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화학과 생물학으로 예술을 창조한 아니카 이

2022.07.11

화학과 생물학으로 예술을 창조한 아니카 이

아니카 이는 화학과 생물학을 갤러리로 끌어들인 유례없는 예술가다. 그리고 지금, 비관적이기보다 냉철하게 인간 중심의 사회를 경계한다.

오프화이트 슬리브리스 드레스는 리리(Lee Y. Lee Y), 볼드한 오닉스 귀고리, 금색 커프 브레이슬릿은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어깨의 금장이 돋보이는 파란색 톱과 팬츠, 투명한 슬링백 힐은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Slippage Between Law and Art’, 2022, Epoxy Resin, Stainless Steel, Lightbulbs, Digital Clock Interface, and Wire, 71.1×50.8×50.8cm. ‘One Bright Pearl’, 2022, Epoxy Resin, Stainless Steel, Lightbulbs, Digital Clock Interface, and Wire, 71.1×50.8×50.8cm.

아니카 이(Anicka Yi)의 개인전이 열리는 글래드스톤 서울에 들어서면 이끼 같기도 하고 잔디 같기도 한 카펫이 깔려 있다. 마치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듯 풀빛이 넘실거리는 가운데, 보글보글 끓고 있는 시험관으로 이루어진 조각이 눈에 띈다. 그리고 소름이 돋아 털이 곤두선 긴장한 동물의 피부를 연상시키는 ‘치킨 스킨(Chicken Skin)’ 시리즈, 유충으로 덮인 곤충의 집처럼 보이는 ‘네스트(Nest)’ 시리즈, 만개한 꽃을 튀겨버린 ‘템푸라 프라이드 플라워(Tempura Fried Flowers)’ 등이 자리한다. 10여 년 이어온 작업을 집약해 보여주는 이 전시는 마치 살아 있는 듯 아니카 이가 창조한 고유한 생태계처럼 보인다.

한국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영화를 공부하고 패션 관련 일을 하다가 30대 중반에 미술로 자신의 내러티브를 담아내기 시작한 아티스트는 우리가 예술이라 여기는 방식으로 예술을 하지 않는다.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 100명의 입과 질을 통해 채취한 DNA에서 박테리아를 배양해 개미 집단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살아 있는 달팽이에 옥시토신을 주입하고, 버터로 얼룩진 벽을 전시한다.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다시마로 만든 고치 같은 작품 속에 AI 곤충을 작동시켰다. 그 안에는 베니스의 흙에서 자란 박테리아 배양균이 밀봉되어 있었다. 지난해 테이트 모던 터빈홀에는 해양 생물을 닮은 기계가 흑사병 치료제 냄새를 풍기며 사람들이 모인 곳 주변을 유유히 헤엄쳐 다녔다. 전방위적 예술가의 기묘한 창조물은 ‘냄새 풍경(Scentscape)’으로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화학과 생물학적 기술을 접목한 실험적인 설치 작업으로 주목받았고 그 기발함에 압도되지만 동시에 그녀의 작업은 제국주의, 기후 변화, 기계와 인간의 관계 등 세상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에 까끌까끌한 질문을 던진다. 소홀히 여기지만 존재하는 것, 지배당해 잃어버린 것을 환기하는 아니카 이의 작업은 당연하다 여기던 관점을 달리한다. 고개를 들어 눈에 보이는 것 그 너머를 찬찬히 살피게 한다.

평소 진주 액세서리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조개에서 진주가 생성되는 신비한 과정 때문인가요.

한 생명체에서 만들어지고 자라나는 과정을 보며 관심을 가진 것도 맞습니다. 진주가 삶의 다음 단계로 계속 변화하는 과정 자체가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패션 액세서리 중에서는 진주 외에도 골드를 좋아합니다(웃음). 패션을 좋아하는 이유는 패션이 곧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 다양한 세상과 텍스처를 몸으로 느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낍니다.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가지며 작업 전반의 핵심적인 언어에 해당하는 중요한 작업으로 전시를 구성했습니다. 전시 제목 ‘Begin Where You Are’에 당신의 상황이 담긴 듯 보입니다.

