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 아이유의 본질
시대에 따라 대중이 추앙하는 스타일, 외모, 재능도 달라진다. 심지어 연예인의 성품이나 태도도 유행을 탄다. 대중의 가치관이 늘 옳지만은 않아서 때로는 위악이나 방종을 세련된 태도로 간주하기도 한다. 어쨌든 엔터테이닝하면 되는 것이 엔터테이너니까, 불만은 없다. 그런데 여기 아이유가 있다. 그에 대한 개인적 호오를 떠나, 아이유는 한국인이 존경하거나 사랑하는, 그리하여 유명인에게 기대하는 전통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스타다. 시대를 막론한 보편과 본질, 그것이 아이유에게는 있다.
아이유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 순위에서 유재석과 더불어 꾸준히 최상위권에 드는 스타다. 힙합 커뮤니티의 자조적 농담이었지만 결국 밈으로 자리 잡은 ‘국힙원탑’이란 별명처럼, 그는 본업인 음악에서 일단 이견 없이 성공한 인물이다. 갓 톱스타에 등극한 2011년경 그는 “언젠가 빠질 거품이 무섭다”는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그의 인기는 거품이 아니었다. 11년이 흐른 올해 아이유는 한국 여가수 최초로 서울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었고, 티켓은 순식간에 매진되었다. ‘국민 여동생’ 신드롬을 낳은 초기 히트작, 장르 변화를 시도하며 아이유의 음악적 지향에 단서를 제공한 <모던 타임즈> 앨범, 서정적 리메이크곡으로 세대 초월 팬덤을 일구어낸 <꽃갈피> 앨범 등에 비해 최근 앨범의 대중적 파괴력이나 확장력은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이 자신의 색깔은 뚜렷해졌고 감성도 깊어졌다. 그는 성공한 스타일이나 유행을 답습하는 대신 그때그때 자신의 성찰을 반영하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하고, 그것들을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감각이 탁월하기 때문에 다음 앨범에선 무엇을 내놓을지 늘 기대되는 음악가다.
작사, 작곡, 프로듀싱에 적극 개입하면서 꾸준히 곡을 발표하는 성실함과 그렇게 만든 곡이 매번 차트에 오르는 현상은 선후를 규정할 수 없는 관계다. 뮤지션 아이유에 대한 믿음이 셀링 파워로 직결되고, 그것이 곧 꾸준한 음반 발매의 동력이 된다. 특히 작사가로서 아이유의 성취는 뜻하는 바가 크다. 그의 언어는 때로 대중의 보편 정서에 강력히 소구하고, 때로 스타로서 겪는 특수한 상황을 어떤 크리틱보다 직설적이고 유려하게 전달한다. 한 편의 서정시 같은 ‘밤편지’가 전자였다면 자신을 향한 대중의 시선을 날카롭게 분석한 ‘스물셋’, 관계의 적당한 거리에 대한 보편적 이야기이자 연예인 아이유의 따끔한 경고처럼 들린 ‘삐삐’는 후자였다. 이런 작업을 통해 그는 귀엽고 청순한 외모로 듣기 편한 음악을 하는 인기 뮤지션 같지만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라는 이미지를 쌓았다. 자기 언어를 갖고 자신에게 필요한 표현을 할 줄 안다는 건 예술가에게는 이토록 중요한 일이다. 여러모로 그는 K-팝 아티스트 중 ‘아티스트’라는 호칭의 고전적 의미에 가장 가까운 스타다.
음악가로서 그가 본업에 충실하고, 단호하되 과격하지 않게 대중과 소통함으로써 존경을 쌓아온 한편, 인간 이지은의 성공 신화와 미담은 한국인이 숭배하는 또 다른 가치를 드러낸다. 데뷔 전 가계의 곤란, 주변의 회의를 딛고 톱스타가 된 과정, 애초부터 여느 아이돌과 달리 자유롭게 음악 활동을 했다는 배경은 그의 성취가 자동으로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군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성공을 부여받았는가, 스스로 이루었는가는 동경과 존경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아이유가 ‘국민 여동생’ 시절 학업에 충실할 수 없다는 이유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전담 스태프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자 사람들은 그를 ‘개념 연예인’이라 불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피호명자에 대한 시선의 우위가 담긴 ‘개념’이라는 표현을 그에게 쓰는 것이 어색해졌다. 그는 각종 재난 상황을 비롯해 사회의 관심이 필요한 분야에 기부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누적 기부금은 45억원을 초과한다고 추산된다. 지난 2020년 아이유는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친동생이 진행하는 인터뷰(혹은 만담)를 공개했다. 일을 떠나 인간으로서 꿈이 무엇이냐는 동생의 질문에 아이유는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가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에는 일과 사람이 포함된다. 과연 그는 주변 스태프, 동료 연예인뿐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으로 만난 일반인과도 카메라 뒤에서 오래 인연을 이어갈 만큼 관계를 잘 지키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연예계에선 매력이 최고의 자산이고, 그 매력이란 선악으로 결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높은 공감 능력과 사회적 헌신, 인품 등은 여전히 한국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미덕이다. 그것을 증명하는 존재가 아이유다.
