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패션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그리워하나
떠올려보라. 굴레를 벗은 1990년대의 백스테이지, 2000년대의 자유분방하고 섹시한 룩을. 현재의 패션도 당시의 자유로움이 그리울까?
피할 수 없는 흐름이 있다. 우리는 주변 세계가 철저히 각성할 때, 이전 세계를 미화하곤 한다. 급격한 변화의 순간이 세상을 한순간에 바꾸었다. 이는 더 좋아진 것일까, 나빠진 것일까? 사람들은 두 갈래 길에서 여전히 고민한다. 안정된 도피처가 있을 거라 기대하거나,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는 것이다. 현재의 삶 곳곳에서 ‘옛날이 좋았다’는 표시를 찾는다. 여기서 패션은 종종 ‘급격한 회귀’라는 버튼을 눌러 역주행한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패션은 2년이라는 시간을 침묵했다. 패션의 도시에서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대신 액정 화면이나 가상 세트장에서 컬렉션을 선보였고, 줌을 통해 업무를 진행했다.
그리하여 암담한 현실을 뒤로하고 과거의 자유롭고, 즐겁고, 순수한 표현이 가득하던 행복한 과거로 향하게 된 것이다. 발렌시아가에서 제작한 이 매혹적인 영상은 진정한 추억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뎀나는 2022 프리폴 컬렉션을 통해 영상에서 펼쳐질 스토리의 서막을 예고했다. 카세트테이프에서 뽑아낸 듯한 이미지, 하모니 코린(Harmony Korine)이 촬영한 1990년대 패션쇼를 선보인 것이다. 그 시대를 아는 사람들을 정확히 저격할 수 있는, 자극적인 요소였다. 대중을 대상으로 공개한 깊이 있는 연출은 그 시대를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도 감각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 ‘로스트 테이프’라는 작품에서 우리는 혼란 속에서 펼쳐지는 매력적인 자율성, 담배를 피우곤 하던 백스테이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통로, 폴라로이드 사진, 꽉꽉 들어찬 관객, 우리가 그리워하는 룩을 뽐내는 스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충격적이게도 휴대폰은 볼 수 없었다. 1990년대 당시의 어린 뎀나는 대체 뭘 하고 있었을까?
준야 와타나베의 남성 컬렉션 패션쇼는 당시 이미 향수를 자극하는 데뷔 30주년 가수 자미로콰이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우연인 양 자미로콰이의 명곡 ‘Virtual Insanity’의 가사(“더 이상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 미쳐버린 가상의 세계에서 우리는 살아가지…”)를 통해 준야 와타나베가 이 알 수 없는 제목의 노래와 자미로콰이의 표현력을 패션으로 드러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여러 상징을 가지고 노는 듯하면서도 문화적 귀속성에 대한 계몽주의를 밑바탕에 깐 토론의 도화선을 제공하는 와타나베의 지성을 확인할 수 있다. 디자이너로서 그가 전달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을까? 포르투니가 드레스를 만들고, 이브 생 로랑이 빛을 발하던 시기 이래 이런 창작의 기반이 대중에 스며드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제 자미로콰이가 페루식 베스트에 멕시코 자수 장식을 달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머리 장식을 쓰고 호주의 디저리두를 연주한다.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이것이, 바로 드라마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크리에이터는 이런 질문에 대해 늘 누구보다 존중과 신중함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들을 더 믿는 것이 좋을지 모른다.
샤넬의 이번 시즌 컬렉션 역시 칼 라거펠트 시절로 돌아가 그 첫해의 런웨이를 재현했다. 그곳에서는 다시 한번, 지난 30년이 조금 안 되는 동안 끓어올랐던 캣워크로 런웨이에 즐거움을 채웠다. 더 이상 전 세계 스트리밍은 없다. 꽉 들어찬 의자, 바글바글한 사람들, 여기저기에 ‘입석’으로 서 있는 사람들, 열광적인 반응과 찬사, 이 런웨이에서 함께 걷고 있는 듯한 사진이 돌아오는 것이다. 젊은 날에 이 순간을 보낸 사람이 바로 버지니 비아르다. 그녀의 멘토를 도와 올라선 첫 패션쇼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늘 블랙 컬러였던 의상을 향해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이며 사람들은 야단법석이었다. “신비한 오브제이자 섹시한 느낌이었어요. 옛날 기억이 많이 나는군요. 1980년대에 모델들이 높은 런웨이에 올라 걸을 때면 들려오던 타닥거리는 플래시 소리를 정말 좋아했어요.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어요.” 버지니가 말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렇게 지난 시간에 대해 비슷한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 아니라, 스타일리시한 시대와 유행을 다시 돌아보는 트렌드다. 아니, 그곳의 분위기와 공기, 그 순간순간, 바로 그 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중요하다. 패션의 역사가라고도 할 수 있는 올리비에 사야르(Olivier Saillard)는 이렇게 말했다. “‘패션에 바치는 시’라고 할 수도 있겠죠.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사이로 돌아간다는 것은 백조가 죽기 전에 부른다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와도 같습니다. 아직 마케팅의 영향력도 크지 않았고, 럭셔리 시장도 그렇게 거대하지 않던 격변의 시대였고요. 1990년대는 패션 이전의 시대였습니다. 계산기를 그렇게 열심히 두드리지도 않았고, 스니커즈의 병적인 유행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그 시대는 파생된 물건이 아니라 의상 그 자체를 논의하던 마지막 시대였다고 봅니다. 돈이 거의 없어도 창작이 가능하던 시절,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할 것입니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반대로,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까지의 트렌드는 미니멀리즘과 거리가 있었고, 아주 폭넓은 스타일이 있었죠.”
