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승과 재해석 사이, 한복 크리에이터 8인
한복의 역사와 의미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그다음엔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꾸려고 애쓴다. 그 명맥을 잇기 위해 계승과 재해석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복 크리에이터 8인.
기록하고 지키는 자, 김혜순 김혜순은 생존하는 우리나라의 대표 한복 디자이너다. 파리 장식 미술관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등 해외에서 열린 굵직한 한복 패션쇼와 전시에서 그녀의 이름은 빠진 적이 없다. 드리스 반 노튼의 2012 F/W 컬렉션에 김혜순이 쓴 책 <아름다운 우리 저고리>에 실린 우리나라 저고리 패턴이 사용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드리스 반 노튼 측에서 우리나라 수입 유통사에 전통 한복에 대한 자료를 요청하다가 내 책을 직접 발견했다고 들었어요. 책에 담긴 저고리 중 제일 예쁜 걸로 딱 네 벌을 골랐더라고요.” 반 노튼은 고마움의 표시로 파리에서 열린 쇼에 그녀를 초대하고 센강 변에 있는 자신의 매장에서 입고 싶은 옷 두 벌을 고르게 했다. “동양적인 분위기의 옷이 많았어요. 그땐 실용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을 골랐는데, 요즘 와서는 디자이너의 색이 확실히 드러나는 걸 고를걸, 하고 후회하곤 한답니다!”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 시대 왕의 복식을 기록한 책 <왕의 복식>은 2002년 서울 역사 박물관 개관 당시 왕의 옷을 준비하면서 쓰기로 처음 마음먹었다. 국내 전통 복식 1호 박사 유희경이 제공한 박사 논문을 토대로 연구하고 그림을 곁들여서 이해하기 쉽게 구성했다. “이 책이 전 세계 미술관으로 퍼지면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조선의 왕, 뉴욕에 가다’라는 제목의 패션쇼도 열게 되었죠.”
2005년에는 서울옥션에서 기획한 전시 <기생전>을 위해 기생이 입던 옷을 속옷부터 장옷까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재현했다. 이 전시는 김혜순을 대중적으로 알린 드라마 <황진이>의 의상 제작으로 이어졌다. 황진이는 16세기 인물이지만 디자이너는 기녀의 복식이 가장 화려하던 18세기 풍속도를 참고해 의상 250여 벌을 제작했다. 기녀들이 날씬해 보이기 위해 저고리 소매를 팔에 딱 맞게 재단한 것도 그대로 살렸다. “씻거나 옷을 벗으려면 꿰맨 곳을 다 뜯어내야 했어요. 그래서 잘 때도 입은 채로 앞섶만 풀고 잤죠.” (그리고 이 드라마는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한복디자인프로젝트 공모전 2021년 대상 수상자 유은채에게 한복 디자이너의 꿈을 심어줬다!)
김혜순이 한복을 만드는 기술자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하도록 영감을 준 이는 외삼촌 허영. 한복 연구가이자 한복 인형 작가인 그는 그녀를 한복의 길로 이끈 인물이기도 하다. “외삼촌은 ‘눈과 머리로 바느질을 하라’고 늘 말씀하셨어요. 옷 만드는 기술에만 치우치지 말고 패션을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패션은 아이디어니까요. 그리고 ‘끝까지 공부하라’고 강조하셨죠. 한복을 맞추러 온 손님이 질문하면 거침없이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요.”
요즘 한복에 대한 질문에 김혜순은 옷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고 답했다. 관직에서 내려올 때 옷을 벗는다고 표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옷은 일종의 권력이자 그 사람이 누구인지 정의합니다. 마음을 표현하고 인상을 결정하죠. 싫으면 입지 않는 게 옷 아닌가요?” 그렇기에 요즘 한복은 요즘 사람이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방식이자 시대의 흐름일 뿐,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없다. 옷은 자유롭게 유행하는 것이기에 옷을 구속할 필요는 없다. 단지 한복이라는 명칭에 엄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원형을 절대적으로 지켜야 전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얼마든지 한복을 모티브로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할 수 있고 재해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나처럼 전통과 원형을 지키고 기록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알고 싶을 때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오랜 고목의 뿌리처럼 단단하게 자리를 지키는 그녀는 지금 우리나라 속옷의 역사를 훑는 책을 준비 중이다.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 중 전통 속옷이 이토록 다양한 건 우리나라뿐이라고 말하며 눈을 반짝인다. 40년 가까이 한복만 봐왔지만 김혜순에게 한복은 여전히 새롭다.
