이 되게 많아요. 그분들과 진지하게 자신을 살펴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남과도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사실 힘들 때 주변에 가장 먼저 털어놓기 마련인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그런 존재가 주변에 없어져요. 반대로 주변 사람들의 반복된 고민을 들어주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요.
마음이 힘들 때 가까운 사람한테 말하는 게 맞아요. 근데 그 이야기를 오랜 시간 반복해서 한다면 지속적으로 의논해나갈 사람을 찾아야 해요. 그게 우리의 직업적 역할이니까요. 저는 외과 의사가 피를 좋아한다고 표현해요. 피를 보고 치료할 부위를 찾아 들어가야 목숨을 구해요. 그렇듯 정신과 의사나 심리 상담가는 누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기꺼이 감당해요. 주변 사람은 아끼는 마음에 한두 번은 고민을 들을 수 있지만 뿌리가 깊은 문제는 반복하게 돼요. 전문가는 그 말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듣지만 지인은 힘들어요. 요즘 다양한 형태로 시설과 기관이 있으니 잘 찾아보는 편이 좋아요. 결국 자기가 자기를 잘 돌봐야 하잖아요.
우울증을 호소하는 20~30대 여성을 많이 봅니다. 그동안 병으로 인정받기도 힘들었는데 이들의 어려움을 살펴보는 인식이 조금씩 생기고 있죠. 그동안 청년을 살피며 특히 20~30대 여성이 겪는 문제를 어떻게 보셨나요.
의학적 통계를 보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정도의 우울을 경험하는 비율이 전체 인구 중 20%라고 봐요. 우울한 게 절대로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에요.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보자면 상실이 우울을 불러일으키는 큰 요소예요. 돈을 떼였다, 사랑이 배신을 때렸다, 집이 망했다, 이런 것도 다 상실인데요. 저는 남녀 차별이 명확하던 시대를 살았어요. 어떤 과는 대놓고 여자 의사를 뽑지 않는다고 하던 때니까요. 지금 20~30대는 여전히 어려움은 있지만 그래도 전체 흐름은 조금 더 나아진, 법적으로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명시한 사회에서 교육을 받았어요. ‘나는 이렇게 컸지만 자식은 잘 키울 거야’ 하는 부모 아래 자랐는데 거기 집중하다 보니까 자식 입장에서는 ‘조건이 붙는 자신’을 경험하며 자랐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공부를 잘해서 엄마는 네가 정말 좋아’ 같은 칭찬이 다 조건이거든요. 들었을 때 행복하지만 해로운 행복이기도 해요. 공부 열심히 하면 나중에 잘 살 수 있다고 듣고 자랐는데 막상 사회에 나가보니 공부가 배신을 해요. 집에서는 ‘우리 딸 최고다’ 들으며 컸는데 사회에는 여전히 불합리와 부당함이 존재해요. 이런 면에서 힘들어하는 여성이 많아요.
그러다가 결혼이라도 하면 상실감은 더 커져요.
결혼하면 행복이 두 배가 되어야 하는데 부모 밑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못하는 게 많은 거죠. 회사 다니면서 가끔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돈 모아서 좋은 지갑도 사고 그랬는데 결혼 후에는 쉽지 않죠. 그러다가 애 낳은 친구를 보니 돈을 떠나서 시간과 노력과 애정과 정성을 다 쏟아야 하는 거예요. 그런 상황이 너무 두려운데 ‘모성애가 없는 걸까?’ 이런 생각까지 하면 더 괴로워요. ‘엄마는 날 사랑하고 키웠는데 전 소시오패스인가요?’ 이렇게 물어보는 경우도 있어요.
그 배경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요.
최근에 든 생각은 20~30대가 수시 세대란 점이에요. 수행평가는 과목 선생님마다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둬요. 이들은 그 룰에 따르고 같은 반이나 같은 학년 아이들을 경쟁자로 여기며 자랐어요. 그런데 회사에 가니 출근 시간부터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거예요. 9시라고 해서 맞춰서 갔더니 일찍 다니라고 한 소리 듣는 거죠. 이런 작은 것부터 벽에 부딪혀요. 물론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어요. 아이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려고 만든 수행평가라는 제도가 오래 지속되면서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이제 살펴봐야 해요. SNS도 영향을 많이 준다고 봐요. SNS는 아주 디테일한 삶까지 언제나 타인과 나를 비교하게 해요. 비교 상대는 가까운 사람만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예요. 그런 데서 상대적으로 자존감이 떨어지죠.
