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애정하는 물건 5’ 헤어 스타일리스트 이현우_THE LIST
패션계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의외로 간단할지 모른다. 기본기는 탄탄하되, 이전 세대가 가던 길을 답습하지 않고 꾸준히,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헤어 스타일리스트 이현우는 이 심플한 법칙을 굳건히 지켜왔다. 그는 내추럴이든 가발이든 혹은 정교한 컬러링이 들어간 모히칸이든 어떤 시안을 가져다줘도 완성도 있게 만들어낸다. 여기에 아이디어를 더해 이미지를 자신의 스타일로 끌어가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이현우스럽다’는 말은 아티스트에게 더없이 좋은 찬사이자 오랫동안 타협 없이 일궈온 노력의 결실일 것이다.
이현우의 스타일은 처음부터 좀 달랐다. 다르다는 건 곧 낯설다는 의미였다. 모델이 예쁘고 멋있어 보이는 걸 넘어 이전에 어디서 본 듯한 이미지가 아니었다. 지난 몇 년간 이현우의 헤어 스타일링은 모델의 머리카락을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종 재료를 섞어 만든 헤드피스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그는 현장에서 어떤 게 막상 쓰일지 몰라 밤새 몇 밀리 단위로 커트를 연구하고, 촬영장 한쪽에선 장인처럼 다양한 형태의 헤드피스를 만들어내곤 했다.
한국에 없는 헤어 제품은 해외 어디에서든 구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고, 콜타임이 언제든 끝나는 시간이 얼마나 늦든, 24시간 내리 서 있어야 하는 뮤직비디오 촬영에도 웃으며 힘내자고 말하는 헤어 스타일리스트다. 패션 잡지는 물론 셀러브리티, 내로라하는 브랜드에서 그를 찾는 이유다. 최근 새집으로 이사한 이현우가 <보그>에 정말 제대로 잘 샀다고 생각하는 물건 다섯 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현우 인스타그램_ https://www.instagram.com/ozikc/
Samsung – AirDresser Glam Black
에어드레서는 없어도 그만인 전자 제품이지만 구매하고 나면 가장 많이 사용하고 만족도가 가장 높다고 한다. 서울의 한 호텔 스위트룸에서 촬영하다 비치된 에어드레서를 사용한 적이 있다. 매번 시간이 없어서 드라이클리닝 한 번 못 맡기고 입기에 바쁘던 불쌍한 나의 프라다 패딩을 넣어봤다. 촬영을 다 마치고 패딩을 꺼냈는데 뽀송뽀송해지는 건 물론이고 좀 더 빵빵해진 게 맨눈으로 확인될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따듯했다(웃음). 그 후로 이사하면 무조건 옷방에 에어드레서를 들여야겠다는 욕심이 생겼고, 이번에 이사하면서 집 안에 들여 하루에 두 번 이상 꼭 사용하고 있다. 에어드레서의 능력은 생각 이상이었다. 건조기가 없는 집에서 건조기 역할도 하고, 공간 제습 능력까지 탁월하다. 장마철에 잠시만 입어도 꿉꿉해지는 티셔츠, 집에서 세탁하기 힘든 가죽옷과 세탁하면 안 되는 청바지, 세척하기 힘든 모자, 심지어 베개와 이불까지. 이제 에어드레서가 없는 세상은 끔찍하다.
Martinelli Luce – Serpente Floor Lamp
몇 년 전 술자리에서 집 안에 좋은 조명이 있으면 그 집에 힘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은 수년간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새로 이사 갈 집의 조명을 찾다가 이탈리아 브랜드 마르티넬리 루체(Martinelli Luce)의 ‘세르펜테(Serpente)’라는 조명을 보고는 엄청 큰 전등갓과 둥근 라인에 꽂혔다. 세르펜테는 이탈리아어로 ‘뱀’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이름에 걸맞게 램프 헤드는 360도 회전이 가능하고 공간에 따라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다. 1960년대에 디자인한 이 조명은 당시 이탈리아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제품 중 하나라고 들었다. 곧 나는 이 조명을 보며 자기 합리화를 시작했다. 나의 태몽이 뱀이라고 들은 것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이 조명을 갖고 있으면 인생의 황금기가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합리화 말이다.
Kanghyuk – Jacket
몇 년 전 강혁 쇼룸에 친구와 들른 적이 있다. 쇼핑할 생각은 아예 없었지만 에어백 소재를 염색해 만든 이 검정 재킷을 보고는 ‘이건 사야 해’라는 내적 외침이 들렸다. 그 후 지금까지 몇 년째 사계절 내내 이 재킷을 입는다. 직업 특성상 머리카락이 옷에 박히거나 헤어스프레이나 컬러 스프레이가 묻기도 하고, 야외 촬영에 비를 맞는 등 다양한 상황이 많다. 이 옷은 에어백 소재라 그런지 머리카락이 옷에 박히지도 않고, 무엇이 묻든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세탁기로 막 돌리든, 건조기에 넣고 돌리든, 소재가 완벽하게 유지된다는 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내 인생 제2의 교복이라고 부를 만하다.
Tecno Nomos – Round Table
자취 인생 10년 동안 지인들을 집으로 불러 다 같이 술을 마시거나 홈 파티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만한 인원을 수용할 다이닝 테이블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거대한 식탁을 갖는 꿈을 꾸며 살다가 아는 형 작업실에서 테크노 노모스 테이블에 둘러앉아 술을 먹은 적이 있었다. 이후 이 테이블의 매력에 빠져 인생 다이닝 테이블로 언젠가 가질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바라왔다. 이 테이블은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당대 최대 이슈였던 달 착륙을 주제로 아폴로 11호에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는 두께의 강화유리 상판과 우주선같이 생긴 테이블 다리가 아주 매력적이었다. 테크노 노모스의 라운드 테이블은 더 이상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아 매물을 찾기가 정말 힘들었지만, 이사하기 수개월 전부터 미리 구매했다. 심지어 이사할 집을 정하지도 않은 때였지만, 무조건 이 테이블이 들어가는 집에 들어가기로 정해버렸다. 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사람들과 행복하게 와인 마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Cassina – Maralunga Sofa
한때 유행처럼 휩쓸고 간 소파가 있었다. 이름하여 페블(조약돌) 소파. 극강의 딱딱함을 자랑하며 예쁨을 뽐내던 페블 소파를 통해 소파는 디자인이 아니라 편리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걸 2년 동안 뼈저리게 배웠다. 오죽하면 소파에 누워 TV 보다 잠드는 게 소망이었을까. 그래서 이사를 결정하고 새로운 소파를 구할 때 키워드는 무조건 편안함이었다. 우연히 한 쇼룸에서 20년이 넘은 카시나의 빈티지 소파에 앉을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아름다움에다 편안함까지 더한 이 소파는 가격이 너무 사악했다. 이내 아름다움과 편안함 둘 다 가지려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고 인정했다. 값비싸지만 평생 쓴다면 괜찮지 않을까. 그동안 이사할 때마다 소파를 새로 구입하던 나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소파를 집에 들여놓은 지 아직 보름도 지나지 않았지만 거실에서 네 번이나 잠들었다. 이 정도면 2년 동안의 배움이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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