시간을 달리는 꽃신, 김예지 “중학생 때부터 국악을 하면서 한복을 입을 기회가 많았어요. 대학에서도 국악을 전공했지만 복수 전공으로 의류 디자인을 선택했죠. 정말 관심 있고 하고 싶은 건 패션이었거든요.” 의류 제조업을 하는 부모님 덕에 김예지의 집은 늘 옷과 원단, 바느질하는 재봉사로 가득했다. 결국 국악이 아닌 패션을 택했지만, 국악에 투자한 시간은 큰 자원이 되었다. “내가 가진 경쟁력이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한복은 내가 독보적으로 많이 입어봤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전략적인 선택이었어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한복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이들은 국악인이다. 한복은 늘 똑같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한복에도 시기에 따라 유행이 있다. 김예지는 자신이 고등학생 때만 해도 저고리 아래에 숨어 있던 치맛말기가 어느 순간부터 겉으로 드러나고 치마가 봉긋해졌다고 설명했다. 무채색 한복을 입는 시기가 있었는가 하면, 파스텔 톤 한복이나 레이스 소재가 유행한 적도 있다. “주로 젊은 여성 솔리스트가 한복 유행을 선도했죠. 최근 한복을 입는 인플루언서가 많아지면서 그들이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김예지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복 연구소와 의류 브랜드에서 경험을 쌓은 후 2019년 친구 두 명과 함께 브랜드 리우앤비우(Riu&Viu)를 론칭했다. 리우는 한자 흐를 류(流), 비우는 관점을 뜻하는 뷰(View)를 뜻하며 시간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바라보는 차별화된 관심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첫 아이템으로 신발을 택한 건 한복을 입을 때마다 신발의 선택항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 한 벌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프리미엄 한복을 입는 이들도 꽃신은 늘 광장시장에서 파는 2만원짜리를 신는 게 현실인데, 착화감이 불편하고 실크 소재라서 한 번 신으면 망가지기 일쑤였다. 김예지는 꽃신의 살짝 들린 코 라인을 디자인에 적용한 구두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어느 각도에서도 아름다워 보이는 코의 각도를 찾는 데 집중했고, 잘 벗겨지지 않도록 스트랩을 더하거나 주름을 넣는 등 다양한 버전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조선 시대 어린아이가 신었던 타래버선에 착안, 큼지막한 리본을 장식한 새틴 소재의 메리 제인 스타일을 완성했다. “기초가 되는 디자인을 완성한 다음 응용하거나 변형한 버전으로 확장하는 식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발과 함께 매치할 수 있는 첫 의류로 ‘테 코트’를 선보였다. 트렌치 코트를 변형한 것으로, 한복을 입은 가장 마지막 시기인 대한제국 시대에 가장 단순한 형태로 남은 한복 외투, 두루마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곡선으로 둥글게 굴린 소매 라인, 고름처럼 몸을 가로질러 옆에서 묶는 깃 형태의 스트랩 장식이 특징. “국악 하던 시절, 무대에 오르기 직전 마지막으로 하던 행동이 고름을 단단히 묶는 거였어요. 테 코트를 입는 사람들도 하루를 시작할 때 테 코트의 스트랩을 묶으면서 마음을 다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김예지는 직접적인 한복 모티브를 가져다 쓰는 것보다 한복을 입는 행위를 유도하는 것이 더 유의미하다고 여긴다. 결국 전통문화는 한복이라는 대상이 아니라 한복을 입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복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당시 그 옷을 입던 상황과 용도, 의미를 재해석하는 데 집중한다. ‘위 셔츠’는 당의를 참고한 것이다. “당의는 높은 신분의 여인이 격식 있는 자리에 갈 때 입는 옷이었습니다. 오늘날의 화이트 셔츠나 검정 재킷인 거죠. 그래서 검정 셔츠에 당의 디자인을 적용했습니다. 옆에 트임을 넣고, 겉감과 안감을 보색으로 사용하던 전통대로 눈에 띄는 형광색을 안감으로 댔어요.” 요즘 방식대로 셔츠를 뒤로 젖혀 입으면 앞섶이 겹치면서 당의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전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월오봉도나 곤룡포를 적용한 디자인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건 오늘날에도 통용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전통입니다. 전제 군주제가 아닌 지금, 왕을 상징하는 문양은 무의미해요.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드러내는 게 더 중요한 시대죠.” 김예지와 두 친구는 자연의 상징인 해, 달, 별로 새로운 문양을 개발했다. 그리고 스트리트웨어 라인을 론칭했다. “가상 단체인 ‘헤리티지 스터디 클럽’을 위한 팀복이에요. 전통에서 영감을 얻어 우리만의 문양을 만드는 단체죠. 이 라인을 통해 문양을 계속 개발할 계획입니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기준은 확고하지만, 여전히 매 순간은 갈등과 의문의 연속이다. 이들은 전통과 한복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해석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길 간절히 원한다. 