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스타일의 정수, 미스터 랄프
미국을 상징하는 디자이너는? 1990년대 구찌의 부활을 이끈 톰 포드, 이브 생 로랑식 파리 DNA를 미국적으로 재해석한 홀스턴, 상업주의의 화신 마크 제이콥스 등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가장 ‘미국적인’ 디자이너를 묻는다면, 모든 손가락이 랄프 로렌을 향할 겁니다.
랄프 로렌은 1967년 브랜드 설립 이후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은 물론, 80대 초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스타일을 자랑합니다. ‘미국식’ 스타일링을 지향한다면, 매번 컬렉션이 끝난 뒤 무대 위로 올라온 그의 스타일을 참고해야 합니다.
먼저 1995 S/S 컬렉션이 끝나고 난 뒤의 모습입니다. 타이트한 검정 티셔츠와 워싱 데님은 더없이 클래식한 조합이죠. 지루하지 않은 룩을 완성하기 위해 랄프가 선택한 것은 실버 빅 버클이 달린 웨스턴 벨트. 연식을 가늠할 수조차 없는 벨트와 함께 커다란 다이얼의 시계를 매치한 랄프의 센스가 돋보입니다. 170이 채 되지 않는 키에 작은 체구지만, 뒤따르는 모델들보다 강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죠.
바로 다음 시즌 랄프의 레더 재킷을 보고 떠오르는 것이 있을 겁니다. 각종 화보와 스타들의 인스타그램에서 매일같이 등장하던 미우미우의 빈티지 레더 재킷이 바로 그것. 클래식한 워싱 데님과 검정 터틀넥 니트 위에 레더 재킷을 걸친 랄프는 미국 서부 어디선가 바이크를 즐기고 있을 것 같은 모습이군요. 벨트와 재킷 색상을 통일하는 센스 역시 잊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랄프 로렌을 상징하는 아이템 중 하나인 ‘성조기 니트’도 그가 입으면 다릅니다. 벨트와 부츠 색상을 통일해 재미를 준 것은 물론이고, 두 가지 아이템 모두 한없이 빈티지한 느낌이기 때문이죠. 성조기를 그린 니트를 입은 만큼, ‘미국적인’ 무드를 한껏 끌어올리기 위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랄프 로렌이 좀 더 클래식에 기반한 아메리칸 스타일을 즐겨 입었다면, 그 후의 랄프는 조금 다릅니다. 웨스턴풍 아이템을 적절히 섞어주며, 좀 더 과거로 돌아갔다고 할까요?
2016 F/W 쇼를 마무리한 랄프 로렌의 착장은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100년 혹은 200년 전의 카우보이들이 입었을 법한 룩을 선보였거든요. 랄프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웨스턴 벨트, 검정 타이, 닳고 닳은 듯한 스웨이드 베스트를 활용해 룩을 연출했습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킷의 스웨이드 엘보 패치 색상을 베스트, 벨트와 통일한 것은 물론이고요. 하지만 ‘21세기 카우보이’ 룩에 방점을 찍은 것은 화려한 패턴의 카우보이 부츠! 2009 F/W 컬렉션의 피날레를 장식한 랄프 로렌의 룩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팬츠의 프린지 디테일은 물론이고, 베스트 주머니에 살짝 꽂아놓은 안경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기 때문이죠.
랄프 로렌의 ‘쇼 핏’을 소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ralphshowfits에는 “쇼의 마지막을 장식한 사람은?”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적어도 랄프 로렌의 컬렉션에서 답은 ‘미스터 랄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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