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욱과 이연희에게 ‘결혼’이란
결혼한 이연희와 결혼하지 않은 이진욱이 드라마 <결혼백서>에서 만났다. 그들만의 한낮 소풍.
이진욱의 좋은 모습을 보았다. 예의 바르고, 배려하고, 무엇보다 대화에 집중했다. 모든 배우가 그런 것은 아니며, 그래서 나는 그 태도가 특별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차를 개조해 만든 대기실에 있었고, 촬영할 때 입을 옷이 한쪽 벽에 가득했다. 평범해 보이는 멋진 의상. 여러 명의 이진욱 같았다. 이진욱은 카카오TV 오리지널 드라마 <결혼백서>에서 이상주의자 ‘준형’을 연기한다. 현실의 이진욱은 이해 안 되는 게 많다.
<결혼백서>가 결혼 준비 과정을 다룬 작품이더라고요. 미혼인데 공감했어요?
결혼한 이연희 배우의 조언을 많이 들었습니다. 들어도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있었고요. 진짜 이렇게까지 갈등이 생긴다고? 안 믿겼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기혼자들이 그렇다고 이야기하니 받아들였죠. 사람들 대부분은 저랑 생각이 다르더라고요. 제가 이상한 걸로 결론이 났어요.
예를 들면요? 배역 설명을 보니 진욱 씨가 맡은 ‘준형’이 이상주의자고, 이연희 배우가 맡은 ‘나은’이 현실주의자더라고요.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여러 가지를 해주는데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으면 그게 호의가 맞나요?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오해하실 수도 있으니 적어둘게요. ‘이진욱 씨 지금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라고. 이 드라마요, 결혼 앞둔 연인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요.
애틋한 사랑 이야기라면 재미없을 수도 있죠. 저희 드라마는 결혼 안 한 사람이 보면 많이 배울 거예요. 결혼을 앞두고 예민해지면 종종 어떤 일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겠더라고요. 미리 알고 있으면 갈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와 아들, 장모님과 여자 친구, 이렇게 만나는 장면이 있는데, 막 숨이 막혔어요.
숨 막힌다, 그 표현이 정확한 것 같아요. 저는 해봐서 알아요.
그런데 드라마에서 시어머니 입장, 장모님 입장을 나란히 이야기해줘요. 이런 부분은 알기가 어렵잖아요. 장모님이 상견례 자리에 나올 때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마치고 나서는 어떤 마음을 가지셨는지. 보여주니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 장모님이 서운한 말씀을 하셨는지. 교육 드라마 같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드라마보다 더한 일도 일어난대요. 참 재밌죠?
저는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 <불가살>이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안타까웠던 건, 여자 주인공과 사랑하는 감정 신이 나올 만하면 바로 또 악당을 물리치러 가야 하더라고요. 그 드라마는 멜로 장면이 꽤 볼만했거든요. 그래서 답답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저 장면은 더 깊이 들어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은 했어요.
굉장히 닫힌(이진욱이 ‘다친’이라고 말했을 수도 있다. 두 표현 다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적어둔다) 캐릭터를 연기했어요. 감정이 거세된. 그래서 보기에는 불편한 부분이 있었죠. 의도적으로 그렇게 표현한 거예요.
보면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쟤들 좀 사랑하게 내버려둬!
사랑하는 감정을 더 표현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고, 그래서 그 마음이 억눌려 있었죠. 시원하게 멜로 해보고 싶다는.
그래서 <결혼백서>를 선택했나요?
도움이 됐죠. 이렇게 평범한 이야기를 오랜만에 하는 거예요. 엄청나게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다룬 거라 제가 느끼기에는 상대적으로 편안해요.
평범한 이야기라고 했지만, 진짜 풍파는 현실에 있죠.
네, 맞아요.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감정을 다루는 거니까. 다만 지금의 저는 이 드라마에서 맡은 역할이 좋습니다. 나중에는 저 자신을 끝까지 몰아붙이는 역할을 하고 싶을 때도 있을 거예요. 계속 바뀌어요, 하고 싶은 것들이.
행복할 것 같은 역할과 변화를 위해 필요한 역할이 상충할 때 어떤 걸 선택하나요?
그것도 바뀌어요. 같은 걸 계속 하는 건 싫어요. 하지만 대중이 원하는 게, 그걸 계속 하는 것일 때도 있어요. 그런 기대에 부응하는 것 역시 저에게는 중요해요.
언젠가 <놀라운 토요일>에 나온 걸 봤어요. 밝은 컬러의 옷을 입은 출연진 가운데 유일하게 다크한 컬러의 재킷을 입고 있더라고요. 옷차림도, 전반적인 분위기도 잘 못 어울리는 것 같았어요.
예능 프로그램을 잘해보려 해도 매번 마음처럼 즐기지는 못하나 봐요. <불가살> 찍고 있을 때라 더 그랬을 거예요.
배우가 감정적으로 편한 직업은 아니군요.
그렇죠, 이상하죠. 사실.
