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빈, 귀여움과 단단함 사이
박은빈의 필모그래피는 곧 그의 삶의 궤적을 좇는 일이다. 작품을 거듭할수록 박은빈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간다. 그 가운데 뽀송뽀송한 귀여움과 단단한 내면이 균형을 이룬다.
핑크색에는 조건 없는 사랑, 관용, 유쾌함, 희망이 담겨 있어요. 밝은 에너지와 기쁨을 주는 색깔이기도 해요.
관념적으로 핑크가 상징하는 의미가 있어서 어릴 때는 오히려 핑크를 멀리했어요.(웃음) 이제는 핑크에 마음이 닫혀 있지 않아요. 아이템으로 하나씩 갖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색이에요.
지금 가진 아이템 중에 핑크색도 있나요.
무선 이어폰 케이스가 핑크 토끼입니다. 현장 가방도 핑크고요.(웃음) 몇 년 전에 좋아하는 색깔을 묻는 질문에 흰색이라고 답했는데 사실 모든 색깔을 좋아해요. 물론 한 스푼씩 더 애정이 가는 색깔이 있기는 한데 치우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모든 색깔을 공평하게 좋아해요.
‘무엇을 가장 좋아하냐’는 질문에 답하기가 가장 곤란하겠어요.
중립을 지키는 것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을 좋아해요. 상대방과의 텐션도 중심을 잡으려는 편인데요. 이를테면 아버지가 되게 밝고 발랄하세요. ‘딸! 방가방가!’ 하시는 분인데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오히려 무덤덤하게 대합니다.(웃음) 항상 제 팔에 저울이 있는 느낌이랄까요. 이런 삶의 방식이 참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우영우)>로 요즘 제 이야기가 뉴스에도 나올 정도로 관심이 높아졌어요. 모두 축하해주지만 마냥 낙관적이지만은 않아요. 붕붕 띄우지 않기 위한 저만의 균형 맞추기가 습관이 되어 있거든요. 한동안 슬럼프였던 시기도 잘 흘러 지내왔듯 모두가 기뻐할 일도 결국 흘러가리라는 걸 알고 있어서인지 크게 연연하지 않게 되는군요.
어릴 때부터 배우로 활동해서 생긴 습관일까요.
지금은 아역 배우도 많고 미디어의 생태계에 대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데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요. 일단 저 자신이 미디어에 근접한 사람이 아니었고, 열광하지도 않았어요. 지금도 다른 드라마나 영화를 줄줄이 꿰지 못해서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데,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왔어요. 전 어릴 때 모니터링에서 가장 도망치고 싶은 아이였어요. 엄마 말씀에 따르면 거울을 참 많이 봤다고 하지만 카메라를 통해 비치는 나의 모습은 너무 부끄러웠어요. 어찌 보면 모니터링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차려야 하는 작업인데 그게 힘들었어요. 저를 직면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배우가 친미디어적이 아니라는 건 작가가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처럼 들려요.
친미디어적이 아닌 성향은 연기에 접근하는 데 장점이 있어요. 누군가의 연기를 보고 모방하는 자가당착에 빠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이런 성향이 저만의 고유한 것을 찾는 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연기에 정답은 없지만 어떤 인물을 그려낼지 제 안의 소리를 듣는 편이에요.
드라마나 영화를 줄줄이 꿰지 않지만, 연기를 꾸준히 해온 이유를 무엇이라고 봅니까.
연기가 재미없던 시절도 분명히 있지만 결국 재밌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릴 때 현장에서 어른들에게 칭찬받는 게 좋았어요. 꿈 많은 소녀에는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밑바탕이 되어주는 게 연기였죠. 어릴 때는 과연 배우가 내 적성에 맞는지 계속 고민이었어요. 정말 재능이 있고 사회성 좋은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저의 그렇지 못한 면을 알고 있었고요. 그런데 차차 저처럼 내향적인 면이 있어도 더 큰 폭발력을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이 공고하게 쌓였고, 그런 성격이 꾸준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일찍 활활 불태우다가 재가 되어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꾸준하게 타오르는 내성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꺼지지 않는 불꽃인 올림픽 성화가 떠오르는군요.
