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조규성
조규성과 공. 세계가 주고받은 것 중 가장 뜨거웠다. 가장 치열했다. 가장 아름다웠다.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FA컵 우승, 결승전 MVP, 리그 득점왕, 월드컵 16강 진출과 멀티골까지. 소감이 어떤가?
2022년은 내가 축구를 하면서 가장 많이 얻고 많은 걸 이룬 해다. 감사하다. 이런 화보 촬영도 처음이다.
새해가 시작될 때 어떤 예감이 있었을까? 길몽을 꿨다든지.
꿈은 모르겠고 예감이 좋긴 했다. 생애 처음 국가 대표로 선발됐고 1월 초 터키 전지훈련에서 데뷔 골을 터뜨렸다. 연이어 레바논과의 월드컵 예선전에서도 골을 넣었다. 그렇게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 팀 동계 훈련에 합류했는데 운동장에 들어서면 자신감이 치솟았다. ‘올해 진짜 내가 한번 일 내겠는데?!’ 뭘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왔다. 너무 재미있는 한 해가 될 것 같아 시즌 시작 전부터 막 설렜다.
축구는 어떻게 시작했나?
열 살 때다. 아버지가 워낙 축구를 좋아해서 조기 축구도 하신다. 난 운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어딜 좀 같이 가자 해서 따라갔더니 축구 하는 곳이었다. 내일부터 여기 나와 운동하라고 해서 그렇게 갑자기 시작하게 됐다. 지금은 아버지께 감사하다. 덕분에 잘됐으니까.
아들과의 화목하고 단란한 축구는 모든 아버지의 로망 아닌가?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우리 아버지는 꽤 엄격하셨다. 처음부터 축구 선수로 키우고 싶으셨던 것 같다. 아들이랑 축구 하고 놀면 행복하겠다가 아니라 유명한 축구 선수로 만들겠다는 꿈이 크셨다. 학창 시절은 물론 대학교 때까지도 누가 나에게 제일 무서운 사람이 누구냐 물으면 아버지였다. 지금이야 아버지가 연세가 드셔서 내가 겁 없이 농담도 할 수 있지만, 예전엔 내가 경기에 져 돌아오는 날이면 집안 분위기가 정말… 깜깜했다. 밥 먹다 체할 정도로.(웃음)
당신의 남다른 소질을 발견한 게 아닐까?
아버지가 그런 안목이 있으신 것 같다. 축구를 시킨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반대하셨다. 배구 선수 생활을 하신 적 있어 운동이 얼마나 힘든지 아시니까.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정말 자랑스러웠겠다.
온 가족이 카타르에서 내 경기를 직관했다. 매형이랑 조카들은 못 왔고. 큰누나, 작은누나, 부모님… 가기 전에 내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살면서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보겠냐고. 내가 경기를 뛰든 안 뛰든 월드컵이라는 세계적인 무대를 함께 본다는 것 자체가 멋진 일이지 않나. 그런데 내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몇 배나 잘됐으니까. 가족들이 진짜 많이 울었다.
가족들의 지지가 많은 힘이 되었을 것 같다.
맞다. 아무래도 내가 막둥이다 보니까 집안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다. 큰누나와는 일곱 살 차이가 나는데 지금도 나를 한참 어린 아이처럼 대한다. 나도 그런 게 싫지 않다. 날 너무 사랑하는 누나들의 마음을 아니까.
누나들은 안산에서 카페와 뷰티 숍을 한다고 들었다. 남다른 패션 감각은 아무래도 누나들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전혀. 누나들의 영향은 하나도 없다. 어릴 때부터 나와서 숙소 생활을 했기 때문에 누나들이 내 옷을 골라주거나 옷차림을 봐줄 일이 없었다. 게다가 난 항상 추리닝만 입고 다녔다. 패션에 관심이 많아진 건 지금 내 일을 봐 주고 있는 동인이 형(최동인)의 영향이 크다. 아티스트인데 이번에 <나 혼자 산다> 방송 촬영도 같이 했다.