이런 크리에이터를 제외하고라도 가장 놀라운 것은 이 ‘노스탤지어’가 이런 종류의 멜랑콜리한 감성에 이끌리지 않는 젊은 층까지 강타했다는 사실이다. 갓 스무 살이 된 사람이 과거에 대해 어떤 갸륵한 시선을 보낼 수 있을까? 2000년대 초에 나타난 Y2K 패션은 일종의 길티 플레저로, 이 트렌드에 반한 Z세대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이 시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여성 연예인을 떠올려보자. 브리트니 스피어스(그녀의 노래 ‘Oops… I Did It Again’은 해시태그를 달고 다시 등장하거나, 유행어가 되었다), 패리스 힐튼,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린제이 로한… 요즘엔 찾아보기 힘들면서도 자유로운 이들의 룩은 소위 별로인 취향과의 경계에 서 있다. 이 패션은 소중한 보물이면서 동시에 머라이어 캐리가 풍미하던 시대처럼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를 꾸미는 방법이다. 더 이상 교육부는 고등학생의 크롭트 톱 유행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이제 로고 플레이가 다시 유행하고 있으며, 청바지 밑위는 한참을 내려갔다. 니콜라 브로냐노(Nicola Brognano)가 이끄는 블루마린(Blumarine) 같은 브랜드가 다시 한번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Y2K 패션 유행의 특이한 점은 SNS를 통해 기업이 유행시킨 패션이 아니라, 서브컬처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언더그라운드나 스트리트 패션이 인터넷을 통해 되살아난 것처럼 말이다. 이는 클라라 코넷(Clara Cornet)이 설명하듯, 하나의 혁명과도 같으며 인스타그램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에 의한 것이다. “우리는 엄청난 경쟁을 보고 있습니다. 특히 ‘Z세대’의 인스타그램 활용은 패션 트렌드에 대한 새로운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Y2K가 Z세대의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하는 현상은 이 트렌드가 빈티지 감성보다 훨씬 강한 아이덴티티를 가지며, 책임감 있는 소비로 젊은 층의 의식을 일깨운다는 거죠. 빈티지란 프랑스어로 20년을 의미합니다. 이 Z세대가 Y2K 시대(2000년대)에 관심을 가지는 현상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문화적 영향력의 사이클은 최근 수년간 변화해왔습니다. 그리고 이 영향력으로 디지털 문화가 새로운 콘텐츠 크리에이터 세대와 함께 자생하게 되었습니다.” Y2K 유행을 통해 빈티드(Vinted)와 디팝(Depop) 같은 중고 거래 메인 플랫폼은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본 더치(Von Dutch), 쥬시꾸뛰르, 미스 식스티 같은 전혀 예상치 못한 브랜드가 다시 떠오른다는 것이 황당하면서도 재미있고 신선하다. 또한 최근 금기시되던 ‘섹시’ 같은 문화도 다시 돌아오고 있다. 프랑스 명문대 파리정치대학의 세르주 카레이라(Serge Carreira)는 이런 의견을 제시했다. “황금기에 대한 단순한 환상이라고 볼 수 있으며,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상상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로 큰 타격을 입은 젊은 세대에게는 미래를 바라보는 것보다 과거를 미화하는 것이 쉽죠. 메타버스와 현실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이 겪는, 미래에 대한 관점의 후퇴이자 급격한 변혁이기도 합니다. 2000년대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이 두 방면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당시에는 희망이 가득했고, 젊은 세대는 디지털 문화에 완전히 익숙하면서도 즉흥적인 모습이었죠. 유토피아와 후회 사이에서, 이런 생생한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패션으로 붙잡으려는 기억과 실제 있었던 일의 간극은 아주 크다. 웃음이 자연스레 나올 정도로 말이다. 당시의 가벼움, 낭만, 프루스트가 찾고 싶어 하던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향수는 그대로다. 젊은이들은 걱정이 없기 마련이고, 이는 곧 노스탤지어의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패션은 그저 시대에 대한 것이 아니며, 시대가 모든 패션과 유행을 아우른다. 크리에이터의 시즌, 시기는 유행이 되기도, 사라지기도 한다. 어떤 시기에는 시류를 타다가도, 시간이 흐르며 패션쇼에서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우리 모두처럼, 패션 역시 이렇게 외치고 싶을지 모른다. ‘시간이여, 비행을 멈추어다오’라고 말이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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