여러 인생을 살아야 하니, 배우야말로 <불가살>이에요.
그게 막 완전히 살아지지는 않는 듯싶어요. 실제와 실제 아닌 것의 경계도 모호해요. 제가 인터뷰할 때마다 하는 이야기예요.
저도 배우들 인터뷰할 때마다 듣는 이야기예요. 매번 들어도 신기해요.
계속 작품을 하다 보면 이진욱으로 사는 시간은 별로 없어요. 이진욱은 누구지, 가끔 생각해요. 그리고 역할이, 괴물이거나 도둑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당사자거나… 그런 배역을 하고 나면 대미지를 입어요. 드라마 끝나도 사랑하는 여자가 죽은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어요.
그렇다면 반대로, 현실에서 슬픈 일을 겪었는데 그 경험을 드라마에서 이미 한 덕분에 마음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나요?
완전 그렇죠. 완전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힘든 작품이 끝나면 배우들이 서로 토닥이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이진욱 배우 나이대의 주연급 남자 배우가 드물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진욱은 항상 이진욱 같아요. 이진욱이 이진욱 같지 않은 지점이 이진욱에게 필요한 거 아닌가요?
그게 그러니까 어려운 문제긴 해요. 저는 그걸 장점으로 받아들였어요.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만족해요. 그리고 열심히 해요. 제가 극한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려고 애쓰는 편은 아니에요. 저는 한계를 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보통은 그걸 넘어서라고 말하고, 그래야만 하는 것같이 느끼잖아요. 배우도, 그래야 좋은 배우 같고요.
예전에는 죄책감을 좀 느꼈어요. 그런데 배우 말고 제 인생도 소중하잖아요. 제가 이런 감정을 작품 같이 한 작가님에게 이야기했어요. 제가 어떤 배우를 되게 부러워했어요. 그런데 작가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진욱 씨가 잘하는 걸 다른 배우는 못해요. 절대 못해요.” 저는 제 장점을 잘 살리고 싶어요. 그리고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오늘 인터뷰는 결말이 해피 엔딩이라는 <결혼백서> 이야기로 끝내겠습니다. 아까 결혼 준비 과정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했잖아요. 결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해주세요.
양가 부모님을 최대한 만나지 않기.
아, 찐이다.
네, 최대한.
대기 차량에 이연희가 앉아 있었다. 나는 달려 들어갔다. 어색함을 줄이려고. 빈 의자에 앉아서 인사를 했고, 이연희는 일어나서 의자를 20cm쯤 뒤로 뺀 후 다시 앉았다. 나는 그게 이상하지 않았다. 안정감을 느끼는 거리를 스스로 찾아가는 모습이라고 느껴서. 물론 그 전에도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그 거리만큼 감정의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몇몇 질문은 “제 친구가 그렇게 느꼈대요”라고 말하며 물었는데, 사실 그건 내 생각이었고, 그래서 녹취를 정리하면서 전부 고쳐 적었다. 이연희는 카카오TV 오리지널 드라마 <결혼백서>에서 현실주의자 ‘나은’을 연기한다. 현실의 이연희는 나은을 이해한다.
촬영은 어땠어요?
오랜만에 야외 촬영을 해서 색다르게 나올 듯해요.
궁금한 게 네다섯 개 정도 있는데 그거 중심으로 질문할게요. 작년에 연극했잖아요. 시도 자체가 인상적이었어요. 이연희가 연극을 한다.
시기가 맞았다고 할까요? 연극이 하고 싶었는데 <리어왕>이라는 작품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고, 이순재 선생님이랑 연기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배우들이랑 서너 달 가까이 준비하면서 연기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제 연기를 봐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 촬영할 때는 여유가 없어요. 현장에서 만나면 바로 촬영 들어가니까.
이연희 씨 팬들도 좋아했을 것 같아요. 가수가 라이브 하는 것처럼, 연극은 연기자의 라이브 공연이잖아요.
네. 그런데 저를 모르시는 관객이 많았어요. 어른들은 저를 잘 모르시잖아요. 저 배우 누구야? 궁금해하시면서 이연희라는 배우를 알게 되고.
관객 앞에 서면 평가받는 느낌이 들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어요. 항상 제일 늦게까지 남아서 연습했어요. 그리고 저는 연극 무대가 좋았어요. 컷 하고 끊는 게 아니라 무대 전체를 다 쓰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게 저랑 맞았어요.
다시 할 거예요?
네.
이런 말이 결례일 수도 있지만, 의외예요. 이제 드라마 <결혼백서>에 대해 질문하면, 이진욱 배우는 본인은 결혼을 안 했기 때문에 촬영하면서 공감이 안 될 때가 꽤 있었대요. 연희 씨가 많이 알려주었다고 하더라고요.
오빠가 현장에 와서 극 중 상황에 대해 이해 안 되는 부분을 말하면 감독님이랑 저랑 이렇게 저렇게 실제 상황을 얘기해줬죠. 그러면 “그래, 그렇게 이해를 해볼게” 하고 넘어가며 촬영하고 그랬죠. “사실은 이럴 수도 있어”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결혼을 했건 안 했건, 남자들은 결혼에 무지하죠?
