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글렌 마르탱이 있기까지
와이/프로젝트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2년 전부터는 디젤을 이끌며 장 폴 고티에의 오뜨 꾸뛰르까지 지휘한 글렌 마르탱이 데뷔와 벨기에인으로 사는 인생, 데님과 영감의 원천을 이야기한다.
글렌 마르탱(Glenn Martens)을 두고 “사람 좋다”고들 한다. 무엇보다 그는 벨기에인이며, 국적을 밝힐 때 사람들이 놀라는 것을 보며 재미를 느낀다. “제가 어디 출신인지 말하면 다들 저를 좋아하더라고요!” 벨기에 출신 크리에이터는 패션계에서는 늘 좋은 징표의 하나로 여기기 때문이다. 마르탱 마르지엘라, 드리스 반 노튼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를 배출한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글렌 마르탱은 유연한 길을 걸어왔다. 와이/프로젝트에서 8년간 다져온 엄격한 업무 방식은 충분히 증명되었고, 시즌이 지날 때마다 발전해 강력한 한 방이 되었다. 그가 설계한 의상은 끊임없이 굴러가는 창의력에 대한 것이었다. 아름다운 변화이며 순수하고 바람직했다. 그렇게 디젤은 글렌 마르탱에게 아트 디렉팅 권한을 부여했고, 운명을 걸었다. 덕분에 디젤의 이름은 다시 한번 그 자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심지어 장 폴 고티에에서 오뜨 꾸뛰르를 담당하면서 엄청난 업무량을 감당한다는 것도 그를 위협할 순 없었다. 세 번의 글렌 마르탱! 여러 분야의 대가를 <보그>가 만났다.
어린 시절이 궁금해요. 예술 감각은 어떻게 길렀나요?
벨기에의 브루게(Brugge)에서 자랐는데, 솔직히 현대적인 곳은 아닙니다. 대신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섬세한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죠. 전성기였던 14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요. 중세의 아름다운 유적이 있는 곳입니다. 야외에 노출된 박물관 같은 곳에서 자란다는 건 유니크한 경험이죠. 그러면서도 지방 특유의 부드러운 분위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열여덟 살이 되자 이 플랑드르(Flandre)의 시골에서 벗어나고 싶었죠. 인테리어 디자인에 흥미가 생겨 겐트(Gent)로 갔습니다. 음악이 흐르고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었죠. 고향에서는 현대적인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는데 말이죠! 젊음이란 무엇인가를 대학 시절에 배웠습니다.
패션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특별히 패션에 집착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몸에 밴 옷에 대한 감각이 있었어요. 고향 브루게에서 얻은 것이기도 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의 영향이기도 합니다. 제가 어릴 때는 주말에 종종 박물관이나 고성, 교회에 갔어요. 이야기를 잘하시던 아버지가 역사를 아주 신비롭게 풀어주셨죠. 그래서 아버지가 알려주는 역사적 인물들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어요. 그중 한 명이 마리 드 부르고뉴(Marie de Bourgogne)인데, 웅장한 석관에 묻혀 있습니다. 이 외에도 아서왕, 네페르티티(Nefertiti), 프랑수아 1세, 마리 앙투아네트, 줄리어스 시저, 나폴레옹, 엘리자베스 1세의 이야기를 들었죠. 그러면서 의상이 그 사람의 캐릭터를 표현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인물의 개성, 지위를 보여주었죠. 그게 제가 의상을 처음 이해한 방식입니다. 그리고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면서 건물에 대해 배우게 되었어요. 학교 건물도 멋지고 패션 쪽도 아주 멋있어서 이 학교에 온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죠. 예상치 못했는데 아주 좋았어요! 모든 학생이 창의적으로 빛나는 재능을 갖고 있었죠. 이 학교는 개인의 정체성 확립과 취향 계발에 아주 강합니다. 아름다운 개성과 캐릭터를 만들어내죠. 입학하는 것도 까다롭지만, 교과과정을 마칠 수 있는 학생도 매우 적습니다. 무척 힘들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버텨내야 하죠. 힘든 시기에 저는 신경쇠약이 오기도 했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는데, 그곳에서 배운 교훈이기도 합니다. 근본적으로 패션이란 으레 모두가 생각하듯 기쁜 일도 아니고, 피상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제가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하고 처음 브랜드를 출시할 때 저까지 직원이 네 명이었어요. 리뷰를 보며 바닥까지 내려갈 정도로 우울했지만, 앤트워프 시절의 경험으로 이를 이겨낼 수 있었죠.
와이/프로젝트는 어떤 브랜드인가요?
개성에 대한 찬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을 더 북돋아주는 감정처럼 스스로를 보여줄 수 있는 하이패션을 지향합니다. 풍요롭고 즐거운 삶의 매개가 되려는 거죠. 만사를 평화로운 일종의 축제로 여기고 있습니다. 다양하게 적용하거나 접목할 수 있는 유동적인 것이 의상이죠. 제게는 자유와 같습니다. 아주 중요한 개념이죠. 옷을 설계하고 실험하면서 어떤 식으로 재단해야 하고, 다른 어떤 방법이 있는지 찾아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모든 것을 철저히 계획하고, 프린트조차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의상에 공존하는 거죠.
아주 벨기에적이군요!
