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패티 스미스, 최승자 #멋진 ‘언니’에게_2
아침을 비추니 불안의 밤이 오는가. 그런 당신에겐 언니가 필요하다. 마음의 끈을 연결하고 싶은 멋진 여성들.
패티 스미스
나를 지키는 방법 나는 소문난 길치다. 문제는 내가 길치라는 걸 알면서도 지도를 보며 가지 않는다는 거다. 출발 전에 지도를 충분히 읽고, 가는 길에선 최대한 기억을 더듬어가곤 하는데 그렇게 지도에서 자유로워지면 오늘의 하늘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즐길 수 있다. 그래도 길을 잃을 것 같다거나 이미 잃은 걸 알았을 때는 주저 없이 지도를 꺼내 봐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인생엔 지도가 없다. 길을 잃어버릴 일은 수도 없이 많은데 말이다. 이런 곳에서 영원한 미아가 되지 않게 신은 앞서간 이들을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우리는 지도 대신 그들의 인생을 본다. 흔히 펑크 록의 대모라 불리는 패티 스미스(Patti Smith)는 그 수식어가 재즈든, 심지어 음악이 아닌 것이든 상관없었을 만큼 내게 의미가 큰 인물이다. 언제부턴가 오래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알아버렸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더 이상 할 말을 잃어버리는 것, 점점 잊히는 것이 내겐 큰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한 번씩 내가 초조해질 때나 약해질 때를 노려서 덮쳐오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난 패티 스미스를 떠올리며 두려움을 달랜다. 그러면 망망대해에서 저 멀리 등대의 빛을 본 것처럼 안정감이 든다. 그렇게 미아가 되지 않는 거다.
패티 스미스는 1970년대에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도 음악을 하고 글을 쓴다. 그의 긴 시간은 순탄하지만은 않았고 결국 큰 공백기도 있었지만 다시 세상에 나와 이야기를 이어왔다. 과거의 명예나 가정이 주는 무게에도 그의 음악과 글은 건재했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연이은 부재에도 그는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유난한 고통을 견딘 처연한 주인공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는 그저 살아가는 것이고 그게 내가 그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니 나는 그가 포토그래퍼나 화가라 했더라도 상관없었을 만큼 그의 존재 자체로 위로를 받는다.
이 글을 쓰며 그의 최근 라이브 영상을 돌려 봤다. 원래 나는 나이 든 사람들의 얼굴을 좋아하긴 한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시간이 담긴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서다. 그러나 무대에서 노래하는 그는 나이 든 사람들이 가진 견뎌낸 자의 지친 얼굴도 깨달은 자의 평온한 얼굴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그를 처음 봤던 1970년대 사진의 얼굴과 같았을 뿐이다. 물론 세월은 피부나 머리카락 같은 겉모습에 유유히 흔적을 남겼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이 가득 담긴 것처럼 보였다. 결국 무엇도 그의 본질을 가리진 못했단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활동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한 모습이라는 게 또 한 번 나를 위로한다. 내가 나이 들어갈 모습을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기에 기대가 되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또 무서워지곤 하는데 그때도 내 눈에 생기가 있을 수 있다면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나’는 나의 어떤 노력도 없이 얻어진 것이지만 그런 ‘나’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건 쉽지 않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친구들 사이에서 한창 장난처럼 ‘나다운 게 뭔데!’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아마 나 말고도 친구들 중 다수는 오직 장난으로 한 말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갈수록 ‘나’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사는 게 아닐까? 그가 ‘나’를 지켜낸 방법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지난 그의 인터뷰를 보면 스스로에게 던지는 끝없는 질문과 거기에 응하는 솔직한 대답이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나와의 솔직한 대화라… 말은 참 쉽게 느껴지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게 가끔은 도망가고 싶어질 만큼 창피하고 결국 비겁했던 적이 있다. 그럼에도 그 대화를 멈출 수 없었는데 아마도 내가 대화를 멈추면 나 자체가 멈춰버릴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 불안감이 들 때면 말했듯 나는 다시 패티 스미스를 떠올린다.
그러다 가끔은 멋진 꿈을 꾸기도 한다. 내게 긴 인생이 주어지고 그 속엔 지금의 내가 생각도 못한 서사가 가득하며 결국은 살아낸 내가 여전히 음악을 하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꿈. 그리고 그런 내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패티 스미스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패티 스미스는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에서 누군가의 마음으로 옮겨가며 오랫동안 여전한 모습으로, 유장히 존재할 것이다. 윤지영 뮤지션
최승자
다정한 함박눈이 펑펑 누군가가 물었다. 너는 왜 그리 최승자 시인을 좋아하느냐고.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냥 좋아. 마냥 좋아. 그녀의 시를 읽고 있으면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일제히 활활 타올라 펑펑 터지는 것 같아. 그만큼 그녀의 시어는 강렬하고 처절해. 정말 놀라울 정도로 언어를 잘 다뤄. 그녀의 작품 세계가 아무리 끔찍할 정도로 어둡고 적나라하게 자신을 찢어발기고 절망의 극한에까지 치닫고 있어도 적재적소에 탁월하게 잘 배치된 그녀의 언어 능력, 언어 내공으로 인해 오히려 깊은 절망보다는 독특한 매혹과 신비를 느끼게 돼. 그리고 그것으로 그녀는 이 세계에 시인 최승자라는 자신의 위치를 당당히 확립하고 우뚝 서 있어. 시 자체는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난폭하고 냉소적이고 절망적인데도 시 속의 최승자는 아주 곧고 명료하고 자유로워 보여. “나는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언제나 확실한 절망을 택했다”고 그녀 스스로 말했듯이 절망의 극한에서 일으키는 스파크, 그 전율만큼 큰 카타르시스는 없을 테니까.