그런데 남자건 여자건 결혼은 처음이잖아요. 처음 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여자도 모르는 게 많아요. 배우는 거죠.
어떤 걸 배우죠?
내가 알지 못한 내 가족에 대해. 남자 친구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그 답변은 연희 씨가 결혼에 대해 숙고했고 나름의 판단을 충분히 했다는 것을 짐작게 합니다. <결혼백서>의 리얼리티는 어떤가요?
아, 저는 대부분 일어날 만한 일이라고 느꼈어요. 서로에게 가족이 되는 거니까, 잘하고 싶고 그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실수를 하고요.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둘만의 행사라기보다 가족이 함께하는 성대한 잔치예요. 드라마는 그런 것들을 극대화해서 보여줘요.
연희 씨는 마치 인자한 훈장님처럼 결혼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해주는군요. <결혼백서> 포스터를 보니 연희 씨가 비현실적으로 예쁘고 밝더라고요. 지구인 같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다른 작품 포스터도 찾아봤어요. 다 그렇게 밝고 예쁜 모습이더라고요. 물론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었지만,
네, 그렇지 않은 작품도 했어요.
네, 맞아요. 그런데 대체로 예쁘고 밝아요. 이 세상 사람 같지 않다고 느낄 만큼.
저는 상황에 맞춰 계속 도전했어요. 이 역할을 했으니 다른 걸 해보자, 그걸 하고 나면 다시 다른 걸 하기도 하고, 다시 또 다른 걸 하고. 강한 이미지를 보여줘야겠다는 판단이 들면 그렇게 하고요.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모습이 두드러져 보였을 거예요.
2017년 <보그>와 한 인터뷰를 찾아보고 왔는데, 신기했어요. 현실의 이연희가 이연희라는 캐릭터 같아서요.
그런데요, 어떤 힘듦이나 고통을 제 안으로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고민한 시간이 당연히 있어요. 나름 결론을 내렸어요. 아름답게 보자. 부정적으로 보지 말자. 그리고 제가 고뇌라든지 고민이라든지, 그런 것들에 답할 질문을 많이 받지 않는 편인 것 같기도 해요. 아니면, 이미 제가 그런 시간을 지낸 후에 인터뷰를 했을 수도 있고요.
방금 한 말은 저를 충분히 이해시킵니다. 어릴 때부터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했고, 헤아려보면 긴 시간 타인의 주목을 받는 삶을 살았으니, 그걸 고려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죠. 말의 화살을 견딜 내성이 생기고도 남는 시간이잖아요. 뜬금없는 질문인데, 과거로 돌아가서 뮤지션과 배우 중 선택한다면 어떤 걸 하겠어요.
배우요. 배우로서 고민하고 나만의 것을 만들어내는 게 좋아요.
배우가 그런 직업인가요?
배우는 온전히, 내 캐릭터를 만들어내야 하니까요.
예능 프로그램 <세리머니 클럽>에 나온 걸 봤는데, 가수 김종국 씨가 연희 씨한테, 많이 편해진 것 같다고 말하는 거예요. 정말 10번도 넘게 했어요. 그래서 궁금했어요. 편해졌나요? 무엇에 대한 것이든.
예능 프로그램에 몇 번 나갔는데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뭐가 어려운 거예요?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 같은데, 진지하면 안 될 것 같고. 즐거워야 하고 웃겨야 할 것 같고. 그런데 결혼하고 난 후엔 여러모로 여유로워 보였나 봐요.
예능 프로그램이 질문의 요지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답변이 된 것 같아요. 인터뷰는 <결혼백서> 이야기로 끝내겠습니다. 결혼을 앞둔 부부가 보면 도움이 될까요? 질문이 제가 해놓고도 좀 이상합니다. 결혼 앞둔 부부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 같아서요.
이 드라마에는 각 회마다 넘어야 할 관문이 있어요. 보시면서 같이 그 관문을 넘어보면 좋겠어요. 결혼을 준비하는 시기는 그 어느 때보다 가족을 이해해야 하는 때예요. 그러니까 결국 가족에 대한 이야기예요, 이 드라마는.
아까도 가족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 말이 묘하게 재미있어요. 저는 결혼 준비 과정이 신경질적으로 느껴졌는데, 즐거운 과정이 될 수도 있는 건가, 생각도 들고. 그래서 저는 이 드라마를 볼 거예요. 머리 아플까 봐 안 보려고 했는데, 행복하게 극복하는 모습이란 게 어떤 건지 제 눈으로 볼 거예요. 그런데 아무리 도덕책처럼 말해도 ‘아, 이건 정말 이해 안 된다’ 싶은 게 있지 않았어요?
혼수요. 생각 이상으로 뭐가 그렇게 오고 가는 게 많더라고요.
다행이다. 이해 안 되는 게 없다고 하면, 정말 외계인 같다고 느낄 것 같았거든요.
설마요, 왜 없겠어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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