그리고 한복의 범위는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일상복으로서 한복은 사실상 조선 시대에 전통이 끊긴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일제강점기 없이 한복이 이어지고 서양 문화가 유입됐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요? 리우앤비우는 전통 복식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이너 브랜드지만, 우리 또한 한복의 카테고리에 포함됐을 겁니다. 한국의 전통을 담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니까요.” 김예지는 패션 용어 사전에 ‘코리안 토’를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차이니스칼라, 기모노 슬리브처럼 말이다. “리우앤비우 신발에 적용한 꽃신의 봉긋한 코 라인을 ‘코리안 토’라고 이름 지었어요. 한국적인 패션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대표적인 디자인인 동시에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사랑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통의 파격, 이외희 한복 디자이너 이외희는 2009년 모터쇼의 레이싱 모델에게 한복을 입혔다. 누군가에게 의뢰받은 게 아니다. 일러스트를 가지고 직접 자동차 협회를 찾아가서 제안했다. 한복이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던 때, 새로운 개념의 한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복이 쇠퇴하던 시기였습니다. 한복에는 관심 없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대체 뭘까, 찾다 보니 자동차와 예쁜 사람이었던 거죠.” 레이싱 모델을 위해 디자인한 한복은 요즘 걸 그룹이 입는 무대의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허리가 드러나는 짧은 저고리에 하의도 미니스커트처럼 짧았다. 파격적인 만큼 이슈가 됐지만, 관람객은 경악했고, 기사는 비난 일색이었다. “혼란스러웠어요. 내가 잘못한 걸까, 잘못된 일을 한 걸까라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죠.”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행한 한복의 날 패션쇼에서는 하나같이 단아한 한복 사이에서 아이돌 스타일로 믹스 매치한 한복 룩을 선보였다. 이외희의 한복을 입은 모델들은 야구 모자나 비니를 쓰고, 목에는 헤드폰과 체인 네크리스를 걸고 하이톱 스니커즈를 신은 채 런웨이를 걸었다. 젊은이들이 한복에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테디 베어 인형도 장식했다. ‘한복은 우아하고 점잖아야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난 이는 이외희가 유일했다. “한복을 알리고 패션화하려면 젊은 세대의 시각으로 한복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남보다 앞서 파격적인 시도를 해왔지만, 오랫동안 쌓아온 전통 한복에 대한 깊은 지식과 제작 기술에 기반한다. 궁중 한복을 배운 그녀는 서울새남굿 예능 보유자를 위해 10년 이상 한복을 만들기도 했다. 2012년에는 직접 만들 수 있는 배냇저고리 DIY 키트를 출시해 전통 배냇저고리 만들기 붐을 일으켰다. 이제는 유명 브랜드나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최초로 상품화한 것은 그녀다. 이때도 배냇저고리를 알리기 위해 산부인과 전문 병원과 제약 회사의 문을 직접 두드리며 전시를 유치했다.
“조금 빨랐던 것 같아요. 식상하지 않고 재미있는 걸 하고 싶었거든요. 혼자 몰입해서 앞만 보고 달리는 시기였습니다. 이제는 다 같이 함께 가야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에 좀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외희는 전통 한복에 몰입하기도 했고 자신만의 동시대적 해석을 선보였다. 공연 무대의상을 제작하기도 했고 전시를 열기도 했다. 그리고 교육이라는 답에 이르렀다. 자신의 쇼룸인 외희 갤러리에서 소수 정예로 돌복, 배냇저고리 강좌를 열고 외부에서 진행하는 전통 복식사 강의에 주력한다. 한복을 알리는 길은 결국 사람들의 의식을 높이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복과 전통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한복을 찾게 됩니다. 내가 한복을 만들어 입히거나 보여주는 것보다 확실하고 근본적인 방법이죠.” 코로나 이후에는 사람들이 재미있게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제작 과정을 보여주고 참여시키면서 완제품을 만들어주는 강의를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아이 옷을 만드는 강의로, 돌복 만드는 법을 배우러 왔다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옷을 직접 만들어주는 경우도 많다. “한복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삶 전체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배냇저고리부터 혼례복, 수의까지 삶의 모든 중요한 순간을 위한 옷이 다 따로 있죠. 한옥이나 다도, 민화 등 다른 분야로 잠시 눈을 돌렸다가도 근본적으로 한복과 통한다는 걸 깨닫고 다시 돌아오곤 합니다.”