얼마 전 밀레니얼의 번아웃을 다룬 책 <요즘 애들>을 읽었어요. 부모 세대가 노력하면 얻을 수 있다고 약속한 것을 사실 얻기 힘들다는 걸 깨달은 후 시대를 원망하는 마음이 커졌어요. 그런데 불평해봤자 일상은 달라지지 않아요. 사회의 변화를 꾀해야 하지만 좌절감만 더 깊어져요.
인구수도 적은 집단이 기성세대를 먹여 살려야 하고 세금을 내야 하는 입장이에요. 기성세대는 기꺼이 내놓을 수 있어야 해요. 연금 좀 덜 받고 젊은 세대가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악순환은 끝나지 않을 거예요. 젊은 세대에게는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이 절대 행복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고 싶어요. 삶을 무너뜨리지 않고 유지해나가려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기억하고 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사회는 변하겠지만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으니 개인은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아가야 해요. 그 최선은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게 아니라, 오늘 하루 감당할 수 있는 선까지예요. 잠깐 스쳐가는 행복을 놓치지 말고 사전처럼 한 장 한 장 쌓아가세요. 절대 어떤 조건이 다 갖춰졌을 때만 행복해지는 게 아니에요.
“너무 비장하게 하지 마라”라고 하신 말씀과 같은 맥락으로 들려요.
유튜브 ‘오은영의 버킷 리스트’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나같이 연식이 오래된 사람도 시작하는 게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함이에요. 그냥 해봤다는 의미가 커요. 우리가 비장하게 매진하는 것 중 사실 본인이 원하는 게 아닌 게 많아요. 지금도 썩 괜찮은데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으니 되게 안쓰럽죠. 전 청년들에게 “‘우아, 포도 진짜 신선하다’ 하고 보면, 아직 익지 않은 알도 있고 썩거나 찌그러진 알도 있다. 그렇지만 전체 포도는 신선하다고 느껴진다”고 말해요. 사람은 부분의 합이에요. 맘에 안 드는 것도 있지만 괜찮은 것도 합쳐서 총체적인 나로 느껴야 해요. 돈은 대기업의 오너와 비교하고 몸매는 모델과 비교하고 머리는 또 누구와 비교하면 당해낼 재간이 없어요.
버킷 리스트 실천을 시작한 후 실제로 일어난 일상의 변화는 무엇인가요.
작은 변화가 있겠지만 그날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죠. ‘그냥 해보는 게 무슨 의미예요? 밥이 돼요, 떡이 돼요, 쌀이 돼요?’라고 묻는데 너무 그렇게만 삶을 보지 말자는 의미도 있어요. 얼마 전에 남보라 씨와 방송을 하다가 친해져서 셀프 스튜디오에 가서 인생 샷을 남겼는데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몰라요. 젊은 친구들이 “박사님은 좋은 학교 나왔고 의사이고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올라가 있잖아요”라고 해요. 그러면 전 “맞아! 맞는데 너무 인생을 성과로만 보지 말라”고 말해요. 나의 버킷 리스트는 직업이 아니라 꿈이에요. “왜 꿈의 횃불을 꺼트리니”라고 하죠(웃음).
행복이 상태가 아니라 순간의 감정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최근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사실 <보그> 촬영도 되게 재밌었는데요. 앵무새와 촬영하면서 교감했다니까요. 처음 어깨에 앉았을 때 불안해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편안해하는 게 느껴졌어요. 제가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알아차리더라고요. 그래서 가만있어주고 울면 ‘괜찮아, 괜찮아’ 얘기해주고요. 이름이 ‘해피’라고 하길래 ‘해피!’ 불렀더니 ‘해피! 해피!’ 답하더라고요. 굉장히 즐거운 하루였습니다(웃음).
촬영 중 40대까지 <보그>를 정기 구독한 얘기를 들려주셨어요.
늘 세상이나 사람들한테 관심이 있어요. 사람들이 밖으로 표현하는 것도 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재미있어요. 봄이 되어 바뀌는 옷차림을 보면, 사람들은 이렇게 타인한테 보여주고 소통하는구나 하죠. 향수를 뿌릴 때는 자기가 그 향도 맡지만 다른 사람한테 어떤 향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거든요. 내면의 표현이 패션, 뷰티니까 관심이 아주 많죠.
‘여왕 스타일’로 불리는 헤어스타일을 항상 당당하게 유지하는 모습에서 멋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외적으로 자신을 가꾸는 것은 어떤 기분을 선사하나요.
