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아이브를 사랑하는가
강렬한 동시에 반짝이는 아이브라는 새로운 세계.
더없이 화사한 표정으로 장원영이 말했다. “Dreams Come True!” <보그 코리아> 2023년 1월호 커버 촬영을 위해 모인 아이브와 지난 1년간에 대해 이야기하던 참이었다. 그 말처럼 2022년 아이브의 상상은 모두 현실이 됐다. 과장이 아니다. 숫자가 또렷이 증명한다. 음악 방송 통산 37관왕, 스포티파이 누적 스트리밍 횟수 누적 5억 회, 2022년 발표한 K-팝 걸 그룹 중 빌보드 차트 최장기간 차트인. 이 모든 일이 지난 1년간 벌어졌다. 그리고 2022년의 결론을 내듯 아이브는 2022 AAA와 MAMA, 멜론뮤직어워드에서 신인상과 대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MAMA 대상 중 하나인 ‘Song of the Year’에서 아이브의 이름이 울려 퍼질 때, 멤버들은 잠시 버퍼링이 걸린 것처럼 정지했고 얼굴엔 곧 놀라운 환희가 스쳐갔다. “현실감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한 사람 한 사람 스태프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를 전하던 안유진이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후보에 들어갔으니까 어쩌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잠깐 했지만 동시에 ‘에이, 이게 말이 되나?’라는 생각이 컸어요. 그런데 진짜 이름이 불린 그 순간에는… 그냥 꿈같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2022년의 키워드 중 하나는 단연 ‘걸 그룹’이었다. 이토록 다양한 걸 그룹이, 각각 강렬한 컨셉으로, 하나같이 막강한 성공을 거둔 적이 있었나? 그야말로 4세대 걸 그룹의 시대, 그들은 강한 자아를 노래했다. 부서지지 않고, 게임 체인저를 자처하며, 세계관은 끝없이 확장되어 SF 장르의 전사처럼 다른 차원으로 나아갔다. ‘걸크러시’라는 큰 맥락에서는 아이브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이브는 100%의 파워풀함을 내세우는 대신 하이틴 소녀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나르시시즘에 무게를 뒀다.
이런 아이브의 페르소나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가사는 ‘감히’다. 2021년 12월 1일, 데뷔 후 내놓은 세 곡 ‘ELEVEN’ ‘LOVE DIVE’ ‘After LIKE’에는 모두 ‘감히’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감히’ 누가 이렇게 날 설레게 할 줄 몰랐으니(‘ELEVEN’), 원하면 ‘감히’ 뛰어들라고 요구하고(‘LOVE DIVE’), 방금 말한 감정을 ‘감히’ 의심하지 말라며(‘After LIKE’) 다시금 강조한다. 이쯤 되면 상대보다는 나를 향한 러브 송에 가까울 정도다.
“하지만 진짜 저는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 레이가 나른하게 말했다. “원래 낯도 가리고 부끄러움도 많았어요. 하지만 점점 변해가는 걸 느껴요. ‘ROYAL’ 같은 곡을 들으면 기분이 절로 좋아지고, 자신감도 붙잖아요. 저도 모르게 아이브와 동화되어가는 것 같아요.” 안유진은 바로 이 지점이 아이브가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현실에서 자기 자신을 그렇게까지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브의 음악을 듣고 무대를 보면서 무한한 자신감에 대한 동경을 느낀다. 실제로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 그런 인물이 되고 싶게 만드는 무엇이 아이브에게 있다.
이건 아이브의 리더로, 안유진 본인 스스로 느껴온 감정이기도 하다. “저는 조심스러운 면이 강한 사람이라, 아이브라는 페르소나와는 좀 간극이 있어요. 그 싱크로율이 높아야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가사나 우리가 표현하는 것과 점점 닮아가고 있다는 걸 체감할 때가 있어요. 성장하는 거겠죠.” ‘우리는 왜 아이브를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역시 ‘노래’다. 노래가 좋다는 것만큼 근본적이고 명료한 근거가 있을까.
‘ELEVEN’ ‘LOVE DIVE’ ‘After LIKE’ 세 곡 모두 메가 히트를 기록하면서, 말 그대로 1년 내내 차트를 석권했다는 사실이 그들 음악의 지독한 중독성을 증명한다. ‘LOVE DIVE’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마음에 든다는 의견을 아낌없이 전했다는 장원영은 ‘After LIKE’를 듣고는 이런 생각을 했다. “조금 모순적인 표현이긴 한데, 세련된 촌스러움이 있다고 느꼈어요. 노래가 좋은 것도 좋은 거지만, 좀 더 들어가서 생각해보면 레트로 느낌이 나잖아요. 저는 모든 사람의 DNA에 레트로가 섞여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약간은 키치한, 그런 취향을 건드리지 않았나 싶어요.” 이해 가능하면서도 선망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 쉽고 중독적인 노래. 그러니까, 한마디로 요약해서 아이브의 결정적인 매력은 직관적이라는 거다.
