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가 베네타의 미래적 역사, 역사적 미래
보테가 베네타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마티유 블라지. 앞으로 나아갈 유일한 방법은 역사와 헤리티지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지난봄 어느 목요일 밤,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 부근의 호텔 다니엘리(Hotel Danieli) 로비가 서서히 분주해진다 싶더니, 창문으로 비치는 황혼을 받으며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브닝 드레스로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옐로 수트와 아름답게 장식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가구 사이사이를 누볐다. 남자들은 독특한 슈즈를 신고 석조 바닥과 고풍스러운 러그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 세월 변치 않는 도시 베니스는 완전히 새로운 에너지에 지배당한 듯하다.
마티유 블라지(Matthieu Blazy)가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더니, 호텔의 메인 계단 아래로 질주해 인파 쪽으로 걸어갔다. 짧게 자른 밝은 갈색 머리에 키가 큰 그는 소매를 말아 올린 블랙 티셔츠 위에 더블 단추 라인을 푼 낙낙한 황갈색 수트와 가죽 슈즈로 스타일링한 모습이었다.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지난해 말 37세의 블라지가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누가 봐도 굵직한 커리어를 쌓은 후였다(블라지와 가까이 일해왔던 아티스트 스털링 루비(Sterling Ruby)는 “저는 그냥 ‘이제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졸업 후 라프 시몬스에 스카우트되었고, 그다음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를 거쳐 셀린느로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패션 시장에 대한 실용적인 이해와 야심 넘치는 아트에 관한 흥미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블라지는 보테가 베네타의 사령탑에 오르기 전까지, 지난해 갑자기 사임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리(Daniel Lee)의 오른팔인 디자인 디렉터로 활약했다. 그에 따르면 승진했어도 근무 습관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저는 팀으로 일하는 게 좋아요. 제품을 보며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아니죠.” 블라지와 함께 향수를 디자인했던 아티스트 앤 콜리어(Anne Collier)는 “그의 업무 방식에는 평등주의가 녹아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는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이거나 과도한 나르시시스트 혹은 메가 디바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라프 시몬스는 “마티유는 제가 살면서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 중 한 명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따라잡기 힘든 인물이기도 했다. 호텔 다니엘리에 인파가 몰리자 그는 호텔의 작은 옆문으로 나가더니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다. 그곳에 수상 택시가 부릉거리며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원한 밤, 항구 위에 낮게 깔린 구름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택시가 한때 베니스 세관 사무실로 사용되던 삼각형 모양으로 묘하게 돌출된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에서 정차했고, 마티유는 물가로 올라가 2000년대 초 보테가 베네타를 인수한 케어링 그룹의 프랑수아 피노 회장이 수집한 미술품을 전시하는 박물관 건물로 걸음을 재촉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전야였고, 보테가가 그곳에서 중요한 손님들을 위한 만찬을 주최하고 있었다. 아티스트 브루스 나우먼(Bruce Nauman)의 영상 작품이 갤러리의 화이트 벽면 두 개에 걸쳐 재생되고 있었고, 저녁에는 이 명품 재벌 기업이 오랫동안 숨겨놓았던 군주이자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마티유 블라지를 소개하는 자리로 즐거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취임 후 블라지는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동요에서 벗어나기 위해 특이성과 아트에 기대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그는 “실제로 이미 5,000번이나 영향을 받은 대상에게 실제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인플루언서가 몇이나 될까요?”라고 말했다. 결국 럭셔리 패션은 영구적인 품질을 의미한다. “그의 의사 결정에는 다채로운 삶을 통해 얻은 깊이가 담겨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그런 것이죠.” 초창기부터 블라지 작품의 열렬한 팬이었던 Ye(예전에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바로 그 남자)가 말했다. “그것이 깊이 연결된 개인들이 자신들의 플랫폼을 조명하는 과잉 인스타그램 포스트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이제는 리셋해야 할 때입니다.”