두 사람은 언제부터 함께했나?
같은 대학을 나왔다. 2학년 때부터 친해졌는데 그때도 형은 옷을 참 잘 입었다. 나도 그렇게 입고 싶어 묻곤 했다. 그땐 돈이 없었으니 무작정 동묘나 광장시장 같은 데 찾아가 이런저런 옷을 사 입었다. 프로에 와선 좀 더 좋은 옷도 입게 되고, 오늘은 또 촬영하며 루이 비통도 입어보고.(웃음)
헤어스타일도 그렇고 K리그 시상식 옷차림을 보면 블랙 계열의 깔끔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 같다.
머리는 군 제대 후 기르는 중이다. 다시 탈색해보라고 요청하는 팬들도 가끔 계신다. 특별히 선호하는 컬러가 있다기보다 포인트 주는 걸 좋아한다. 지난 시상식에 입은 검은색 가죽 재킷도 대학교 2학년 때 구제 시장 가서 산 거다. 그땐 넥타이로 포인트를 줬다. 격식 있는 자리라 블레이저가 필요했는데 마땅히 입을 만한 게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나답게 입어봤다.
FC안양 시절엔 ‘안양 아이돌’로 불렸다.
이게 참 웃긴 게, 전북 현대로 오고 나선 ‘봉동 아이돌’로 불린다. 전북 현대 클럽하우스 소재지의 주소가 완주군 봉동읍이다. 그런 수식어 덕분에 내가 여태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걸 안다. 감사하게 여긴다.
조카들도 조규성의 열성 팬이다.
우리 조카들은 FC안양 응원가, 전북 현대 응원가 전부 다 외울 정도로 나를 너무 좋아한다. 축구를 사랑하고 축구 선수가 되는 게 조카들의 꿈이다.
2002 월드컵 키드들이 한국 축구계의 황금 세대로 성장한 것처럼 이번 월드컵 이후 축구 선수를 꿈꾸는 어린이들이 부쩍 늘 것 같다.
그렇다면 감사한 일이다. 어린 시절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가 나를 롤모델로 삼아 축구 선수로 성장한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어디 있겠나.
당신의 롤모델은 누구였나?
박지성 선수. 박지성 선배님을 보면서 꿈을 키웠다. 1998년생이라 2002년 월드컵은 기억에 없지만 경기 영상은 나중에 다 챙겨 봤다. 선배님이 활약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어 보였다. 해외에 한국을 널리 알리고 축구 선수의 위상을 높이고. 내가 처음에 미드필더를 하게 된 것도 그 영향이다. ‘나중에 꼭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축구를 시작했다.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공격수로 포지션이 바뀐 건 당시 새로 부임한 광주대 이승원 감독의 제안이었다.
바뀐 지 5~6년 정도 됐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뛰었는데 6개월쯤 지나고 감독님께서 물으셨다. “넌 공격수가 편하냐, 수비형 미드필더가 편하냐.” 아직은 미드필더가 더 편하다고 했더니 “너 그러면 여기서도 게임 못 뛰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난 간절했다. 경기에 너무 출전하고 싶었다.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공격수 하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됐다. 회사원으로 치면 직군을 바꿔 일을 새로 시작하는 것과 똑같다고 들었다. 그만큼 쉽지 않았다. 남들보다 몇 배로 노력했다. 낯선 포지션이다 보니 조언도 많이 구했다. 감독님뿐 아니라 같은 포지션의 선수들, 나를 상대하는 수비수들에게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물었다. 그렇게 배워가면서 매년 내가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축구 인생의 은인이다. 월드컵이 끝나고 연락은 주고받았나?