나에겐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진 제목입니다. 불교에 “당신이 어디에 있건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한국에 왔다는 것은 일종의 ‘리셋’과도 같습니다. 전시 제목에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것, 한국에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 같은 다양한 뜻과 의도가 숨어 있어요. 많은 뜻을 함축하면서도 심플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내기 힘든 제목을 좋아합니다.

리셋을 하고 과거를 돌아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몇 개의 작업물은 하나의 어법으로, 또한 여러 작업물은 한 문단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항상 언어적인 접근으로 과거의 작업물을 대하려고 합니다.

언젠가 “작품은 모두 내러티브에서 시작된다”고 했던 말이 떠오르는 설명입니다.

큐레이터이자 MIT에서 역사 비평을 가르치는 캐롤라인 존스(Caroline Jones)는 내 작품을 ‘Bio-Fiction’이라 설명합니다. 생물에게도 내러티브가 필요하고, 생물학과 테크놀로지에도 소설적인 접근법이 있어야 합니다.

작품을 시작할 때, 소설이나 시나리오처럼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쓴다고 알고 있습니다. ‘렌티큘러 프린트(Lenticular Prints)’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느껴져 흥미로웠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특히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했습니다. 여기서 픽셔널한 부분은 이 알고리즘 자체를 생물에 부여한다는 점입니다. 아카이브의 데이터를 피딩하고, 물고기와 관련된 알고리즘, 다른 해양 생물과 관련된 알고리즘을 추가하며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최신 기술을 픽셔널하게 활용합니다.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생태계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Ice Water In The Veins’에는 실제 조류가 있고, ‘템푸라 프라이드 플라워’에서는 극단적으로 꽃을 튀겨버리고, ‘치킨 스킨’에서는 너무나 실제 같은 조화를 보여주는데 이 같은 방식이 오히려 자연을 도드라지게 드러냅니다. 이런 존재를 갤러리라는 공간에 끌어오는 방식에 어떤 고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다양한 시스템이 보인다고 얘기해줘서 고맙습니다. 나는 ‘Networked-Intelligence’라 불러요. 식물에게도 ‘Networked-Intelligence’가 있고, 디지털 알고리즘에도, 균류에도 마찬가지로 있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스템이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고 많은 접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생물학적 측면과 기술적 측면을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밀라노에서 전시 중인 작품 ‘Winogradsky Lightbox’에서도 자라는 이끼의 모습 자체가 작품이 됩니다. 개미, 곰팡이 등을 동원한 적도 있습니다. 모두 살아 있고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작업에 살아 있는 생물을 아주 많이 사용해요. 생명체의 진화 과정, 라이프 사이클, 부패나 죽음 같은 과정을 선명히 보여주기 위함이죠. 우리 모두 이 사이클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생명체가 제각기 다른 시간의 척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이기도 해요.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생명체와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전하고 싶어요. 조류나 박테리아류는 지구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생명체이고,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도 없었을 겁니다. 이들과 같이 살아가며 서로 도왔으면 합니다.

코로나가 발생했을 때 청결에 집착하는 사회를 다룬 전시 <Life is Cheap>를 다시 떠올렸어요. 얼마 전 코로나를 두고 ‘진화해야 하는 방식으로 진화’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이 바이러스가 환기한 것은 무엇인가요.

난 낙관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은 위협에 놓이면 주변 환경을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성향이 더 강해져요. 우리가 위생, 청결에 집착하게 된 후 우리에게 도움을 주던 박테리아까지 없어지고 있어요. 우리의 면역 체계는 점점 약해질 것이고, 결과적으로 아픈 사람이 더 늘어날 겁니다. 질병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그런 점이 걱정스러워요.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전염병은 계속 존재하리라는 사실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예요. 전염병을 일으키는 것은 바이러스이고, 바이러스는 우리 몸에도 존재해요. 때로 우리를 위협하고 두렵게 하는 균과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을 완전히 없애는 방법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바이러스 균이 없다면 우리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당신의 예술 세계에 끼친 영향은 무엇입니까. 지난해에 발표한 작품 ‘에어로브(Aerobe)’의 가장 큰 주제 역시 공기였습니다.