교육의 중요성에 집중하는 만큼 체계적인 한복 커리큘럼에 대한 생각도 많다. 우리나라 대학 내 의상 디자인 관련 학과에서 전통 한복 수업의 비율이 더 높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발성 이벤트나 보여주기 식 프로젝트보다 기초 과정을 다지는 데 투자하고, 전통 한복의 원형을 온전히 보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복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과의 대부분이 이미 사라진 상태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한복 디자인을 장려하지만, 현실은 배우고 싶어도 배울 곳이 없다는 거죠.” 한복의 명맥을 잇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재해석 또한 탄탄한 기본 위에 이뤄져야 한다. 그렇기에 이외희는 한복에 너무 가볍게 접근하고 상업적으로 유통하는 추세에 염려를 표한다. “분명한 기준을 갖고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한복은 그저 전통 옷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Z세대의 한복, 김단하 2015년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한복을 입고 해외여행을 가는 ‘한복 여행’ 붐이 일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교복으로 생활한복을 입은 단하주단 대표 김단하도 그 문화에 동참하는 젊은이 중 하나였다. 대부분이 유행하는 놀이 문화를 잠시 즐기고 떠났지만 그녀는 해외에서 한복에 관심을 보인다는 게 놀라웠다. “여행 갈 때마다 한복을 챙겨 갔어요. 처음에는 광장시장에서 맞추다가 나중에는 직접 만들었죠. 여행지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예쁘다고 칭찬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사업을 시도해봐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김단하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저돌적으로 목표를 향해 가는 MZ세대의 전형이다. 카지노 딜러로 일찍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한복을 만들면서 자신의 생각대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주위에서는 안정된 직장을 두고 요즘 결혼식에서도 안 입는 한복을 왜 만들려고 하냐며 다들 만류했다. “딱 3년만 열심히 해보고 안되면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걸 영원히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모든 것에 지나치게 진지할 필요는 없다. 생각이 많아봤자 실제로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이 대혼돈의 멀티버스처럼 머릿속에 펼쳐질 뿐,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단하에게 한복은 고등학교 때부터 주야장천 입은 단순한 치마저고리였을 뿐이다. 무형문화재의 굳은살 박인 손끝에서 탄생하는 전통 예술품도, 예술적인 비전을 가진 패션 디자이너의 고매한 창작물도 아니었다.
“단순하게 시작했지만, 방향성은 분명했습니다. 박물관에 소장된 궁중 보자기나 도배지 유물 단청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우리만의 독창적인 텍스타일 디자인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죠. 또한 친환경적인 옷이어야 했습니다. 당장 저부터 미세먼지 때문에 괴로웠으니까요.” 지속 가능성은 김단하가 론칭할 때부터 가져온 가치로, 단하주단의 디지털 프린트 원단은 거의 다 재활용 소재다. 페트병에서 추출한 원사를 직조한 원단의 사용 비율은 30~40%로 시작해 이제는 60~70%에 이른다. 2019년 3월에 발표한 첫 컬렉션도 더 이상 입지 않는 웨딩드레스를 기부 받아 업사이클링한 한복. 웨딩드레스를 해체한 다음 자수로 이어서 새로운 원단을 만들고, 그 원단으로 새하얀 꾸뛰르 한복 일곱 벌을 지었다. “소규모 살롱 쇼 형식으로 선보였습니다. 퍼포먼스를 하는 모델 가까이에서 의상도 구경하고 차도 마실 수 있도록 기획했죠.” 웨딩드레스와 한복의 아름다운 혼종은 지난 2021년 부산의 어느 갤러리에서 다시 한번 전시하기도 했다.
론칭 4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단하주단의 성장에 로켓의 추진력을 붙인 사건이 일어났다. 블랙핑크 스타일링 팀이 2020 S/S 밴쿠버 패션 위크에서 발표한 단하 컬렉션을 보고 촬영 협조를 문의한 것. 김단하는 곧장 컬렉션 의상을 전부 싸 들고 뮤직비디오 의상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몇천 벌쯤 돼 보이는 의상으로 이미 가득 차 있었어요. 우리 옷이 단 1초라도 나올 확률은 복권 당첨만큼 희박해 보였죠.” 어릴 적 동방신기의 컴백을 기다리던 심정으로 고대한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됐고, 노래는 반 이상 흘렀지만 한복은 나올 낌새조차 없었다. “자포자기 심정이었는데, 마지막 군무 부분에서 우리 옷이 나온 거죠.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경험이었어요.” 직후 해외 판매량은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급증했다. 뮤직비디오에서 입은 의상을 똑같이 만들어달라고 요청하거나 로제와 제니가 입은 의상을 그대로 구입하는 이들도 많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블랙핑크 의상을 사러 사이트를 방문했다가 허리치마, 궁보치마, 돌금박 스커트와 긴팔 블라우스 등 평상시에 입기 좋은 옷으로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는 고객이 늘었다. K-팝 아이돌의 영향력은 한복을 Z세대의 트렌드로 끌어올렸다. 이제 한복을 주류 문화로 안착시킬 때라고 김단하는 말했다. “우리 매장인 메종 단하를 중심으로 전통문화를 향유하는 소셜 클럽을 운영할 생각입니다. 지난 6월에는 전통 예술 아티스트의 공연도 감상하고 워크숍도 체험하는 ‘단하한 밤’ 파티도 열었죠. 정기적으로 전통을 즐길 수 있는 놀이 문화를 정착시키려고 합니다.”
