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키 스미스의 세상을 탐구하는 몸
키키 스미스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연다. 그는 인생이 진정한 삶이 되는 방법은 타인과 공명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40여 년 동안 회화, 판화, 조각, 사진, 태피스트리, 스테인드글라스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들며 실험을 지속해온 키키 스미스(Kiki Smith)의 작품 세계를 함축하는 주제어로 몸(육체), 여성, 탄생(생명)과 소멸 그리고 재생(부활), 역사, 종교, 신화, 자연 등을 들 수 있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의 몸이다. 작가에게 육체는 끝없는 질문의 대상이며 저항의 통로이자 창작의 보고다. 스미스는 인간 존재의 본질,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을 탐구하기 위해 몸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무엇보다 스미스는 아름답고 이상적이며 고전적인 누드를 벗어난 몸의 표현을 통해 인간의 필멸과 불완전함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잊고 지내는 삶과 죽음의 관계를 숙고하게 이끈다. 혈관이 드러난 듯한 두상, 잘린 팔다리, 내부 장기와 뼈, 배설물 등을 시각화한 스미스의 작품이 보여주듯 인간은 몸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육체성이 강조될수록 죽음이 부각된다. 모순적으로 다가오지만, 인간은 생명을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죽음의 운명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꽤 자주 자신의 유한함을 망각하고 세상의 중심에 자신만을 놓았다. 권력을 소유한 일부는 세상을 지배하는 기준과 법을 만들어 절대적 가치를 부여했고, 폭력과 강제가 정당화되는 비극이 일어났다. 그러나 스미스의 작품이 보여주듯 인간은 유한하고 불완전하기에 인간이 만든 규범과 문화는 영원하거나 절대적일 수 없다.
불편한 육체를 드러내는 키키 스미스의 작업은 아브젝트 아트(Abject Art)로 설명된다. 아브젝트 아트는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의 철학적 개념인 아브젝트(Abject)와 연결된다. 아브젝트는 주체와 객체의 경계선에서 주체도 객체도 아닌 모호하고 복합적인 어떤 것으로 주체는 자신의 통일된 경계,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아브젝트를 밀어내고 거부해야 한다. 크리스테바는 <공포의 권력(Powers of Horror: An Essay on Abjection)>(1980)에서 몸의 경계를 넘나드는 배설물, 토사물, 혈액, 시체 등을 아브젝트의 예로 든다. 그런데 주체의 자아를 구성하면서도 그것에 저항하는 것이자 동일성, 체계와 질서를 교란하는 것에 가까운 아브젝트는 육체의 영역을 넘어선다.1 따라서 아브젝트 아트는 불편하고 비천한 것들을 재료와 소재로 사용하거나 자아와 타자의 경계, 신체와 정신의 이분법에 도전하고 사회 문화적으로 금기시되는 문제를 다루는 작품을 칭한다.2
인간의 몸은 단순히 정신 혹은 영혼의 보관 창고가 아니다. 정신만이 인간의 본질도 아니다. 그 두 가지는 그렇게 간단히 분리될 수 없다. 실제로 몸은 인간 실존의 문제뿐 아니라 정체성과 욕망, 사회, 정치, 문화, 종교적 이슈를 투영한다. 이에 키키 스미스는 정신과 육체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정신에 우월한 지위를 부여하는 전통, 나아가 한정된 기준에 따라 중심과 주변, 우월함과 열등함을 분리하던 인류의 역사에 비판적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질문의 중심에는 여성이 놓인다.
이와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작품은 ‘소변보는 몸(Pee Body)’(1992), ‘설화(Tale)’(1992), ‘열(Train)’(1993) 등이다. 세 작품 속 여성은 모두 몸 밖으로 배설물을 배출하는데, 이 낯선 상황은 전통 미술에 등장하던 여성 누드의 스테레오타입을 완벽하게 뒤집는다. 미적 감상의 대상으로서 존재하길 거부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 유지를 위해 필수적임에도 배설 행위는 더러운 것으로만 여겨졌으며 월경혈 역시 자연스러운 몸의 작용인데도 터부시되어왔다. 따라서 배설물과 배설 행위를 드러내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저항성을 갖게 된다. 이처럼 스미스는 여성의 몸을 통해 저항과 위반을 실현한다. 동시에 배설물로 더러워진 몸을 드러낸 채 엎드려 있는 여성을 보여주는 ‘설화’는 자기 몸의 결정권을 갖지 못한 채 억압받고 상처받았던 차별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이런 분위기는 척추가 드러난 채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는 여성을 만들어 삶과 죽음의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피 웅덩이(Blood Pool)’(1992)에서도 전달된다. 그녀의 온몸은 폭력에 노출되었던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다.