20대 중반, 그녀의 첫 시집 <이 시대의 사랑>을 읽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시집을 끌어안았어. 그러곤 그때부터 쭉 그녀의 팬이 되었어. 자유롭게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쓸 것. 자신의 시어를 계산하거나 실험하지 않고, 자신의 삶이 선택한 언어로 자신 있게 솔직하게 쓸 것. 시 속에선 아무리 절망스러워도 절대 웅크리거나 주눅 들지 말고 어떤 경우든 나약하고 감상적인 패배자인 척해선 안 된다는 걸 그녀의 시에서 배웠어. 그런 멋진 시인을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겠어.
1990년 <작가세계>를 통해 내가 시인이라는 이름표를 달았을 때, 맨 먼저 보고 싶은 시인이 최승자 시인이었으나 그녀는 어떤 모임에도 잘 나오지 않아 볼 기회는 하늘의 별 따기였어. 시력 33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최승자 시인을 가까이에서 본 건 딱 세 번뿐이야. 두 번은 어느 문학 행사장에서, 한 번은 2010년 그녀가 지리산문학상을 수상할 때였어. 최승자 시인으로선 첫 문학상 수상 자리라 다른 일 제쳐두고 함양행 버스를 탔어. 내가 상을 받는 것보다 더 기뻤어. 이런 전설적인 시인이 이제야 상을 받다니, 마음껏 축하해주고 싶었어. 소문에 의하면 초자연적 신비주의(여러 가지 상징체계, 음양오행론, 서양 점성술, 타로 카드, 카발라 등등)에 너무 탐닉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고 했어. 그럼에도 시상식장에서 만난 최승자 시인은 상상하던 것보다 건강해 보였어. 무척 마르고 초췌하긴 했지만 단정하고 깔끔했어. 헐렁한 청 재킷과 청바지를 입었는데, 어쩜 그리도 잘 어울리는지…, 패션 감각도 뛰어나 보였어. 가까이에서 본 그녀는 정말 똑똑하고 솔직하고 명료한 사람이었어. 내면 깊이 명랑과 맹랑이, 따뜻함과 냉소가 들숨과 날숨처럼 천진하게 공존하는, 시인 그 자체였어. 평범하게 살았으면 누구보다도 귀엽고, 사랑스럽고, 유머러스한 사람이 되었을 거야. 어디에도 노련한 사냥꾼이나 추적자, 낚시꾼의 면모는 없었어. 앞뒤가 따로 없는 순수한 사람이라 그토록 치열하게, 주저 없이, 치명적으로 자신을 극한으로까지 몰고 갈 수 있었을 거야.
그녀는 1979년 <문학과 지성>으로 등단해 8권의 시집과 2권의 산문집, 다수의 번역서를 냈어. 최근에 그녀의 산문집 2권이 ‘난다’에서 복간이 되어 반갑게 읽었어. 1994년 아이오와대학 초청으로 4개월간 미국에 체류하면서 쓴 일기문인 <어떤 나무들은>과 1995년부터 2013년까지의 기록인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야. 너무너무 좋아. 최승자 시인의 인간 됨과 시인의 자세, 삶의 태도가 고스란히 다 담겨 있어. 한번 읽어봐. 그 두 책을 읽고도 최승자라는 시인을 안 좋아하고 배길 수 있는지!!!
책 속의 그녀는 정말 재밌고 사랑스러워. 의외로 요리도 잘하고 재봉과 옷 디자인에도 능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감해. 이런 시대에, 그것도 여자 혼자서 용감하게 산다는 건 정말 힘들잖아. 그녀는 그걸 언어로 보여주었어. 그 모든 고통과 비통을 아름다운 시로 바꾸어놓았어. 언제나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딘지, 무엇을 하는지 직시하기 위해 끊임없이 책을 읽고, 끊임없이 사유하고, 끊임없이 관찰하고, 끊임없이 공부해. 그녀가 세상과 맞서 싸운 멋진 ‘가위눌림 춤’으로 2010년 대산문학상을 받는 걸 보면서 ‘이제는 되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살아 있는 한 그녀는 계속 글을 쓸 테니까. 쓰고 말 테니까. 하여 오늘밤 글 쓰는 그녀 펜 위로 다정한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으면 좋겠어. 승자, 승자, 최승자, 파이팅! 하면서! 김상미 시인 (VK)
- 아트워크
- 김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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