사극 키즈의 생애, 유은채 유은채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한복디자인프로젝트 공모전의 2021년 대상 수상자다. 5년 미만 경력의 신예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열린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을 당시 의류학과 3학년이었고 올해 4학년이다. “한복의 현대화에 초점을 맞춘 대회였어요. 저는 한복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끌어내고 인식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K-팝 아이돌 무대의상을 제작했습니다.” 그해의 주제는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우리 옷, 한복’이었다. 비가 내리는 형상을 모티브로 제작한 의상 세 벌은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에서 영감을 얻어 강하고 세련된 이미지로 완성했다. 하지만 정작 의상을 디자인하면서 머릿속에 떠올린 이는 가수 에일리다. “파란색의 비대칭 의상은 한국적이면서도 독특해서 에일리가 입으면 잘 어울릴 거예요!” 지금은 또 다른 걸 그룹을 모델 삼아 무대의상을 구상하고 있다. 수줍은 소녀 팬처럼 한참을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그룹명을 말했다. “레드벨벳을 좋아하거든요. ‘필 마이 리듬’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컨셉에 맞는 한복 무대의상을 그려보고 있어요. 레드벨벳을 위한 의상은 밝은색 위주의 몽환적인 분위기죠.”
유은채가 처음 한복에 ‘꽂히게’ 된 계기는 2006년, 초등학교 5학년 때 본 드라마 <황진이>였다. 다양한 원단과 색감, 다채로운 패턴의 한복이 매회 패션쇼처럼 펼쳐졌고, 회별로 각기 다른 장신구가 등장했다. 배우 하지원이 연기한 황진이 의상은 특히 화려했는데, 몸에 꼭 맞게 재단된 한복이 만들어내는 선은 그동안 알던 한복과는 전혀 달랐다. 화려한 전통 의상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열두 살 소녀는 엄마에게 한복을 사달라고 졸랐고, 거절당하자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황진이가 입은 한복이 너무나도 갖고 싶었죠. 하지만 기생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는지 사주지 않으셨어요. 결국 엄마 한복을 가져다 동정도 갈고, 고름도 다시 달면서 드라마에서 본 예쁜 디테일을 흉내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 <이산>, <동이> 등 사극 드라마를 모조리 찾아보는 마니아가 됐다. 성인이 될 때까지 <황진이>를 수도 없이 반복해서 본 덕에 어떤 장면에서 어떤 한복을 입었는지 외울 정도다. 친구들은 그녀를 한복 덕후 취급한다. “최근 들어 제 또래 사이에서도 한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연예인이 많이 입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중국의 왜곡 탓이 크죠.” 한복을 중국 전통 의상에 편입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자, 20대 사이에서는 우리나라 전통과 멋에 대해 더 잘 알고자 하는 의식이 퍼지고 있다. 한복이 우리나라의 트레이드마크가 되길 바라는 유은채는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우리가 더 많이 입고, 더 많이 알려야 한다고 열정적으로 주장했다. “K-팝과 한류 같은 대중문화를 통해 적극적으로 한복을 알려야죠. 무대의상 스타일로 재해석한 한복뿐 아니라 전통 한복도요. 연말 시상식에서 연예인들이 드레스 대신 한복을 입으면 정말 멋질 거예요!”
실생활에서 입기 쉽도록 한복을 재해석하거나 변형하는 것도 좋지만, 전통은 존중되어야 한다. 전북 전주나 고궁에서 한복 차림의 사람들을 꼼꼼히 살피곤 한다. “전통을 즐기러 가는 거라면, 한복을 잘 갖춰 입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대여하다 보니 한복의 미를 살리는 데 정말 중요한 디테일이 빠져 있을 때가 있죠.” 전통 방식으로 제작한 저고리는 바닥에 펼치면 납작하지만, 입으면 깃에서 몸통으로 이어지는 팔자 주름의 여유분이 생긴다. 공장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낸 한복은 대부분 전통 방식이 아닌 양장식으로 제작해 이런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다. 아이돌의 캐릭터나 퍼포먼스에 맞게 변형한 무대의상에도 한복의 포인트는 꼭 들어가야 한다. 유은채는 중국, 일본, 한국의 전통 의상 모두 깃의 형태를 공유하지만 한복의 특징으로 깃머리 형태를 꼽았다. 중국과 일본 의상은 깃이 허리까지 길게 이어지지만 한복은 당코깃, 목판깃 등 깃과 고름이 이어지는 부분의 모양이 다양하다. 흰색 동정도 차별점 중 하나. “동정을 거추장스럽게 여기거나 깃머리 디테일을 생략하는 것도 디자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자유롭게 변형하면서도 한복만의 특징은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복 디자이너가 되는 길은 한복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운명을 같이한다. 유은채는 부모님도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최근에야 내려놓으신 눈치라고 말했다. 이제 겨우 20대 중반에 가까워진 그녀는 머릿속이 복잡하다. 자신의 브랜드도 론칭하고 싶고, 무대의상도 해보고 싶다. 요즘 유행하는 생활한복도 해보고 싶고, 유학을 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한복과 양장을 결합한 드레스를 디자인하는 것도 생각해본 적 있다. 하지만 그녀가 살면서 좋아한 것이 한복 외에 한 가지 더 있다. 전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다. 인터뷰 내내 어른스럽고 신중하게 답하던 유은채의 말투가 빨라졌다. 어렵게 표를 구해 갈라 쇼에 갔는데, 자리가 너무 멀어서 성냥만 하게 보였다며 여느 20대 대학생처럼 조잘거렸다. “제가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상상하곤 합니다. 결혼식에서 신부가 입는 대례복이나 활옷의 한복적 요소와 서양 복식이 공존하는 디자인이죠!”