와이/프로젝트는 독특한 미를 표현합니다. 와이/프로젝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죠. 모두 깊이 생각하고 만들어낸 컬렉션입니다. 모두 깊이 고려한 끝에 존재의 가치를 찾은 거죠. 모든 것엔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 머리를 지나치게 쥐어짜는 건 아니에요. 매우 벨기에적인 방식인데, 종종 형태를 정하기 전에 개념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리고 그 개념이 형태를 그 안에서 가져오는 것이랄까요.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들도 제각기 다릅니다만, 이 부분만큼은 모두 같습니다. 간결하면서도 단도직입적이죠. 벨기에 문화는 여러 전쟁으로 심하게 망가졌습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만큼 권위 있는 예술적 유산이 없습니다. 열네 살에 파리에 갔을 때 바로 그 도시와 사랑에 빠졌죠. 다양한 패션이 좋았어요. 발렌시아가를 이끄는 니콜라 제스키에르, 피비 파일로,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 존 갈리아노… 여러 개성이 존재하고 넘치는 곳이었어요. 정말 아름다웠죠. 요즘에는 일률적인 모습이 더 많이 보이긴 해요.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제가 어릴 때 의상이나 설계, 개성과 캐릭터가 더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파리가 가진 자산이죠. 벨기에인들은 자신들이 쌓아 올린 개념적, 사회적 학습에 의한 패션밖에 가진 게 없어요. 이런 벨기에 문화는 일종의 멋진 학교와도 같다고 봅니다.
패션 디자이너 커리어 초기에, 포부르 뒤 탕플가 지하에 있는 클럽 지뷔스(Gibus)에서 시작했어요. 파리 10구의 포부르 생드니에서 일하다 이제는 파리 18구 쪽의 라 샤펠에 살고 있죠. 모두 파리에서 아주 인기 있는 지역입니다. 뭔가 영감을 받나요?
열정이 느껴집니다. 저는 이 지역에서 삶의 모든 것을 해결해요! 아주 밀도 있고, 다양한 문화가 존재합니다. 이 다양성을 보고 있자면 옷이 한 사람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볼 수 있죠. 특히 인기 있는 지역에서는 더 잘 보이고, 아주 재미있습니다. 이게 진짜 현실이고, 파리의 미학이죠. 브루게나 앤트워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입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필요했죠. 진짜 세상을 보는 것 말이에요. 그리고 제 패션에서도 같은 것을 희망합니다. 군중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만드는 실루엣은 하나하나 제각기 다른 정체성을 표현합니다. 제 작업은 개인의 개성에 맞추는 동시에 사회의 다양성을 투영해 보이고 각기 다른 캐릭터를 꺼내는 겁니다.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맞춰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쉽게 적응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흐름에 따르는 거죠. 그리고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제가 어떻게 보이나요?’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을까요?’와 같은 것들이죠. 미니멀하든, 과감하든, 같은 옷을 입었든,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대답이 나오는 것이 좋아요. 아니면 살짝 비틀어보는 것으로 더 풍요롭고, 즐거운 경험을 할 수도 있죠. 그리고 이런 질문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답변을 꼭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색할 수 있게 그저 일종의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데님에도 관심이 많아요. 와이/프로젝트 전체 컬렉션을 보면 늘 데님이 있었으니까요. 렌초 로소가 당신을 디젤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영입한 건 우연일까요?
디젤 의상에서 영감을 받곤 합니다. 의상이 견고하면서도 잘 설계되어 있다고 할까요. 8년 전 와이/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하던 시절을 솔직히 말씀드리면, 굉장히 값싼 소재를 썼습니다! 그리고 디젤에서도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소재를 모든 상황에 맞게 활용하죠. 예를 들면 칵테일 파티에서도 입을 수 있도록 힐과 매치할 수 있는 청바지,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스니커즈 같은 거죠. 제가 만드는 청바지는 모든 상황에서 입을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 통하는 것이 데님이기도 해요. 모든 사람이 진 소재가 뭔지 알잖아요. 디젤에서는 디젤 방식으로 일하면서도 더 역동적인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해 엄청난 프로세스를 만들어내고 있어요. 광택을 활용하거나 여러 직물을 섞는 기술을 쓰기도 하고, 데님으로 모피를 만드는 리사이클링 방법을 적용하거나 자카드를 만들기도 하고, 겉면을 벗겨내거나 방수 처리하기도 합니다. 데님 자투리로 새로운 데님을 만들기도 해요. 엄청난 연구실이죠. 디젤은 데님의 대학교 같은 곳이에요!
장 폴 고티에의 2022 스프링 오뜨 꾸뛰르 컬렉션을 제작했습니다.
전권을 위임받아 제작하기에 패션쇼 현장에서 컬렉션을 확인받습니다. 장 폴은 자신의 브랜드에서 일하던 모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신뢰하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본인이 교육하고 영향을 미쳤는데도 말이죠. 장 폴 고티에 사관학교랄까요. 여러 수업이 있고, 컬처 클럽이나 꾸뛰르에서 데님을 쓰는 방법, 관중… 매력이 넘치는 멜팅 포트예요. 생각하는 방법, 걱정하지 않는 방법, 오픈 마인드, 아름다움에 대한 기존 관행을 부수는 방법을 배웁니다. 장 폴 고티에와 일해봤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기 쉬웠죠. 저도 그가 키워낸 아이 중 한 명이니까요. 한 시즌만 초청받은 것이지만 저는 변한 것이 없어요. 그저 고티에가 표현하고자 하는 여성성을 기릴 뿐이죠. 이를테면 코르셋이 중요한데요. 고티에가 표현하는 여성은 아주 아름다우면서도, 여신을 연상시킬 만큼 여성스럽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꾸뛰르를 떠올리면 비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이고 기이한 모험 같습니다. 동화 같아요. 마리 드 부르고뉴의 길게 늘어지는 드레스를 그리던 일곱 살 때가 생각납니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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