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와 <엘비스> 감독 바즈 루어만의 대화 “이 영화가 제 성장에 큰 영감을 주었어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없는 아티스트 로제와 <보그 오스트레일리아>의 객원 에디터로 참여한 영화 <엘비스>의 감독 바즈 루어만이 만났다. 루어만 감독의 영화가 로제에게 준 영감에 대하여.
“G’day!(안녕!)” 로제가 대표적인 호주식 인사를 건네면서 들어왔다. “세상에,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말해봐요. 왠지 행복하네요(웃음).” 붉은색이 도는 금발을 올려 묶고 셀러브리티의 상징적인 룩 중 하나인 러플과 스팽글이 달린 보디수트를 입은 채 다리를 꼬고 앉은 로제. 맞은편에는 <보그 오스트레일리아> 6월호의 객원 에디터인 작가주의 영화감독 겸 로맨틱한 비주얼리스트 바즈 루어만이 앉아서 그녀와 열띤 대화를 나눈다. 로제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다. <보그 오스트레일리아> 커버 걸이지만 자신이 글로벌 슈퍼스타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아주 침착한 톤으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강렬한 호주 억양의 영어로 말이다. 호주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호주에서 이 K-팝 스타를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문화적으로 그녀와 호주를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K-팝 스타가 호주를 떠나온 후 세계적인 슈퍼 스타덤에 오르는 과정은 이미 잘 알려졌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로젠 박은 7세에 호주 멜버른으로 이사한 후 큐에서 초등학교, 캔터베리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며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당시 피아니스트이며 여러 교회의 합창 단원이었던 10대 로제의 꿈은 K-팝 스타는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는 미술 선생님이 되거나 평범하게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음악을 사랑했지만 뮤지션이 되는 게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꿈이라고 여기진 않았거든요. 어쨌거나 ‘당장 오디션을 보러 갈 거야!’라는 식은 아니었죠. 꿈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정보를 수집하거나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어요. 모든 게 우연이었죠.”
하지만 100% 우연은 아니었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 살아가면서 처음에는 아웃사이더라고 느꼈지만 로제는 점차 적응했고 그 감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치환했다. 주변을 더 면밀히 관찰하고 수용할 줄 알게 된 것이다. “항상 주위를 둘러보았고 멋진 것을 찾아냈죠.” 결국 15세의 로제는 아버지의 권유로 YG엔터테인먼트 오디션에 참가했고 1위를 차지했다. 두 달 만에 연습생으로 합류한 그녀는 2016년 8월 지수, 제니, 리사와 함께 4인조 걸 그룹 블랙핑크의 멤버로 데뷔했다. 로젠 박이 로제가 된 것이다.
오디션부터 데뷔까지, 4년간의 연습생 시절 역시 주목할 만하다. 로제는 그 시간을 끊임없는 ‘투쟁과 도피’의 경험이었다고 표현했다. “이미 5년여 동안 밤낮으로 연습하고 있던 연습생 12명 그룹에 제가 합류한 상황이었어요. 연습의 강도가 정말 세다고 느꼈어요. 호주에 있는 친구들에게는 학교를 그만두고 음악 작업을 할 거라고 말했는데, 따라잡지 못하면 탈락해서 바로 호주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었죠.” 그렇게 로제는 ‘투쟁’하기로 결심했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도피’하면 불안해졌기 때문이었다. 견뎌내면서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고, 꿈을 마주하면서 버티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이미 호주를 떠나왔는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이지 죽을 만큼 연습했어요. 여기서 탈락하면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으니까. 잘해내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일분일초에 모든 걸 쏟았어요. 값진 노력이었다고 생각해요. 호주에서 멀리 날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더 큰 힘을 얻었고, 더 열심히 하겠다는 결의가 생겼어요.”
6년이 지난 지금, 25세의 로제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블랙핑크는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며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지난 몇 년 동안 레이디 가가, 셀레나 고메즈, 두아 리파와 협업했고, 2020년 발매된 <THE ALBUM>은 역대 한국 여성 가수 중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됐다. 로제는 솔로 아티스트로서도 급부상했다. 데뷔 앨범 <R>에 실린 곡 ‘On The Ground’는 발매 24시간 만에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한 뮤직비디오 싸이의 ‘젠틀맨’ 기록을 깨뜨렸다. 현재 ‘On The Ground’는 2억8,100만 이상의 유튜브 조회 수를 보여주고, 두 번째 수록곡 ‘Gone’의 조회 수는 무려 1억9,400만에 달한다.
로제는 자신의 성공을 창조적 욕구로 요약했다. 그녀와 함께 작업하던 아티스트들이 모두 공감하듯, 그녀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음악으로 옮기는 날카로운 집중력의 소유자다. “하루하루 표현하고 싶은 게 많은데, 예술을 통해서 말하는 중이죠.” 그건 그녀가 자신을 연예인, 아이콘 또는 그저 스타라기보다는 ‘장인’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술이라는 형식에서 저를 표현할 방법을 찾고, 표현하는 중이죠.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작업이 필요한 일이에요.”
이제 로제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할 줄 안다. 더없이 일상적이지만, 주어진 재료를 창조적이고 재치 있게 활용하는 브리콜라주 아티스트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이나 다른 지역 출신이라 저는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아직까지도 좀 독특한 사람 같고, 어색할 때가 있거든요.” 오클랜드 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멜버른 출신의 세계적인 슈퍼스타, 뉴질랜드인이면서 한국인이자 호주인 그리고 로젠 박. 하지만 로제는 그 다면성을 활용한다. “그런 개성을 가진 것에 매우 감사해요. 저만의 특색이니까요.”
이번 달 <보그 오스트레일리아>의 객원 에디터로 참여한 바즈 루어만 감독과 대화를 나누며 로제는 그의 최신작 영화 <엘비스>와 관련된 기억을 떠올렸다. “저는 디즈니 영화를 보면서 자랐어요.” 로제가 엘비스 프레슬리, 그 로큰롤(Rock ‘n’ Roll) 왕을 처음 보던 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애니메이션 <릴로와 스티치>(엘비스 프레슬리를 무척 좋아하는 ‘릴로’가 ‘스티치’에게 그의 음악을 가르쳐준다)를 보고 저와 동생은 완전히 열광했어요. 뉴질랜드에 살 때 호주로 가족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가는 길에 <릴로와 스티치> CD를 샀는데, ‘하운드 도그(Hound Dog)’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 곡을 제가 가장 좋아했나 봐요.”
로제는 루어만 감독의 영화 중 특히 한 작품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물랑 루즈>를 정말 사랑했어요! <물랑 루즈> 이후 감독님의 다른 영화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런 작품이 <물랑 루즈>, 니콜 키드먼과 이어지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죠.” <물랑 루즈>에서 니콜 키드먼이 연기한 관능적이면서도 순수하고, 보호받아야 할 것 같지만 더없이 전투적인 캐릭터 ‘샤틴’처럼, 정의할 수 없는 다채로운 매력이 결국 로제 자신에게도 늘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이 영화가 제가 여성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여전히 그렇게 되기를 꿈꾸고 있어요. 연약하면서도 강렬하며,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퍼포머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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