스미스는 종교와 문학, 예술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여성(인간)의 역사를 탐구했고, 성모 마리아(Virgin Mary)와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 이브(Eve), 다프네(Daphne), 릴리스(Lilith) 등을 만들었다. 그런데 기독교 회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여성이자 자애로운 어머니의 상징과도 같은 성모 마리아는 피부 아래의 뼈와 근육이 다 드러난 모습이고, 막달라 마리아는 털로 뒤덮인 몸을 가진 채 다리에 족쇄가 채워져 있다. 둘 다 기독교 전통을 비롯해 사회 전반에서 여성에게 투사된 이상적 여성상의 전형을 허물고 억압과 상처를 폭로한다. 이런 작품은 가부장제에서 숨겨지고 억눌린 여성(나아가 인간)의 육체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벽에 거꾸로 매달린 채 세상을 바라보는 ‘릴리스(Lilith)’(1994)의 눈빛은 매서우면서도 강렬하다. 한편 작가가 “마녀의 조각상”이라 표현한 ‘번제의 여성(Woman on Pyre)’(2001)은 자연히 마녀사냥을 연상시킨다. 두 팔을 벌린 여성은 수용과 절망, 저항을 동시에 보여주는 듯하다. 누군가를 안으려는 자세로 보이기도 해 상처를 치유하려는 행위 같다. 이런 스미스의 작품은 인간에 의해 자행된 수많은 폭력을 망각해선 안 된다는 결연한 의지를 전달한다.
스미스는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여성 괴물도 만들어냈다. 전통적으로 괴물은 인간과 동물이 섞인 모호한 존재 혹은 인간의 특성을 벗어나는 비정상으로 묘사되었다. 그들이 미술에서 재현될 때는 인간에게 위협적으로 그려지거나 에로틱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그런데 스미스가 만든 하피(Harpie)나 세이렌(Siren), 스핑크스(Sphinx)는 공격적이라기보다 평온하고 안정적이다. 메두사(Medusa)는 강인한 생명력을 전달하는 여성으로 표현되어 고정된 정체성을 벗어나고 괴물을 판별하는 기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물론 키키 스미스의 작업에서 전술했던 이슈만 주요한 것은 아니다. 스미스는 작업을 통해 세계와 관련된 매우 광범위한 주제를 탐구하며, 작가가 밝힌 대로 “1990년대 중반 이후 자연과 인간의 관계, 자연적 배경을 생각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넓어지고 깊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작품에는 점점 신비롭고 영적인, 따뜻한 아우라가 깃들었다. 스미스는 인간과 동물, 지구, 우주를 탐구한다. 여기에는 자연계의 일부인 인간에 대한 은유, 자연과 인간을 비롯한 존재의 상호 연관성, 인간 세계와 자연계의 교차점, 자연의 경이로움, 우주의 생명력 등이 포함된다. 자연히 작품에는 별과 달 같은 천체의 요소, 다양한 동식물 같은 자연의 형상이 등장한다.
궁극적으로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자유낙하를 일평생 결심하는 예술가”인 키키 스미스의 작업은 모든 존재에게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며, 모두가 유동적으로 공생하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세상을 상상하게 한다.
작업 초기부터 완전하고 이상적인 몸이 아니라 절단되거나 해체된 몸과 배설물 등을 보여주었다. 이 같은 작품은 정신과 몸, 미와 추를 나누는 이분법적 고정관념과 위계질서를 비판하고 그것에 저항한다. 또한 당신이 만든 두상은 인간의 정체성 혹은 정신의 상징과도 같은 머리도 육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작업에 인간의 몸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어릴 때는 몸에 대한 사회의 폭 좁은 정의에 갇혀 있었다. 내 몸이 그런 기준과 달랐기 때문에 스스로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이런 사실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도 불편했다. 이런 부분을 파헤쳐나가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여성’은 키키 스미스의 작업 세계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육체성에서부터 시작해 신화와 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여성을 다루며 페미니즘 미술의 흐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예를 들어 ‘소변보는 몸’, ‘열’ 등은 대상으로 존재하던 여성의 현실,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을 드러내는 한편 금기를 위반하고 억압에 저항하는 여성 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성과 관련해 작업 초기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주목하는 주제는 무엇인가?
1990년대 중반까지는 조형적인 작업을 많이 해왔고, 그 후에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나 자연적 배경 그 자체만 생각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계속 가져온 관심사는 바로 몸과 우리 자신의 관계다.
마녀사냥을 떠올리는 ‘번제의 여성’에서 팔을 벌리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 여성은 신을 향해 절규하는 듯하다. 마녀사냥은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 폭력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비극이다. ‘번제의 여성’을 위해 특별히 참고한 부분이 있나?
어릴 때는 “우리가 살인 행성에 살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여성 및 모든 인류에 대한 폭력은 지구상에서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나는 이 마녀의 조각상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생각하며 만들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예수의 말을 떠올렸는데, 이를 대중에게 직접적으로 전하고 싶었다. 우리에게 “어찌하여 어떤 사람들은 버리고, 우리가 만든 고통을 무시하고 변명하시나이까”라고 묻고 싶다.