<연모>를 하면서 푸른 불꽃에 대해 생각했어요. 빨간 불꽃이 더 활활 타오르는 듯 보이지만 사실 파란 불꽃과 흰 불꽃이 더 뜨겁잖아요. <연모>의 휘가 빨간 불꽃이 아니라 푸른 불꽃 같은 사람이구나 생각했는데 저도 남들이 봤을 때는 미온적일지 몰라도 제 안에 아주 커다란 불꽃이 있는 것 같습니다.(웃음)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위안이 될 때가 많아요. 연약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한 부분도 있다는 것을 저는 아니까. 그런데 이제는 많이들 알아주셔서 오히려 ‘저도 무른 부분이 있어요’라며 중심을 맞춰가고 있어요.(웃음)
<우영우>는 특정 층이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범국민적 작품이었어요. 우리가 내심 바라는 가치와 상황이 가득했어요. 자폐가 있지만 변호사로 자리 잡길 바라는 마음, 부당하게 해고된 사람들이 이겼으면 하는 마음 등이죠. 작품에 임하며 자주 떠올린 가치가 있나요.
그게 참, 어렵습니다. 다 지난 지금 얘기해보자면 자폐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장애를 앞세우면 그 속에 가려지는 수많은 가능성을 목도할 수 없겠다 싶었거든요. 스스로도 연기를 하면서 1차적으로 들었던, ‘이래도 될까?’ 같은 고민 또한 영우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겠다 싶어서 편견을 검열하는 과정이 이어졌어요. 많은 분께서 영우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영우의 편이 되어주십사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보자는 생각이 컸고요. 예를 들어 대본에 ‘아무런 표정을 느낄 수 없는 영우’라고 되어 있는 부분을, 나름대로 영우도 계속 이 세상과 부딪히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상호작용하고 있을 테니 좀 다르게 표현해보면 어떨까 했어요. ‘조금 더 반응이 있는 영우’일 수 있다고 작가님께 조심스럽게 전했는데 다행히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셨고요. 문지원 작가님, 유인식 감독님… 마음의 짐을 기꺼이 가져가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잘 마쳤어요.
자폐인이라는 설정은 정말 조심스러웠을 겁니다. 누구에게도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는데 불가능한 바람이기도 해요.
감독님과 중간중간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공통적으로 ‘시청자의 감수성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감수성이 있을 수 있다’고 느꼈어요. 예를 들어 영우를 귀엽게 표현한 것에 대해 좋게 느끼는 분도 있고 자폐가 마냥 귀엽진 않은데 캐릭터라서 가능한 모습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도 있어요. 많은 분이 보신 만큼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내주셔서 무섭긴 했어요.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배우로서 다르게 표현할 수 있었나?’ 하고 계속 검열했어요. 작가님도 늘 오답 노트를 쓰는 기분이라고 하셨는데 모두 비슷하게 느꼈어요. 저희가 정답은 아니더라도 틀린 답은 아니길 바라는 최소한의 마음, 진심이 왜곡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최대한의 마음으로 임했어요.
다양한 인물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어요. 단순히 탈북민, 지적장애인, 레즈비언이 아니라 각자의 사정이 풀렸고요. 문지원 작가는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살 만한 곳,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있다면 드라마를 계기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라고 말했어요. 연기하며 깊이 생각해본 이슈가 있었나요.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배우로서 큰 꿈을 품고 살지 않아요. 작품을 통해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기대도 하지 않아요. 하지만 사회적 담론이 충분히 나올 만한 이야기를 <우영우>를 통해 할 수 있게 돼서 지금 사회 분위기가 참 감읍해요.(웃음) 제목은 ‘이상한 변호사’지만 영우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얘기해주는 에피소드 같다고 느꼈어요. 제약 없이 많은 이야기를 담는 것이 작가님의 도전이었고, 그런 이야기에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도 우리 모두의 목표였어요.
영우의 하루에는 자기만의 규칙으로 가득해요. 자기소개는 ‘기러기, 토마토’부터 시작하고, 문을 열고 들어갈 땐 ‘하나 둘 셋’을 세야 하죠. 당신이 사랑한 우영우만의 규칙은 무엇인가요.
