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출입이 불가했던 여성의 턱시도 차림이 2023년에 말하는 것
며칠 전 있었던 생 로랑의 2023 F/W 남성복 컬렉션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턱시도를 입고 등장한 샤를로트 갱스부르였다. 페미닌한 러플 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턱시도만이 풍길 수 있는 남성적 오라는 그대로였다.
턱시도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지금도 새빌 로에서 영업 중인 비스포크 테일러 헨리 풀(Henry Poole)이 1865년 당시 웨일스 공이었던 에드워드 7세에게 테일코트보다 뒤가 짧은 연미복을 제작해준 것이 그 시작이다. 이후 이 연미복은 편안한 착용감 덕분에 큰 인기를 끌었고, 같은 컬러의 팬츠, 흰 보타이, 그리고 검정 구두를 매치하는 것이 영국 상류층 남성들의 ‘디너웨어’로 자리매김한다.
이후 이 연미복은 19세기 후반 뉴욕 오렌지 카운티의 턱시도 공원(Tuxedo Park)에 소개되면서 ‘턱시도’라는 명칭을 얻었고, 미국 전역에서 인기를 얻게 된다. 물론 그때도 ‘부유한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 건 여배우 마를렌 디트리히가 등장하고 나서부터였다.
그녀가 팬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할리우드의 식당에서 입장을 거부당하기 3년 전인 1930년, 디트리히는 턱시도를 입고 영화 <모로코>에 출연한다. 남성들에게만 허락됐던 톱 햇과 검정 재킷, 팬츠를 입고 여자와 키스를 나누는 그녀의 모습은 전복 그 자체였다. 당당한 태도로 턱시도를 일상복으로 즐기던 마를렌 디트리히의 복장은 이후 수많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준다.
그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은 디자이너는 이브 생 로랑이었다. 당대 최고의 쿠튀리에로 꼽히던 생 로랑은 1966년, ‘Le Smoking’이라는 이름의 여성을 위한 턱시도를 선보이기에 이른다. 구성 자체는 기존 턱시도와 같았지만, 셔츠의 러플 디테일, 허리 라인의 미세한 조절 등을 통해 최초의 ‘페미닌한 수트’를 만들어낸 것이다. 바로 다음 해에는 여성만을 위한 팬츠 수트를 선보이며 계속해서 ‘남자들도 입을 수 있다면, 여자들도 입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도 1968년, 뉴욕의 사교계 인사 낸 켐프너(Nan Kempner) 역시 턱시도 차림 때문에 식당 입장을 거절당한다. 그녀가 찾은 해답은 바로 팬츠 수트를 벗고 재킷을 미니 드레스처럼 걸치는 것. 이브 생 로랑은 “옷을 입는다는 것은 삶의 방식과도 같다. 그것은 당신을 자유롭게 할 수도 있고, 당신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낸 켐프너가 그랬듯, 수많은 여성들은 턱시도를 입음으로써 자유를 갈망했다.
비앙카 재거는 당대 최고의 록 스타, 믹 재거와의 결혼식에서 생 로랑의 수트 재킷과 스커트를 입어 믹 재거에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뽐냈다. 전설적인 포토그래퍼 헬무트 뉴튼은 1975년, 르 스모킹을 입고 머리를 말끔히 뒤로 넘긴 모델 비베케 크누센(Vibeke Knudsen)을 포착하며 지금까지도 유효한 ‘강인한 여성’의 이상향을 제시했다.
디트리히, 생 로랑과 헬무트 뉴튼 같은 인물들 덕분에 현재 ‘여성용 턱시도’가 어떠한 모습으로 발전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불필요하다. 남성용 턱시도와 여성용 턱시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턱시도’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토니 바카렐로는 이브 생 로랑의 유산을 이어받아 여성뿐 아니라 남성을 위한 길 역시 개척해나가고 있다. 생 로랑의 2023 F/W 남성복 컬렉션이 반쯤 진행되었을 때,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지난 여성복 컬렉션이랑 똑같잖아?’였다. 안토니 바카렐로가 늘 선보이는 여성복 입은 남자 모델들의 걸음에서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쇼 막바지에 턱시도 차림의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 깨달았다. 남성복, 여성복, 남자, 여자를 가르는 생각과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이다. 마를렌 디트리히가 턱시도를 입었던 것처럼, 지금의 남성들에게도 생 로랑의 후디드 드레스를 입을 자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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