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에서 조나단 앤더슨과 나눈 애정과 영감에 관한 대화
아끼는 것을 나누는 사람은 행복하다. 로에베의 조나단 앤더슨은 자신의 보물 상자를 열어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온 세상과 나눈다.
공예의 사전적 의미는 단순하다. “기능과 장식의 양면을 조화시켜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일.” 결국 기능적인 도구를 만드는 기술에 장식을 더하는 일에 불과하지만, 아름다움을 향한 우리의 갈증은 그 행위에 숭고한 의미를 부여한다. 누군가는 태풍에 쓰러진 300년이 넘은 고목을 깎아 웅장한 화병을 완성하고, 누군가는 말린 밀짚을 꼬아 고대 종교의 전쟁과 태양의 형상을 담아낸다. 멕시코 정글의 부족 아티스트부터 한국의 종이 예술 장인, 영국의 젊은 도예가까지 공예라는 이름 아래 모인 이들에게선 우리와는 다른 시간을 사는 묘한 아름다움이 엿보인다.
그 아름다움에 매료된 인물이 있다. 7년 전 스페인 가죽 브랜드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은 공예를 찬양한다. 가죽 공예에서 시작한 브랜드의 수장으로 임명되자마자 그는 ‘로에베 재단 공예상(Loewe Foundation Craft Prize)’을 시작했다. 전 세계 공예가의 눈여겨볼 만한 작품을 선정해 전시하고, 한 해에 한 명의 우승자를 선정하는 콘테스트다.
로에베의 고향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시작한 콘테스트는 다섯 번째로 서울을 찾았다. 7월 한 달간 서울공예박물관(SeMoCA)에서 2022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후보자들의 작품을 전시하며 서울에 공예상을 소개한다. 서른 명의 최종 후보 중 500년 역사를 지닌 모자 공예 기술에 말총을 더한 한국 작가 정다혜가 최종 우승자로 선정되었다. 조나단 앤더슨 역시 전시와 심사를 위해 서울을 찾았다. 장마가 시작되던 지난 여름 아침, 고요한 북촌의 미술관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것과 아끼는 것, 그를 일깨우는 동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5년 만에 한국에 다시 왔다.
시차 때문에 오늘 새벽 4시에 깼지만, 기분은 매우 좋다. 지난번 방문이 너무 인상적이었기에 얼른 돌아오고 싶었다. 오랜만에 오는 만큼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 아티스트의 작업실을 둘러보고, 만나고 싶었던 장인과 아티스트도 찾아볼 예정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보기도 하고, 쇼핑도 해야 한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 때문에 서울을 찾았다. 왜 서울이었나.
팬데믹이 없었다면 더 빨리 왔을 거다. 5년 전 한국에 온 순간부터 이곳에서 공예상 전시를 개최하고 싶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다른 나라와 달리 이곳에는 공예에 대한 존중이 존재한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실질적 보호와 유지를 위한 메커니즘을 발견했다. 지난 방한 때 민속박물관에서 본 가구를 통해 일종의 현대적인 아름다움도 봤다. 매우 전통적인 기술과 형태에서 발견되는 현대적 아름다움. 그런 이미지를 나누는 것이 내가 공예상 시상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다. 다른 이들도 이곳에서 전시를 보고 내가 발견한 아름다움을 나누길 바란다.
왜 공예인가?
왜 공예일까? 물론 내가 개인적으로 관심이 깊기도 하다. 로에베는 1846년부터 가방을 만들어왔다. 그 시작 역시 공예였다. 그렇기에 공예를 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우리에겐 다른 아티스트를 도울 수 있는 플랫폼이 있었다. 아주 단순한 논리였다.
다섯 번째 공예상이다. 그동안 놀라움을 안겨준 건 무엇이었나?
사람들이 이 공예상에 보내는 존중이 인상적이다. 그 정도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 사실이 반갑기도 하고 책임감을 느낀다. 이건 꽤 대규모의 행사다. 엄청난 조율과 준비가 필요하다. 매년 4,500명이 넘는 이들이 지원하고, 선정 위원회는 그들의 모든 걸 세세히 살펴야 한다. 작품을 모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매년 이 행사를 열 수 있다는 것, 또 그런 과정을 통해 공예상이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모든 사람이 공예에 대해 완벽한 인식을 지닌 건 아니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이 이룬 성과 중 하나가 공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첫 번째 전시를 잊을 수 없다. 에른스트 감페를(Ernst Gamperl)이 우승하면서 사람들은 다시 한번 그의 작품을 재발견했다. 우리 덕분에 세상이 다양한 공예가를 재발견하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 뿌듯하다. 나 역시 또 다른 맥락에서 공예와 그 아티스트에 대해 재발견하곤 한다.
또 다른 인상적인 풍경은?