서정성이 담긴 한복의 세계, 김영진 생활한복이라고 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흔히 철릭 드레스를 떠올린다.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대중화되었지만, 사실 원조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남자들이 입는 무관용 관복인 철릭을 여성용 드레스로 변형한 이는 김영진이다. 가슴 아랫부분에 주름을 잡아 플레어 형태로 퍼지는 연안김씨 저고리, 허리 길이의 당의를 길게 연장한 롱 당의, 긴 치맛단을 걷어 올려 페플럼처럼 연출한 거들허리치마도 그녀가 원조다. “안타까워요. 제가 철릭을 변형했으니 누군가는 시복(문무백관의 관복)을 응용할 수도 있을 텐데, 철릭만 무한 반복되고 있으니까요.” 누군가는 너의 디자인이 상징처럼 자리 잡았으니 기뻐할 일이 아니냐고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건 한복계를 함께 이끌어갈 동료다.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과 고집을 가진 사람 말이다. “각기 자기 세계가 분명한 한복 디자이너들이 연대를 이뤄 패션 위크를 여는 꿈을 꿉니다. 앤트워프 식스처럼요.”
김영진이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한복을 현대화하는 디자이너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전통 한복의 원형이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지극히 동시대적이며, 질적으로도 세계적인 명품과 비등하다. “나를 표현하는, 제대로 된 디자인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한복을 일종의 코스튬처럼 바라보고 신기해하면서 정작 자신은 입지 않는 사람이 많아요. 샤넬 재킷을 열망하듯, 한복 그 자체로 사람들이 입고 싶어 하는 옷이어야 했죠.” 그리고 누가 봐도 ‘김영진’의 옷이라는 게 드러나야 했다. 그런 면에서 한복을 시작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목표를 이뤘다. 브랜드 이름의 ‘차이’가 뜻하는 것처럼 김영진의 옷에는 남다른 서정성이 있다. “지난해에 ‘코리아 인 패션’ 프로젝트로 진행한 <공주의 꿈>은 키워드를 캔디, 딸기잼으로 정했어요. 어릴 때 자주 가던 팬시점을 상상했습니다. 핑크색 캐릭터로 가득한 곳이었는데 그곳에 가면 정말 행복한 기분이 들었죠.”
전 세계 공주들이 궁에 모여 연회를 즐기는 컨셉의 의상은 틴 케이스 안에 든 알사탕처럼 알록달록하다. 전통 한복에서는 볼 수 없는 색감이지만 옷의 형태는 전통 한복 느낌이 더 강하다. “서로 다른 두 요소가 만났을 때 새로워 보인다고 생각해요. 디자인할 때도 대립적인 요소를 넣으려고 합니다.” 감성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영화 한 편을 꼭 보거나 공연을 보러 다니기도 하는데, 최근에 빠진 건 가드닝이다. “매장에 장미 정원을 가꿨어요. 지난 5월에 만개했을 때는 지인을 초대해 티 파티를 열기도 했죠.” 대중적으로 덜 알려진 아티스트를 발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연인과 밀회를 즐기는 기분에 가깝다. “서정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사랑을 주고받는 거니까요.”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김영진도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여러 아이돌을 위해 한복을 제작해왔다. 디자이너는 수많은 아이돌이 그저 한복을 입었다는 데 의미를 둘 뿐 그 옷을 입고 오를 조명과 무대, 퍼포먼스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 못마땅하다. 한복을 무대 연출의 일부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으로 섹슈얼한 스타일뿐이라고 여긴다. 얼마 전에는 추석 굿즈를 위해 한복 제작을 의뢰한 K-팝 아이돌 팀에게 먼저 컨셉을 제안하기도 했다. “야복에 대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야복은 산속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학자들이 입는 옷이죠. 장자, 맹자 등 성리학을 공부하고 수양하는 예술가 컨셉으로, 데님을 매치하거나 정자관을 써서 한복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자는 거였습니다.” 고분고분하지 않고 따지는 게 많은 자신이 함께 일하기 쉽지 않은 디자이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한복이라고 해서 너그러운 건 더욱 용납할 수 없다. “한복이니까, 한복이라서 같은 보여주기 식은 무의미합니다. 그건 옷의 기능을 상실한 거나 마찬가지죠.”
21세기 젊은 한복 디자이너들의 롤모델은 다음 세대가 더 많은 걸 얻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르기를 바란다. 적당히 따라 하거나 한복이라는 걸 내세우기보다 제대로 공부하고, 투자와 실패를 충분히 경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나는 실패도 하고 연구도 하고 작업자들에게 당하기도 하면서 지금에 이르렀어요. 가장 이상적인 철릭 원피스 패턴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실험을 했는지 모릅니다.” 동서양 구분 없이 온갖 주름을 적용해보고 입체 재단도 시도하면서 완성했지만 왜 평면 재단이어야 하는지 왜 다트가 없는지도 모른 채 가져다 쓰는 이들이 너무 많다. 대가 없이 만든 건 아름답지 않다. “미학적인 문제가 아니에요. 도덕적인 차원의 문제죠.”