블라지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일어나 겸손한 환영사를 전했다. 그다음 디저트를 먹을 때쯤, 그가 다시 한번 사라졌다. “낯선 도시를 방문해 호텔 밖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하니,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느낌이 들었죠.” 그가 다음 날 아침 멋지게 세월을 맞은 18세기 커피 하우스 카페 플로리안(Caffè Florian)에서 커피를 마시며 털어놓았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지인들과 새벽 3시까지 밖에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두 번째 시킨 커피를 비울 때쯤, 그가 광장을 가로질러 올리베티(Olivetti) 타자기 쇼룸으로 나를 재촉하며 데려갔다. 이 쇼룸은 건축가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가 유리, 콘크리트, 나무, 황동 등으로 지은 보석함 모양의 중세 건물이다. 그는 ‘현대성, 적합성, 무한함’ 때문에 그곳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보테가 베네타는 가방 회사입니다.” 그가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산마르코 광장의 인파 속으로 사라지기 전, 이 미소가 모든 것을 설명할 것이라는 듯 말이다. “말하자면 당신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는 것을 뜻하죠. 그만큼 심플하죠.”
블라지는 보통의 삶에서 겪기 힘든 이동과 병렬의 과정을 거쳐 성장했다.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미술품 전문가인 아버지와 역사학자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경매 전문 회사 주변에서 놀며 그들의 절충적인 다양성을 흡수하는 가운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자신을 상상력이 풍부하고, 가만있지 못하며, 규율대로 살지 않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학교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훌륭한 선생님도 몇 분 있었지만, 훈련이라는 개념 자체가 싫었어요. 제멋대로인 아이였죠. 그래서 프랑스 외딴곳에 있는 일종의 사제 학교로 보내졌어요(프랑스 남부 아르데슈(Ardèche) 지역에 있는 마리스트(Marist)회에서 운영하는 기숙학교).” 열다섯 살에는 영국 군사학교에 들어갔는데 그다지 나쁜 경험이 아니었다. “규제가 많아질수록, 소소한 것에서 더 많은 자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열여섯 살에 파리로 돌아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재학하던 국제 학교에 입학했다. 거기서 패션에 관심 있는 아이들과 어울리며 그 학교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들 중 몇몇과는 지금까지도 친구로 지낸다. “저는 패션에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가 회상했다. 한 이웃이 모델 에이전시를 운영했고, 1980년대 슈퍼모델들이 그 평범한 정원을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곤 했다. 이윽고 잡지 재활용 상자를 뒤져, <i-D> <The Face> <보그> 등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다 브뤼셀에 있는 디자인 아카데미 라 캄브르(La Cambre)에 등록했다. “시스템은 바우하우스와 거의 같았어요. 패션 강좌가 개설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음악, 미술, 기호학, 의미론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것을 흡수했죠.” 그는 학창 시절, 발렌시아가 여성복 부문을 이끌던 니콜라 제스키에르 밑에서 인턴 생활을 했고, 라프 시몬스와 패션 평론가 캐시 호린(Cathy Horyn) 등이 심사위원이었던 트리에스테(Trieste)에서 열린 ‘International Talent Support Competition’에 참가했다. “저희는 ‘아, 두말하면 잔소리지! 저 친구가 1등이네. 따놓은 당상이야!’라고 생각했죠.” 시몬스가 말했다. “하지만 결국 다른 참가자가 우승을 거머쥐고 말았어요. 그래서 제가 ‘자네는 뭐 할 건가? 내 밑에서 일해주면 좋을 텐데 말이야’라고 말했죠.”
“마티유는 정말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거의 히피나 다름없는 정신의 소유자죠.” 계속해서 시몬스가 말했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이 당신이 말한 그대로 만들기도 하죠. 그렇지만 그는 두려움 없이 과감하게 굉장히 실험적인 뭔가를 보여줬죠.” 시몬스에게 그런 자세는 빠르고 생산적인 작업을 의미했다. “저는 마티유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말해도 되죠. 그래도 그는 전혀 열 받지 않을 겁니다. 그는 ‘오, 안 돼요! 정말 터무니없는 아이디어인 것 같아요. 절대 안 되겠어요!’라고 말합니다. 전혀 신경 쓰지 않죠. 굉장히 자유분방하니까요. 그리고 정말 깜짝 놀랄만한 결과물을 만들어오죠.”