‘에어로브’에 관한 아이디어는 코로나가 퍼지기 전에 얻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느끼던 불안감, 공포 등을 겪으며 더 확실한 내러티브를 그려낼 수 있었어요.

‘에어로브’에서도, ‘켈프(Kelp)’ 시리즈에서도 기계를 생태계의 일부로 끌어들입니다. 지금도 리움 미술관 ‘완두수염진딧물’ ‘점박이 도롱뇽’ ‘푸른 민달팽이’에는 기계 곤충이 날아다니고 있을 겁니다(웃음). 하지만 얼핏 생물과 기계는 대척점에 있는 듯 여겨집니다. 두 요소를 다루며 어떤 사회적 담론을 나누고 싶었습니까.

기계와 일종의 연대감을 형성해야 해요. 기계가 없는 세상은 이제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기계를 두려워하고 불신하며, 경쟁 상대나 지배자로 생각합니다. 기계가 조금 더 양립 가능한 방식으로 설계된다면, 또는 기계를 하나의 생물처럼 만든다면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기계와 연대감을 형성하는 단계도 건너뛸 수 있을 겁니다. 기계를 사용하는 작업 역시 같은 맥락이에요. 어디를 가도 기계를 볼 수 있어요. 기계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바꾸고, 나아가 관계 역시 바꿔나가고 싶습니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동식물과 유대감을 형성해왔지만, 기계와는 아직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내 작품을 통해 소개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기계를 부정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에요. 내 제안은 기계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자는 겁니다. 기계를 다른 방식으로 디자인하고, 다른 의미를 부여하면 가능해요. 기계는 그냥 존재하고, 진화를 거듭하며, 우리의 동반자가 될 뿐입니다. 기계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나가야 합니다.

예술적 상상력을 구현할 수 있는 최적의 전문가를 찾아서 협업한다고 알고 있는데 ‘아네모네 패널(Anemone Panels)’을 예로 들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합니다.

‘아네모네 패널’은 캘리포니아 마린 헤드렌즈(The Marin Headlands of California)에서 아티스트 레지던시 기간에 관찰한 말미잘에서 첫 번째로 영감을 얻어 시작되었습니다. 말미잘은 밝은색 촉수가 물결치는 꽃 같은 인상을 주는 육식성 해양 동물입니다. 그리고 조류 및 기타 미생물과 공생 관계를 형성하고 소라게와 작은 물고기에 피난처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 작품의 두 번째 영감은 페로플루이드(Ferrofluid)라는 자성유체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독특하고 뾰족한 꽃 모양으로부터 받았습니다. 페로플루이드는 1963년 NASA에서 발명한 산업용 소재입니다. 이 두 가지 영감이 근본적으로 다른 기원을 가지면서도 매우 유사한 구조를 나타낸다는 것이 아주 놀라웠습니다. 나는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자기 조직화 현상이 유사한 패턴을 띠는 것에 매력을 느낍니다. ‘아네모네 패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표면에서 돋아나는 픽셀과 버섯을 포함하도록 변형되었습니다. 이 작품 표면은 CGI를 연상케 할 정도로 균일하고 세심하게 색칠해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아네모네 패널’은 마치 물리적 세계에 정지되거나, 컴퓨터 렌더링에 걸려 넘어진 것 같은 얼어붙은 느낌을 나타냅니다.

티셔츠와 화려한 페인팅 프린트 드레스는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Ice Water In The Veins’, 2022, Lab Stand, Test Tubs, Erlenmeyer Flasks, Aquatic Pump, Micro Algae Dimensions Variable.