이승원 감독님은 내가 여태껏 만난 모든 지도자 중에 가장 연락을 많이 하신다.(웃음) 전화해서 칭찬하는 법은 거의 없다. 낯간지러운 표현을 싫어하신다. 그런데 이번엔 아주 자랑스럽다고 하셨다. 그 말이 진심이고, 나를 아끼는 마음이 크다는 게 다 느껴졌다. 내 축구 인생에 가장 결정적인 선택을 해준 분이다.
유소년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아니었다. 공무원 시험을 볼까 진로를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고, 중학교 때까진 키도 별로 안 컸다고 들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우리 반이 10명 조금 넘었는데 내가 두 번째로 작았다. 고등학교 가서는 키만 훌쩍 크다 보니 몸이 왜소했고. 키는 최근까지도 계속 자랐다. 대학 졸업할 당시 키가 185cm였는데 프로로 오고 나서 3cm 정도가 더 컸다. 지금은 188cm. 좀 더 컸으면 좋겠지만 이제 성장은 끝난 것 같다.(웃음)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건 노력뿐이었다. 다른 선수들은 주전을 맡고 풀 타임을 뛰는데 난 항상 전반전이 끝나면 나와야 했다. 반쪽짜리 선수였던 거다. 아예 출전 못하는 날도 많았고. 경기를 못 뛰는 대신 훈련량으로 채웠다. 무조건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다.
2020 도쿄 올림픽 최종 예선 당시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그땐 아쉽게도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다. 그리고 바로 입대하고 보란 듯 월드컵 국가 대표 팀에 선발됐다. 어떤 각오를 했나?
아쉬웠으나 한편으로는 후련했다. 내가 준비가 안됐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반쪽짜리 선수가 프로에 입단하고 올림픽 대표 팀에 뽑혔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고 기쁜 일이다. 그런데 뭔가 위축되고 마음이 불편했다. 다른 선수들은 유소년 대표 팀에서 활동할 때부터 서로 알고 지냈거나 함께 축구 엘리트로 커왔는데 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색했다. 그러다 보니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할 때가 많았다. 전북 현대로 옮긴 첫해였는데 내 커리어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그래서 2020년 시즌이 끝나고 상무에 지원하면서 반드시 성장하겠다고 결심했다. 독기를 가득 품은 거다. 실력을 쌓고 제대로 몸을 만들어 한번 보여주겠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몸만 봐도 알겠다. 이런 근육이 보통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흐흐. 살을 많이 찌우려 노력했다. 나보다 크고 힘센 수비수들과 싸워 이기려면 노력하고 발전해야 하니까. 먹어도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이라 특별히 식단 관리는 안 한다. 다만 운동 끝나면 프로틴을 꼭 챙겨 먹는다. 지난해(2021년)엔 힘을 기르기 위해 일단 벌크 업을 했고, 이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필요한 운동을 짜서 하고 있다.
포지션을 바꾸고 몸을 만들면서 모든 게 달라진 것 같다.
원래 자신감이 넘치는 선수는 아니었는데, 훈련하고 운동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고, 경기장에서 그게 결과로 나오는 것을 느끼면서 자신감을 많이 찾았다. 난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훈련에 집중한다.
MBTI가 어떻게 되나? 운동선수들은 대부분 J로 끝나던데.
ESTJ다. 아마 어릴 때부터 규칙적인 생활에 익숙해서 그럴 것이다.
일찍 군대 문제를 해결한 덕분에 이번 월드컵이 더 큰 기회가 됐다. 얼마나 좋은가.
진짜 사람 인생은 모른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웃음) 나도 너무 신기하다. 어릴 땐 키도 작고 경기도 별로 못 뛰던 선수였는데 말이다. 가나전이 끝나고 가진 인터뷰에서 “난 아무것도 아닌 선수”라고 말했던 게 그런 의미였다. 정말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와 잘된 케이스의 선수니까.
역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인가. 가나전에서의 멀티골도 그렇다. 비록 경기는 졌지만 결국 그 골 때문에 득점 우선순위에서 앞서 16강에 진출하지 않았나.