블라지가 그 팀에서 만난 새 동료 중 하나가 피터 뮐리에(Pieter Mulier)였다. 그는 블라지의 오랜 파트너이며, 현재 알라이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다. 뮐리에는 블라지를 면접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얼마나 긴장하던지, 정말 가여웠죠”라고 뮐리에는 기억한다. 그리고 마티유의 포트폴리오 제출 방식 때문에 당혹스러웠지만 감동받았다고 덧붙였다. 보통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작품 사진만 가져오지만 블라지는 컬렉션 전체를 직접 가져와 보여준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옷을 만질 수 있기를 바랐다. 블라지는 모든 것을 직접 만들었고 뮐리에는 그의 테크닉과 기하학적 기술에 끌렸다. “그가 합류한 후 라프의 컬렉션을 보면, 패턴이 한결 더 복잡해지고 정교해졌습니다. 블라지 덕분에 가능했죠.” 뮐리에가 말했다. 두 사람이 동거를 시작한 후, 예술 작품과 빈티지 의상 등을 함께 모으기 시작했다. 온갖 종류의 모든 시대 의상을 수집하며, 그중 상당수를 영감의 자료로 활용했다. 지금까지 16년을 이어온 그 관계의 초기에, 그들은 항상 일에 대해 논의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거의 그러지 못한다. “저는 컬렉션 기간에 그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아요. 그 사람도 전혀 보여주지 않죠.” 뮐리에가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미쳐버릴 거예요.”
2010년대 내내 뮐리에는 시몬스 사단으로 남았다. 하지만 블라지는 패션 하우스를 옮겨다녔다.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팀에 합류한 그는 2013년 카니예 웨스트의 <Yeezus> 앨범 투어로 유명해진 크리스털 마스크를 디자인한 사람으로 이름을 알렸다. “정서적으로 그것에 끌렸죠.” 예가 말했다. “흥미롭게도, 저는 대중 앞에서 그런 마스크를 착용하는 게 쑥스러워 무대에서만 쓰고 싶었어요. 제가 세상을 하나의 무대로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말이죠.” 그는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에서 주요 제품 라인이 아니라 프리 컬렉션을 작업했다. 상업적인 압박을 경험하는 데 더 좋은 기회였다. 그와 뮐리에는 시몬스와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들은 시즌 오프 기간이면 그의 프랑스 남부 집을 방문하곤 했다. 그리고 존존(John John)이라는 검은 개를 입양한 후 시몬스에게 애완견에 관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우리 개와 존존은 절친이에요!” 시몬스가 외치듯 말했다. “제 개가 그 쪼꼬미한테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답니다!”
2021년 블라지와 뮐리에가 각각 보테가 베네타와 알라이아의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새로운 직무가 그들이 공유하는 삶에 새로운 압박을 가중시켰다. “3주나 한 달 동안 그 사람 얼굴을 못 본 적도 있어요.” 뮐리에가 말했다. “우리는 늘 서로의 목표를 위해 함께 뛰었죠. 그리고 같은 시기에 우리가 꿈을 실현했다는 점이 굉장히 놀라워요.” 그들은 늘 긴 시간을 일했다. 하지만 이제 성공이나 실패에 대한 대중이나 기업의 인식이 그들의 이름에 달려 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잘 안다. 2016년 블라지와 뮐리에는 캘빈 클라인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로 스카우트된 시몬스와 함께 일하려고 뉴욕으로 갔다. 그 브랜드는 빠르게 컬렉션을 발표하는 거대 기업이었다. 블라지와 뮐리에는 끊임없이 작품을 디자인했고, 매디슨가 654번지에 자리한 그 브랜드 플래그십의 새 단장을 도왔다.
그렇지만 2018년 시몬스와 그 브랜드의 기업 리더들 간 팽팽한 기 싸움 때문에 그 프로젝트가 갑자기 중단되었다. 그래서 블라지와 뮐리에는 실망감에 싸였을 뿐 아니라 창의적인 면에서도 사기 저하를 겪었다. 블라지는 그 분야에서 계속 일해야 할지 확신을 갖지 못한 채 휴식에 들어갔다. “실제로 ‘이 일을 하고 싶은 이유가 뭐지?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가 뭐였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스털링 루비와 그의 아내 멜라니 시프(Melanie Schiff)를 만나러 LA로 갔다. 그리고 블라지와 뮐리에는 루비의 작업실에서 함께 옷을 만들었다.
