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러플 셔츠 입은 남자, 턱시도 입은 여자

2022.11.29

러플 셔츠 입은 남자, 턱시도 입은 여자

Courtesy of Simone Rocha

2023 S/S 시즌의 하이라이트는? 복귀를 알린 1990년대 슈퍼모델,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기리는 룩을 선보인 브랜드, 브라이덜 웨어를 재해석한 브랜드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를 허무는 브랜드만큼 주목받진 못했다.

Courtesy of Peter Do

Courtesy of Peter Do

브랜드 창립 4주년을 맞은 우리 시대의 ‘마스터 테일러’, 피터 도는 항상 중성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랬던 피터 도가 아워글라스 실루엣의 재킷과 각진 플랫폼 부츠를 신고 등장한 NCT의 제노와 함께 남성복 라인의 시작을 알렸다.

“물론 이전에도 피터 도를 즐기는 남성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우리에게 ‘피터 도 유니버스’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남성복 라인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죠.” 쇼가 시작되기 전 <보그> 인터뷰에서 피터 도는 이렇게 말했다. “늘 우리를 따라다니던 질문이 있었죠. ‘피터 도를 입는 여성은 어떤 사람일까?’ 이 질문이 우리를 제한한다고 느꼈습니다. 이제 피터 도는 모두를 위한 브랜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성 혹은 남성을 위한 옷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옷을 만듭니다.”

런던의 중앙 형사 법원에서는 시몬 로샤의 2023 S/S 컬렉션이 열렸다. 브랜드 역사상 가장 남성복 같던 그들의 이번 컬렉션은 어땠을까? 만장일치로 호평 일색이었다. 시몬 로샤의 남성복은 최근 조금씩 진화를 거듭해왔다. 하지만 그녀가 <보그> 인터뷰에서 설명했듯, 브랜드의 남성복 라인이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갖추고, 여성복 라인과 당당히 함께 설 그날을 기다려왔다고 한다.

Courtesy of Simone Rocha

Courtesy of Simone Rocha

Courtesy of Simone Rocha

핀스트라이프 패턴의 버튼다운 팬츠, 펑키한 지퍼가 달린 트랙 팬츠, 튤 러플로 가득한 봄버 재킷, 실크 트렌치 코트, 주름 잡힌 셔츠까지 시몬 로샤 특유의 페미닌 디자인에 유틸리티 감각을 더했다. 남성복과 여성복을 완벽히 융합한 바람직한 예라고 할까?

Courtesy of Molly Goddard

Courtesy of Molly Goddard

Courtesy of Molly Goddard

2020년부터 남성복을 디자인하기 시작한 몰리 고다드 역시 핀스트라이프 애호가다. 네온 프릴과 범블비 스트라이프, 동화 같은 프린트와 폴카 도트로 가득하던 몰리 고다드의 ‘믹스 앤 매치’ 컬렉션은 여유로운 실루엣이 인상적이었다. 클래식한 수트를 연상시키는 피스, 노르딕 패턴의 니트나 러플 재킷처럼 말이다.

Courtesy of Feben

Courtesy of Feben

타로 카드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을 완성했기 때문일까? 런던 패션 위크에서 두 번째 쇼를 선보인 페벤(Feben)의 2023 S/S 컬렉션에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악마를 프린트한 드레스처럼 각종 미신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브랜드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3D 위빙 기법을 적용한 슬리브리스 드레스 모두 기괴하고 신비로웠다.

Courtesy of Daniel W. Fletcher

Courtesy of Daniel W. Fletcher

Courtesy of Daniel W. Fletcher

다니엘 W. 플레처(Daniel W. Fletcher) 역시 여성복의 실루엣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룩을 선보였다. 더 주목할 것은 시어서커 셔츠, 홀터넥 드레스와 밀리터리 재킷을 포함한 컬렉션의 모든 피스를 재활용 소재로 제작해 ‘지속 가능성’ 또한 놓치지 않았다는 점!

여성복 라인을 전개하기 시작한 남성복 브랜드도 빼놓을 수 없다. 남성용 미니스커트 등을 선보이며 유니섹스 디자인으로 이름을 알리던 스테판 쿡(Stefan Cooke)이 완벽한 예시. 이들 역시 처음으로 ‘여성을 위한’ 의류를 선보이며 호평받았다.

Courtesy of Stefan Cooke

Courtesy of Stefan Cooke

“강인함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페미닌함 역시 잃고 싶지 않았죠.” 쇼가 열리기 직전, 디자이너 듀오 스테판 쿡과 제이크 버트(Jake Burt)가 <보그>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들이 선보인 빅토리아 시대 재킷의 디테일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된 발칙한 무드의 러플 미니스커트, 다양한 형태의 데님과 보타이를 프린트한 티셔츠 모두 ‘페미닌한 강인함’을 완벽하게 표현해냈음은 물론이다. 영웅 같은 인물에게 영감을 받아 탄생한 실루엣은 화려하다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린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루돌프 2세의 궁정에서 영감을 받은 프린트 역시 마찬가지.

Courtesy of S.S. Daley

Courtesy of S.S. Daley

Courtesy of S.S. Daley

귀족 문화에 매료된 듯한 S.S. 달리(S.S. Daley)의 컬렉션 역시 여태까지 그가 선보인 컬렉션 중 가장 ‘여성복’ 같았다. 버지니아 울프와 연인 사이였던 정원사이자 작가, 색빌 웨스트(Sackville-West)와 사교계 인사이자 작가였던 바이올렛 트레푸시스(Violet Trefusis)의 오랜 밀회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이번 컬렉션은 색빌 웨스트가 가꾸던 정원과 그 꽃에서 힌트를 얻은 디테일이 특징이다. “올 블랙으로 멋지게 차려입은 두 사람의 사진이 남아 있어요. 남성용 턱시도를 입은 색빌 웨스트는 주위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은 채, 바이올렛과 팔짱을 낀 모습입니다.” 볼륨감 넘치는 플리츠 디테일의 팬츠, 슬리브리스 니트, 하이넥 가운과 함께한 컬렉션에 대한 S.S. 달리의 설명이었다.

남성복 브랜드가 여성복 라인을 전개하고, 여성복 브랜드가 남성복 라인을 전개하는 것은 이제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러플 셔츠나 스커트를 입은 남자를 봐도 이상하다고 생각할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다. 이제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는, 희미하다 못해 곧 없어질 테니까!

에디터
안건호
Laura Hawkins
사진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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