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에서 만난 "벨리시마, 다미!"
“다미, 다미!”, “벨리시마, 다미!” 밀라노의 펜디 패션쇼장, 배우 김다미를 향한 팬들과 사진가들의 함성과 환호가 열렬하다.
<보그>의 질문지에 김다미가 보내온 답은 예상대로 상온의 생수 같았다. 그는 말이 없기로 유명하다. 출세작 <마녀>의 박훈정 감독은 오디션 합격 소식을 듣고도 반응이 미적지근하기에 다시 말해줘야 하나 고민했다고 한다. 소속사 미팅에서 2시간 동안 단답만 했다는 일화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그런가?’ 싶은 지점이 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당신의 도전 정신과 내향성이 충돌할 때는 어떻게 상황을 헤쳐나가는가?’라는 질문의 답이다.
“성향이 내향적이긴 하지만 좋아하는 일에는 도전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내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주어진 답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려운 일이 많겠지만 그 안에서 제가 얻는 것도 많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정답이 없다는 것, 그래서 오히려 내가 정답이 될 수 있다는 건 인류가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다. 김다미는 감각과 본능으로 연기의 속성을 체득한 배우이고, 겸손하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는 건전한 삶의 탐색가다.
“(연기에) 다양한 방법을 열어두고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어느 정도까지는 구상하고 정해놓지만 현장에서 느낌을 수정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가요. 무엇보다 인간의 감정이란 게 정해진 게 아니고 연기를 혼자 하는 것도 아니니 최대한 마음을 열려고 노력해요. 그런 과정에서 최선을 찾으려고 해요.”
김다미는 2018년 영화 <나를 기억해> 조연으로 데뷔했고, 같은 해 1,408:1의 오디션을 통과해 <마녀> 주인공으로 발탁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마침 강한 여성 캐릭터와 액션 장르물 수요가 폭발하던 시점이었다. 자연스러운 외모와 풀 샷에 적합한 체격, 극적인 장면에서조차 일상성을 유지하는 세련된 연기는 단번에 시선을 잡아끌었다. 단독 주연 영화로 흥행에 성공한다는 건 배우에게는 최고의 훈장이다. 그 정도 타이틀만으로도 수년간 톱스타로 군림하며 광고를 휩쓸기에 무리가 없다. 그런데 김다미는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그해 우리는>을 연속 성공시켰다. 특히 <이태원 클라쓰>로 아시아 전역에 이름을 알렸다. 데뷔 전 쇼핑몰 피팅 모델로 활동한 만큼 배우로서 주목받기 시작할 때 이미 준비된 패셔니스타였다.
“아르바이트로 모델 일을 하면서 옷을 많이 입어봤어요. 아직도 좀 어색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때 입어본 경험이 큰 도움이 되지 않나 싶어요. 패션에 관심이 많아요. 어떻게 보면 연기 다음으로 관심이 많은 분야죠. 작품을 할 때도 의상에 따라 캐릭터가 정말 달라 보이거든요. 전부는 아니지만 패션을 통해 누군가의 취향이나 성격을 알 수도 있고요. 그래서 화보도 찍을 때마다 재미있어요. 다양한 시도를 할 수가 있잖아요. 이번에 펜디 화보를 찍을 때 사실 한 번도 보여드리지 않은 모습이라 어떻게 나올까 걱정했는데 찍고 나서 몰랐던 저를 보게 되니 굉장히 재미있고 좋았어요. 컨셉에 맞는 옷을 입고 화보를 찍는 느낌은 연기할 때와 비슷해요. 연기할 때 더 크게 느껴지긴 하지만요. ‘내가 이렇게도 행동할 수 있구나’ 하고 발견하는 거죠. 화보든 작품이든 계속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배우들이 브랜드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건 김다미가 연기자를 꿈꾸던 때만 해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는 데뷔 전 유예기간을 정해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오디션을 보러 다닐 만큼 착실하게 배우 생활을 준비했다. 막 밀라노 펜디 쇼를 참관하고 돌아온 김다미에게, 배우 지망생 김다미가 지금의 스타 김다미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물었다. “확실히 그때보다 (배우들의 활동 분야가) 다양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 좋아요. 가끔 그때의 저를 생각하기도 하는데…. ‘지금도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파이팅하자!’ 아무래도 이런 얘기를 하지 않을까요. 기분 좋은 응원이었으면 좋겠어요.”
김다미는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를 촬영하고 있다. <더 테러 라이브>의 김병우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SF 재난 블록버스터다. 대홍수가 덮친 지구의 마지막 날 인류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 이야기다. 김다미의 역할은 인공지능 개발 연구원이다. <이태원 클라쓰>의 마케팅 천재, <그해 우리는>의 전교 1등에 이어 또 한 번 스마트한 역할이 주어진 것에 농담을 건넸다. “연출자들이 영리한 눈망울과 똑 부러지는 말투를 굉장히 사랑하는 것 같군요.” 김다미는 답변에 웃음을 실어 보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긴 했는데… 하하.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역할이라 재미있었어요. 비슷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캐릭터였고 이야기도 각각 다르다 보니 그 점이 크게 보이지는 않았어요.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가장 컸죠.”
“일상생활에서는 정말 안 움직이는 편이에요”라고 말하는, 세상 재미없어 보이는 사람인데 김다미는 ‘재미’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패션, 연기, 여행, 강아지 동영상 보기, 친구들과 수다 떨기, 그리고 직업을 통해 자신을 탐구하기. 이 모든 것이 재미다.
“여행이나 캠핑을 가서는 그래도 좀 활발해져요. 많이 걷고 돌아다니고. 요즘은 촬영 끝나고 맛있는 거 찾을 때 가장 적극적이에요. 가끔 친구들 만나서 학창 시절 얘기하면서 많이 웃어요. 가장 재미있는 시절이었죠.”
김다미는 자극을 좇는 대신 삶의 작은 진동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고, 작품 안에서 답을 찾는 유형의 배우다. 그럼에도 장르물에 걸맞은 카리스마까지 갖췄다는 건 어느 정도는 재능의 축복이다. 여기에 스스로를 성장시키려는 굳건한 의지가 더해진다.
“어떤 선택을 할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정말 제가 좋고, 하고 싶어서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물론 모든 일이 그렇게 되지는 않지만 최대한 지금의 제 생각이나 마음을 들여다보고, 하고자 하는 것들을 선택하는 거죠. 작품이 잘되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지만 어떤 것들을 배우고 성장해나갈 수 있는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가 중요해요.”
김다미의 인생에 더 많은 여행과 재미가 있기를 기도한다. 결핍이 아닌 충만함으로 작품을 잣는 배우에겐 그런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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