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듣는’ 감독, ‘본즈 앤 올’ 루카 구아다니노의 OST 모음.zip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루카 구아다니노와 티모시 샬라메가 돌아왔다. 신작 <본즈 앤 올>은 카니발리즘과 로맨스를 결합한 영화다. 작품 내용만큼 기대가 되는 것은 그의 음악이다. 누군가에게 구아다니노가 믿고 ‘보는‘ 감독이라면 또 그만큼 많은 팬들에게 그는 믿고 ‘듣는‘ 감독이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 또래일 때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에 반해 남몰래 방에서 류이치 사카모토를 주야장천 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사운드트랙의 힘을 아는 감독이고 영상, 인테리어, 패션 못지않게 음악에도 좋은 취향을 지녔다.
그의 월드와이드 출세작 <아이 엠 러브>부터 신작 <본즈 앤 올>까지, 루카 구아다니노가 선택한 음악을 정리해보자.
<아이 엠 러브>와 존 애덤스 | 2011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존 애덤스 사랑은 2005년으로 거슬러 간다. 당시 그는 10대의 성적 일탈을 파격적으로 그린 <멜리사 P.>를 편집하고 있었다. 그때 같이 일하던 프로듀서가 생일 선물로 존 애덤스의 <나이브 앤 센티멘털 뮤직(Naive and Sentimental Music)> CD를 주었다. 그는 첫 노트를 듣자마자 존 애덤스의 음악에 사로잡혔다. 존 애덤스는 2003년 발표한 ‘9·11사태(September 11, 2001 attacks)’라는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작곡가다. 구아다니노 감독은 존 애덤스를 알게 된 후 감독으로서의 인생이 바뀌었고, 언젠가 그에게 사운드트랙을 맡기겠다는 야심을 품었다고 한다.
결국 구아다니노 감독은 <아이 엠 러브>에 존 애덤스의 음악을 넣고 편집했다. 하지만 사용권 허가는 받지 못한 상태였다. 세계적 명성을 얻기 전이던 구아다니노는 데뷔작 <더 프로타고니스트>(1999)에도 출연한 배우 틸타 스윈튼에게 존 애덤스를 설득해달라고 부탁했다. 틸타 스윈튼의 편지를 받은 작곡가는 편집본을 보여달라고 했다. 존 애덤스는 그 영화와 자기 음악이 사용된 방식에 매우 흡족해했고, 메인 타이틀에 ‘뮤직 by 존 애덤스‘라고 넣어줄 수 있냐 물어왔다. 구아다니노 감독은 훗날 인터뷰에서 “그거야말로 내가 원했지만 감히 먼저 물어볼 수 없는 말이었다“고 그 순간의 흥분을 고백했다.
존 애덤스의 음악이 두드러지게 사용된 <아이 엠 러브> 사운드트랙은 “반복해서 들을 가치가 있는 드문 사운드트랙 중 하나“(BBC, 음악 평론가 마이클 퀸)라는 찬사를 받았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훗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오프닝 타이틀에도 존 애덤스의 곡 ‘할렐루야 정션(Hallelujah Junction)’을 사용했다.
존 애덤스의 1985년 작 ‘더 체어맨 댄스 – 오케스트라를 위한 폭스트롯(The Chairman Dances – Foxtrot for Orchestra)’을 삽입한 <아이 엠 러브> 공식 예고편
<비거 스플래쉬>와 롤링 스톤스 | 2016
<아이 엠 러브>에 이어 가질 것 다 가진 부유한 중년들이 유럽의 호화로운 풍광을 배경으로 사랑에 목숨 거는 얘기다. 전설의 록 스타로 출연한 틸다 스윈튼, 그의 옛 연인이며 프로듀서인 조증 질투남으로 출연한 랄프 파인즈의 연기가 압권이다. 여기에 록 스타의 현 남편, 난봉꾼 프로듀서의 딸까지 더해 4각 관계가 펼쳐진다.
록 스타와 프로듀서가 등장하는 만큼 사운드트랙도 올드 록 넘버로 채워져 있다. 롤링 스톤스, 캡틴 비프하트, 해리 닐슨 등을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특히 롤링 스톤스의 ‘이모셔널 레스큐(Emotional Rescue)’는 한때 연인이던 두 사람의 추억이 담긴 곡이자 랄프 파인즈가 연기한 해리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된다. 제목부터 젊은 남편과 멀쩡히 잘 사는 여자를 ‘감정적으로 구해내겠다‘는 그의 망상과 부합한다. 이 노래는 파국이 지난 후 엔딩에서 반복되는데 그로 인해 영화의 여운이 한층 깊어진다.
랄프 파인즈가 LP를 걸고 ‘이모셔널 레스큐‘에 맞춰 막춤을 추는 신은 눈 뗄 틈 없는 <비거 스플래쉬>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그의 ‘아재 댄스‘에 대해 동료 배우 마티아스 쇼에나에츠는 “상징적이고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사람들은 15년 후에도 그 장면을 이야기할 것이다“라고 감탄했다.