개인적으로 당신이 창작한 여성 괴물에 관심이 많다. 괴물은 경계를 넘나드는 기형적 존재로 터부시되었지만 동시에 경배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괴물은 관습을 깨뜨리는 저항적 존재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신이 만든 괴물은 인간을 기준으로 놓았을 때도 괴물이지만 인간이 만든 일반적인 괴물의 전형에도 속하지 못한다. 즉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한정된 영역을 벗어나는 진짜 괴물처럼 보인다. 이런 괴물의 형상을 만든 이유가 궁금하다.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에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듣고 싶다.
당신이 말하듯 괴물이 저항적 존재라는 것에 동의한다. 릴리스에게 가장 끌린 점은 형체도 없고 순응하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괴물’이라는 개념이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사람들을 말하면서 다양한 인간성을 가진 군상과 파토스, 감정적 호소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의 질문과 연결된 질문이다. 당신은 ‘딸(Daughter)’(1999)에서 빨간 두건을 쓴 소녀를 연상시키는 반인반수의 괴물을 만들어 고정된 정체성을 파괴했다. 이 작품의 착상은 어디서부터 시작됐고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었는가?
우리의 정체성과 사회에 있는 상징일 뿐이다. 상징은 유동적으로 형성되며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변화한다. 새로운 의미를 갖기도 하고, 버리기도 한다. 이와 같이 우리의 정체성도 변화한다. 이런 방식으로 탐구하고 있다.
당신은 회화, 판화, 드로잉, 조각과 설치, 사진, 태피스트리, 스테인드글라스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다. 특히 종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종이를 사용하는 이유는?
뉴욕은 전부터 제조업 기반의 도시였다. 나는 골판지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의 종이를 찾아냈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현존하는 가게 중 가장 큰 종이 가게가 있었는데, 종이의 특성과 독특함을 배울 수 있었다. 종이를 2차원이나 3차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익혔다. 판화에 깊이 빠지면서 종이는 내게 더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특히 한지에 대해 알게 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여러 겹의 종이를 재료로 쓴다는 아이디어를 주었다.
키키 스미스의 작품은 개인적인 경험, 설화, 신화, 종교, 역사, 문학 등을 아우른다. 따라서 당신 작품 앞에 선 관객은 끝없이 쏟아지는 이야기에 심취하며 상상력을 발휘한다. 작품의 내러티브를 구성해나가는 과정이 궁금하다. 작품마다 다르겠지만 사전에 내러티브와 형식을 철저하게 계획하나? 즉흥성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나?
문득 떠오르는 것들을 그냥 하는 것이다.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먼저 정해두지 않는다. 나중에야 내게 무슨 의미였는지 찾아내려고 한다. 작업물이 의미하는 바를 찾아내는 것은 돌이켜볼 때뿐이다.
얼마 전 한 큐레이터와 키키 스미스의 작업에 관해 대화를 나누던 중 당신의 아버지 토니 스미스(Tony Smith), 동생 시튼 스미스(Seton Smith)로 대화 주제가 확장됐다. 세 작가 모두 독창적이면서 남다른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데 이견이 없었다. 가족 중에 미술가가 있다는 점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아버지와 동생의 작업물은 아주 존재감이 크고 내 작업에도 영향을 준다. 물론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게 가장 익숙한 것들이다. 숨 쉬는 것처럼 말이다.
2022년 12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키키 스미스-자유낙하(Kiki Smith-Free Fall)>는 국내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전시라는 점과 함께 드로잉, 판화, 조각, 사진, 태피스트리, 아티스트 북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기대가 높다. 14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하지만, 긴 시간 왕성하게 활동해온 만큼 당신의 많은 작품 중 일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출품작을 선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기준은?
서울시립미술관의 이보배 학예 연구사와 함께 일하는 것은 아주 즐거웠다. 여러 번의 전시를 해온 사람으로서, 내 작업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다양한 조합과 구성을 찾아내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다. 이번 전시에서 종이로 만든 많은 작품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내 조각 작품의 대부분이 판화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이는 내 작업 경험의 기본과도 같다.
전시 제목을 ‘자유낙하’로 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또한 동명의 작품인 ‘자유낙하(Free Fall)’(1994)에 대한 설명도 부탁한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일평생 자유낙하를 결심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알지 못하는 공간이 계속 이어지고, 어디로 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나를 위한 것이라고 여겼다.
전시 <키키 스미스-자유낙하>의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관객이 각자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감응을 통해, 자신만의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당신의 인생이 진정한 삶이 되는 방법은 타인과 공명하는 것뿐이다. (VK)
1 줄리아 크리스테바, 서민원 옮김, <공포의 권력>, 동문선, 2001, pp. 23-25. 고갑희, ‘시적 언어의 혁명과 사랑의 정신분석-줄리아 크리스테바의 경계선의 철학’, 한국영미문학페미니즘학회, <페미니즘, 어제와 오늘>, 민음사, 2000, pp. 212-214.
2 김홍희, <페미니즘 . 비디오 . 미술>, 도서출판 재원, 1998, p. 310.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포토그래퍼
- Katharina Poblotzki
- 글
- 이문정(미술 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 헤어 & 메이크업
- Tatyana Harkoff for Factory Down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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