예술과 과학의 관계성을 탐구한다기보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방식으로 과학을 활용합니다. 그래도 작업을 했던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당신의 수많은 내러티브를 드러내는 방식이 어째서 생물학이나 화학이어야 했을까요.

이것은 신진대사와 엔트로피를 탐구하는 나의 이전 작품에서 진화한 것입니다. 항상 나의 조각 작품을 ‘위(Stomach)’라 불렀고 생물체와 원자재가 생태학적이든 사회적이든 시스템을 통해 대사 되는 방식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이 작품 중 많은 부분을 투명도와 다공성, 식용, 유기농, 일시적인 재료를 모티브로 만들었습니다. 항상 나의 위장 문제로 힘들었고 그만큼 내 위장은 결정을 내리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나는 뇌의 말을 듣듯 자주 ‘장-뇌(Gut-Brain)’의 말도 듣습니다. 과학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신진대사에 대한 주제에 점점 더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습니다. 나는 물질, 신체, 환경 사이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세련된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통적인 예술 관행의 기술과 도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습니다.

얼핏 예술과 과학은 반대 지점에 있는 듯 느껴집니다. 과학의 이성적인 면이 당신에게 선사하는 안도감도 있습니까.

예술과 과학은 공통점이 많으며 우리 사회 또한 서로 긴밀히 대화하고 협력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과 과학은 모두 물질적 잠재력을 활성화하는 학문으로서 물질적 논리에 따라 존재 가능한 방식을 탐구하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예술은 우리의 취향, 가치, 상상력, 이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것은 현실의 인식할 수 없는 부분을 표현하거나 현실의 다른 버전이 가능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과학자를 통해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며 무엇이 가능한지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예술과 과학은 모두 실험과 발견의 물질적 과정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Biography’ 향수 3종을 선보입니다. 이 향수를 통해 기존 향수를 전복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습니까.

기존 나의 향수 라인에서 가져온 것이며 이번 연작은 후각을 이용해 사회의 한계를 거부하는 역사에 묻힌 인물들을 불러내고 모든 여성이 유동적인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미래를 상상하게 합니다. 이 세 가지 향수는 나의 초기 향수 작업을 전복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보강하기 위한 것입니다. 첫 번째 향수인 ‘시게노부 트와일라잇(Shigenobu Twilight)’은 극좌 성향의 테러리스트이자 전설적인 혁명가 시게노부 후사코(Shigenobu Fusako)를 모티브로 만들었습니다. 2007년 친구이자 동료인 건축가 매기 펭(Maggie Peng)과 함께 만들었고, 2019년에 조향사 바나베 피용(Barnabé Fillion)과 재설계했습니다. 두 번째 향수 ‘급진적 절망’은 고대 이집트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Hatshepsut)를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 향수 ‘표피 너머로’는 가상의 AI 개체를 바탕으로, 모든 여성의 집단적 역사를 하나의 복합적 향으로 담을 수 있는 기계를 상상했습니다.

사회의 한계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역사에서 망각되고 인정받지 못한 여성으로부터 영감을 받았군요. 이들에 대한 관심은 어디서 비롯되었나요. 한국계 미국인인 당신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16세에 시게노부 후사코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고 학생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더-마인호프 그룹(The Baader-Meinhof Group)이라 불리는 독일 적군파(RAF), 미국 극좌파 학생운동이었던 웨더 언더그라운드(The Weather Underground), 일본 적군(The Japanese Red Army)과 같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의 정치적 급진파에 매료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정치적 열정, 국제적 음모, 지독한 스캔들이 도취적으로 섞여 주입되어 있습니다. 어린 한국계 미국인 소녀인 나는 사회로부터 거부당했지만 선동적인 역할의 롤모델이 된 시게노부 후사코에게 특히 끌렸습니다. 시게노부는 선과 악,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범주를 무시하는 정치적 행동을 하는 완전히 불가사의하며 도덕적으로도 모호한 인물입니다. 나는 그녀가 가부장적인 일본 사회에서 그렇게 빨리 중요한 지도자가 된 방법에 매료되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도 비슷한 이유로 관심이 갔습니다. 젠더에 대한 이분법적 기대를 뒤집고 유동성을 사용해 정치권을 장악한 방법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하트셉수트는 남성과 여성의 칭호를 혼합했으며, 그녀의 조각상 또한 남성, 여성, 동물의 이미지를 섞었습니다. 말 그대로 그녀는 젠더를 조각했으며, 그것은 물리적 형태를 띠는 정치적 전략이었습니다.