이 머리 하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마스크 쓰고 나가도 다 알아봐요. 농담처럼 언감생심 머리라도 미스 코리아 스타일로 한다고 얘기하는데, 사실 제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해요. 미용실 안 가는 날은 현대판 에디슨인 다이슨을 돌려서 비슷하게 합니다(웃음). 패션에 관심이 아주 많고 옷 사는 것도 엄청 좋아해요. 좋은 옷도 사지만 홈쇼핑에서도 많이 사요. 특히 바지는 홈쇼핑이 최고죠. 나름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어서 새 옷도, 몇십 년 된 옷도 입어요. 옷을 좋아하는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형 옷 입히기를 좋아했어요. 패브릭 만지기도, 바느질도요. 뜨개질도 자수도 잘하는 편이에요. 샤넬 매장의 오픈 런이 늘 화제인데 코코 샤넬 여사가 살아 계신다면 그분을 꼭 찾아가서 만나보고 싶어요. 여자들을 옷에서 해방시킨 면을 굉장히 리스펙트해요.
코르셋과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던 시절이었죠.
코코 샤넬이 의상에서 장식을 걷어내고 여자들이 바지를 입고 나서 사회 진출이 많아졌는데 그건 개혁이에요. 샤넬 백이 가진 상징적 의미도 커요. 가방을 어깨에 메면서 손이 자유로워졌고 포켓도 많아서 편리해요. 퀼팅이 견고해서 오래 쓸 수 있고요. 제가 들고 온 에르메스 버킨 백만 해도 2000년에 샀으니 22년이 됐어요. 소중해서 워낙 깨끗하게 사용하지만, 사실 치약부터 책, 태블릿 PC까지 온갖 물건을 다 집어넣고 다녀요. 한번 들어보세요.
엄청 무거운데요. 무슨 살림살이를 다 들고 다니십니까.
어디 가서 이틀은 충분히 지낼 수 있어요(웃음). 온갖 걸 다 넣고 1년 365일 들고 다니는데 지금까지 스티치 하나 뜯어진 게 없다면 이걸 만드신 분은 박수를 받아야 해요. 패션, 뷰티 모두 각자의 표현이에요. 우리 모두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로 만들어주죠. 그래서 전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몇 년 전부터 하이힐 대신 스니커즈나 플래폼 슈즈가 대세가 되면서 확실히 행동 반경이 넓어지고 자유로워졌음을 느껴요.
저부터도 신어야 하는 순간이 있어서 차 트렁크에 하얀색 힐과 검은색 힐을 싣고 다니지만 그 외에는 편한 신발을 신고 다녀요. 자기가 가진 것들을 좀 더 편안하게 발휘하게 하는 데 패션의 흐름은 굉장히 중요해요. 옷은 인간의 생활과 사회의 변화 혹은 개혁하고도 관련이 크다고 봐요. 20년 전만 하더라도 패션을 좋아하면 사치한다는 시선이 있었죠. 물론 고가 아이템도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술적 가치, 창조적 가치를 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 큰 우리는 이제 부모와 소통이 또 힘들어요. 부모를 변화시키는 건 불가능하므로 포기하거나 거리를 두죠. 도리는 하되 교감을 하진 않아요.
자식한테 부모는 제일 좋은 사람이지만 인생의 난제예요. 부모는 자식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주죠. 그렇다고 어떤 말이든 해도 되는 건 아니거든요. 부모 역시 미성숙하고 불완전해서 자식에게 상처를 주는데 절대 인정을 안 해요. 자식은 자신들이 받았던 상처를 얘기하고 싶어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면 불통이 시작되죠. 친구는 싫으면 안 만나면 되지만 부모는 피할 수도 없어요. 그러니까 부모님과 사이가 좋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늘 그립죠. 그런데 부모님과 사이가 어려우면 평생 서러워요. 수많은 청년들이 “이 세상에서 나에게 그렇게 마음 아프게 말하는 사람은 우리 엄마밖에 없어요”라고 말해요. 자식이 어른이 돼서 어린 시절 부모한테 받은 상처 얘길 하면 연세가 드신 부모는 서운해하고 억울해해요. ‘사랑했지만 상처를 받았습니다’ 얘기하는 건데, 자식이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셨어요?’ 말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요. 결국 그 얘기를 하면 반드시 싸우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힘들었던 마음을 그대로 두면 너무 아프니까 감정을 섞지 말고 그냥 밖으로 빼내서 얘기를 하세요. 부모님을 이해시키거나 바꾸기 위함이 아니라 그 말을 하고 자기 귀로 들으면 도움이 될 거예요. 이 모든 과정은 나를 이해하고 회복하는 과정이 되어야 해요. 좀 더 자기를 알아차리고 단단해지면, 부모님이 바뀌지 않아도 균형이 이루어져요. 상처를 준 건 부모라도 성인이 되면 회복은 당신의 몫이에요.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내가 나를 잘 케어할 수 있어야 해요.