2018년 가온차트 뮤직어워즈에서 <팔레트>로 ‘올해의 음반제작상’을 수상했을 때, 아이유는 이런 수상 소감을 남겼다. “저는 그냥 이지은이고, 이렇게 다 합쳐서 아이유를 만드는 거예요. 같이 고민하고, 같이 땀 흘려서 만드는 게 아이유입니다.” 그런데 지난 2020년 유튜브 공식 채널 인터뷰에서는 이런 말을 했다. “워낙 어릴 때부터 일을 했고, 이지은과 아이유를 나누는 게 더 이상 의미가 없어요.” 어쩌면 그것은 중대한 변화를 뜻한다기보다 상황에 따른 용어 선택의 차이였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뮤지션으로서 정점을 찍은 것처럼 보이던 지난 2018년 이후 그에게 벌어진 비약적 변화를 생각하면 다른 해석의 충동이 들기도 한다. 2018년 아이유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로 극찬을 받았다. 기존 드라마 <드림하이>, <최고다 이순신>, <프로듀사> 등이 가수 아이유의 인지도 혹은 이미지에 기댔다면 <나의 아저씨>는 그것이 필요치 않은 작품이었다. 그는 철저하게 고독하고 악에 받친 아웃사이더 ‘지안’을 연기했다. 어느 친절한 ‘아저씨’를 만난 지안은 어둠뿐인 동굴에서 희미한 빛을 발견한 사람처럼 그를 향해 다가간다. 도전적인 역이었고, 눈부신 연기였다. 시청자들은 아이유와 이지은을 분리할 필요가 없었다. 이름이 무엇이건 그는 누구의 ‘부캐’가 아닌 완전한 배우였으니까. 이 작품의 성공은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브로커> 캐스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2019년 아이유는 <호텔 델루나>로 또 한 번 흥미로운 변신을 시도했다. 그는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서 낡은 빈티지 아이템에 집착하다가 이효리로부터 의문을 사기도 했다. 평소 무대의상은 청순하거나 귀여운 스타일이 많았다. 그런데 <호텔 델루나>에서의 화려한 변신은 그가 하이패션 모델로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 후 아이유의 유튜브 채널도 구독자 800만을 넘길 정도로 성장했다. 그의 일상 모든 것이 콘텐츠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을 아이유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오랜 활동에서 비롯된 여유이기도 할 테고, 강력한 팬덤이 주는 안정감, 팬덤 밖의 사람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확고한 커리어, 그 커리어를 스스로 프로듀싱해온 창작자로서의 자신감이 결합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적당한 성공을 계기로 누군가의 등 뒤에 숨거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항상 전면에 나서서 자신의 목소리로 대중과 소통했다. 그 결과가 오늘의 아이유인데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랴. 그는 명성의 중압감을 이겨내기 위해 자아를 분리할 필요도 없을 만큼 신뢰받는 예술인이고, 이지은의 삶이 아이유의 모티브이고 아이유의 시간이 이지은의 대부분이라 그 둘을 분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도 하다.
스물아홉 아이유는 서른아홉 아이유에게 영상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과거의 지은에게 빚지지 않기. 나는 20대에도 열심히 살았으니까, 30대에도 열심히 살아서 과거 지은에게 빚지지 않고,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어.” 팬들은 이 바람이 이루어질 걸 안다. 혹여 도중에 열심히 살지 않게 되더라도 그에게는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어떤 사색에서 비롯되었든 그 사색은 충분히 깊을 것이고, 그것이 언젠가는 노래가 되고, 연기가 되고, 지금은 상상도 못할 다른 무언가가 되어 팬들을 설레게 할 것도 안다. 그게 아이유니까. 이지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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