층층의 볼륨이 돋보이는 드레스는 리리(Lee Y. Lee Y), 부츠는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오닉스 귀고리와 레이어드한 커프 브레이슬릿은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Soft Power Narcissist’, 2022, High Density Foam, 3-D Printed Resin, Urethane Paint, Frame, 125.7×247.7×16.5cm.

한국을 방문한 며칠 동안 당신의 관심을 끌었던 냄새가 있나요.

어린 시절 미국에서 성장할 때 독특한 한국 요리 냄새와 미용 제품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이런 친숙한 향은 미래에 확고부동하게 기댄 낙관주의이자 완전한 잠재력의 냄새입니다. 이번에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살균한 냄새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잘 정돈된 번영과 지속적인 과거 문화의 향기가 충돌하는 것 같습니다.

디지털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시각에 더 매몰됩니다. 직접 경험 대신 대체 경험의 질이 높아질수록 우리는 눈으로 더 많은 일을 하려 할 것입니다. 시대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대 기술이 후각, 촉각, 미각과 같은 다른 감각은 무시하고 시각과 청각에 주로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우리의 공감 코어를 방해하는 것 같습니다. 디지털 장치는 점점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복제해 겉으로는 화려한 듯 보이지만 감각적으로는 결핍된 세상으로 우리를 데려다놓을 것입니다. 디지털 장치는 빛과 진동을 통해서만 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과 소리는 우리의 디지털 기술을 통해 더 쉽게 운반됩니다. 반면에 후각은 냄새를 맡는 주체와 섭취한 물질인 냄새 분자 사이의 직접적인 화학적 상호작용을 필요로 합니다. 모넬 화학 감각 연구소(Monell Chemical Senses Center)의 연구원들은 페인트를 혼합해 다양한 색상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향을 디지털화해 서로 혼합할 수 있는 조그마한 장치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관심사는 어느 쪽으로 나아가고 있나요.

나의 관심사는 전방위적입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불교에 빠져 팬데믹으로 인한 록다운 때문에 가장 암울하던 순간에 나의 자양분이 된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Yongey Mingyur Rinpoche)’를 위시해 불교 승려들이 저술한 명상 가이드와 책을 찾았습니다. 또한 불교의 가르침과 양자 이론 사이에 존재할 것 같은 유사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뜻밖에도 최근 비디오 게임과 몰입형 디지털 미디어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 산업은 매우 방대하며 기술이 폭발적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플랫폼 중 일부는 예술적으로 탐구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앞서 “낙관적인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시각과 태도는 예술을 하는 데 어떤 동력으로 작용합니까.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은 아주 냉정합니다. 부정적인 것에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순진하거나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도 싫어합니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세상이 인간이 살기 좋은 곳이어야만 한다는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나옵니다.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나는 가능한 한 명확하고 미묘한 관점을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냉혹한 현실에 맞서야 하는 현재에 낙담하지 않기 위해 명상과 유머를 활용하려 합니다. 이런 나의 성향은 재창조를 향한 의지와 합쳐져 작품에 최종적으로 투영됩니다. 항상 새로운 정보를 수용하고 이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자신의 태도와 예술적 전략을 조정하는 것 역시 필수적입니다. (VK)

‘Late Classical XIX’, 2022, Tempura Fried Flowers, Resin, Plexiglas, Stainless Steel Shelves, Chrome Plated Dumbbells, 121.9×81.3×25.4cm.

에디터
조소현
패션 에디터
허보연
포토그래퍼
박자욱
메이크업
안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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