“상업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옷과 실루엣만 만들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제 회복을 도와주었죠.” 블라지가 떠올렸다. 그는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면서 사명을 깨달았다. “그 자리를 맡으면서, 디자이너들뿐 아니라 그 회사에서 20년간 근무한 직원들이 포함된 팀과 함께 앉아 아주 단순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보테가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이었죠. 장인 기술이 뭔지, 전통적으로 그것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떻게 하면 우리가 현대화를 이끌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죠. 형태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어요. 이미지에 대해서도요. 브랜드에 대한 느낌을 말했죠.” 자신의 출발점을 알면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밀라노에서 블라지는 일찍 일어나 사무실로 걸어가는 길에 존존과 함께 공원에 들른다. 되도록 아침 8시경에 출근하려고 노력한다. 아침에 일이 제일 잘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녁 8시 이전에는 퇴근하지 않는다. “그때쯤 되면, 제 뇌는 번아웃 상태가 되고 말죠.” 그런 그가 어느 날 하던 일을 멈추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립과학기술박물관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보테가 베네타 쇼룸에서 나를 잠깐 만나주었다.
그의 최신 컬렉션 작품이 세심한 큐레이팅을 거쳐 쇼룸 선반에 진열되어 있었다. “옷이 어느 정도 건축적으로 보일 때가 좋아요. 옷걸이에 걸린 채로 섹시해 보여야 하니까요.” 블라지는 브뤼셀의 라 캄브르에서 섬세하게 디자인하는 법을 배웠고 여전히 그렇게 작업한다. 여러 흥미로운 패브릭으로 시작해, 옷의 각 부분이 움직이며 풍기는 분위기를 연구하고, 각 의상이 생기를 발산할 때까지 섬세하게 다듬는 것이다. 이 직관적 접근은 전례 없는 예상 밖의 결과를 낳는다. 블라지는 독특한 앵글로 패턴을 배치하고, 정통에서 벗어난 패브릭으로 대체하고, 인체에서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드레이프되는 색다른 형태로 재단하기로 유명하다. “당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꼭 옷일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그의 옷은 놀랍게도 그 역할을 잘해내고 있죠.” 앤 콜리어가 말했다.
블라지가 나와 함께 쇼룸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선반에서 가방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장인의 놀라운 솜씨가 보일 거예요. 솔기가 없죠.” 이 특별한 가방의 바구니 같은 짜임이 하나의 황동 고리를 관통하며 점점 가늘어지더니 어깨에 걸치도록 만든 두꺼운 밧줄 같은 손잡이로 이어졌다. 모든 짜임이 수작업으로 이뤄져야 한다. 즉 그 어떤 제품도 같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럭셔리인 거죠.” 그가 그 가방을 뒤집어 보이며, 소지품이 든 괴나리봇짐을 메고 다니는 이탈리아 만화 캐릭터 병아리 칼리메로(Calimero)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알려주었다.
지난 2월 열린 그의 첫 패션쇼는 전통과 혁신을 통한 성공으로 평가되었다. 오프닝 룩으로 화이트 탱크 톱, 편안한 핏의 블루 진, 실용적인 블랙 힐을 착용한 젊은 여성이 어깨에 칼리메로 가방을 메고 런웨이를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어쩌면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섬세하게 가늘어지는 테이퍼드 바지가 실제로는 블루 진처럼 보이도록 잉크를 층층이 프린트한 가죽 바지였기 때문이다. 이 룩은 역설의 표현이었을까? 아니면 보이는 그대로, 입은 사람만 아는 호사스러움과 더불어 섹시함과 기능성이 범람하는 현시대를 초월한 스트리트 룩이었을까?
컬렉션 전체가 이와 비슷한 이중성으로 일렁거렸다. 한편으로는 현혹적이고 대담한 일탈도 있었다. 실크처럼 움직이는 탄력 있는 가죽으로 된 아름다운 트라우저, 셔츠처럼 재단된 재킷, 밀라노 말펜사 공항의 테라초 바닥처럼 보이는 얼룩덜룩한 울 코트, 클래식 스커트에 덧댄 고래수염 같은 익스텐션이 그런 면을 잘 보여주었다. 반면에 거부할 수 없는 착용성을 지닌 컬렉션이기도 했다. 다이내믹한 초승달 모양 소매가 부착된 코트, 평범하고 간결하게 만든 재킷도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 ‘무심코 디자인된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에 귀가 솔깃하더군요. 그렇지만 정말 제대로 잘 만든 재킷이죠. 그리고 그걸로 충분합니다.”