김영진은 이제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놓친 것들을 하나씩 실현하려 한다. 제주 해녀 차림의 댄서들이 머리에 왕관을 쓰고 리버댄스를 추는 패션쇼, 바이올리니스트의 독주로 시작하는 패션쇼 등. 최근에는 ‘수궁가’ , ‘차이킴 매란국죽’이라는 이름의 프린트도 개발했다. 앞으로 매년 독자적인 프린트를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다. “한복은 한복이라는 개념을 떠나서 그 자체로 멋지고 예뻐야 해요. 한복의 정의는 단순합니다. 과거에 한국 사람이 입었고 지금 한국 사람이 입는 게 한복입니다. 고민할 필요 없어요. 우리나라 사람의 표현 방식은 외국인과 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한국적이라고 하는 거죠.”
21세기 장인을 위하여, 온지음 옷공방 아름지기 재단에서 출범한 전통문화 연구소 온지음은 21세기의 장인을 키우는 곳이다. “처음에는 전통 장인이 만든 작품으로 전시를 했습니다. 하지만 장인을 찾기 쉽지 않았고, 훌륭한 기법을 가진 분들이 점점 줄어드는 게 안타까웠죠.” 온지음은 의식주인 옷공방, 맛공방, 집공방으로 구성돼 있으며 옷공방을 이끄는 옷공방장은 가천대 교수 조효숙이다. 온지음의 비전은 선조가 가진 멋과 철학, 지혜를 재해석하고 동시대의 소재나 현상과 접목해 재창조하는 장인을 키우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옷공방은 한복을 통해 현대의 아름다운 옷을 계승하는 데 목표를 둔다. “우리가 키우는 연구원을 생각하는 손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한복을 만드는 기술을 넘어서 그 이면에 담긴 철학과 역사에 대한 지식을 갖췄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연구원은 각자 역할이 나뉘지 않고 옷공방에서 진행하는 수익 사업과 전시, 연구, 공부에 다 함께 참여한다. 수익 사업으로는 의뢰를 받아 맞춤 한복을 제작하고 있으며, 다른 두 공방과 돌아가면서 3년에 한 번씩 전시를 기획한다. 옛날 가죽 다루는 법이나 전통 염색법, 영화 의상 등 한복과 관련해 연구원이 원하는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공부하는 시간을 갖는다. 장인을 기르는 연구소라고 표현하는 이유 또한 교육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공부하고 연구하는 시간이 없다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장인의 숙달된 기술을 더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한복이 조선 시대 복식에만 머무는 이유는 조선 시대가 매장 문화였기에 당시 유물이 많이 남아 있어서다. 반면에 불교 문화가 크게 발달한 고려 시대는 사람이 죽으면 소장품을 전부 태웠기 때문에 의복의 경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고대 문헌과 민속화, 유물 등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해서 조선 시대뿐 아니라 고구려 시대, 고대 삼국 시대와 통일신라 시대의 복식을 재현하는 것 또한 옷공방의 일 중 하나다. “수백 년 전의 옷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유명 디자이너의 옷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패턴이나 실루엣을 발견하곤 합니다. 소재도 조선 시대보다 훨씬 다양하고 실용적이죠. 고대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는 남녀 모두 바지가 기본 복식이었습니다.” 이들의 작업은 박물관처럼 원형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을 넘어 21세기 한국인 체형에 맞게 비율과 실루엣을 수정하고 현대 기술로 재현한 원단을 적용하는 것이다. 옷은 입지 않으면 가치가 없기에 구김이 많이 가고 관리가 어렵다는 한복의 단점을 보완해 한복의 명맥을 잇기 위해서도 재해석 과정은 필수적이다. “입었을 때 예쁘지 않으면 역사적 의의를 가진 옷이라 해도 무의미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옷공방장 조효숙은 고궁 주위의 한복 대여점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전문가들의 눈에는 부족해 보이는 한복일지라도, 젊은 세대와 한복의 접점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대여업을 하는 이들이 한복다우면서도 아름다운 한복을 제안할 수 있도록, 배움의 기회와 좋은 원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복에 대한 젊은이들과 해외의 관심은 높아지는 반면, 결혼식이나 돌잔치 등 으레 한복을 입던 삶의 순간에서 한복은 사라지는 게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내년에는 온지음 세 공방 중 옷공방의 전시 순서가 돌아온다. “내년 전시 주제는 ‘이 시대에 맞는 한복은 무엇인가’입니다. 인공지능 시대인 현재는 2000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죠. 하지만 한복은 여전히 1990년대에 머물러 있어요. Z세대는 완전히 다른 인류입니다. 이들을 위한 미래 한복의 디자인은 어떤 것인지 고찰하기 위해 패션 디자이너들과 협업할 계획입니다. 함께 힘을 합쳐서 한복의 생명력을 유지해야죠.”