랄프 파인즈가 롤링 스톤스의 ‘이모셔널 레스큐‘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 <비거 스플래쉬> 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수프얀 스티븐스 | 2017
이 영화에는 수프얀 스티븐스의 노래 3곡이 삽입되었다. 모두 서정적 선율뿐 아니라 주인공의 감정과 상황에 완벽하게 조응하는 가사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중 ‘미스터리 오브 러브(Mystery of Love)’가 아카데미 오리지널 송 후보에 올랐다. 엘리오와 올리버가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함께 여행을 다닐 때 흘러나오는 음악이다. 분명 행복한 순간인데 음악은 아련한 슬픔과 불안을 담고 있다. 행복은 사라지고 이 순간은 추억으로 남을 거라는 예고다. 하지만 그래서 이 장면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엔딩곡 ‘비전스 오브 기디온(Visions of Gideon)’은 촬영이 끝나기 전 완성되었다. 대본에 ‘엘리오가 벽난로 불빛을 보며 자기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고 묘사된 장면이다. 수프얀의 음악을 들은 감독은 곡의 아름다움과 감성에 충격받았다. 엘리오 역의 티모시 샬라메도 마찬가지였다. 감독은 엔딩 신을 찍을 때 샬라메의 귀에 이어버드를 끼우고 이 곡을 틀어주었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2021년 수프얀 스티븐스의 ‘텔 미 유 러브 미‘ 뮤직비디오를 찍어주기도 했다.
‘미스터리 오브 러브‘가 삽입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공식 예고편
루카 구아다니노가 감독한 ‘텔 미 유 러브 미‘ 뮤직비디오
<서스페리아>와 톰 요크 | 2018
톰 요크가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앨범을 만든 첫 영화다. 그는 과거 <파이트 클럽>(1999) 음악을 만들어달라는 에드워드 노튼과 브래드 피트의 부탁도 거절한 바 있다. 라디오헤드의 다른 멤버 조니 그린우드는 <마스터>(2012), <데어 윌 비 블러드>(2007), <팬텀 스레드>(2017) 음악으로 영화계에서 일찌감치 성공했다. 라디오헤드가 <007 스펙터>(2015) 주제곡으로 만들었다가 최종 선택에서 탈락한 ‘스펙터(Spectre)’는 그들의 공연에서 잘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톰 요크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데뷔작은 <서스페리아>다.
<서스페리아>는 다리오 아르젠트 감독의 클래식 호러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서늘한 미장센과 톰 요크 특유의 암울함이 잘 맞아떨어진다. 사운드트랙 앨범에는 ‘언메이드(Unmade)’, ‘서스피리움(Suspirium)’처럼 서정적인 곡부터 음산한 전자음이 절로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볼크(Volk)’까지, 영화와 떼어놓아도 흥미로운 음악이 가득하다.
<서스페리아>를 위해 만든 ‘언메이드‘를 라이브로 연주하는 톰 요크
<본즈 앤 올>과 나인 인치 네일스 | 2022
<본즈 앤 올>은 식인 소녀, 소년이 서로를 알아보고 함께 길을 떠돌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인더스트리얼 록 밴드 나인 인치 네일스의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가 음악을 맡았다. 그들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소셜 네트워크>(2010), 픽사의 <소울>(2020)로 두 번이나 아카데미 오리지널 스코어상을 받았다. 구아다니노 감독은 그들에게 ‘야생 속에서 모닥불 옆에 앉아 기타를 튕기며 단순한 멜로디로 흥얼거리는 경관’을 묘사했다. 그러자 레즈너와 로스가 몇 주 후 ‘힘 있고 다정하면서도 화날 정도로 아름다운’ 테마곡을 들고 왔다고. 식인종의 사랑을 아름답게 그리는 게 따져보면 논란거리일 수 있다. 영화는 음악의 힘을 빌려 그 사랑을 설득해낸다. 감독은 “내가 보기에 우리 영화의 도덕적 입장은 상당 부분 트렌트와 애티커스의 음악에 기대고 있다”고 밝혔다. 오리지널 스코어 외에도 시대 배경에 맞춰 듀란듀란, 조이 디비전, 뉴 오더 등 1980년대 추억의 음악들도 삽입했다.
한편 <본즈 앤 올>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과 티모시 샬라메가 다시 만난 영화로 화제를 모은다. 감독은 원작 소설 영화화 제안을 받고 티모시 샬라메 캐스팅을 조건으로 내걸 만큼 그에게 신뢰를 표했다. 홍보팀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최고의 청춘스타가 된 샬라메에 기대가 큰 듯하다. 11월 26일 워너브라더스 코리아는 공식 예고편을 공개하면서 티모시 샬라메가 직접 음악을 골랐다고 강조했다. 그가 감독에게 제안해 예고편에 삽입된 음악은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레너드 코언이 2016년 발표한 ‘유 원트 잇 다커(You Want It Darker)’다. “우울한 분위기와 섹시한 느낌의 리듬이 영화의 주제를 알리는 멋진 곡이라 생각했다“고.
레너드 코언의 ‘유 원트 잇 다커‘를 삽입한 <본즈 앤 올> 공식 예고편
<본즈 앤 올>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애플 뮤직, 스포티파이, 유튜브 뮤직, 밴드캠프, 아이튠즈 스토어 등에서 감상할 수 있다.
추천기사
-
여행
풍성하고 경이로운 역사를 품은 스페인 중부 여행 가이드
2024.11.22by VOGUE PROMOTION, 서명희
-
엔터테인먼트
조성진부터 임윤찬까지, 연말 클래식 공연 4
2024.11.20by 이정미
-
패션 아이템
지금 사두면 내년 여름까지 쭉 신게 될 스니커즈 5
2024.11.18by 안건호
-
아트
벽과 조명이 움직이는 '크리스티 아시아 태평양'의 새 본부
2024.10.31by 김나랑, 류가영
-
패션 아이템
모양 따라 달라지는 겨울 블랙 진의 멋
2024.11.21by 이소미, Alice Monorchio
-
아트
영원한 화두, 시간을 탐하는 예술가들
2024.11.09by 류가영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