측면에서 바라본 의상의 모습이 생동감으로 넘쳤다. 블라지는 준비 과정에서 이탈리아 미래주의, 특히 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의 작품을 연구했고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Walking Man’을 반추했다. “정면에서 볼 때, 과하게 디자인되지 않은 실용적인 옷으로 보이길 바랐어요. 그런데 측면을 보면, 짠! 그것이 바로 저희의 영역이죠. 실루엣 말입니다.”
다음으로 독버섯에서 영감을 받은 신발, 노랑과 딥 그린을 과감히 시도한 작품 등 최근 발표한 획기적인 작품을 진열해놓은 공간을 구경시켜주더니, 다시 가방 코너로 돌아왔다. JJ라고 부르는 가방도 있었다. 그가 바닥에 그것을 놓고 끈을 잡았을 때 걸어 다니는 존존이 생각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헬멧에서 영감을 얻은 가방도 있었다. 머리에 쓴 헬멧이 아니라, 스포티하고 파워풀한 포즈를 한 사람의 손에서 달랑거리는 헬멧 말이다. “그것은 세련미와 장난스러움의 믹스죠.” 그의 밀라노 아파트는 조금 더 개인적 미학을 기념하는 장소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할게요. 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기로 하고, 매물로 나온 집을 보려고 온라인을 뒤지다가 이 아파트를 보게 되었죠. ‘나 저기 가봤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전화를 걸었고 바로 그 매물을 보러 와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이 집에 발을 들이는 순간 ‘15년 전쯤 여기 왔었어. 라프가 질 샌더에서 일할 때였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바로 그가 살던 집이었던 거예요!” 그는 즉시 그 아파트를 계약했다.
마티유는 아파트를 전혀 수리하지 않았다. 바닥은 다크 그린 대리석, 벽은 우드 패널로 되어 있다. 황동 후드와 덮개가 설치된 작은 스톤 벽난로는 따뜻한 차콜 컬러 벽돌 프레임으로 둘러싸여 있다. 엔터테이닝 룸 사이에는 접이식 블랙 가죽 슬라이딩 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천장 일부분은 다시 한번 인트레치아토(Intrecciato), 즉 짜임을 연상시키는 격자무늬로 꾸며졌다. “가구 몇 점만 가지고 이사 왔습니다. 머지않아 더 많은 가구로 여기를 채워가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블라지는 퇴근 후 카페에 들러 가볍게 맥주를 마시며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생각할 때 행복하다고 한다. 그가 단골로 찾는 바 콰드론노(Bar Quadronno)로 나를 안내했다. 그는 일이 많이 바쁘지 않을 때면 갤러리와 경매장을 자주 찾으며 예술계가 돌아가는 동향을 파악하려고 애쓴다. “보테가를 이 사회의 문화적 측면을 더 많이 담아내는 경지로 끌어가고 싶어요.” 그는 패션계를 떠날까 고민하면서 예술 작품 큐레이터가 되려고 공부를 했다고 말해주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설득으로 그는 그 생각을 접었다. (“가족 중 누군가가 ‘네 일을 계속해, 너 정말 잘하잖아!’라고 말해주었어요.”) 그렇지만 예술을 향한 애정은 여전히 그대로다. 그는 자신을 지극히 평범한 선데이 페인터라고 묘사했다(내가 ‘화풍이 어떻게 되나요?’라고 묻자 “선데이 페인터 화풍이죠”라고 그가 쏘아붙이듯 답했다).
블라지는 탄산음료를 하나 더 주문하고 담배 한 개비를 더 물었다. 그는 자신이 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 공예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더 늘고 있다. “많은 것을 맞닥뜨리면, 자신이 싫어하는 것과 끌리는 것을 더 많이 알게 되죠. 몇 년 전의 저는 이 자리를 맡을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보테가 베네타가 그에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처음 제안한 브랜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기뻐서 펄쩍 뛰며 주저 없이 받아들인 첫 러브콜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오랫동안 이어온 훌륭한 견습 기간의 끝이 도래했다고 느꼈을 때 들어온 첫 제안이기도 했다. “자신감이 한층 더 높아졌죠. 일할 준비가 되었던 거예요.” 마티유가 주변의 변화무쌍한 도시적인 삶에 눈길을 주며 말했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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