초반에 적응하는 데 산만했고 나중에는 안 하면 어려웠던 부분이 손동작이었어요. 영우만의 신남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느꼈거든요. 좋아하는 법 얘기나 고래 이야기를 하는 그 시간이 영우에게는 치유의 시간이었을 거예요. 인간 박은빈은 그런 영우의 대사를 감당하기가 몹시 스트레스였지만.(웃음) 토씨 하나도 틀리면 안 되어서 집중해야 하는데 상대방의 눈을 쳐다볼 수 없어서 영우만의 세계에 빠지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근데 나중에는 내 손을 묶는다면 이 대사를 못하겠다 싶을 정도로 많이 동기화됐어요. 영우의 루틴에서 보디랭귀지는 불규칙적이긴 했지만 안 하면 규칙성이 어긋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좋았습니다.
박은빈이 일상에서 따르는 규칙이 있다면.
크게 없어요. 징크스를 만든 적이 없어요.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아서.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질 때도 있었지만 그조차 그냥 지워버렸어요.
<이판사판>에서 판사 역할을 맡은 이래 두 번째 법정 드라마입니다. 당신이 느낀 법정 드라마의 미덕은 무엇인가요.
저 또한 현실에서 이해가 안 가는 판결이 있어요. 하지만 판사 역할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법리에 따라서 판결해야 한다’예요. 그동안 보여준 극 중 인물은 정의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현실과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어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로운 면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법정 드라마의 미덕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을 반영해주니까요.
<유 퀴즈 온 더 블럭> 예고편에서 눈물을 흘리던데 눈물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근래 눈물 버튼이 좀 쉬워져서 여기저기서 울고 다녀요.(웃음) 단단하게 연마해오던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자 물렁해진 것 같아요. 눈물이 나는 자신을 보면서 ‘아, 나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구나’ 깨닫고 있어요. 누구보다 이 프로젝트를 무탈하게 마무리하길 바란 건 저였거든요. 조금만 잘못해도 모두를 욕보일 수 있다는 부담감이 이제 와서 안도감과 더불어 조금씩 터져 나와요.
영우를 향한 눈물은 아니었군요.
현장 관계자분들, 유아, 특수 청소년 교육과 일을 하고 계시는 분들로부터 미디어에서 장애인을 항상 안쓰럽고 도와줘야 하는 존재로만 부각시키는 데 갈증이 있었는데 영우를 그렇게 그리지 않아줘서 고맙다는 얘길 종종 들었어요. 그래서 사실 영우가 제게 아픈 손가락은 아니에요. 오히려 맡은 인물 중에 가장 큰 용기를 가졌고 가장 어른다웠어요. 스스로를 가엾이 여기지 않는 존재였어요. 누구보다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존재 자체로 제게 눈물을 주는 캐릭터는 아니었어요.
앞서 우영우가 귀엽게만 그려진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우영우가 정말 귀여워서 좋았습니다. 귀여움은 사람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고 기분 좋게 하죠.
어릴 때는 귀엽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맡은 역할을 통해 귀엽다는 얘기를 좀 듣게 됐습니다. 본격적으로는 <청춘시대> 때부터죠. 꾸며낸 모습이 아닌데 이 모습에 귀여움이 있구나 싶어 자신감이 누적되고 있달까요.(웃음) 그 기운을 받아서 한층 더 사랑스러움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적절하게 제 안의 균형감을 맞춰가고 있습니다.(웃음) 아, 제가 귀여움을 느끼는 것들이오? 약간 둥그스름한 자태에 빠지는 편이에요. 토끼의 뒤태. 뽀송뽀송한 느낌을 좋아합니다.(웃음)
의도치 않았음에도 웃음 코드 역시 작품 구석구석 자리했어요. 박은빈의 유머 세계가 궁금해요.
개그 코드가 사람마다 다를 텐데 스스로 평가하자면, 개그 포인트의 역치가 낮지도 높지도 않습니다. 대외적으로 잘 웃는 편이지만 가당치도 않은 개그에는 ‘얄짤없는’ 편이기도 하거든요. 저의 진지하지만 반전이 섞인 모습을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구나 생각한 적은 있어요. 딱 봐도 모범생 같고, FM 같고 재미없을 것 같은 느낌. 많이 틀리지도 않지만 저만의 허를 찌르는 뭔가는 말의 재치에서 오는 게 아닐까 싶기는 합니다.