대중음악을 하는 아이돌 그룹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는 것만큼 강력한 미덕은 없다. 여기에 무대 표현이 더해진다. 사랑스럽고 때로는 날카로우면서도 당찬 에너지가 리드미컬하게 오가며 곡의 메시지와 감성을 풍성하게 구현해낸다. ‘After LIKE’ 무대에서 시크한 모습으로 ‘가을 선배’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수많은 밈을 만들어낸 가을은 처음엔 본인 파트가 킬링 파트가 될 줄 몰랐다고 털어놨다. “제가 ‘두 번 세 번 피곤하게 자꾸 질문하지 마’라는 가사로 시작하잖아요. 그걸 최대한 시니컬하게 살리고자 했어요. 일상에서의 저는 차분하고 덤덤한 사람이지만 무대 위에서만큼은 완전히 변하려고 노력해요. 자연스럽게 내가 최고이고, 이 공간을 장악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장착된다고 할까요?”
현장에서 만난 아이브는 소란스러운 그룹은 아니었다. 촬영 준비를 하면서도 가끔 소소한 대화를 주고받고 식성이 맞는 멤버들끼리 모여 음식을 먹는 정도였는데, 오히려 그 모습이 퍽 자연스러워 보였다. 함께 사는 가족이 유난스럽게 하루 종일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것처럼, 아이브의 팀워크에도 억지라는 게 없었다. “숙소에서도 조용한 편이에요. 어쨌든 스케줄이 많다 보니까 서로의 시간을 존중해주려고 하는 거죠.” 평소 자기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듣고 조율해서 결단을 내린다는 리더 안유진의 말에 장원영이 쾌활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뭔가 말하지 않아도 ‘저 사람이 지금 어떤 기분과 상황이겠구나’를 생각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게 있어요.” 그럼에도 막내 이서는 언니들과 있을 때 가장 힘이 난다고 덧붙였다. “사소하지만 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맛있는 거 먹을 때 가장 행복해요. 리프레시가 되는 느낌이에요.”
아이돌 그룹을 만나 인터뷰를 하다 보면 가끔 성장의 속도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경험과 고민, 노력의 밀도가 높기 때문인지, 여느 하이틴이 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를 털어놓곤 한다. 앳된 얼굴이나 말투와는 다르게 그들의 내면이 단단하고 성숙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 본인들이 원하는 방향을 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이런 자기 확신은 때로 강력한 동력이 된다.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깨닫고 난 후에야 일을 진정 즐길 수 있었다는 안유진의 답에서 알 수 있듯 말이다. “아이돌이라는 직업 자체가 주변에 워낙 디렉팅을 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보니, 예전엔 그분들의 말만 잘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최근에 앨범 준비를 하면서 어쨌든 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야 제가 즐겁다는 것도, 원하는 것을 진행하려면 무엇보다 강한 확신이 필요하다는 것도요.”
물론 확신을 갖기까지 아이브 멤버들은 자기 자신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을 거다. 그리고 그 치열한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서는 요즘 본래의 모습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고 말했다. “가장 나다운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어떻게 보면 아이돌은 꾸며진 모습이 강하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제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고민을 많이 해요.” 이서가 자신의 본질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면, 장원영은 행복의 본질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궁극적인 행복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 제 직업은 사람들에게 에너지와 행복을 전달하는 일인데, 그러려면 먼저 저한테 해피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리즈와 가을의 화두는 ‘넥스트’다. “사람들이 열아홉 살이라고 하면 깜짝 놀라요. 제가 성숙해 보이나 봐요”라면서 수줍게 웃던 리즈는 조심스럽게 도전에 대한 욕심을 털어놨다. “새로운 발성의 보컬이나 다른 느낌의 곡도 해보고 싶어요. 일에 있어서뿐 아니라 내면의 성장에 대한 고민도 많아요. 어떤 말을 들어도 긍정적으로 치환하는 연습이라거나 내가 내 편을 더 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죠. 저를 지켜줄 사람은 저밖에 없으니까요.” 그런가 하면 가을의 질문은 좀 더 우리가 궁금해하는 그것에 가까웠다. “최근 신인상과 대상을 함께 받으면서, 저 스스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는지를 묻게 되더라고요. 대상이라는 게 커리어의 목표가 될 수 있을 정도로 큰 상인데, 감사하게도 단기간에 이룰 수 있었잖아요. 그 상을 받았으니 여기서 끝이 아니라 ‘어떻게 나아가야 하지?’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빠르고 높이 날아오를수록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불안에 관한 이야기에 안유진이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 생각엔 믿음직한 근거가 있었다. “음… 저희가 단기간에 정말 많은 사랑을 받은 건 맞지만, 그 뒤엔 노력과 아이브를 서포트해주시는 스태프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불안한 감정보다는 ‘이대로 끝이지 않을까?’라고 속단하는 사람들에게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죠.” 사실 아이브의 ‘넥스트’에 대해 그 누구도 확실히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게 단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곧 <보그 코리아> 디지털 플랫폼에 공개될 콘텐츠 중 하나인 릴레이 인터뷰에서 레이가 안유진에게 질문한다. “2022년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안유진의 대답은 “아이브”다. 그리고 레이는 다시 묻는다. “2023년은?” 답은 이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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