한편 부모로서 자식은 끔찍하게 사랑하지만 우리 사회는 ‘노 키즈 존’ ‘초딩’으로 대변되는 어린이에 대한 무시, 그리고 모성애를 찬양하지만 맘충으로도 부르는 이중 잣대 역시 가지고 있어요.
우리는 학교에서 공부에 시간을 많이 보내는 국민이에요. 그런데 이 모든 배움이 대학 진학, 시험 패스에 집중되어 있어요. 사실 배움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다워지는 것’이에요. 어떤 일이 발생하면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는데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는 연습을 했으면 좋겠어요. 안 그러면 편견을 지닌 사람이 되거든요. 맘충이란 말을 하기 전에, 자식을 낳으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생각해보는 거예요. 노 키즈 존을 내세운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한 번쯤 깊이 생각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봐요. 아이들은 약자이고 심지어 투표권도 없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충분한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아이들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제가 악을 쓰는 거예요. 예를 들어 낯선 데 가면 아이들이 울어요. 그러면 ‘애 좀 조용히 시키지’ 또는 ‘왜 우는 애를 데리고 나와’라고 바라봐요. 시끄럽지만 아이는 자기 보호적인 불안이 높아져서 우는 거니까 그 마음으로 바라봐달라는 거죠. 애들이 뛰다가 부딪혀서 커피를 쏟으면 물론 당황스러워요. 그렇지만 ‘교육 좀 잘 시키세요’가 아니라, 애들이 키가 작으니 시야가 좁고, 움직임이 미숙할 수밖에 없으니 이해하자는 거죠.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자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특성을 알아차리자는 거예요.
평소 방송을 보며 필요한 진단을 어떻게 저렇게 따뜻한 말에 담아 전달할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어떻게 말하고자 한다는 방향성이 있을까요?
방송 대본에 제 칸은 완전히 비워져 있어요. 저는 미리 만나서 다 의논해요. 아이를 파악하고, 일상생활을 관찰해서 잘 알고 있죠. 방송에서 짜인 멘트를 하지 않아요. 아이에 대한 이해를 기본으로 딱 그때 필요한 말을 해요. 외워서 하는 멘트가 아니라서 어떨 때는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날 때도 있어요. 누구의 이야기를 듣거나 어떤 모습을 보고 ‘저래서 그러는구나’ 할 때 나오는 멘트예요. 그렇지만 진료실이나 상담실에서 몇 년씩 정기적으로 만나서 이해한 분이 아니잖아요. 좋은 의도로 하지만 제 말이 칼이 되어 날카롭게 찌르지 않도록 굉장히 노력해요. 어떤 말로도 사람을 재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려움을 같이 의논해가는 방향으로 갈 뿐, 사람의 됨됨이에 대한 얘기로 흘러가지 않도록 조심하고 애를 쓰죠.
엔데믹 전환을 앞두고 다시 세상을 대면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런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에 대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코로나 위기가 사그라들면 치열한 인간관계의 틈으로 다시 들어가야 해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의미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하는 사람들을 ‘애착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라 하는데, 인생에서 두서너 명이에요. 이들과 잘 지내는 게 행복의 중요한 조건이에요. 잘 붙어 있지 않으면 외롭고 너무 붙으면 집착이에요. 나머지는 ‘The Others’, 그냥 사람들이에요. 그중 ‘좀 가까운 사람들’ ‘잘 아는 사람들’이 있고요. 그래서 ‘출근해서 퇴근까지 싸우지 않고 자기 할 일 잘하고 오면 인간관계는 100점’ 그렇게 생각하면 돼요. 아이들이 친구가 없다고 하면 이렇게 얘기해요. “친구는 네가 울면 ‘왜 울어?’ 하는 게 친구야. 근데 너희 반 애는 학원 가야 해서 바쁘면 그냥 가. 착한 애라도 그래. 너희 반 애들이 다 친구는 아니야. 친구와 반 애들을 구별해야 해.” 그러니까 회사 생활에서도 그냥 동료와 친구 같은 동료는 구별해야 한다는 거죠. 발이 넓고 사람들하고 금방 잘 어울리는 걸 인생의 목표로 둘 필요가 전혀 없어요. 가까이 지낼 사람은 인생에 둘에서 여섯 명 정도 된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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