그나저나 인터뷰를 하면서 굉장히 온전한 문장을 구사한다는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한 문장이 너무 길어져서 사실 반성을 많이 해요. 떠오르는 생각이 많다 보니 얘기를 계속 이어가게 돼요.
활자나 문장에 집착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평소 책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니거든요. 사실 독서를 즐길 것 같다고 많은 오해를 하세요. 평소 부지런히 계획을 세워서 완벽하게 지킬 것 같다고도요. 그렇지만, 아닙니다. 시놉시스와 대본 등 항상 활자를 봐야 하는 게 배우의 서브텍스트라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어린 친구들이 제 인터뷰를 보면서 모르는 단어를 많이 알게 되었다고 얘기해서 놀라워요.
‘자기 효능감’ 같은 단어죠.(웃음)
스스로 어휘력이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거든요. 이 단어를 내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그 근원을 잘 모르겠어요. 제 생각을 표현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생각을 온전히 전달하고 싶은 마음 아닐까요.
‘적확하게’ 전달하고픈 마음이죠.(웃음) 생각이 많은 편이었지만 이제는 좀 거를 수 있게 됐어요. 감정이 실제인지 구별해야 하고, 어떤 생각 때문에 이런 감정이 떠오르는지 같은 자각의 힘이 저를 정돈해주고 에너지가
되더라고요. 생각을 정리하는 자각의 시간이 저를 단단하게 해줬어요.
넷플릭스 TV 비영어 부문 가장 많이 본 콘텐츠 1위에 오르는 등 <우영우>는 전 세계에서 보는 작품으로 등극했어요. 덕분인지 미국비평가협회(CCA) 주관 행사에서 라이징 스타상을 수상했어요. <연모>는 국제 에미상 텔레노벨라 부문 최종 후보로 올랐고요. 전 세계로 나설 준비, 됐습니까?(웃음)
솔직히 좀 무서워요. 어릴 때 장래 희망과 동시에 10년 뒤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하잖아요. 그때부터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품었어요. 큰 이상을 품었다가 그렇게 안됐을 때 자괴감을 스스로 처리하고 싶었고, 또 너무 작게 생각해서 나의 가능성을 좁히고 싶지 않았거든요. 계획을 세우지 않고 일단 괜찮은 방향으로 나아가보자 싶었어요. 세계를 겨냥한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꿈은 없었지만 그 사이에 길을 터준 분들이 많았고 저도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가 보이는데 성큼 발을 내딛기에는 두려운 마음이 있어요. 어떻게 되겠죠.(웃음)
작품의 성공 후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선택지라는 결과가 찾아옵니다. 그 한가운데 있나요?
<연모> 이후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하는 동안 더 많은 제안을 받았어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모습을 기대해주시는구나 싶은 작품이 많았어요. <우영우> 때와 마찬가지로 제게는 어렵고 두려운 선택지를 오히려 타인이 더 쉽게 생각해줄 때가 있더라고요. ‘박은빈이면 하겠지’ 식으로요.(웃음) 그동안 해온 도전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과정이지만 책임감을 내려놓고 즐길 수 있는 작품과 캐릭터를 만나는 것도 지금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선택일 것 같아서 나름의 좋은 답을 찾아내보려고 하고 있어요.
감독이나 작가가 배우 박은빈을 창작의 중심에 두듯, 화보를 찍는 잡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아무 제약 없이 화보를 기획할 수 있다면 어떤 제안을 하고 싶나요.
오늘 받은 질문 중에 제일 어렵네요.(웃음) 컬러 렌즈를 껴본 적 없어서 도전해보고 싶고 헤어스타일에 따라 이미지가 많이 변하니까 쇼트커트나 염색 머리를 시도해보면 어떨까요?(웃음) 대답을 약간 쥐어짜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지만 다채로운 저를 발견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패션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언어이기도 한데 박은빈을 설명해주는 패션 아이템을 꼽아본다면.
