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복은 끝나지 않았다: 프라다 2023 F/W 컬렉션
프라다는 최근 몇 년간 남성복 컬렉션을 꾸준히 선보이는 몇 안 되는 하우스 브랜드다. 구찌는 2021 F/W 시즌 이후 처음으로 남성복 컬렉션을 발표했고, 발렌티노는 2021 S/S 시즌 이후로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왜 프라다만 다른 노선을 택하는 걸까? 카일 맥라클란이 포문을 열었던 2022 F/W 남성복 컬렉션에선 혼신의 힘을 쏟아붓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브랜드는 남성복 컬렉션을 한 달쯤 뒤에 있을 레디 투 웨어 컬렉션의 시험대 정도로 여긴다. 더구나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도 희미해지는 추세다. 프라다 2023 F/W 남성복 컬렉션에서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가 그 답을 내놨다.
컬렉션 제목부터 매우 의미심장하다. ‘Let’s Talk about Clothes’. <보그 비즈니스> 인터뷰에서 미우치아와 라프는 ‘패션을 예술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두 사람 모두 예술은 별도의 이유나 용도 없이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지만, ‘패션’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피력했다. 어찌 되었건 ‘옷’이란 몸을 가리고 보호한다는 확실한 존재 의의를 가진다는 점에서다.
이번 컬렉션을 한 단어로 요약해달라는 질문에 미우치아는 ‘패션’, 라프는 ‘현실’이라 답한다. 패션은 필요 이상으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에서 해석되곤 한다. 그들의 말처럼 프라다의 이번 컬렉션은 사회·정치적 문제에 의문을 던지지도 않고, 별다른 문화적 레퍼런스를 포함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패션과 옷에 관해 이야기할 뿐이다.
그렇다면 프라다는 어떤 옷을 선보였을까? 여성복을 상징하는 아이템이 드레스라면, 남성복을 상징하는 아이템은 수트 재킷이다. 스리 버튼이건 투 버튼이건, 수트 재킷을 입은 남성의 네크라인은 필연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2023 S/S 남성복 컬렉션에서 프라다는 이미 교묘한 로고 플레이를 통해 이 빈 공간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적 있다. 이번에 그들이 선보인 것은 셔츠를 입은 듯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칼라 액세서리. 최근 트렌드인 트롱프뢰유 패션까지 소화할 아이템이다. ‘남성 수트 패션’ 특유의 클래식함은 살리면서도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미우치아와 라프의 비책이라고 할까?
그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베개의 폭신함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의상. 봄버 재킷뿐 아니라 스웨트셔츠와 슬리브리스 톱에도 같은 디테일을 적용했다. 패션쇼에서 선보이는 옷이 ‘입을 수 있는가?’와 ‘편안한가?’라는 두 가지 조건을 무조건적으로 충족해야 한다는 선언문처럼 느껴졌다.
이어진 것은 라프 시몬스가 ‘전형적’이라 부른 재킷의 향연. 최근 여성복 컬렉션에 잇달아 등장하는 페미닌한 이브닝 드레스를 연상시키는 길고 슬림한 실루엣의 파카와 더플 코트, 그리고 기장만 ‘뚝’ 자른 듯한 봄버 재킷과 워크 웨어 재킷을 선보였다.
마지막으로 눈에 띄는 부분은 팬츠와 재킷, 코트를 활용한 컬러 플레이였다. 프라다의 이번 컬렉션은 라프가 질 샌더에서 선보인 컬렉션과 상당히 닮았다. 당시 라프는 ‘컬러’에 집중했다. 여러 디테일을 가미하기보다는 다양한 컬러를 활용하는 방식이 훨씬 질 샌더다운 것이었으니까. 덕분에 라프는 ‘덜어냄의 미학’을 추구하던 질 샌더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지켜낼 수 있었다. 그는 이번 컬렉션에서도 비슷한 방식을 취했다. 코트와 재킷, 팬츠 모두 슬림한 실루엣은 유지하되 컬러를 활용해 변주한 것. 덕분에 완성된 수트 룩이 미니멀하면서도 고리타분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서두에 제기한 ‘프라다는 왜 남성복 컬렉션에 이토록 진심인가?’에 대한 궁금증은 그들의 2023 F/W 컬렉션 영상을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답은 간단하다.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가 아직 남성복에 탐구할 영역이 남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재, 실루엣, 컬러를 활용해 수트와 아우터 재킷이라는 닳을 만큼 닳은 아이템을 신선하게 풀어낸 것만 봐도 이들의 ‘남성복 탐구’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세심하게 디자인한 쇼장, 강렬한 음악, 꾸뛰르가 연상되는 피스를 활용해 충격을 주는 컬렉션이 있는가 하면, 별다른 장치 없이 옷만으로 승부를 거는 컬렉션이 있다. 프라다의 이번 컬렉션은 분명 후자에 속한다. 이런 컬렉션이 좋은 쇼라는 호평을 받기 위해서는 입어보고 싶고 소장하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해야 한다. 프라다의 쇼가 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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