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의 K-빌런들이 우리에게 남긴 질문
요즘 한국 드라마는 돈과 복수에 미쳐 있고, 신속한 전개와 극단적 카타르시스에 매진한다. 악당에게 애틋할 시간 따위는 없다. 언론과 법원이 범죄인을 다루는 방식에 항의하기 위해 등장했던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드라마의 단선적 캐릭터를 위한 변론으로 이용된다. 악당 캐릭터가 정형화되면서 배경 설명이나 동기가 필요 없어진 흐름도 한몫한다. 부패한 재벌과 정치인, 돈으로 서열을 가르면서 주인공을 구박하는 친구들, 진상 소비자, 부모 믿고 까부는 부잣집 일진들… 이들은 냉전 시대 미국 영화에 나오는 소련이나 2010년대 한국 영화의 사이코패스, 슈퍼히어로물의 빌런처럼 요즘 ‘한드’에서 다분히 기계적으로 등장하는 공식 악당들이다. 이미 많은 드라마와 실제 사건을 통해 구축된 이미지가 있으니 이들 캐릭터에 새로운 설명 같은 건 필요 없다. 남은 건 더 ‘센캐’를 만들기 위한 폭력성의 경주뿐이다. 그러다 보니 악역의 연기도 단순해진다. 비싼 물건 걸치고 나와서 한껏 도도한 척하다가 주인공이 사이다를 퍼부으면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고 입술을 이죽거리거나 괴성을 지르며 퇴장해주면 된다. 이런 캐릭터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그걸 또 시청자가 끊임없이 소비하는 걸 보면 우리가 이 악당들을 진짜 미워하는 건지, 사실 사랑하는 건 아닌지 좀 헷갈릴 정도다. 그런데 이 악당들이 마침내 한국인의 감정 폭발 버튼을 가장 잘 아는 창작자 김은숙 작가의 손에 들어갔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더 글로리>의 악당들은 그린 듯한 한국형 빌런 종합 세트다. 그들은 좀비가 살을 탐하듯 돈, 권력, 미모, 신분 상승 결혼, 사회적 타이틀, 혈족의 안위, 사치품, 유흥에 맹목적 집착을 보인다. 끝없이 서열을 정하고 약자를 착취하고 악독한 말을 내뱉는 것은 이 K-좀비들의 또 다른 본능이다. 여기에 기존 드라마보다 조금씩 매운맛이 추가된다. 심지어 그들의 폭력을 묘사하는 데도 선정성이 더해진다.
동은(정지소, 송혜교)의 복수극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드라마 초반은 빌런들의 악행에 할애된다. 한국의 시청자는 이미 알고 있다. 이것이 어떤 식으로든 카타르시스를 보장하는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고 저 매 맞는 소녀의 성인 역을 거물 배우 송혜교가 맡을 것이며 드라마의 주제가 복수라는 것을. 그리하여 동은의 고난이 클수록 복수는 짜릿할 것이며, 아시아 최고 글발을 가진 작가가 온 역량을 쏟아부어 이 사회악을 응징해줄 거라는 심리적 안전장치가 우리에겐 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의 학원 폭력 장면은 우리 사회의 폭력 감수성에 대한 심란한 소회를 불러일으킨다.
잠깐 샛길로 빠지자면, 우리에겐 학원 폭력 피해자를 칭하는 ‘왕따’라는 표현이 있지만 가해자를 일컫는 용이한 언어는 없다. 반면에 영어는 가해자를 칭하는 ‘Bully’가 더 널리 쓰인다. 왜 한국어는 피해자를 주목하고 영어는 가해자를 주목하는가는 생각해볼 문제다. 편의를 위해 영어를 빌려 쓰자면, 이 드라마에서 ‘불리’의 만행은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걸로 보인다. 그마저도 실제보다는 순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극 중 불리들이 동은을 때리고 성추행하고 고데기로 지지면서 지어 보이는 표정은 너무 단순하고 위악적이기만 해서 유치해 보일 지경이지만 실제 학교 폭력 피해자의 시선에서 본 가해자의 모습이 이보다 입체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광경을 피해자의 시선에서 지켜보는 건 아무리 응징이 예고된 픽션이라고 해도 물리적 피로를 야기한다. 오해는 마시라. 이건 공윤 심의 제안서도 아니고, 창작자를 비판하려는 각도 재기도 아니다. 나도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고, 파트 2를 열렬히 기다리고 있으며, ‘역시 김은숙!’이라고 박수를 보낸 쪽이다. 다만 초반 2화를 넘어서는 데는 꽤나 참을성이 필요했고, 그 이유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리얼하게 재현된 폭력 장면을 아무렇지 않게 볼 수 있는 사람과 그로부터 실제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존재한다. 폭력 민감성의 차이라고 해두자. <더 글로리>의 폭력 장면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보다 고문 포르노의 문법에 가깝다. 현실적인 배경에 평범한 피해자가 존재하고, 드라마는 피해자의 고통이나 가해자의 쾌감을 거세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 글로리>는 2023년 상반기 가장 성공한 한국 콘텐츠가 되었다. 이 정도 묘사는 한국의 시청자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라는 것이다. 나는 이 결과를 보고 2015년 화제가 된 이탈리아 캠페인 영상이 떠올랐다. 가정 폭력 근절을 위해 만든 이 영상에서 진행자는 7~11세 소년들에게 눈앞의 소녀를 때리라고 지시했고, 소년들은 ‘폭력에 반대한다’, ‘여자를 때리면 안 된다’, ‘나는 남자니까’라며 거부했다. 연출된 상황, 허가된 행동이라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는 소년들의 원칙주의가 때 묻은 어른들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그에 비하면 힘없는 소녀가 온갖 폭력에 연달아 노출되는 장면을 온 국민이 픽션이라며 기꺼이 소비하는 현재 상황은 씁쓸하다. 학교 폭력은 날로 심해지고, 강력한 사회적 제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고, 그에 부응해 사적 복수로 대리 만족을 안겨주는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한편으로 시청자의 폭력 민감성은 점점 둔감해진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건 <더 글로리>의 폭력 장면뿐 아니라 요즘 한드 복수극 전반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채널만 돌리면 어디서나 시청자의 맷집을 시험하려는 듯 한국형 빌런들의 독기가 언어로, 물리력으로, 뿜어져 나온다.
우리는 <더 글로리> 파트 2에서 동은이 복수에 성공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아마도 그 기대는 충족될 것이다. 악당들을 처단하기 위해 등장하는 주인공도 고뇌에 몸부림치고 나약하게 비실거리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게 요즘 트렌드다. 정의의 편이 되기보다 선악을 떠나 강자의 편이 되고 싶은 게 21세기 한국인의 욕망이니까. 로맨스나 오피스물에서는 말발로 천군만마도 무찌를 것 같은 독설가들이 등장하고, 학원물에서는 한번 정신이 나가면 깡패들보다 싸움 잘하는 모범생이 활약하고, 재벌물에서는 하다못해 인생 2회 차라는 비장의 무기라도 주인공에게 쥐여줘야 시청률 대박이 터진다. <더 글로리>에는 집념의 동은이 있고 멋진 조력자들이 있다. 그러나 동은의 복수가 끝날 때 시청자도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폭력을 감상하는 데 무감해진 우리는 과연 이 드라마의 주제로부터 무결한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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