한복과 양장의 크로스오버, 박선옥 박선옥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박선옥의 옷을 본 사람은 꽤 많다. <이태원 클라쓰>의 장 회장, <놀면 뭐하니?>의 유야호, <도포자락 휘날리며>의 훤칠한 5인방이 입은 한복 모두 그녀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최근 작업인 <도포자락 휘날리며> 의상은 전통 도포를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활동하기 편하고 외국인에게도 어필할 수 있도록, 전체적인 라인은 슬림하게 만들면서 도포의 특징인 전삼(길게 달아 뒷자락을 가리어 덮는 천)은 살렸다. “방송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열하 도포라고 이름 지었어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에서 이름을 따왔죠. 박지원이 청나라 문화를 우리나라에 소개했듯이 그들은 해외에 우리나라 문화를 알렸으니까요.”
박선옥은 생성공간 여백과 기로에, 두 라인으로 한복을 선보인다. 시작은 생성공간 여백의 시초인 한복예술 여백이었다. 전통을 바탕으로 재해석한 창작 한복을 만들었고, 다양한 서양 복식 원단으로 한복을 지어 현대 한복 전시를 열거나 패션쇼와 퍼포먼스를 결합한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상업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어요. 사업을 유지하려면 혼수 한복을 해야 했죠.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꿈과 현실의 괴리에 쫓기듯 가족이 있는 호주로 떠났던 박선옥은 2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2015 한복진흥센터에서 주최한 신한복 개발 프로젝트에서 기로에의 시초가 된 첫 한복 정장을 선보였다. “남녀 옷을 여러 벌 지었지만, 남성 한복 정장은 단 한 벌이었습니다. 그때 한복 정장을 대표 아이템으로 개발해야겠다고 처음 결심했죠.” 그리고 2017년 기로에를 론칭하며 본격적으로 남성 한복 정장이라는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여밈깃과 맞깃, 두루마기 세 가지 스타일을 중심으로 여러 버전을 제작했는데, 관리가 어려운 실크 대신 실용적인 원단을 사용하고 움직임이 편하도록 어깨 패드를 없앴다. 한복의 평면적인 패턴은 몸에 꼭 끼는 양복의 갑갑함을 해소했다. “한복의 장점을 극대화한 옷입니다.”
새롭고 낯선 시도였기에 아직 반응이 미미하던 때, 배우 유재명의 스타일링 팀이 기로에를 찾아왔다. “<이태원 클라쓰>의 원작 웹툰에서 장 회장은 생활한복을 입은 노인이죠. 하지만 유재명 씨와 스타일링 팀은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에 맞는 한복 느낌의 정장을 찾고 있었어요.” 꼿꼿하고 자존심 강한 악역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의상은 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기로에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특별한 날을 위한 옷이 아니라 일상복으로 입을 수 있는, 실용적인 한복 정장의 개념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것이다. 기로에의 아이템은 다른 옷과 쉽게 매치할 수 있고 튀지 않는 그레이, 화이트, 블랙, 네이비 컬러의 표준 형태가 주를 이루며, 가짓수도 많지 않다. 정장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데 착안,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트렌디해 보이지 않는 스탠더드한 아이템 개발에 주력하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정수만 남기는 겁니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원단이나 컬러를 적용할 수 있는 베이식 아이템, 우리는 공식을 개발한다고 표현합니다.”
여성복 아이템인 달항아리 시리즈도 관심을 받고 있다. 달을 주제로 한 국립무용단의 공연 의상 제작을 의뢰받았을 때 영감을 받아 만든 옷이다. 보름달을 연상케 하는 유려하면서 여유로운 곡선이 특징으로 재킷, 마고자, 당의, 조끼, 치마 등 다양한 아이템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제 평생의 화두는 ‘한국적인 패션 디자인은 무엇인가’입니다. 그리고 달항아리 디자인에서 그 답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전통 한복의 형태를 완전히 벗어났지만 한복 특유의 평면성, 정신적인 여유로움, 여백과 곡선의 미학은 고스란히 들어 있기 때문이죠.”
박선옥은 2004년 한복예술 여백을 시작한 이래 늘 몇 가지 장애물을 넘어왔고,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가장 창의적인 순간이었다고 떠올렸다. 반듯하게 닦인 길을 따라가기만 했다면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고민하거나 새로운 것에 도전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매 순간 어느 길로 갈 것인지 고민했기에 불안했지만 새로운 것이 나왔다고 말했다. “기로에는 외국어가 아닌 한글 이름입니다. ‘선택의 기로에 서다’에서 가져온 이름이죠. 늘 도전을 선택해온 저의 절박한 심정, 한복과 양장을 넘나드는 한국적인 패션 디자이너로서 크로스오버를 추구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VK)
-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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