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스타에서 패션 아이콘으로, 조던과 나이키 이야기
“세상은 더욱 복잡해지고, 혼자서 무언가를 해내기는 불가능에 가깝죠.” 수많은 에어 조던을 탄생시킨 나이키의 전설적인 스니커즈 디자이너, 팅커 햇필드(Tinker Hatfield)가 말했다. 농구 역사상 최고의 스타 마이클 조던을 위해 만든 스니커즈는 나이키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마이클 조던은 곧 에어 조던이었고, 에어 조던을 신는다는 것은 마이클 조던을 위대한 선수로 만든 요소 중 일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혁명이라고 불러 마땅한 에어 조던 프로젝트는 스니커즈 문화뿐 아니라 아메리칸드림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에어 조던 시리즈는 지속적으로 패션과 스포츠 너머의 영역을 탐험하고 있다. 영화 <빽 투 더 퓨쳐 2>에서 영감을 받은 투명 솔, 페라리의 디자인을 본뜬 슈즈는 물론 리바이스, 오프화이트, 꼼데가르송, 디올과 같은 브랜드 그리고 트래비스 스캇과 같은 아티스트와 협업까지. NBA에 입성하기 전, 마이클 조던은 아디다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가 나이키와 계약하길 바랐고, 마이클 조던은 결국 25만 달러라는 금액의 계약서에 사인했다. 당시 운동선수들이 평균적으로 스포츠 브랜드와 맺은 계약의 규모는 약 10만 달러였다.
나이키는 그와 계약을 맺으며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조던이 신인왕을 수상할 것, 올스타에 선정되거나 평균 20 득점 이상을 기록할 것, 마지막으로는 ‘조던 시리즈’가 3년 내에 4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 그 결과는? 마이클 조던은 NBA의 1984-1985 시즌 신인왕을 수상했고, 윌트 체임벌린과 함께 커리어 통산 평균 득점 30점 이상을 기록한 상태로 은퇴했다. 매출에 관해서는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계약 초기, 마이클 조던은 ‘에어 쉽’ 모델을 착용했다. 1984년 나이키가 ‘에어 조던’이라는 이름을 걸고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를 위한 ‘브레드’를 탄생시키기 전까지는 말이다. NBA는 복장 규정을 위반한다는 이유로 조던이 해당 모델을 신고 경기에 뛰는 것을 금지했지만, 나이키와 조던은 그런 룰에 개의치 않았다. 나이키는 조던이 브레드를 신고 경기를 뛸 때마다 부과되는 5,000달러의 벌금을 기꺼이 지불했다. 이후 브레드는 ‘밴드(Banned)’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나이키는 이 모델을 활용한 NBA 리그 규칙 관련 캠페인 영상을 제작했다.
1985년 당시 65달러에 판매되던 에어 조던 1은 37년이라는 시간과 35개 에디션을 거쳐 리셀 문화를 상징하는 신발이 되었다. 에어 조던 시리즈가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제는 아이코닉한 ‘점프맨’ 로고와 함께, 조던 시리즈는 하나의 독립적이고, 뚜렷한 개성을 지닌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혁신을 거듭한 조던 시리즈는 단순히 ‘경기용 농구화’ 정도로 인식되던 신발을 스트리트 웨어의 심벌로 만들었다. 버질 아블로도 조던을 원했고, 빌리 아일리시도 조던을 사랑하며, 조던을 모으는 컬렉터는 세대를 초월한다. 한마디로, 누구나 간절히 원하는 신발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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