평소에 옷을 되게 좋아하고 가짓수도 많아요. 여러 가지 스타일을 무분별하게 소장하는 편이에요. 특별히 저를 규정짓는 스타일은 없어요. 캐주얼하게 입고 싶을 때가 있고 또 어쩔 땐 격식 있게, 아니면 드레시하게 입고 싶은 날이 있잖아요. 매일 심리 상태에 따라 옷을 골라 입는 편입니다. 옷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 화·목요일에 저를 보는 사람은 박은빈은 저런 스타일이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월·수요일에 보는 사람은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볼 거예요. 항상 다르게 입고 다니는 게 즐거움이었기 때문입니다.
<우영우> OST를 들으며 인터뷰 질문지를 작성했어요. 직접 ‘제주도의 푸른 밤’을 불렀죠.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웃음) ‘제주도의 푸른 밤’ 곡을 받았을 때 어려웠어요. 기존에 수없이 리메이크된 곡이니까요. 그래서 영우의 서정적인 면에 집중해야겠다 싶었어요. 기교를 빼는 게 좋겠다고 합리화하면서 깨끗하게 부르려고 했어요.
<우영우>를 보며 우리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는 건 사람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쌓이는 감정은 정말 힘이 강하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박은빈은 어떤 딸이고 어떤 동생이며 어떤 친구입니까.
그 부분은 이 삶이 끝나야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계속 나아가는 인간으로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딱히 설명하고 싶지 않아요. 또 제가 설명하는 대로 저를 생각해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하지만 남들이 보는 나는 어떨까 늘 궁금해요. 때로는 내가 모르는 모습을 주변에서 알아주는 순간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저를 일깨워주는 촉발제가 되기도 하니까요. 나를 알아간다는 건 참 즐거운 것 같아요.
가족이 물려준 재능 중 배우로서 유용한 재능은 무엇인가요.
어릴 때는 저의 야들야들한 모습을 보고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지 않았느냐고 예상하시는데요. 저는 가족들 덕분에 굳세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웃음) 알아서 하게 하셨고 특히 의지는 안 하게 하셨어요. 사람들이 외형으로 판단하지 않게 저 스스로 강인하게 살아온 부분도 있어요.
마지막 회 대사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의 여운이 여전합니다. 배우 박은빈이 가치 있고 아름답게 느낀 순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얼마 전 단독 팬 미팅을 마쳤고 곧 해외 팬 미팅 투어를 떠나는데요. 대면으로 팬들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되게 생경한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나를 사랑하는 눈빛으로 바라봐주는 사람들의 기운이 참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더라고요. 남녀노소 다양한 분들이 오셨는데 이렇게 다양한 분들께 사랑받는 배우가 되었구나 실감하면서 되게 뭉클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때도 오열했습니다.(웃음) 늘 그분들의 마음을 잡아놓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으로 힘을 받은, 가치 있고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영우가 마지막으로 깨달은 감정은 뿌듯함이었어요. 박은빈의 뿌듯함도 함께했을 듯합니다.
혼신의 힘을 다했기 때문에 ‘뿌듯하게 끝난 게 되게 뿌듯했습니다’. 서운함도 있지만 해방감이 컸고 해방감과 함께 찾아온 성취감이 더 컸습니다. 어릴 때는 연기로 칭찬받고 싶었다면 요즘에는 ‘성공이란 뭘까?’ 생각합니다.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살아가고, 그 과정과 결과가 충만하게 느껴질 때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평소 작품에 임할 때 개인적인 조그마한 목표를 세우는데 지나고 보면 결국 그 목표를 다 이뤄왔어요. 그런 저의 흐름이 뿌듯합니다.
27년 원로 배우다운 발언입니다.(웃음)
남들이 어떻게 보든 나를 아는 것. 살아가면서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 미움받는 캐릭터도 있을 테고 기대에 좀 어긋나는 작품을 보여드릴 수도 있겠죠. 그럴 때도 그 선택을 한 나의 목표가 분명 있을 거예요. 어떤 결과가 오든 스스로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앞날은 크게 고민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금, 제가 느끼는 감정의 이름은 ‘배우 박은빈에 대한 믿음직스러움’입니다.(웃음)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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