런던 디자인 뮤지엄에서 열린 두 번째 전시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전시를 찾았다. 패션과 공예, 예술 등 다양한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그곳에 모였다.
한국에서 전시를 찾은 이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물론 로에베 재단 공예상의 전시지만, 이곳이야말로 공예의 새로운 경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그렇기에 현대적인 시선으로 공예를 바라보길 바란다. 접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공예가 우리 삶과 상호작용하는지.
로에베에서 보낸 시간이 어느덧 8년에 가까워진다.
우리가 꾸준히 성장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하룻밤 사이에 변하는 건 없다. 그렇게 변하는 것은 결국 하루의 트렌드가 되고, 결국 사라진다. 그런 상황이 두려웠다. 하나의 트렌드에 올라타면, 그 후에 어떻게 살아남겠나. 그렇기에 진실성을 지닌 채 일차원적이지 않은 브랜드가 되도록 애썼다. 그야말로 입체적인 3D 브랜드가 되도록 말이다. 또 직접적이지 않고,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브랜드라는 사실이 좋다.
최근 컬렉션은 좀 더 패션에 집중한 모습이다.
꾸준히 발을 놀리며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패션을 내세울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적어도 지금은 패션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 진짜 패션이 좀 더 필요하다고 여겼다.
팬데믹이 도움이 되었나?
분명 도움이 되었다. 집중할 수 있도록 했고, 정해진 길 밖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했다. 사람들도 로에베에 있는 나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
팬데믹을 겪으며 많은 사람이 ‘공예’에 빠졌다.
난 정원 가꾸기에 몰두했다. 스트레스가 해소됐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었을 때 전혀 반대의 것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팬데믹은 끝난 듯하다. 새로운 결심이 있나?
새롭게 브랜드를 시작하는 기분이다. 더 큰 볼륨으로 소리치고 싶고, 새로운 분위기를 더하고 싶다. 나 스스로도 흥분과 재미를 느끼며 일하고 싶다.
어릴 때부터 공예를 좋아했나?
알다시피 난 아일랜드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아란(Aran)’ 니트웨어를 지켜보았다. 북아일랜드 여성들이 손수 전통적인 스웨터를 완성하는 모습은 매우 놀라웠다. 그래서 내 브랜드를 처음 시작할 때도 스웨터를 만드는 여성들과 함께 작업했다.
스웨터를 비롯한 모든 공예는 수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엄청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공예야말로 새로운 럭셔리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나?
로에베에서 공예를 바라보곤 한다. 우리가 백을 바라볼 때면, 우리는 욕망하는 대상이 곧 럭셔리라고 생각한다. 그 백을 만드는 과정을 생각하지 못하거나 잊곤 한다. 때로는 몇몇 브랜드가 그 제작 과정을 꼭 디즈니 영화에나 나올 법한 환상의 세계로 포장하곤 한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과 거리를 두는 것은 매우 프랑스적인 럭셔리다. 쉽게 가질 수 없기에 더 큰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내게 중요한 건 그런 환상을 깨고 사람들이 이 백을 만드는 사람의 손길을 연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가방의 역사를 살펴보면 가방이 존재하는 이유는 기능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럭셔리 가방 브랜드 로에베가 세계대전과 혁명을 모두 이겨낸 것은 그 중심에 그 가방을 만드는 공예가 자리했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미션은 사람들이 가방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 가방의 탄생 과정에서 새로운 럭셔리를 해석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미션이다.
다행인 건 길고 긴 로에베 역사에서 나는 손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앞으로 100년간 이 아름다운 역사가 이어지도록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다.
조나단 앤더슨이 추구하는 럭셔리 중 하나는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이다. 개인적으로 피터 후자(Peter Hujar)와 데이비드 워나로비치(David Wojnarovitz)와의 협업은 꽤 인상적이었다. 함께 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의 리스트가 있나? 혹은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편인가?
물론 꿈의 리스트는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본능을 따른다. 로에베에 입성하기 전 이미 피터 후자와 데이비드 워나로비치를 수집했고, 이 위대한 아티스트들을 알리고 싶었다. 우리를 통해 이 아티스트들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조 브레이너드(Joe Brainard)와의 협업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아끼는 걸 거리낌 없이 세상과 나누는 편이다.
로에베와 나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내가 매우 사랑하는 것을 공유하는 것. 이보다 더 사람들과 가까워질 순 없다.
최근 개인 라벨에서 한국 만화 <달려라 하니>를 공유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나?
스튜디오에서 우연히 오래된 한국 잡지를 보던 중 ‘하니’를 발견했다. 본능적으로 이걸 내 컬렉션에 써야 한다고 느꼈다. 반응을 보니 내 선택이 옳았던 것 같다. 그건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않나? 아주 즐거웠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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