결과적으로는 값진 골이 됐다. 팬들도 많은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셨다. 사실 더 좋아하고 싶었는데 경기에서 지는 바람에 그날은 그런 기분을 즐기지 못했다. 비기기만 했어도 축제처럼 행복했을 텐데 말이다.
한국 선수가 월드컵 한 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한 건 최초다. 영원히 대한민국 축구사에 남을 것이다.
맞다. 지금도 참 믿기지 않는다. 꿈만 같다.
그것도 첫 월드컵에서! 연속 헤더골로 ‘황금머리’라는 별명도 얻었다. 솔직히 어디까지 기대했나?
카타르에 가기 전까진 월드컵 최종 명단에 포함되는 게 목표였다. 그다음엔 잔디라도 밟아보자 싶었다. 골을 넣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월드컵 무대에서 뛴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전혀 긴장되지도 않았다. 진짜 준비를 잘해왔기 때문에 준비한 대로만 하자는 생각이었다. ‘골을 넣어야지’ 신경 쓰면 오히려 골을 못 넣는다.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플레이를 잘하자’ 했을 때 자연스럽게 골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경기를 즐겼다.
요즘 FIFA 온라인에서도 조규성 카드가 핫하다.
아! 나도 FIFA를 즐겨 했는데, 워낙 게임을 좋아해 아예 시작 자체를 안 하고 있다. 궁금하다. 왜 FIFA에 들어가면 선수 캐릭터가 실제와 비슷하게 나오지 않나. 그런데 전엔 조규성을 찾아보면 원숭이 같았다. 요즘은 제법 비슷해졌다. 얼굴을 바꿔줘서 고맙다.(웃음) 나도 빨리 해봐야겠다. 내 카드를 써서 골 한번 넣어보고 싶다.
유니폼 교환은 누구랑 했나?
우루과이전은 경황이 없어 못했고, 포르투갈전에서는 주앙 마리우 선수와 교환했다. 경기 전 도핑 검사 때 만난 인연이 있었다. 브라질전 때는 그냥 라커 룸에 들어왔는데, 스태프 한 분이 “규성아, 네이마르가 너랑 유니폼 교환하고 싶대”라고 하면서 네이마르 유니폼을 건네는 거다. 깜짝 놀랐다. 진짜 네이마르가?! 그것도 먼저 유니폼 교환을 신청하다니! 와, 말도 안 되는 거다. 나한테는 연예인보다 더한 스타다. 그 유니폼은 집에 고이 모셔뒀다.
월드컵 이후 당신에 대한 해외 구단의 관심이 폭발적이다. 해외 진출에 대해 정해진 게 있나?
지금도 계속 얘기 중이다. 나뿐 아니라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유럽 리그에서 뛰어보고 싶을 것이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몸으로 부딪쳐보고 그렇게 해서 더 실력을 키우고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꼭 이루고 싶은 꿈이다.
축구 선수로서 조규성의 꿈은 어디까지일까?
어디까지라고 한계를 정하고 싶지 않다. 매년 내가 발전하는 걸 스스로 느낀다. 성장하고 매년 달라지는 내 모습을 보는 게 재밌다. 정말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나도 궁금하다. 내게도 그게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다.
한 달 새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2만 명에서 287만 명으로 늘었다. 전 세계 여성 팬들이 궁금해 할 것이다. 이상형을 말해달라.
잘 웃는 사람. 잘 웃고 나랑 가장 잘 맞는 사람. 내가 살고자 하는 인생과 방향이 서로 맞아야 한다. 아무리 예쁘고 장점이 많아도 서로 삶의 가치관이 다르면 더 이상 그 관계는 발전이 없다고 본다.
2023년 1월 1일의 계획은?
지금도 아침마다 센터에 가서 훈련하고 있다. 휴가 기간이지만 다음 시즌에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마냥 편히 쉴 수 없다. 새해라고 다를 게 없다. 난 이미 2023년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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